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3. 이 세상의 신들 / † 귀신은 실존인가?(눅8:29-31)
<마귀를 대적하라! 예수님의 승리와 우리에게 주신 권리를 집행하라>
예수님께서는 마귀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찾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자신의 실질적인 권리를 회복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을 담당하셨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권리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건강하게 살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죄까지도 다 담당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를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만 살려고 한다. 이런 경우 주님께서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권세는 다 진멸하셨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마귀에게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창세3,15절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한다. 마귀는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그리스도는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써 이천 년 전에 이미 세상 임금의 권세를 꺾고 인간을 마귀에게서 구출해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수1:3절에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하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받았다. 분명히 가나안 땅은 이미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피를 흘렸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며 전투를 겪었으며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붙이신 땅을 얻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겪은 것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와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하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투쟁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믿는 것으로 약속을 받았다. 주님의 약속에는 믿기만 하면 귀신이 나간다는 말씀이 한 구절도 없다. 예수님을 믿되 실질적으로 믿고 생활 속에서 믿음의 능력이 사실로 나타나도록 아직 어린 모든 믿는 이들을 양육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고 그 땅을 가리켜 네가 밟는 땅이 네 땅이라고 약속하셨으나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근차근 가나안 땅으로 점령해 들어가고 그 땅의 원주민을 쫓아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단번에 달아나고 이스라엘이 단번에 가나안을 차지한 것이 아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많은 피를 흘리면서 그 땅을 얻기 위해 싸워야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승리하도록 허락하셨다. 우리가 거룩하도록 또한 승리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회복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투쟁이 있게 된다. 신학적으로 중생(거듭남), 곧 구속이라는 것은 일회성 변화로써 우리의 영 안에서 영단 번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화 곧 유기적 구원은 혼의 변화로써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계속 투쟁하면서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혼의 변화와 거룩한 몸을 가질 수 없다(롬5:10-11).
구속+구원=완전한 구원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향후 별도의 책으로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얻기 위해서는 강한 영과 혼의 변화와 육체를 침범하는 자들을 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길 수 있는 권리를 찾아 주셨으나 실제 회복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무시하는 자들이다. 자신이 원수에게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너는 죄에서 나와라. 악에서 나와라. 예수님이 허락하신 권리를 주장하라”고 계속 명령하신다.
히12:4절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지속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강한 영과 혼의 변화와 병든 육체를 회복하기 위하여 영적 전쟁을 계속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니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막14:38). 그리스도인 중에서 이미 몸이 병든 사람은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육체가 권리를 회복하지 못했다. 주님이 우리의 병을 짊어지심으로 우리의 육체에도 권리를 주셨으나 그 권리를 실제로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권리로 자기의 육체를 지배하는 원수들을 대항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권리를 주셨으나, 믿음을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자에 대해서는 딤전5:12절에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고 말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은총에 감사하며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사탄에게 억압되고 멸망하고 말았다. 가롯 유다도 사탄에게 억압돼서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의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허리가 꼬부라진 여자를 고쳐 주시고 ‘18년 동안이나 마귀에게 눌린 이 여자를 내가 해방시키는 것이 어찌 너희에게 악하게 보이느냐?’라고 물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최고의 권리를 찾아 주셨는데 우리 자신이 실제로 회복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우리는 다 찾아서 소유하고 집행해야만 한다. 승리는 이미 약속되어 있고 보장되어 있으므로 피를 흘려서라도 찾아서 누려야 하는 것이다.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소유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성경의 말씀을 단순히 믿지 못할까?
내가 체험적으로 당신에게 병 고치는 은사나 귀신을 쫓는 은사를 소유하고 집행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몸이 건강을 찾도록 권리를 주셨으니 강한 영으로 힘써 싸워서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피를 흘리고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싸우고도 실패하는 전쟁이 많다. 그러나 이 영적 전쟁은 절대적으로 승리한다. 주님은 싸워서 정복하라고 명령하신다. 만약 정복하려고 하지 않으면 다 잃고 만다. 특별히 내가 귀신 축사와 병 고침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실제 권리를 실행하고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마9:2절에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중풍 병자가 권리를 얻어서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 그런데 권리를 가지고도 회복하지 못한 사람은 마치 돈을 가지고도 굶어 죽는 사람과 같다.
성경은 병든 사람을 향하여 권리를 가지고 건강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신다. 자기 몸을 찾으라는 것이다. 믿음의 권리에는 자기의 영과 혼과 육체가 살 권리가 포함되어 있느니 힘을 다해 영혼도 죄에서 벗어나고 육체도 죄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수1:3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가나안 땅은 이미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것이 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피를 흘렸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붙이신 땅을 얻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밟는 땅을 다 그에게 주셨으니 권리를 가지고 찾으면 다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권리를 찾기 위하여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움직이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으로 알고 기다리면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회복의 신령한 권리를 얻었다. 그러므로 그 회복의 권리를 사용하여 실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회복의 권리를 포기하면 원수가 당장에 삼켜버리고 교묘히 자기 권리인 양 교묘하게 속인다. 귀신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 권리를 포기한다면 귀신은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역사한다. 귀신은 주님께 회복의 권리를 얻은 자가 실질적으로 집행할 때 몸에서 나간다. 우리 믿는 이들은 이 사실을 잘 깨달아야만 한다.
귀신을 쫓는 것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영혼을 이미 구원해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면에 성경은 육체는 학대해도 좋다고 말한 사실이 없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병을 담당하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육체를 위해서도 은총을 주셨다고 말한다. 육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기회이다.
무슨 뜻인가? 육체가 죽으면 봉사할 수도 없고 전도할 수도 없고 주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천년왕국에서는 우리가 육체가 있을 동안에 일한 만큼 상(償)을 주실 것이다. 우리의 영의 구원은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상급(賞給)은 우리의 혼과 육체가 일한 만큼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과 육체는 주님를 위하여 지금 봉사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병아리가 나오면 껍데기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서 버려진다. 그러나 병아리가 나올 때까지 21일 동안은 껍데기가 속을 잘 싸고 있어야 한다. 중도에 껍데기가 깨져 버리면 병아리가 나올 수 없다. 우리의 육체도 계란처럼 일회용이다. 한 번 깨어지면 다시 쓸 수 없다. 영혼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육체를 무시하면 안 된다.
만일 육체는 가지고 있어도 죄만 짓고 귀찮기만 한 것이므로 자살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자살한 사람은 면류관은 고사하고 구원도 받을 수 없다! 성경에는 자살한 사람이 구원받은 내용이 없다. 영혼이 더욱 깨끗이 살기 위해서 자살한다는데 왜 영혼이 망할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의사가 있었지만, 주님은 병든 자에게 의원을 찾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는 의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가지고 오신 주님의 능력이 너무 강하고 정당하고 의롭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신 것이다. 육체는 일회용이요, 한 번 깨지면 끝난다. 귀신은 우리의 영은 주님께 빼앗겼지만, 우리의 혼과 육체는 끝까지 억압하려고 미혹한다. 혼과 육체가 병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거니와 보상도 없다.
귀신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 속에 들어와 혼과 육체를 점령하고 지배하고 억압하려고 한다. 혼,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는 하나님의 부리시는 영, 곧 미혹의 영이 역사한다. 생각을 집착하게 하고, 감정을 상하게 하며, 의지를 약화시킨다. 이 혼은 심리학적으로 의식과 무의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굴절된 생각과 수없이 상처난 감정과 쉽게 포기하는 의지는 특히 어릴 때 어떤 사고들을 통하여 트라우마가 되어 그 사람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이와 같이 혼의 상처나 생각의 집착이 있을 때 귀신은 미혹의 영의 도움을 받아 육체에 들어옴으로써 한 사람 안에 두 인격(다중인격)이 존재하게 된다.
막16:17-18절에서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서 찾아 주신 권리로 원수를 이기고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교회는 영적 전쟁을 하는 곳이다. 교회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씨름하는 곳이다(엡6:12). 정사와 권세와 세상 제도와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다. 이 세상과의 전쟁도 큰 싸움이지만, 교회의 투쟁이란 현존하는 원수와의 싸움이다. 예수 이름으로 저주하고 물리쳐야만 한다.
성경에 의하면 베드로, 야고보, 바울, 디모데 등 주님의 제자들마다 원수가 우리를 해롭게 하고 있느니 투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생 동안 귀신에게 억압당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귀신에게 대항하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귀신에게 당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로 정당하고 과감하게 물리쳐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병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을 기록한 일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귀를 이길 권세와 권능을 주셨다. 귀신을 쫓을 권세를 주셨다. 마10: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귀를 이길 권세와 권능을 주셨다. 귀신을 쫓을 권세를 주셨다. 이 말씀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불변이며 영원하다. 우리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주님이 주신 권리는 사실이다. 이 권세는 실질적이고 강력한 힘이다. 약의 효력은 병자가 있어야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님의 권세는 원수를 박멸할 때에(축사할 때)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귀신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을 병들게 하고 억압하는 원수이다. 성경에는 꼬부라진 귀신이라고 말했다. 또 눈먼 귀신아, 벙어리 귀신아, 귀먹은 귀신아, 하고 장애자를 향하여 강력하게 불렀다. 귀신은 존재이다. 곧 눈먼 존재요, 귀먹은 존재요, 벙어리 된 존재요, 꼬부라진 존재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귀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철저하게 박멸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귀신은 우리가 자기의 정체를 밝혀서 더 이상 속일 수 없게 될 때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귀신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귀신은 속일 수 있는 분량만큼 우리를 억압하고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귀신에 속지 않는 한 귀신을 물리칠 수가 있다.
우리는 귀신에 속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생각에 들어 있는 좌절과 정신적인 고통도 귀신에게 속지 않고 이를 인정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노이로제, 스트레스, 트라우마, 신경성이라고 붙여서 귀신인 줄 모르게 교묘히 속이는 것이 귀신의 역사이다.
그래서 귀신들은 유전이라고 믿게 하고 팔자소관이라고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예수 이름으로 이를 분명히 분별하고 쫓을 수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 또 아멘♡♡♡
강력하게 주신 귀신쫓고 병을 고치고 땅을 차지하는 권능을 사용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