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선생 문하 6철(退溪先生 門下 六哲)
• 월천 조목(月川 趙穆)
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사경(士敬), 호는 월천(月川)·동고산인(東皐散人)·부용산인(芙蓉山人). 아버지는 참판 조대춘(趙大椿),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수익(權受益)의 딸이다.
조목은 3세에 글을 읽기 시작하여, 12세에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 15세 때 이황(李滉)의 문하생이 되고, 23세에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 이황은 대성할 그릇이 약관으로 몸이 상할까 염려할 정도였다. 1552년(명종 7) 생원시에 합격하고, 대과는 포기하고 독선일신(獨善一身)에만 매진하였다.
1566년 공릉참봉에 봉직되었으나 학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양하고 이황을 가까이 모시면서 경전 연구에 주력하였다. 그 뒤 성균관수천(成均館首薦)에 뽑혀 집경전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1572년(선조 5) 이후 동몽교관, 종부시주부, 조지서사지(造紙署司紙), 공조좌랑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 않았다, 1576년 봉화현감에 제수되자 사직소를 냈으나 허락되지 않아 봉직하면서 향교를 중수하였다.
1580년 이후 전라도도사, 경상도도사, 충청도도사, 형조좌랑, 신녕현감, 영덕현령, 전생서주부, 공조정랑, 상서원판관, 금산군수, 단양군수, 합천군수, 장원서장원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중인 1594년 군자감주부로 잠시 있으면서 일본과의 강화를 극력 반대하였다. 그 뒤 장악원정, 사재감정, 예빈시정, 공조참의, 공조참판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재덕과 노병을 이유로 사직소를 내고 사퇴하였다.
조목은 이황과 동향인 예안에서 출생, 일생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스승을 모신 팔고제(八高弟)의 한 사람으로서 제자로는 김중청(金中淸)과 이광윤(李光胤) 등이 있다.
문집으로 『월천집(月川集)』이 있으며, 저술로 『곤지잡록(困知雜錄)』이 있고 묘소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월천마을에 있으며, 정온(鄭蘊)이 신도비명을 지었으며, 도산서원(陶山書院) 상덕사(尙德祠) 배향되었다.
• 서애 류성룡 풍산류씨
• 학봉 김성일 의성김씨
• 한강 정구 청주정씨
• 간재 이덕홍 영천이씨,
• 지산 조호익 (송재 이우公의 외증손/사위인 조효연의 손자) 창령曺씨
※ 서애 류성룡의 장손인 졸재 류원지의 처는 의성김씨로 학봉의 증손녀이자 장사랑 이순도(퇴계 둘째 손자)의 외손녀 즉 퇴계의 외현손녀다.
졸재공의 아들인 의하(宜河), 중하(仲河), 만하(晩河)에게서 퇴계 서애 학봉선생이 혈연과 학연으로 일체가 된다.
의하(宜河), 중하(仲河)가 후손이 없어 만하(晩河)에게 양자하였기에 서애파 중 찰방공파는 모두 만하공 후손들이다.
졸재공과 소호리 음지마 한산이씨 중시조인 수은 이홍조(현손인 대산 이상정은 밀암 이재의 외손자)는 졸재공의 고종이며, 졸재의 외손자가 가일의 병곡 권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