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고통과 억압을 연상시키지만
모든 식민지의 성격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식민지를 점령한 국가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에 따라 그 형태와 결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 점은 특히 벨기에의 콩고와 일본의 한반도를 비교할 때 뚜렷하게
드러난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1885년부터 1908년까지 콩고를 ‘국가의 식민지’가 아닌, 철저히 자신의 사유지로 지배했다. 그는 콩고 자유국이라는 이름 아래 고무와 상아를 수탈했고, 목표 생산량을 채우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손목을 절단하는 형벌을 가하기까지 했다. 이는 생산성 증가를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공포를 통한 통치가 주 목적이었다. 국제사회가 충격을 금치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의 인도 통치도 마찬가지다. 전통 산업을 붕괴시키고 자국 공업의 원료지와 소비시장으로 전락시킨 결과, 인도는 빈곤과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양국 모두 식민지를 단순한 ‘자원 창고’로 여긴 것이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그 목적에서 서구열강과 달랐다.
물론 한반도 역시 엄연한 식민지였고, 정치적 자유는 억압되었으며,
강제동원과 언어 말살 등의 폭력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곳을 단순한 수탈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야 할 공간으로 인식했다. 만주 진출의 전진기지, 본토 인구의 이주처, 그리고 식량과 자원의 안정 공급지로서 한반도를 개발했다.
철도, 도로, 전력, 항만과 같은 인프라가 집중적으로 건설된 것도 그런 목적에서였다.
광복 이후 일본이 남기고 간 수많은 시설과 자산은 '귀속자산'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에 남게 되었다. 이것은 일본이 한반도를 단순히 약탈의 대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국화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수탈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수탈의 방식과 의도가 서구 열강과는 달랐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일본이 남기고 간 귀속자산은 해방 후 우리가 일어서는데 발판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식민지배는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적어도 서구열강의 식민지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