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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16구간(이리재-시티재)후기
2008년 첫걸음 SK戰士들
[이리재-봉좌산-도덕산-오룡고개-삼성산-시티재(안강휴게소)]
2008년 1월 12일(토요일 당일)
★교통및 참가인원 : 버스 이채욱,이창호,김경관,이종한,엄대익,황전효 6명
★준비물 :복장 외의-등산복(바지, 짚티), 등산화
내의-쿨맥스팬티1벌, 등산양말
보호구-모자,장갑1컬레,우의
여벌옷-등산바지,짚티, 쿨맥스팬티1벌, 등산양말1컬레, 오버트라우즈
기타-수건(1장), 스카프(3장), 수면대
운행구 : 배낭(42L-배낭커버포함), 스틱, 시계, 지도, 호루라기, 스패츠, 식수(1.5L/1ea)
렌턴(헤드,핸드-여유 밧데리 4EA포함), 등산용칼, 자리(의자), 라이터,
식사및 비상식 : 중식, 쵸코렛4개, 녹차캔디, 연양갱
주류 : 펫트맥주, 휘발유
상비약 : 압박붕대2개, 파스1개, 진통제, 소화제, 해열제, 피로회복제, 근육이완제, 우황청심환1병
기록 : 볼펜, 수첩, 카메라
기타 : 시그날,신분증,휴지,잡주머니,비닐봉지,쓰레기봉투
★날씨 : 비-하루종일 비
★산행코스
이리재-봉좌산-도덕산-오룡고개-삼성산-시티재(안강휴게소)
===(도상거리 마루금 약 15.1km, 기타 약 3.5km, 실 약 19.7km 약 7시간 00분 소요-중,휴식시간 포함)
★GUIDE
[구간별 소요시간]
* 1월 12일 (토)
07:00 공업R 제일주유소/신정육교/평창리비에르
09:10 이리재 도착
09:30 이리재 산행시작
10:20 614.9/봉좌산3거리
10:30 봉좌산
10:40 봉좌산3거리
12:00 도덕산3거리
12:10 도덕산
12:20 도덕산3거리
12:45~13:30 중식
13:50 오룡고개
15:05 삼성산3거리
15:20 삼성산
15:40 삼성산3거리
16:30 시티재(안강휴게소)
[구간별 거리및 소요시간]
도상거리 마루금 약 15.1km, 기타 약 3.5km, 실 약 19.7km 총 07시간 00분 소요(중,휴식시간 포함)
이리재-614.9봉/봉좌산갈림 : 1.3km / 50분
614.9봉/봉좌산갈림-도덕산갈림길 : 4.0km / 1시간 20분
도덕산갈림길-오룡고개 : 4.0km / 1시간 30분 중식 45분 포함
오룡고개-시티재 : 5.8km / 2시간 05분 중식 포함
봉좌산,도덕산,삼성산 왕복 : 3.5km / 1시간 15분
●낙동정맥(洛東正脈) 16구간-2008년의 첫 출발
이리재-시티재(안강휴게소),
2008년 낙동의 첫 발걸음을 내 딛는 순간이다.
이번 구간은 마루금을 약간씩 벗어나 이름을 가진 산들이 연이어 지고 그 조망 또한 장쾌하여 진행에 피로를 씻어주는 구간이며 이제 포항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경주로 들어가게 된다.
장쾌한 조망을 기대하고 시작된 낙동의 2008년 첫 걸음은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하여 그 즐거움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고 대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긴 구간을 약 12~16km내외로 재 설정하여 진행하는데 기대에 동참하듯 대원들의 참여 신청이 늘어 13명까지 늘었으나 전날 비가 오면서부터 오늘 새벽까지 전화통에 불이 나며 불참 연락이 발발이 오고 전날 꾸려둔 배낭을 매고 오늘도 마눌의 배웅을 받으며 공업탑으로 나가니.. 결국 6명의 대원으로 낙동 16구간을 진행하게 된다....
하기사 비가오면 가기 싫은 건 사실이제.... 짐도 늘고...
07:00 공업탑을 출발하여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31번 국도, 인비에서 921번 지방도로를 타고 이리재에 닿는다.
09:10 이리재 도착
●2008年 1月 12日
09:30 이리재 산행시작
이리재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오랜만의 우중산행이라 채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한 겨울에 눈도 아니고 비가 내리니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가....
더 망가지기 전에 혼 함 빼고 남동쪽 등로로 접어든다.
팍팍한 오름길을 따라 12분 가량 숨을 헐떡이는 사이 416.8봉에 이르고 길이 잠시 평평해지며 한고비 올라선 듯 했지만 오름은 그 경사도를 더해 비 내리는 길에 낙엽마저 푹푹 빠질 정도로 이루어져 있어 그 미끄러움이 숨은 연신 턱까지 차오르고 피로를 가중시킨다.
고도를 높이며 비는 눈으로 바뀌고... 그렇게 초장부터 개거품 물고 50여분을 올라서니 봉좌산 직전 삼거리인 614.9봉에 올라선다.
이 지점은 포항, 경주, 영천이 맞닿는 곳으로 정맥마루금이 포항땅을 벗어나 경주와 영천의 경계를 따라 가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길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마루금은 614.9봉 정상이 아니라 봉우리 10m 정도 직전 우측으로 진행하여야 하지만 614.9봉을 올라선 후 또렷한 주능선을 따르면 봉좌산에 이르게 된다.
알바라고 할수 없을 정도의 10여분 거리에 봉좌산이 있으므로 다녀오는 것도 좋다.
오늘은 우중산행으로 조망이 없어 망설이다 봉좌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순한 능선을 따라 10분여 나아가니 이내 봉좌산에 닿는다.
[이리재 출발전]
[416.8봉]
[봉좌산 길림 삼거리-614.9봉]
10:30 봉좌산(鳳座山 600m)
정상은 암봉을 차지하고 작은 정상석이 깨져 있는 가운데 정상에 봉좌암이라는 봉황모양의 바위가 있어 이름된 봉좌산은 멋진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나 우중에 그 조망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혼함 빼고 삼거리로 되돌아 나온다.
조산(봉좌산=鳳座山)의 형세
◆용(龍)은 반드시 옴(來)을 살피고 향(向)은 반드시 그 세(勢)를 잡으며, 나성은 주밀한 것을 얻고, 登對은 유정(有情)한 것을 얻으며 명당수는 坪蓄안 것을 얻고, 수구는 김밀히 잠긴 것을 얻으며, 성진(星振)은 각각 득지(得地)를 얻고, 사수(砂水)는 飛走한 것을 꺼린다. 조산(봉좌산)의 형세는 봉소포란형(鳳巢抱卵形)으로 봉황이 둥지에서 알을 품는형국으로 가운데 우뚝 솟은 부분이 봉황의 머리이고 좌우자락은 봉황의 날개깃이라고 한다. 우측으로 주산까지 연결되는 상하기복(上下起伏)이나 좌우굴곡(左右屈曲)이 활발하며 힘찬 용의 흐름이 보인다. 웅장한 산세의 산봉에 봉(鳳)머리를 닮은 특이한 암봉이 있어 봉좌암(鳳座岩)이란 이름을 얻었다. 봉좌산의 형상은 중앙 부분이 약간 평평한 듯 펼쳐지다가 좌우로 둥그스름하게 흘러내린 녹존성(祿存星)이며, 녹존성은 와탐(臥貪)이나 거문토성(巨門土星)처럼 일자(一字)가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복종형(伏鐘形)의 거문(巨門)처럼 둥그스름한 것도 아니며, 다만 하생다각(下生多脚)이라 하여 다른 구성(九星)보다 곁가지가 많은 것이 특징인데, 지상으로 내려올수록 지각(枝脚)이 많고, 지룡(枝龍)이 튼실하다고 한다. 주산을 출발한 주룡(主龍)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몸통은 앞으로 전진하여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으로 기복굴곡(起伏屈曲)하여 수 차례 과협(過峽)과 속기(束氣)를 거듭하여 용진처(龍盡處)까지 내려와 축입수(丑入首)로 머리를 파묻어 우선룡(右旋龍)의 혈장을 일구었다고 한다. 중출룡(中出龍)과 갈라져 내려오는 청룡과 백호도 주맥을 감싸안고, 행룡(行龍)하여 혈장 앞 내명당(內明堂)을 두 팔을 벌려 포옹한다는 형상이라고 함. 看龍法으로 보는 봉좌산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조산인 봉좌산이 있고 주산까지 내려온 용맥은 힘찬모습으로 음택지까지 연결되어있다. 봉좌산은 백두대간에서 내려오면서 태백산에서 한남금북정맥과 갈라지고 일월산. 향로봉을 거쳐 낙동정맥으로 시작하다가 봉좌산에 이르게 된다.-발췌
봉좌산 직전 삼거리인 614.9봉에서 오른쪽 아래로 떨어지는 급한 내리막을 지나치게 되면 잠시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게 되고 연이어 오르내림을 4번 정도 반복하고 나면 넓은 임도에 이르게 된다.
오르내림 중에 채석장인지 산허리가 잘려있는 모습과 민둥산을 보게된다.
임도는 왼쪽아래 안강 옥산서원 상단 도덕암과 오른쪽 삼포리 윗수홍마을로 잇는 길이다.
이 임도가 배티재인줄 알았는데 지형도상 배티재는 도덕산 이르기 전의 570.7봉을 지난 희미한 안부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배티재는 이 임도의 오른쪽 저 아래로 도덕산과 천장산(694.8m)의 잘록이 지점으로 삼포리 윗수홍마을과 수성리 안골마을을 넘어가는 임도 고갯마루를 이르는 지명이라 한다.
임도를 따라 50m 가량 진행하여 임도 좌측으로 들어서면 오름짓이 시작되고 오른쪽 간벌한 흔적이 있는 민둥사면을 완만히 올라서고 잠시 길이 밋밋해 지는가 싶더니 또 다시 20여분 가까이 오름짓을 하고서야 570.7봉에 올라선다.
벌목 흔적이 보이면서 글씨 흔적이 잘 안 보이는 삼각점이 있고 봉우리 왼쪽으로는 묘 1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후 30m 가량을 더 나서게 되면 지형도상에 배티재라고 표기된 지점으로 도덕산 갈림길이다.
옛날 이 고개에 맷돼지가 행패를 부렸는데 그 산돼지의 등에 매태, 이끼가 있어 매태가 와전되어 배태-배티로 되었다는 설과 '배'가 산을 뜻해 산 고개라는 뜻으로 배티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 배티재이다.
여기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90도 꺽이며 내려서지만 또 한번 갈등을 한다.
대원들은 우측으로 내려가 버리고 나는 도덕산을 다녀 오기로 하고 정면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나아가니 잠깐 급 오름길을 극복하면 반석바위를 지나 도덕산(703.1m)에 이른다.
약 10여분이 소요되었다.
[봉좌산]
[봉좌산]
[봉좌산에서]
[배티재 도덕산 삼거리]
[도덕산 삼거리]
12:10 도덕산(道德山 703.1m)
옛이름이 두덕산(斗德山)이었다는 도덕산은 삼각점(기계 26, 1979.8 재설)이 있고 조금 더 진행하면 암봉을 이룬 채 넓은 마당바위의 정상석이 반긴다.
뛰어난 조망이 자랑한다지만 여전히 조망을 할 수 없다.
[도덕산은 조선시대 영남오현의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예사롭지 않은 발자취가 고풍의 문화유산으로, 혹은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으로 자락 곳곳에 깃들어 있는 곳이다. 회재 선생의 발자취를 함께 더듬어 봐야 비로소 도덕산의 매력을 제대로 향유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흔적은 사랑채인 독락당(보물 413호)과 사저인 계정, 그리고 그를 제향하기 위해 세운 옥산서원(사적 154호)등의 유적에 서 찾아볼 수 있다. 도덕산의 이름 역시 그가 생명을 불어넣은 사산오대의 하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회재선생이 이 곳에 머물면서 산과 바위에 손수 이름을 지었으니 사산오대(四山五臺)이다. 동으로 화개산, 서로 자옥산, 남으로 무학산, 그리고 북으로 도덕산이 둘러 있다. 오대는 옥산서원 앞의 세심대, 독락당 계곡의 관어대, 맞은편의 영귀대, 그리고 북쪽으로 탁영대, 징심대가 있다. 서원 앞 바위에 새겨진 세심대(洗心臺)는 퇴계 이황의 필적이며 정조시대 이곳에서 향시(鄕試)를 보았다고 전한다. 독락당은 특출한 공간구성으로 자연과 잘 어우러진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한 고건축물이며 조선말 대원군의 서원철폐 시에도 훼철되지 않은 옥산서원은 당대 명필들의 글씨가 더욱 시선을 끄는 곳이다. 그래서 독락당은 정면에서보다 계곡으로 내려가 볼 때 더욱 운치가 있고 옥산서원은 곳곳의 현판을 더욱 꼼꼼히 살펴볼 때 의미가 크다고 한다. 참고로 강의실인 구인당 바깥의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안쪽에 걸린 또다른 서체의 옥산서원 현판은 아계 이산해가, 그리고 구인당 제호의 현판은 한석봉이 쓴 글이라 한다. 도덕산은 이밖에도 문화유산이 여럿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국보 제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이다.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 위에 13층의 몸돌을 올린 탑의 모습은 불국사의 다보탑 등과 함께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되어 있다.
왕 야기난거 건너 자옥산 함보자...
신라시대 이 산에서 붉은 옥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자옥산(紫玉山)이라고.....
도덕산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오른쪽 급사면으로 한없이 떨어져 오룡고개로 이어진다.
내리막 길은 잔돌들이 급사면으로 이리저리 깔려 있고 비에 짓눈개비까지 날려 미끄럽기도 하거니와 워낙 급경사의 내리막이라 발걸음을 내딛기가 겁나는 길이다.
먼저 간 대원들을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올리려 하지만 길이 워낙 험해 조심조심 내려간다.
양쪽으로 펼쳐지는 너덜지대를 지나 내려서고 돌길이 끝나고 다소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왼쪽으로 묘 2기를 지나치게 되면서부터 소나무 숲길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중식을 한다. 역으로 진행하면 진짜 개거품이다....
[도덕산 삼각점]
[도덕산 삼각점이 있는 봉]
[도덕산 정상석]
[도덕산을 나오며]
[너덜지대]
12:45~13:30 중식
빗물에 밥 말아 먹고 휘발유도 일순배 하고 그럭저럭 배를 채우니 비는 계속되고 한기가 들어 일어선다.
오롯한 소나무 숲길 사이를 5분 가량 나서게 되니 넓은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30m 가량 따르다 정면 능선방향으로 숲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이는 임도를 따르면 비석과 망주석까지 세워진 널찍한 "경주이씨묘덤" 2기가 있는 곳을 지나 다시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가 왼편으로 꺽어드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정면으로 난 밭길 오른쪽 가장자리로 진행해야 한다.
이후 임도와 밭과 많은 묘지를 지나는데 고갯마루 부근을 겨냥하여 내려오게 되면 마루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오룡고개로 내려선다.
[중식]
13:50 오룡고개
해발 약250m의 오룡고개는 영천시 고경면 삼포리와 오룡리의 경계인 왕복2차선 포장도로이다.
임진왜란 때 달성 서씨가 처음으로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전하는데 지형이 용처럼 생겼다 해서 미룡(美龍)이라 했는데, 일제 때에 강제로 미농(彌農)으로 고쳐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오룡(五龍)으로 불리어졌다 한다.
고갯마루 널찍한 임도를 잠시 따라 올라가면 만나는 묘 2기를 지나치면서 좌측소나무 숲사이로 들어간다.
완만한 오름을 10여분 올라서면 삼각점(기계 470, 1982 복구)이 있는 368.4봉이다.
368.4봉 이후에도 얼마간은 완만한 오름으로 이어가다 별 특징 없는 407봉을 지나 2분여 내려서면 "김해김씨묘역"을 지나자 길은 사정없이 쳐 박아 애써 올라 온 표고를 단숨에 원점으로 돌려 놓고 좌우로 내려서는 길이 뚜렷한 골말안부(십자로안부)까지 떨어져 내린다.
좌로 오룡리 골말과 우로 삼포교가 있는 삼계마을을 넘나들던 옛길이다.
다시 삼성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고 길은 떨어졌던 만큼 가파르게 올라선다.
오름은 갈수록 더 빳빳하게 고개를 쳐 들어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개거품 물고 15분여를 치고 오르니 마루금은 슬며시 오른쪽 산허리를 돌아 능선마루 삼거리에 이른다.
삼성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지점으로 삼성산은 마루금에서 북동방면으로 1km 가량 떨어져 있다. 여기서 마루금은 오른쪽, 워낙 급경사의 오르막을 개거품 물고 치고 올라 온 탓인지 삼성산 갈 대원들이 없고 나는 또 홀로 삼성산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완만히 오르니 분기봉이고 고만고만한 오르내림끝에 벌목한 공터를 차지하고 삼각점(346재설, 78.8 건설부)이 있는 578.2봉(지도상 삼성산으로 표기된 봉우리)에 도착하고 삼성산에 정상석이 없어 계속 나아가니 묘 1기를 지나 바위봉우리를 만나는데 삼성산 해발 591m라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여전히 구름으로 조망을 확인 할 수 없다.
[오룡고개]
[368.4봉 삼각점]
[368.4봉 거시기 한 나무]
[삼성산 삼거리]
15:20 삼성산(三聖山 591m)
삼성산은 도상 삼각점이 있는 봉과 정상석이 있는 봉이 다르고 삼성산 능선삼거리에서 예상보다 먼 거리에 솟아 있다.
삼성산(三聖山)은 옛날 이 산에 삼부자(三父子)가 살고 있었는데 생활이 어려워 초근목피로서 연명하여 가매 도성인의 도를 잘 베푼다 하여 이 삼부자를 보고 성인이라 하고 그 뒤 이 산을 삼성산이라고 한다.는 설과 세 선녀가 내려왔다고 하여 삼성산이란 이름이 전한다.는 설이 공존한다...
다시 삼성산 삼거리로 돌아 나와 마루금에 합류하고 이제부터는 영천과 경주의 경계를 가르며 진행하게 된다.
출발하자 갓비석과 망주석이 서 있는 "通政大夫月城李公"묘를 만나고 엄부회장이 기다리네 그려...
혼자 가기 미안했던 모양이지..ㅋㅋㅋ
삼각점(78.8 건설부)이 있는 521.5봉이다.
무덤을 지나면서는 또 내리막의 시작이다.
우리네 인생살이처럼 오름 뒤엔 언제나 내리막이 있는 것이 산길이고 그것을 알면서도 끈임없이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 갑자기 산악인의 선서가 생각나 함 옮겨본다.
[산악인의 선서] 노산 이은상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왼편으로 삼성산 능선을 끼고 내려가면 고만 고만한 봉들을 만나고 소나무 숲에 쉬어가기 좋은 공터가 있는 전망대를 만나 잠시 쉼을 하며 구름에 정상부를 가린 삼성산의 조망을 즐기고 여기서 엄부회장과 독도문제로 한판 붙고 다시 내려서니 안부이고 무명봉을 오라서 몇 걸음 가면 보도 블록 깔린 헬기장이고 폐안테나와 "여강이씨묘"가 있는 349.8봉 능선 분기점이다.
좌측은 안강휴게소 뒤로 내려서는 길, 우측은 마루금으로 시티재 구도로로 내려서는 길...
좌측으로 표지기가 더 많이 매달려 있고 우측에는 두어 개의 표지기가 보인다.
이래나 저래나 안강휴게소로 내려선다.
[삼성산 삼각점]
[삼성산 정상석]
[삼성산 정상석]
[삼성산 정상]
[521.5봉 삼각점]
[전망대에서 본 삼성산]
[전망대에서 휴식]
[헬기장]
[보이는 영천]
16:30 시티재-산행완료
신라 경덕왕 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安康)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안강휴게소 광장을 가로질러 오른편 고갯마루가 시티재다.
시티재(195m)는 식량과 상품을 운반하는 마소의 등에 실린 시티다발에 유래한 이름이며, 안강~영천으로 통하는 28번 완복 4차선 국도로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안강휴게소]
[시티재]
[안강휴게소 고목]
[안강휴게소]
완주의 그날까지 SK산악회 홧팅!
울산으로 돌아오며
그 후. 안강휴게소에서 젖은 옷과 신발등을 처리하고 휴게소에서 조금 떨어진 민물매운탕집에서 매운탕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울산으로 출발한다..
울산도착후 고문님과 엄부회장과 심하게 붙었다... 이고문님 감사합니다....
대원여러분! 16구간 잘 다녀왔습니다.
우중의 산행이라 몸도 축축하고 고문님까지 참여하여 즐건 산행이었습니다.
조망이 장쾌한 명산들을 지나면서도 날씨 덕분에 아쉬움 남기지만 잘 마무리되어 감사 드립니다. 그 후 여운이 제법 남는 뒷풀이로 고문님의 대원들 의욕관리에 꾸벅 감사드립니다.
16구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낙동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낙동 16구간을 마치고 고장난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