오피니언칼럼
[광화문·뷰] 최인호 10주기… 당신도 ‘평생 현역’
세상 뜰 때까지 펜 잡은 작가,
80대에도 현역인 외과 의사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 우리는 ‘평생 현역’
어수웅 여론독자부장
입력 2023.10.07
추석 직전 소설가 최인호(1945~2013)의 10주기 추모 행사를 찾았다.
열흘 뒤인 10월 17일은 그의 생일이고, 열흘 남짓 전인 9월 25일이 기일(忌日)이었다.
생전의 작가와 얼마간 인연이 있다. 문학 담당이던 초년 시절부터 그의 쾌활함을 좋아했지만,
세상 등지고 식도암과 사투 벌이던 말년의 작가도 존경했다.
이 암은 사람의 정상적인 목소리를 빼앗는 몹쓸 병. 시종 탁하고 갈라진 음성으로, 죽기 전 이런 인터뷰를 했다.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손발톱이 빠졌지만, 고무 골무 끼운 채 연필 눌러 쓰며 새 장편을 끝냈다고.
그는 ‘평생 현역’이었다.
작가가 졸업한 옛 서울고 자리, 새문안로의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추모식은 ‘최인호 청년문화상’ 시상식을 겸했다.
초대 수상자는 소설가 김애란. 한 세대 후배이긴 하지만, ‘청년’이란 호칭은 조금 민망할 불혹(不惑) 넘은 나이다.
김애란 역시 최인호를 떠올리면 ‘평생 현역’이란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한다는 것. 분야는 다르지만, 얼마 전 집 근처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토요일 정오 무렵 찾았던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건물의 정형외과. ‘A고 9회 동기생 일동 기증’이라고 쓰여 있는 오래된 대형 거울이 2층 접수실에서 먼저 환자를 맞는다.
그 학교 연혁으로 추산하니 의사 나이는 80대 후반. 간단한 진료를 마치고 3층 물리치료실에 누웠는데,
조금 전까지 2층 원장실에 있던 ‘의사 할아버지’가 말 그대로 비호처럼 계단을 뛰어오른다.
“아직 마감 아니지? 한 명만 더 부탁해요!” 역시 할머니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경륜의 간호사들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단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다.
예술가나 의사가 아니더라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 현역의 시간은 연장되고 있다.
올해 한국의 중위 연령은 45.6세. 국민 모두 나이순으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사람이 45세를 돌파했다는 의미다.
사회가 어른 대접을 해 주는 중위 연령은 1998년만 해도 30.7세였다.
그런 세상이니 앞서 김애란의 ‘청년’도 여전히 유효하달까. 이뿐만 아니다.
질병이나 장애 없이 지낼 수 있는 나이, 건강 수명도 늘어났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최신 통계인 2019년 한국인의 건강 수명은 73세다.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75세를 넘을 것이다.
모두가 우려하는 저출생의 시대. 아이를 더 낳자고 외치고, 이민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또 하나 생각을 바꿨으면 하는 게 있다. 은퇴 연령과 노인 노동이다. 병원 접수실에서 프랜차이즈 맥도널드까지 6070 현역은 드물지 않다. 전성기처럼 빛나는 일은 어렵더라도, ‘평생 현역’은 점점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최인호 청년문화상’에 축사를 하러 온 또 한 명의 ‘평생 현역’이 있었다. ‘연개소문’ ‘대조영’을 쓴 84세의 작가 유현종이다. 그는 젊은 시절 꽤 희극적인 장소에서 후배 최인호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세운상가 한 빈터에서 주말마다 열린 원숭이쇼. 약장수 영감이 애지중지하던 녀석의 이름은 ‘명철’이었다. 이 녀석이 재주를 부려야 관객이 모여들고 박수를 치고 그래야 만병통치약을 팔 수 있는데, 명철이는 그 비싸디 비싼 바나나만 먹고 딴전만 피우더라는 것. 애가 탄 영감은 간절한 목소리로 원숭이를 불렀다. “명철아 왜 이러니, 응, 어서 일어나, 잘해보자 명철아! 제발.” 그 목소리와 표정이 잊히지 않아 종종 세운상가를 찾았는데, 똑같은 이유로 그곳을 찾는 후배가 최인호였다는 것이다. 둘은 창작의 불꽃이 시들 때마다 주말의 세운상가를 찾았다고 했다.
‘평생 현역’을 살아야 할 많은 선배와 우리 세대에게 함께 외친다. “명철아, 어서 일어나, 건강하게 잘해보자 명철아!”
어수웅 여론독자부장
------------------------------------------------------------------------------------------------------------------------------------
100자평 7
밥좀도
2023.10.07 05:16:45
사람은 일이든 공부든 운동이든 취미 생활이든 적절히 꾸준히 하며 항시 긴장의 끈을 지니고 있어야 덜 늙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 평균 수명 백 세의 고령화 시대에 이는 선택 아닌 필수다.
답글작성
12
1
프라우다
2023.10.07 07:14:34
노인 노동을 장려해야 한다.그게 빈둥대는 것보다 본인 건강에,경제에 도움이 되고 국가적으로 노동력 부족 해소와 복지 예산 지출을 줄이게 만든다.
답글작성
8
0
오병이어
2023.10.07 08:21:32
내가 좋아했던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베드로님의 마지막 사진을 기억합니다. (잔디에 엎드려서 기도하던...)벌써10주기가 됐군요. 천국에서는 평안하신지...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현역, 눈을 뜨면 출근할 곳이 있음에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저도 놀고만 싶네요. '노년에는 소일거리는 있어야 한다.'(공자)라는 말에 얽매여 있는것은 아닌지? 나에게 물어봅니다.
답글작성
7
0
이가
2023.10.07 08:59:49
내가 찾는 내과의사, 손등의 주름으로 보아 80이 지척이네요. 일년에 두세번 진료를 받으면 불편을 하소연 합니다. "그건 나이들어 그렇거니 하고 지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잡생각이 자취를 감춤니다. 만일 그가 청년이었다면 감히 상상도 못한 명언이지요. 그는 진짜 현역입니다. 그나저나 그가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갈까 두렵네요.
답글작성
2
0
서울 性醫學 설현욱
2023.10.07 10:45:47
..별들의 고향..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여자.. 서울 中高 출신들이 보다 더 ‘人間的’이지.. 경복 출신들은 더하고.. 아무래도 인격이나 인간 정신이 완성되는 思春期 시절을 3-6년 그 또래들과 같이 뒹굴었으니.. 의대에 서울고 출신들이 한 학년에 몇 명 정도 밖에 없었는데도 좀 보면 금방 알 정도..
답글작성
1
0
hamster
2023.10.07 09:00:38
식도암이 아니고 설암 아니었던가? 흡연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각심을 다시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때의 성인들 특히 문인들은 흡연이 무슨 멋인줄 알던 시대라서....
답글2
1
1
hamster
2023.10.07 09:23:15
이게 다 연관이 되어있는 암이라서....원발부위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인호님 본인글에서는 설암이라도 본 기억이 납니다. 여하튼 본인도 인정할 정도의 애연가였던데다가 깊은 흡연도 아니고 얕게 피우는 입담배였던 점이 구강에 더 리스크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병이어
2023.10.07 09:10:57
<침샘암>으로 선종하셨습니다.
FuchSia
2023.10.07 10:31:26
대학 다니느라 서울에 상경하여 곤궁하고 우울하게 지내던 시절에 당시 중앙일보에 연재되던 길없는 길을 기다리며 읽으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현실도피의 마음이었겠지만 고승과 선승들의 이야기가 달콤했었다. 최인호 작가님은 늘 내 마음속에 문학작가의 전형으로 남아있다. 광속의 절대성을 기준으로 물리계가 연결되고 아담이 달을 처음 인지한 뒤로 모든 달이 누구에게나 같게 존재하듯이, 작가님같은 위대한 정신은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늘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프로토스의 칼라처럼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