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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길 걷기를 추천합니다.
서울 성곽 1코스 남산코스
- 숭례문 ~ 장충체육관 (약 6km, 4시간 소요)- 흙냄새·풀냄새 가득한 소나무 탐방로, 서울시내 조망도 일품 서울 성곽길 1코스는 숭례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8번 출구 또는 1, 4호선 서울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숭례문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2008년 방화로 인해 무너진 숭례문 복원이 한창 진행 중이라 숭례문을 볼 수는 없다.
코스 정보 : 숭례문 - 백범광장 - 안중근의사 기념관 - 잠두봉 포토아일랜드 - N서울타워( 봉수대, 팔각정) - 남측 포토아일랜드 - 소나무 탐방로 - 국립중앙극장 - 우수조망소 - 성벽길 - 장충체육관
교통 정보 : ·숭례문 :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8번 출입구 / 1, 4호선 서울역 4번 출입구 ·N서울타워 : 02번 남산 순환버스(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4번 출입구 /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입구에서 탑승) ·장충체육관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입구
숭례문 : 숭례문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을 둘러쌓고 있던 성곽의 정문이다.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원래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으나 2008년 방화로 인해 소실됐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해 짠 구조가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백범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 : 숭례문을 지나 남산 방면으로 걷다 보면 인도에 남아 있는 성곽 일부를 볼 수 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서울 성곽길 여정의 시작이다. 조금 더 걷다 보면 힐튼호텔이 오른쪽에 보이는 삼거리가 나온다.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건너편 하늘 위로 N서울타워가 보인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00m쯤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이 가파른 계단이 바로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왔던 일명 ‘삼순이 계단’이다. 이 계단을 오르면 바로 남산공원이다.남산공원 안에는 백범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남산에는 과거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신궁이 세워져 있던 곳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백범 김구 선생 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다.
조선신궁 :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는 곳부터 공원 숲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과거에 조선신궁이 자리를 잡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라 예장동 일대를 ‘왜성대’라고 부르기도 했다.조선신궁은 신민정책이 한창이던 1920년대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이르는 크기로 조성됐었다. 조선신궁이 조성되면서 ‘목멱대왕’을 모시던 ‘국사당’은 인왕산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조선신궁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스스로 불태워 없애버렸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나와 분수대를 지나면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과거 식물원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 N서울타워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N서울타워를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와 봉수대 : 길을 따라 걸으면 N서울타워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길에는 잠두봉 포토아일랜드가 있다. 남산에 있는 작은 바위봉 잠두봉에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하고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나무데크를 설치해 뒀다. 이곳에 서면 경복궁은 물론 인왕산부터 낙산까지 모두 볼 수 있다.남산을 오르는 계단은 N서울타워에 있는 봉수대까지 이어진다. 남산에는 5개의 봉수대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모두 파괴되었고 현재에는 1개소만 복원해 놓았다. 수원 화성에 있는 봉수대를 참고해 복원시켰다. 봉수대는 과거에 있었던 통신시설로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었다. 하지만 비가 와 불이나 연기를 피울 수 없을 때는 봉수꾼들이 맞은편 산에 있는 곳까지 직접 뛰어가야 했다. 팔각정과 N서울타워 : 남산 정상에는 팔각정과 N서울타워가 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아주 유명한 장소다. 특히 N서울타워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학생,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N서울타워 전망대에서는 날이 맑으면 서울 전역은 물론 개성 송악산과 인천항까지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N서울타워에는 360도 회전하는 레스토랑과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벽에 걸린 수많은 열쇠를 구경할 수 있다. 팔각정 자리에는 원래 국사당, 목멱신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사당 터’라는 표지석이 대신하고 있다. 국사당은 조선시대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종묘, 사직, 궁궐을 세운 뒤 남산을 목멱대왕으로 봉작해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 사당이다.
남측 포토아일랜드와 소나무 탐방로 : 남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서는 서울 성곽을 볼 수 있다. 군데군데 끊기기는 했지만 성곽을 보며 과거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서울 성곽은 태조, 세종, 숙종 때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남측 순환로와 이어진다. 순환버스들이 다니는 길이지만 일반차량이 통제돼 한적하다. 좀 더 내려가다 보면 남측 포토아일랜드를 만날 수 있다.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게 꾸며져 있어 아름다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소나무 탐방로에 들르는 것도 좋다. 싱그러운 흙냄새와 풀냄새가 우리의 몸을 정화시켜 줄 것이다. 또 소나무 등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장충단공원 : 소나무 탐방로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계속 걸으면 남산 남측도로가 나온다. 국립극장 앞으로 나와 맞은편에 있는 한국자유총연맹자유센터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끝부분에 오솔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울 성곽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길로 연결된다. 잘 정비된 탐방로를 걸어 올라가면 팔각정을 볼 수 있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성벽 옆으로 난 성곽길을 걸을 수 있다.이 성곽길을 걷다 보면 성곽에 씌어 있는 한자들을 볼 수 있다. 성곽을 축조할 당시 감독관이나 석공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성곽을 따라 내려오면 서울신라호텔 정문을 지나 장충단공원을 지나게 된다.장충단공원은 최근 새롭게 공원을 단장해 산책하기 좋게 꾸며져 있다. 장충단은 1985년 일제의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뒤 전국에서 시작된 항일의병단 활동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고종황제가 장충단과 장충단비를 세우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장충단비만 남아 있다. 이 밖에 공원에는 청계천에서 옮겨온 수표교가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청계천에 서 있던 다리인데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왔다. 수표교는 원래 하천의 수심을 재는 역할을 하던 다리였다.
와룡묘 : 서울 중구 예장동 산 5-6,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으로 와룡은 제갈공명의 호,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
남산골 한옥마을 : 서울 중구 필동2가 84-1,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3번 출구, 02-2264-4412.
서울 성곽 2코스 낙산코스
- 장충체육관 ~ 혜화문 (약 5.5km, 3시간 소요)- 성곽길 복원 잘돼 연인은 데이트, 가족은 산책 코스로 좋아 2코스는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4번 출입구부터 시작이다. 2코스는 도심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도심에서는 성곽을 찾기가 쉽지 않다. 광희문까지 가려면 장충체육관에서부터 천주교 신당동성당, 장충아트빌라, 광희문교회를 지나야 한다.
코스 정보 : 장충체육관 - 광희문 -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 이간수교 - 오간수교 - 전태일 거리 - 흥인지문 - 낙산공원 - 삼선4구역 - 혜화문
교통 정보 :·장충체육관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4번 출입구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 지하철 2, 4, 5호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입구 ·낙산공원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입구, 한성대입구역 3번 출입구 ·혜화문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입구
광희문 : 광희문은 조선시대 서울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로 동남쪽에 있었던 문이다. 광명(光明)의 문이라는 뜻에서 광희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조 5년(1396) 8월부터 9월까지 행한 2차 도성 수축 공사 때 다른 문들과 함께 누각을 올려 완성했다. 이 문 옆에 하수구인 수문(水門)이 있어 속칭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렸다. 또 성 내에서 발생한 시체는 서소문과 이 문으로만 나갈 수 있어 시구문(屍口門)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광희문은 지금의 자리에서 15m 정도 옆 도로 위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망가졌다가 1975년 문을 남쪽으로 옮겨 문루와 함께 복원했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 광희문을 지나 한양공업고등학교 쪽으로 길을 건넌 뒤 학교 뒷담을 따라 걸어가면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을 만날 수 있다. 공원으로 가는 길을 잘 살펴보면 조그마한 성곽을 발견할 수 있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만들어졌다. 철거 도중 이간수문 등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발견돼 ‘동대문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 공원 내에는 동대문운동장 기념관, 동대문 역사관, 디자인 갤러리 등이 운영되고 있다. 공원에서는 공원 조성 시 발굴된 잃어버렸던 성곽들을 볼 수 있다. 또 옛 건물 기둥 터, 기와 등도 볼 수 있어 역사를 몸소 느낄 수 있다. 성곽을 따라 내려가면 ‘치’‘치성’이라는 방어시설도 볼 수 있고, 이간수문도 볼 수 있다. 이간수문은 남산 방면에서 내려온 물들을 내보내는 수문이다. 동대문운동장은 국내 스포츠 역사에서도 가치 있는 장소였다. 경평축구대회는 물론 중학교 야구 리그전이 치러졌으며 차범근 선수가 서독으로 진출하기 전 환송회를 연 곳이기도 하다. 또 한국 야구 최초의 홈런이 동대문운동장에서 나왔다.
청계천 : 동대문운동장 기념관을 나와 청계천 길을 따라가 보자. 청계천은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4km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조선의 한양 정도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했었다.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했으며,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했다. 이 공사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됐다.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오간수교·광교·영미교·관수교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국권 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오간수문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오간수교가 자리 잡고 있다. 오간수문은 1907년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다가 오간수교로 다시 만들어졌다 사라졌다. 지금의 오간수교는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을 하며 복원된 다리다. 2003년 7월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 구간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동구 신답철교로 구간으로 5.8km에 이른다. 2005년 10월 1일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청계천 위에 놓인 총 22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정조반차도를 비롯한 역사적 자료를 복원한 도심 속 하천으로 개통했다.
전태일거리와 동대문시장 : 청계천을 걷다 보면 평화시장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주위를 잘 살펴보면 노란 동판이 쭉 이어진 전태일거리를 만날 수 있다. 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버들다리에는 전태일 흉상도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청계천에는 수많은 봉제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 등은 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힘 없는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결국 전태일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처우를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했다. 전태일은 결국 길거리에 나오게 됐고, 노동자들의 힘겨움을 분신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동대문시장은 1900년대 시작과 함께 발달했다. 일본인들이 남대문 일대의 상권을 잠식해 가자 자유상인들이 동대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포목, 양장, 양품 등을 주로 취급하다 최근에는 의류도매시장으로 바뀌었다.
흥인지문 : 흥인지문은 서울 4대 문 중 하나로 보물 제1호다.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흔히 동대문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했다가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해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그 형태가 가늘고 약하며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아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흥인지문은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다. 원래 흥인지문 좌우로 높은 성벽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낙산공원 :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아주 훌륭한 성곽길이다. 이 코스는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길을 건너면 끊긴 성곽길이 눈에 보인다. 성곽을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면 왼쪽에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 가면 다른 코스에 비해 비교적 온전한 모습의 성곽을 볼 수 있다. 낙산공원 가는 길은 성곽길 복원이 잘 돼 있기 때문에 걷기에 편안하다. 친구·연인과 걷기에도 부담이 없고, 길가에 있는 정자에 앉아 낮잠을 자거나 사색을 즐기기에도 좋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낙산공원으로 이어진다.낙산공원에는 전시실 및 관리실, 매점, 화장실, 비우당(庇雨堂), 정자, 배드민턴장, 농구장, 이벤트광장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또 공원 녹지화를 위해 소나무를 포함해 총 40종, 8만9670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덕분에 낙산공원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다.
장수마을과 혜화문 : 낙산공원을 둘러봤다면 광장의 암문을 지나 삼선동 쪽으로 나가 보자. 높은 성벽을 따라 가다 보면 혜화문까지 이어진다. 이 암문 밑의 마을이 장수마을이다. 재개발 예정지역이었으나 문화재, 지형 등의 문제로 건설사들이 개발을 포기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NGO들의 노력으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주민이 공존하는 새로운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빈집과 허름한 집이 많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대도시 속에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작고 한적한 마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장수마을에서 성곽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으면 혜화문이 보인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입구로 나가 뒤를 돌면 아름다운가게가 보이는데 거기서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혜화문을 볼 수 있다.
비우당 : 서울 종로구 창신동 471-9, 낙산공원 정상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창신동 방향, 쌍용아파트 입구 옆길,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집필한 곳.
이화장 : 서울 종로구 이화동 1-2, 낙산 정상에서 대학로 방향, 중앙공원 동숭 어린이집 방향, 이화장 3길 계단길 오른쪽,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동절기는 5시까지), 예약 필수.
서울 성곽 3코스 북악산(백악산)코스
- 혜화문 ~ 창의문 (약 5.5km, 3시간 소요)- 오솔길 따라 걷다 보면 화폭 같은 성북동·삼청동 전경 한눈에 펼쳐져 3코스는 혜화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입구로 나가 뒤를 돌면 아름다운가게가 보이는데 거기서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혜화문을 볼 수 있다. 혜화문에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끊긴 성곽이 보인다. 혜화문 축대 끝부분을 살펴보면 철문이 달린 혜화문 입구가 있다. 축대를 통해 계단을 올라가면 혜화문이 눈에 들어온다.
코스 정보 : 혜화문 - 와룡공원 - 숙정문 - 곡장 - 청운대 - 1·21사태 소나무 - 백악마루 - 창의문
교통 정보 ·혜화문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입구 ·창의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입구 / 0212, 1020, 7022번 버스 이용해 자하문고개 하차
혜화문 : 혜화문은 1992년 복원됐다. 사대문, 사소문을 통틀어 가장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서울 성곽과 같은 시기에 전축됐으나 1928년 문루가 헐린 후 1939년 남아 있던 석축도 허물어버렸다. 다른 문들과 마찬가지로 신작로를 내기 위해 허물어버린 것이다. 또 혜화문 앞마당에서 도로까지는 지면의 높이가 다르다. 이는 원래 지면보다 4~5m 정도 파낸 후 도로를 냈기 때문이다. 혜화문은 동쪽의 소문으로 양주, 포천 등 북쪽 지방을 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북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 성벽을 따라가면 성곽길이 금방 끊긴다. 여기서부터는 일반 주택가 골목을 지난다. 서울시장 관사를 지나 와룡공원까지 가야 한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가 나오고 포장마차도 볼 수 있다. 여기가 바로 와룡공원이다.
말바위 쉼터와 삼청각 : 와룡공원에서부터 말바위 쉼터까지 가는 길은 본격적인 통제구역이다. 이 부분의 길들은 군부대가 밀집해 있어 패찰을 달고 걸어야 한다. 패찰을 받기 위해서는 신분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을 제시해야 한다.이 길은 성곽 안쪽으로 통하는 나무계단이 나오기 전까지 조촐한 오솔길이다.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성곽과 나무들로 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특히 이 코스는 차가 다니지 않아 한적하다. 나무계단을 오르지 않고 계속 가면 삼청각까지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나무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오솔길을 만날 수 있다.나무계단을 올라 성곽 안쪽으로 걸으면 우수조망소를 만날 수 있다. 성북동이 한눈에 보일 것이다. 계단 안쪽으로 내려가면 삼청동으로 가는 길과 말바위 쉼터가 눈에 보인다.
숙정문 : 말바위 쉼터에서 300m쯤 가다 보면 숙정문이 보인다. 사대문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
촛대바위와 곡장 : 숙정문을 둘러본 다음에는 곡장으로 향해야 한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지나다 보면 촛대바위도 만나게 된다. 곡장은 서울 성곽에서 백악산과 인왕산 단 두 곳밖에 없지만 이곳만 들어가 볼 수 있다. 곡장은 적을 살피고 성벽을 오르는 것을 좀 더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과거 평탄한 지형에는 치성을, 산세가 험한 곳에는 곡장을 설치했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시설인 만큼 지리적으로 입지가 아주 좋아 주변 전망을 관람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곡장에서 내려서면 평탄한 길이 나온다. 가끔 산짐승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후 암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성 안으로 들어온다. 창의문 : 백악마루에서 서울 시내 감상을 마쳤다면 산을 내려가자. 경사가 급한 내리막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돌고래 쉼터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창의문 탐방안내소에 다다른다. 이 안내소에 패찰을 반납하고 밖으로 나서면 창의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의문은 북문 또는 자하문으로도 불린다. 1396년(태조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의 하나로 창건돼 창의문이란 문명(門名)을 얻었다. 북한 ·양주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16)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중종1)에 다시 열어놓았다. 1623년 인조반정 때는 능양군을 비롯한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문루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0년(영조16)에 다시 세우고 다락 안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걸었다. 1958년 크게 보수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다.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1-1,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미술관,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 소장, 입장료 무료, 02-762-0442.
수연산방 :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8, 성북구 미술관 골목 안에 위치, 상허 이태준이 살던 집으로 현재는 전통찻집으로 운영 중, 낮 12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운영
서울 성곽 4코스 인왕산코스
- 창의문 ~ 숭례문 (약 6km, 4시간 소요)- 시인의 언덕을 넘고, 약수 한 모금 마시면 서울이 한눈에 4코스는 인왕산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자하문고개에서 시작하는 4코스는 창의문을 둘러본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창의문을 둘러본 후 문과 굴다리를 지나 바로 왼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왼쪽에 시인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코스 정보 : 창의문 - 시인의 언덕 - 인왕산 정상 - 국사당 - 경교장 - 돈의문 터 - 정동길 - 옛 러시아공사관 터 - 서울시립미술관 - 소의문 터 - 숭례문
교통 정보 : ·창의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입구 / 0212, 1020, 7022번 버스 이용해 자하문 고개 하차 ·숭례문 :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7번 출입구 / 1, 4호선 서울역 4번 출입구
시인의 언덕 : 시인의 언덕을 오르는 계단은 초입부터 윤동주의 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 ‘별 헤는 밤’서시’등의 작품들은 윤동주 시인이 인왕산 자락에 살던 시기 구상된 시다. 시인의 언덕은 이런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한 길이다. 시인의 언덕 공원에서는 ‘서시’의 시비도 있다. 평소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다. 공원을 좀 지나 좀 더 걷다 보면 경계 초소와 이동식 화장실이 보인다. 그리고 도로를 건너면 바로 인왕산 등산로 입구 팻말이 보인다.
인왕산 정상과 국사당 선바위 : 인왕산 등산로는 가파른 계단길이다. 길은 성벽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성벽 안으로 들어오게 돼 있다. 인왕산 정상에서는 창경궁, 63빌딩, 한강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인왕산 정상에서는 인왕천 약수터 방향으로 하산한다. 시원한 약수를 마시며 도로까지 내려온다. 이 도로는 시인의 언덕과 이어진다. 시인의 언덕을 등 뒤로 하고 걷다 보면 군인 관사를 지나 뒤쪽으로 작은 계단으로 된 오솔길을 볼 수 있다. 이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국사당을 만날 수 있다. 고종 때만 해도 이 국사당에서는 거의 매년 제사를 지냈다.국사당 안쪽에는 선바위가 있다. 스님을 닮은 바위로 조선 태조가 성을 쌓을 때 문신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이 바위를 성 안으로 할 것인지 성 밖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 대립을 보였으나 결국 정도전의 의견에 따라 성 밖으로 밀려났다는 일화가 있다.내려가는 길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성벽 안쪽 길과 바깥쪽 길 두 개 중 한 군데를 선택할 수 있다. 안쪽은 넓은 길을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바깥쪽은 오솔길을 걸을 수 있다.
경교장과 옛 러시아공사관 : 국사당과 선바위를 내려오고 나면 성곽은 끊긴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가면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경교장을 볼 수 있다. 경교장은 바로 강북삼성병원에 있다. 이곳 본관 현관으로 쓰이는 건물이 김구 선생의 자취를 간직한 경교장이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인 1949년 6월까지 집무실 겸 사저로 사용되던 곳이다.길을 건너 경향신문사 앞길로 들어서면 정동길이 나온다. 캐나다대사관을 지나 옆으로 올라가면 하얀 탑이 보인다. 이 탑은 옛 러시아공사관의 일부다. 옛 러시아공사관은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1896년 2월 1일 세자(뒤의 순종)와 함께 옮겨가 이듬해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피신했던 곳이다. 또한 아관파천 중에 친일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고 친러 박정양 내각이 조직되는 등 역사적으로 의의가 큰 건물이다. 현재는 탑부만 남아 있다. 탑의 동북쪽으로 지하실이 있는데 덕수궁까지 연결됐다.
이화여고 박물관 : 옛 러시아공사관을 나와 정동길로 들어서면 맞은편에 이화여고가 있다. 이화여고는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며 1886년 5월 31일 개교했다. 이후 1887년 10월 22일 고종황제가 이화학당이란 교명을 하사했다. 이화여고에는 독립투사인 유관순 동문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1974년에 건립된 유관순기념관이 있다. 유관순은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해 1918년 고등과에 진학했다. 1919년 3·1운동을 하다 헌병에게 잡혀가 졸업은 하지 못했다.
정동교회와 서울시립미술관 : 이화여고 박물관에서 덕수궁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붉은 벽돌의 정동교회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건축물이다. 1895년 9월에 착공해 1897년 10월 무렵에 준공된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다. 교회 앞으로 나오면 덕수궁 돌담길이 좌우로 질게 펼쳐져 있다. 정동교회에서 나와 오른 쪽으로 가면 서울시립미술관이 보인다.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을 파사드(전면부)만 그대로 보존한 채 신축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최근 팝아티스트 앤디워홀의 전시회가 열렸었다.서울시립미술관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배재정동빌딩이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면 배재학당이 나오고, 배재공원을 지나 큰길로 나서면 서소문 고가가 보인다. 고가 맞은편에는 중앙일보사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중앙일보사 건물을 지나 대한상공회의소 앞으로 나오면 복원된 성곽 일부와 함께 한창 재건 중인 숭례문을 볼 수 있다.
독립문 :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941, 1896년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청(淸)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모금운동을 해 세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 247,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었다. 유관순 열사, 만해 한용운, 도산 안창호, 백범 기구 등이 투옥됐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