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이면도로 사거리 붐비는 신호등 구간에 네 방향 차들이 소리 죽여 한 곳만 바라본다 켜켜이 폐지를 접어 손수레에 가득 싣고 밀고 가는 할머니 비바람에 벗겨진 비닐덮게 끌어 덮느라 이쪽 저쪽으로 보일락 말락 겨우 어깨를 가린 비옷은 굽은 허리 아는지 모르는지 비바람 매섭게 몰아친다 한사코 덮으려는 종이상자는 킬로그램에 라면 한 조각 값 산 높이로 쌓아도 하루 식대인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세상을 모르는 신호등은 빗줄기 속에 굽힌 허리 보지 못할까 자동차 소리만 감지 하는지 깜박깜박 외눈질 하며 빗줄기 속 절뚝걸음을 외면한다 더불어 산다는 건 살펴보기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므로 공동체를 이뤘고 자연재해나 전쟁과 경쟁에서 어느 정도의 안정을 찾는다. 폐허가 됐다가도 금방 회복하는 힘은 공동체에서 나오고 서로 살핌의 배려가 있어야 공동체가 유지 된다. 그 살핌은 나와 너를 넘어야 높아지고 서로의 안위에서 이웃의 안위로 더 나아가 전체의 안위를 이룰 수 있다. 현대사회는 경쟁의 시대다. 하나라도 뒤쳐지면 낙오자가 되어 단체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 후의 삶은 위태로워 진다. 조정기 시인은 아주 밝은 눈으로 사회를 살피며 이웃의 안위를 묻는다. 낡은 손수레를 밀고 가는 건 아주 흔한 일상이다. 더구나 각종 재활용품을 가득 싣고 위태롭게 길을 건너는 노인들이 넘쳐난다. 도로의 무법자가 되어 차량을 무서워 하지 않으며 횡단보도와 차도를 구별하지 않고 역방향으로 들어와 운전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이제는 포기한 삶이라는 것을 과시하듯 마구잡이로 도로를 횡단하는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가. 누가 이런 사회를 만들어 그런 모습을 보여주게 하는가. 조정기 시인은 그것이 의문이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개선할 수 있을가를 고민한다. 이문제는 풀수 없는 것일까. 도로의 신호등은 문제가 아니다. 사회 안전망의 신호등이 문제다. 오직 자기 갈길만 바쁘다는 핑계로 불만을 토로하며 억지로 기다려주는 모습은 동정이 아닌 외면이다. 가득 채워도 라면 한 봉지값이 되지 않는 폐지를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구하는 노인의 삶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대책도 문제 해결도 내놓지 못하는 나라와 사회에 시인의 일침은 날카롭다. 모두가 나서서 해결한 우리의 문제를 꼬집은 시인은 사회복지사다.[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