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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하고 돌아온 다음날인 10월 5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꼿꼿하게 인사한 배경을 묻자 “아리랑 공연 때도 박수를 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었다. 공연 당시 내 옆에 있던 북측 인사에게 ‘나는 68만 군의 수장이다. 진짜 집단체조나 아름다운 장면은 아낌없이 박수를 치겠지만 체제 선전, 사회주의 리얼리즘 같은 것을 표현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했다. 이런 맥락에서 (꼿꼿이 서서 인사한 것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답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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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통 김장수는 ‘혁신총장’ 그리고 개인 김장수는 ‘소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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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한 파격 인사,국방부 장관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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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의 김 국방, NLL문제로 노 대통령과 불협화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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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한 파격 인사,국방부 장관되다
2006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김장수 장관의 인사는 파격적이었다. 현역 대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한 것은 군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다. 1961년 5·16직후 장도영 육참총장이 국방부 장관에 준하는 군사혁명위원장에 취임한 것과 비슷한 사례이지만 당시 장도영 총장은 대장이 아니라 중장이었고 계엄 상황의 한시적 직책이었다는 점에서 경우가 다르다고 하겠다. 이처럼 예상을 뒤엎은 인사에 군 관계자들은 대체로 군 조직을 안정화하고 국방개혁을 마무리하라는 뜻을 둔 인사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김장수 장관은 군 안팎에서 대체로 좋은 평판을 듣고 있었다. 김 장관은 윤광웅 전 장관과 잘 맞는 편이었고 청와대와도 관계가 좋았으며 특히 총장 재임 중 군 구조 개편, 육군 병력 감축, 3군 균형발전 등 육군으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개혁안을 과감하게 추진함으로써 국방개혁에 이바지해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파격적으로 발탁된 김 장관은 국민의 정부 시절 군내 호남인맥으로 분류됐으나 지역이나 임관, 출신 등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아 그다지 코드 지향적이지 않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장관에 취임한 뒤엔 군 안팎의 비판과 반발이 많아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역점과제들을 ‘해결’했던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코드적인 부분도 존재한다는 평이 있다. 보수진영이 거세게 반대했던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을 2012년 4월까지 전환키로 합의한 것,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일었던 군 복무기간 단축을 결정한 것, 국방부가 계속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했던 종교적 병역거부를 수용한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병사가 본 김장수 국방장관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해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모 씨가 김장수 장관의 취임에 축하하며 현역 시절 자신이 바라본 김장수 장관에 대한 내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담았다. 김모 씨가 육군에 복무하던 시절, 운 좋게도 당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논산훈련소에서 인분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신병 교육에 대한 총체적인 의견을 수렴하고자 논산 훈련소에서 참모총장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고 신병대대 조교였던 그는 사단 대표로 토론회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 따르면 토론회 내내, 훈련병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갖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온 동시에, 무엇보다 훈련병을 다루는 교관 조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 줘야 된다는 불만성 주장들도 여지없이 쏟아져 나왔다. 전군이 주 5일 근무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신병교육대대는 제외된 상황이었고 교관 조교들의 근무 여건은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토론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당시 김장수 총장은 토론 말미에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는데 그는 그 때의 충격과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면서 김 장관의 말을 전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보다 권리가 아닌 의무가 우선해야 한다. 병장이 이등병보다 더 많은 의무가 있고 병사보다 간부들에게 더 많은 의무가 있다. 조교 중에 가장 계급이 낮은 이등병 조교라 할지라도 훈련병보다 더 많은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관 조교들이 의무보다도 권리만 찾으려 하는 것인가? 참모 총장인 나에게는 권리란 없다. 나에게는 오직 의무만 존재한다.”
그는 그 때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참된 리더의 덕목인 ‘기득권 포기’와 ‘책임’을 몸소 깨닫게 해준 중요한 사건”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어 “군대내의 크고 작은 사건ㆍ사고들이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접해져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군을 불신하고 걱정하는 것 역시 사실이며 대한민국의 60만이 넘는 군이 일시에 변화하기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 국군은 서서히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는 권리를 모르고 의무만을 아는 김장수 장관 같은 리더들이 있다”며 글을 맺었다.
북한과 신경전 벌이는 김 장관
김 장관은 취임 초반부터 북한 핵 실험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해 나갔다. 그는 여단장급 이상 지휘관 및 참모들에게 보낸 ‘지휘서신’에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강력한 힘으로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밝힌 동시에 “북한의 제2, 제3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과 북핵 문제 협상과정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은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며 북핵 위협에 대비한 명확한 대응전략 수립과 감시ㆍ정보능력, 정밀타격전력, 핵 방호태세를 집중적으로 보강해 변화된 전략 환경에 부합한 군사 대비태세를 조기에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최상의 전투력 발휘를 보장할 수 있는 군수지원 및 국방동원태세를 완비하는 한편, 신세대 장병들의 국가관 및 대적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정신교육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김 장관의 강경한 자세가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김장수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전쟁 머슴꾼의 화약내 나는 넋두리”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이어 한반도에서 유지되고 있는 평화가 어떻게 마련되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김 장관이 지난 1월 성우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우리의 공동의 적”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군부 보수 세력에 전쟁열을 주입함으로써 과거의 친미사대와 동족대결의 군사파쇼 암흑시대를 되살리려는 용납 못할 역적 짓”이라며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비난했다.
김 국방, NLL문제로 노 대통령과 불협화음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특별지대를 설치키로 합의한 것과 관련, NLL지위변경 여부를 두고 점화된 NLL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월 11일 5당 대표들과의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영토선이라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며 ‘NLL은 영토개념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으로 군 안팎에서는 “부적절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 대통령의 입장은 남북정상회담 이전인 8월 22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NLL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입장은 50년간 지켜온 해상경계선”이라고 밝힌 것과는 분명히 다른 입장이었다. “NLL은 영토개념이 아닌 안보개념”이라고 정상회담 이전부터 국방부와 신경전을 벌여왔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입장에 무게를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국방부의 공식 태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국방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국방부는 ‘NLL에 관한 우리의 입장’ 자료에서 ‘NLL은 1953년 정전협정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설정된 이후 남북 간에 50여 년간 지켜온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명시했다. 또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NLL을 지상의 군사분계선과 같이 확고히 유지할 것이며 북측이 이를 침범할 경우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사실상의 영토 개념임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지난 8월 21일 국회에서 NLL문제는 국방장관회담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NLL은 국방백서에 명시된 바대로 ‘해상경계선’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하고 돌아온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NLL을 지켜낸 것이 정상회담의 성과”라며 ‘NLL은 실질적인 군사분계선’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방침을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10월 11일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참석한 정책간담회 자리에서 “내가 11월 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가서 북한에 유리한 발언을 하거나 내가 (NLL에 대한) 입장을 바꾼다면 더 이상 김장수가 아니다. 소신껏 협상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의 ‘NLL이 영토선이라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김 장관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NLL을 양보하거나 열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다보니 노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경질설’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 11월 7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제39차 안보협의회(SCM)를 마치고 가진 내ㆍ외신 공동기자회견에서 NLL 재설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NLL의 재설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재확인했다. 다만 “필요할 경우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것처럼 다른 군사적 신뢰조치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해상불가침 경계선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남북국방장관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라크 주둔 자이툰부대 파병연장 결정에 있어서는 한ㆍ미공조를 위해 파병 연장을 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과 한 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연내철군을 요구하며 파병 연장을 반대하자 김 장관은 냉대를 받아가며 참모들과 신당을 찾아다녔다. 김 장관은 신당 의원들에게 “올해 철군하면 불고기 다 먹고 나서 콜라 한 잔 안줘서 (미국을) 서운하게 만드는 격”이라고 설득해 또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위한 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 접촉이 12일 판문점 북쪽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렸다. 이날 회담에는 국방부 북한정책팀장인 문성묵 준장(진급 예정)과 북측 박림수 대좌(대령에서 준장 사이 계급)를 수석대표로 양측에서 각각 3명이 참석했고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오는 27∼29일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가시화된 지금 김 장관이 회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지난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해평화특별지대, 공동어로구역, 해주 직항로 등을 설치키로 합의한 것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남북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실제 정부 한 당국자는 “이번 국방장관회담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만들어진 동력을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북측은 그동안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NLL 재설정을 주장해온 데 비해 국방부는 남북 간 상당한 군사적 신뢰가 구축되기 전에 재설정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국방장관 회담에서 최대 난제가 돼 그리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 아니냐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김 장관이 종전과 변함없이 당당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국방연구원은 “장관이 무엇보다도 NLL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소신을 가지고 굳세게 해주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그런데 이 문제가 총리회담에서 정치적으로 큰 결정이 나버리면 우리 국방부 쪽의 견해보다 다른 곳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것 같아 우려가 된다”며 “NLL문제는 국방장관회담에서 논의될 문제이며 그래야 더 내실 있게 논의 될 수 있다”며 장관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과연 김 장관이 초지일관적인 자세로 이번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도 68만 군의 수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북국방장관회담, 합의문 채택 불투명
공동어로수역 위치 설정이 핵심 쟁점
공동취재단/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7년11월28일 18시00분
남북장관급회담 이틀째인 오늘(28일) 오후까지 남북 양측은 공동어로수역과 경협 사업의 군사적 보장, 군사적 신뢰 조치 등에 관한 견해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국방장관회담의 합의문 채택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동어로수역 문제가 단지 서해 지도 상의 특정한 위치에 선을 그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양측 모두 '영토'에 근접한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어 고도의 정치적 해법이 없는 한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실무대표 접촉은 밤늦도록 계속될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10시 전체회의와 이어진 실무대표 접촉, 평행선
오늘 오전 10시부터 전체회의와 남북 대표 3인으로 구성된 실무대표 접촉이 이어졌다. 남측은 정승조 중장과 문성묵 준장진급 예정자, 황봉연 통일부 회담팀장이, 북측은 김영철 중장과 박림수 대좌, 방기용 상좌 등이 각각 실무대표 회의에 참석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장수 국방장관은 전체회의 시작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어제 인민무력부장께서 말씀하진 것과 토론과정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저희 입장과 원론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어렵구나, 의견차가 크다"고 느꼈다며 "평행선 분야가 많기 때문에 오후에 참관하는 동안 실무대표를 남겨서 합의서를 만들자"고 말했다.
계속해서 "내일이면 가는데 큰 부담"이라며 "이루고 가야하는데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못 되면 못 되는 대로... 큰 부담이다" 며 "그것을 오늘은 좀 더, 보다 접근된 상태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공동취재단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남북은 현재 공동어로수역의 위치와 문산-봉동간 화물열차 운행 및 한강하구 개발, 해주항 직항로 통행, 서울-백두산 간 직항로 개설 등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 조치에 이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동어로수역 문제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아 나머지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측은 기존의 해상경계선을 중심으로 한 것을 시범적으로 공동어로수역으로 설정하고 경협 군사보장조치를 우선 타결하자는 입장과 북이 주장하는 해상불가침경계선 설정 등의 문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차관급)를 가동해 협의하자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군사적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데 상징성이 큰 최고군사당국자(국방장관) 간 직통전화를 조기에 가동하고, 국군포로의 생사확인, 북 지역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공동발굴 등의 사업을 제안했다.
북측은 북방한계선(NLL) 아래쪽 해상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해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고, 경협의 군사보장 조치는 군사적 신뢰 구축과 전쟁 억제 노력, 해상불가침경계선 설정 등에 대해 남측이 가시적인 성의를 보여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무력충돌이 발생한 해상(NLL 인근)에서 교전규칙을 재정비하고 종전선언을 위해 군사 당국끼리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해소하는데 적극 나서자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북은 종전선언과 관련,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첫날 전체회의 모두 발언에서 "관련국간 종전선언을 위한 (남북)군사당국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먼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교전당사자'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밤늦도록 접촉, 합의문 채택 어려울 수도
예상대로 이번 회담에서 북이 NLL 문제를 제기하고, 남이 국군포로 등의 문제를 던짐으로써 회담 막판까지 긴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공동어로수역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실질적인 합의문 채택도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남북총리회담에서 부총리급, 장관급 위원회 신설 등 경협, 교류와 관련한 많은 사항에 합의하면서도 군사적 문제를 다루지 않은 데 대한 우려가 현실화될 지 주목된다.
둘째날 오후 남측 대표단 30명 가운데 실무대표를 제외한 17명은 오후 2시부터 강동군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을 참관했으며, 오후 7시부터는 김장수 국방장관이 만찬을 주최한다.
한편 남북회담본부에 차려진 서울 프레스센터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이 공동취재단이 보내오는 팩스에 의존, 남북정상회담 진행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이틀째 전체회의 모두발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 지금 11월 중에 평양기온이 입동하고 소절이 지나고 나니까 감기에 잘 걸릴 수 있고, 추워지는 때다. 새벽에 오싹한 기운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없습니다. 국방장관회담 하니까 조절해주는 것 같습니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 : 그래서 오기 전에 독감예방주사도 단단히 맞고 왔다. 어지간한 독감에는 버텨나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왔다.
김일철 : 11월에 기온도 오싹한 감도 있지만 1908년 11월이 우리 민족에게 더 오싹한 감을 주는 달입니다.
김장수 : 아무튼 의미가 있습니다.
김일철 : 을사 5조약...
김장수 : 아아~
김일철 : 을사 5적 패거리들이 조약을 체결했는데 190?년 11월 17일. 그때 일본 놈들은 을사조약을 을사 보호조약이라고 했다. 우리가 조선을 보호해주기 위해 외교권 갖는다고 했다. 그때부터 국권을 다 잃었다. 이미 오래전에 외교권도 박탈당했다. 우리가 지금 통일 논의를 위해 마주 앉으니 그 생각이 난다.
김장수 : 남에서는 을사 밀약이라고 하고 후손들의 땅도 환수하고 있다.
김일철: 을사5조약으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50년 아니 40년이다. 45년 이후 지금까지 그 이후 조국통일 없다. 위대한 수령이 생존해 있을 때 자신께서는 투쟁했는데 투쟁하면서도 통일된 조국을 생각했지, 분단된 조국을 생각한 적은 없다.
수령께서는 내 조국을 통일시켜야 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후락 대표도 들어오고... 그런데 애석한 이야기 하면 수령께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문건이 1994년 7월 7일인데, 8일날 돌아가셨다.
조국통일문건... 장군님께서 너무도 애석하셔서 지금도 판문점 가는 곳에 화강암을 다음어 만들어 놨다.
장군께서 말하셨다. 우리 일꾼들에게 위대한 수령께서 정성쌓아오셨는데 그 위에서 조국통일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조국통일 하자. 우리 대에 통일을 못하고 후세에게 넘겨주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6.15선언, 10.4선언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되는 감이 있다. 오늘 잘해 봅시다.
김장수 : 김 주석의 혼자 생각 아니다. 남의 5천만 북의 2천만, 7천만 모두 염원하고 있다. 통일비용 말들 하지만 통일하고 난 것이 통일이 가장 싸다. 다른 수단보다는.. 민족의 염원에 따라 마주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민족의 바람이고 희망이다.
어제 무력부장께서 말씀하신 내용 토론과정에서, 본인이 기조발언한 내용과 토론과정에서 저희가 입장을 밝힌 내용 등등을 원론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어렵구나, 의견차가 크구나.. 저뿐만 아니라 무력부장이나 대표들께서 다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 저는 갑니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못 되면 못 되는 대로, 그런데 큰 부담이다. 이루고 가야할 것인데, 그것을 오늘은 좀 더 보다 더 접근된 상태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어려운 것이 평행선 분야가 많다. 접근해야 하는데...
그래서 오늘 핵심 사항 몇 가지 토의하고 오후에 참관 있으니까 참관하는 동안에 실무대표를 남겨서 서로 의견 접근 봐라, 합의서 만드는 과정에서 의견이 통했다.
상대방 속셈 아는 사람이 여기 문성묵 대령하고 박림수 대좌다. 이 두 사람이 토의하고 과정에서 문제 있으면 보고 받고 지침 받고 그렇게 하는 게 어떻겠나?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라.
김일철 : 기자 분들이 있으니 한 마디만 더 하겠다. 어제 첫 회의 30분 늦었다. 알아보니 회의장 초상화가 모셔졌다. 대책 세우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야 이거 통일하자면서 제도, 개념 가지고 자꾸 논의하면 안 된다'... 우리는 뼈저리게 들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령께서 민족을 이념 위에 놔야한다고 이념 밑에 민족을 놓으면 안 된다. 어느 민족이던지 한 민족 아닌가.
민족 그 아래 공산국가도 놓을 수 있고, 종교도 종교 중에 회교도 놓을 수 있다고 하셨다.
외국 나가보면 그 나라에 제도, 문화가 있다. 통일하자는 마당인데 국방장관회담에서 초상화 까지 논의하는 것... 여기 참가하신 분들이 바뀌어져야 한다.
우리가 남쪽에 가서 여기저기 간판에 영어 써져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나?
김장수 : 그 부분 말씀드리겠다. 나도 왜 지체가 되느냐 하고 물었다. 초상화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말했다. 남과 북은 다른 체제로 공존하고 있다. 공동선언 공동발표를 서로가 체제를 인정하고 내정, 내부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북측 회의장 와서 그것을 트집 잡는 것을 잘못 됐다고 꾸짖었다. 부질없는 짓을 했구나. 이미 체제인정, 내정불간섭 등 서로 공존하기로 하면서 갔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일철 : 기자 분들께 말하겠다. 오후에 자리 뜨지 말아라. 우리 토론하다보면 언론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북방한계선을 놓고 수구파가 말씀을 많이 한다. 심한 것 같다. 이런 것을 극복하지 못해 통일이 주춤 내분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 바로 잡아야 한다.
나는 장관과 토론 못했다. 어쨋든 그렇게 알고 있으면 좋겠다.
김장수 : 수구도 있고, 진보도 있다. 남측 체제의 특징이다. 아주 다양한 의견들이 통일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이 우리 체제 특징이다. 내가 말하는 것 비판하면 나도 싫다. 하지만 그런 의견도 있구나 하고 넘어 간다.
김일철 : 언론이라고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장관 평가도 여러가지 있더라.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김장수 : 깔아뭉개는 언론도 있다. 칭찬은 아니지만 인정해주는 언론도 있고.
김일철 : 대세다. 통일 자체 놓고 돈 있는 사람이든지, 가난한 사람이든지, 정치, 군사 다 하자고 하는 것이니까.
김장수 :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다. 언론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공동취재단>
뉴스논평>'김장수 국방, 장관직 유임 제의 고사'에 대하여
「 2008.01.11 | 프린트하기 」
한겨레신문이 김장수 현 국방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장관직을 제의 받았으나 이를 고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참여정부 고위 당국자는 9일 “당선인 쪽에서 김 장관을 유임시키겠다며 간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했지만, 김 장관이 ‘나는 그래도 참여정부 사람이다. 두 대통령을 모실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형오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 역시 이날 “김 장관의 이미지가 좋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모습이 상징적이었다”며 “관직에 대해 무욕인 것 같더라”고 당선인 측의 장관 제의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 장관의 의사표현은 적절치 않다. ‘나는 참여정부 사람...’, ‘두 대통령을 모실 수 없다’고 한 것은 국방부 장관의 자리가 사적 소유물로 여긴데서 비롯된 것으로 여간 씁쓸하지 않다.
국방장관으로서 대통령의 임명은 받았지만, 김 장관이 섬겨야 할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사실을 왜 모른 단 말인가.
김 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제의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장관의 자리를 두고 자신은 특정 정부의 사람으로서 두 대통령을 모실 수 없다며 장관직을 고사한 것은 온당치 못했다.
그렇다면 인류역사에서 2대, 3대째 임금을 모신 제상들은 다 모두 지조가 없다는 말인가. 최근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두 사람, 세 사람의 대통령을 모신 각료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바로 군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바 임무에서 국민을 위해 백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국민이 다르고 이명박 시대의 국민이 다를 수는 없다. 김 장관의 이번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는 의리맨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골치아픈 북핵과 전시작전통제권, 국방개혁 2020 추진 등 현안문제를 앞두고 책임회피로 보일 수도 있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국방장관으로서 해야 할 일은 국토를 지키고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주어진 상황과 여건하에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도이다. 대통령을 두 사람 아니라 열사람을 거치면 어떤가.
김정일 앞에서 대한민국 국방장관으로서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어 국민의 가슴에 깊게 각인되어 있는 김 장관의 그 기개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konas)
권재찬 konas.net
김장수 국방장관, 미국 공로훈장 받아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5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공로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department of defense medal for distinguished public service)은 미 정부가 국방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 일반시민에게 주는 최고의 상이다. 미 정부는 김 장관이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후원, 한국이 이라크 자유작전에 참가한 다국적군 가운데 세번째 규모의 파병군을 유지하고 세계 곳곳에서 유엔 평화작전을 지원했으며 한미 양국군 재배치를 통해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 장관의 부인 박효숙씨도 이날 한미연합군 가족사회 발전과 양국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미 육군성 시민공로훈장(department of army outstanding civilian service medal)’을 받았다.
김장수 국방, 퇴임후 전셋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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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나는 행복한 장관이었습니다” 이임사
“나는 ‘행복한 장관’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꼿꼿한 자세로 악수해 ‘꼿꼿 장수’라는 애칭이 붙은 김장수(사진) 전 국방부 장관. 15개월간 국방 수장의 소임을 마친 그는 2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신청사 대강당에서 이상희 신임 장관에게 지휘권을 넘기며 군과 부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나는 정말 행복한 장관이었다”며 “이젠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우리 군과 국방의 영원한 후원자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군복무 가산점 제도의 법제화, 병영 현대화, 전력 증강을 위한 국방비의 지속적 획득 등을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임식 뒤 국방부 기자실에 들른 김 전 장관은 출입기자들이 퇴임 소감을 묻자 환하게 웃으며 “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느냐”고 답했다.
김관진 합참의장을 비롯한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와 국방부 직원들은 청사 앞에 도열해 떠나는 김 전 장관에게 꽃다발을 주고 박수로 배웅했다.
김 전 장관은 군악대의 ‘마이웨이’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크게 외친 뒤 아들 김용우(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 중위와 함께 차에 올라 국방부를 떠났다.
현역 시절부터 청렴한 지휘관으로 평가받아 온 김 전 장관은 집이 없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장관 공관을 비우고 서울 성동구에 마련한 3억 원 상당의 전셋집으로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