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6월)
뒤늦게 어린아이 보며 시행착오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아서 할머니가 쓰는 육아일기 같은 것을 써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돌 지난 아이는 온종일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설치고, 잠시 짬이 나면 손쉬운 TV나 보며 쉬게 된다. 그날그날 신문도 한 번 펴보지도 않은 채로 나가는 날도 많다.
아이 엄마가 집에 있으며 내가 쉬는 토, 일요일에는 아이와 집안일에서 벗어나고파서 될 수 있는 대로 나다니니 더 그렇다. 한 달에 한 주일은 부산 다녀오고, 두 달에 한 번쯤은 양평 언니네, 그리고 서울 쪽에 사는 친구들도 만나고 한다.
토, 일요일 집에서 좀 책이나 보며 컴퓨터나 만지며 지내려 해도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사위가 평일에는 늘 늦게 들어오며 바쁘다가 모처럼 주말에 쉬는데 어른인 내가 있으면 마음 놓고 편하게 뒹굴며 쉴 수 없을 것 같아서도 나오게 된다.
어쩌다 집에 있는 주말이면, 아이가 제 엄마 곁을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으니 다시금 집안 일이 내 차지로 돌아오게 된다. 아이 엄마는 무조건 놔두고 쉬라 하지만 아이만 보며 모든 일을 미루고 있는 딸과 어지러운 집안을 보며 못 본 척 하기도 힘들다. 성질 급한 것도 계산 빠른 것도 이럴 땐 문제가 된다. 못 본 척 하던지, 아님 말없이 주군주군 치워주던지 하면 되는데 어렵다.
토요일에는 오후 첫영성체 준비하는 손녀와 성당에나 가지만 일요일은 온종일 집에서 있기는 힘들다. 식사 준비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 하는, 그 일이 하기 싫고 아이 보기도 싫다.
그래서 나온다.
정 갈 데가 마땅치 않으면 집 옆의 왕숙천을 걸어서 한강을 만나는 곳까지 걷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는 찜질방에 가서 몇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였다.
아님 친구가 없는 이곳에서 소중하고 귀한 내 시간 보낸다고 영화관에도 혼자 가서 죽치고 앉아 있다 오기도 해보고.
그러다 이곳 있을 때, 주말에 시간 나는 날은 서울과 경기도 근교 가보고 싶은 데를 순례 다니자고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경비 적게 들고 편하게 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아 나서자 싶었다. 제일 처음 간 곳이 구리에서 국철 한 번 타고 가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은 지하철은 한 번 갈아 타지만 시간은 꽤나 걸린 오이도와 소래포구를 가 보았다. 봄에 조개구이와 주꾸미가 제철이며 유명하다해서 손녀와 같이 가서 먹었다.
그리고 버스로 30 여분 가는 올림픽공원과 그 안에 있는 몽촌토성도 다녀오고, 지난주에는 지하철로 한번 환승하며 과천 현대국립미술관에 다녀왔다. 평소에 가보고 싶어 하던 곳들을 간단하고 쉽게 다닐 수가 있었다.
본래 낯선 곳 다니는 것 좋아하고 혼자서도 다니는 것 좋아했으니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하고 좋다. 바쁘지 않게 느긋한 마음으로 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즐긴다. 다니는 차창 밖의 풍경도 차 안의 풍경도 또 앞에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도.......
목적지에 가서도 구경 하다가 힘들면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고, 배고프면 식당가서 혼자 기분 내며 먹고 싶은 대로 밥 사먹고. 서두는 사람도 없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으니 내 마음 가는대로 움직인다.
어쩌다 너무 좋으면 혼자 보는 게 아까워서 누구라도 같이 올 수 있었으면 할 때가 있기도 하다.
다음 시간 나는 일요일에는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을 다녀오려고 계획한다.
병자호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고 가톨릭 순교자 어른들이 많이 참수당한 성지이기도 한데 집에서 가까이에 있다. 그 다음은 좀 멀지만 파주 헤이리 마을을 가보고 싶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구리에서 있을 때는 구리 생각과 구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하려 한다.
그리고 주어지는 그 시간들을 즐기려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구리에서 부산을 고속버스로 오르내리는 길도 여행길로 즐긴다.
늘 다르게 다가오는 산과 들을 즐기고 기사마다 다르게 서는 휴게실도 즐긴다.
평소에 다니는 걸 좋아했더니 또 이렇게 억지로라도 주말이면 여유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
사람 사는 일, 정말 하루 앞을 모르고 산다 싶다.
지난여름만 해도 지금 구리에 와서 이렇게 지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미래는 모르고, 그 미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가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