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일 년 살기
강동구
요즈음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평범한 일상이 무료한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서 색다른 체험을 하며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고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자 하여 한 달 살기가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히 제주도가 인기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는 주로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고 가까운 동남아 여러 도시에서도 한 달 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대체로 물가가 저렴하여, 한 달 정도 머물기에 큰 부담이 없고 이국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새로운 해외여행의 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호주 캔버라에 사는 아들 내외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고국에 일 년간 머물면서 손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과 뿌리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알려주고 조국의 역사 문화 전통 특히 한국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켜 조국의 말과 글을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하여 이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소식에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충분히 숙고하여 내린 아들 내외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였다. 한편으로는 아들 내외의 결정이 대견스럽고 고마운 생각도 든다.
비록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자신의 뿌리를 항상 생각하며 손자들에게도 정체성을 확실하게 심어주려는 이들 내외의 어려운 결단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놀라운 것은 손자들이 입학할 농촌 초등학교를 선택하려고 여러 학교를 살피던 중 서로 자기네 학교에 오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학교마다 장점을 내세우며 유치경쟁을 한다니 뜻밖이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실상이 안타깝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학생 한 명이 절실한 상황에 학생 셋이 한 번에 입학하겠다니 어느 학교가 반기지 않으랴.
어쩌다 아들 둘이 외국에 사는 바람에 손자들과 만남이 자주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국내에 일 년 정도 머문다니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농촌 초등학교에서 손자들 셋 입학 허락을 받고 취학에 관한 모든 행정절차를 마쳤다고 한다.
노년에 이르러 누릴 수 낙이 손자들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있을까? 일 년 정도 머문다니 손자들을 자주 만나서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안겨주고 싶다.
한 달 후에 고국에 온다니 손자들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고국의 농촌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여서 손자들의 조국 아버지 할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을 마음껏 배워 같으면 더 없는 바람이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무료 급식과 통학버스는 물론이고 손자들이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가 서툴러 교육청에서 손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전담교사를 학교에 보내준다니 이렇게 좋은 나라가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손자들이 사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호주는 교육환경의 질이 우리나라에 비하면 월등히 떨어진다. 초등학교의 경우 자동차로 등하교를 부모가 시켜야 하고 도시락은 오전 간식. 점심. 오후 간식. 이렇게 세 개를 싸가야 한다.
그래도 이 나라는 자녀를 보통 셋에서 다섯 여섯 정도를 낳아 기른다. 운동장이나 공원에 나가보면 아이들로 넘쳐나 부럽기 이를 데 없다. 호주 사람들은 우리나라보다 소득이 높아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아들도 호주에 살아서 그런지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우리는 셋씩이나 하고 놀랄 일이지만 호주에서 셋은 다자녀로 분류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둘만 나아도 다자녀 혜택이 주어진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미국에 사는 큰아들도 셋을 낳아 기르니 손자 손녀가 여섯이나 되어 기쁘기도 하지만 손자들이 우리나라에 살지 않아서 나라에 빚을 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정책은 어떤 정책을 내어놓아도 백약이 무효다.
원인이 무엇일까? 먹을 것 입을 것 귀한 옛날에는 저 먹을 것. 저가 가지고 태어난다고 억지로 믿으면서 아이가 생기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낳아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이고 입히고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한국 전쟁 직후 베이비 붐 시대에 인구가 갑자기 증가하니 정부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부랴부랴 산아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는 바람에 인구가 급감하여 국가소멸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요즈음 우리나라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급감하여 학생보다 교사가 더 많은 학교가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소멸하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손자들이 도시학교를 마다하고 농촌 학교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농촌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 특화된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학교는 승마를 가르치고 어느 학교는 스키를 또는 악기를 가르쳐 전교생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였다. 이런 소문이 나자 도시에서 농촌으로 유학 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강원도 홍천의 내촌중학교는 전교생이 열한 명인데 교육부 주최 전국 학생 오케스트라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영국의 웨스턴버트 스클 한국 음악의 날 행사에 초대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손자들아 이렇게 좋은 나라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며 너희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열심히 배워 호주에 돌아가면 호주 친구들에게 너희들의 조국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마음껏 자랑하고 자세히 알리기 바란다.
너희들이 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든 한국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너희들의 조국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너희들의 본분이다. 손자들아! 할아버지의 말씀을 명심하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되기를 할아버지는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첫댓글 너무 시대에 적합한 글이기에 강원일보 김오미기자에게 보내고 연일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름다운 글이게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