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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낙천주의적 신앙모습의 특징
말씀 : 단6:1-15
서론>
세상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찬양하는 좋은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직접 실천하기는 만만치 않음을 저와 여러분은 체험했습니다. 간혹 타고난 낙천주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 회의와 자책에 더 익숙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긍정을 받아들이고, 낙천적인 습관을 체질화하는 것입니다. 낙천주의는 몸의 긍정에서 시작해서 마음의 긍정, 생활의 긍정, 세상의 긍정으로 점점 낙천성을 확장해나가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낙천주의적 신앙의 삶은 저와 여러분이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무슨 선택을 했는가?” 그리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이나, 고난당하는 자신의 민족을 선택한 모세, 죄를 짓기보다 보디발의 감옥에 갇히기를 선택한 요셉, 바벨론 왕의 산해진미 대신에 하나님을 선택한 다니엘 등을 통해 그들의 낙천적 선택이 낳은 아름다운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담은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 대가로 에덴동산을 상실해야 했습니다. 에서는 그의 장자권을, 사울왕은 그의 왕국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은 구원을 잃었으며, 빌라도와 아그립바와 벨릭스는 비관주의적 삶을 선택함으로 영생을 잃어버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끝없이 선택을 하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상반되게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이왕이면 낙천주의적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선택을 하도록 인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삶을 통해 복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낙천주의적 삶이란 무엇이며, 또 낙천적인 선택을 한 사람에게는 어떤 복이 예비되어 있습니까?
'낙천주의'라는 말은 영어로 'optimism'인데 「Webster's Dictionary」에 보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 가장 희망에 차있고 가장 즐거운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성 혹은 무엇이든지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는 경향성"--"the tendency to take the most hopeful or cheerful view of matters or to expect the best outcome." 얼마나 좋은 정의입니까? 낙천주의자는 무엇이든지 희망 있는 쪽으로, 잘되는 쪽으로 보려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낙천주의자는 늘 "Yes, I can!"이라고 외칩니다.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의 연구 교수인 [마틴 셀리그멘] 박사에 의하면 수천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수명이 길고, 건강하며, 더 행복을 느끼며, 더 많은 일들을 성취하며 삶을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사람입니다. 항상 Yes, I can이라고 선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기대를 갖고 있으며 꿈을 갖도록 만들어 놓은 사람입니다. 영성 학자인 [유진 피터슨]이 말한 대로 크리스천은 잔치하는 얼굴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다니엘 6장 말씀을 중심으로 낙천주의 크리스챤인 다니엘이 살아갔던 삶의 모습인 신앙모습 3가지를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신앙
오늘 성경에 나오는 낙천주의 크리스챤 주인공인 다니엘은 전형적인 낙천주의적 신앙생활을 한 성경인물중 한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나라를 잃고 타국으로 팔려간 참 불행한 환경 속에 있었던 사람이지만, 비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패배를 승리로 이끈 신앙 승리자의 대표적 모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0 여년 전에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왕이 유다에 쳐들어 왔을 때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본래 유대의 귀족이 아니면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포로가 되어서 고향을 떠나 살아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행하고 열악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바벨론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서 총리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패배적 삶의 조건을 승리의 삶의 조건으로 승화시킨 낙천주의적 신앙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로 신분인 다니엘이 최고의 지위인 총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말해서 다니엘의 낙천주의적 신앙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을 낙천주의자로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말씀 3절을 보시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여기서 '민첩하다'는 말이 중요한데,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해서 다른 모든 총리들이나 방백들보다 뛰어 났다는 것입니다. 패배의 조건적 삶의 내용들을 승리의 삶의 내용으로 민첩하게 다니엘은 전환시킨 것입니다. 갈등 상황에서 우왕자왕 하지 않고, 재빨리 긍정의 힘을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확신하기에 슬기로운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저에는 낙천주의적 근성이 다니엘에게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운동학습에서 100m 달리기를 잘하게 되면 민첩성과 순발력의 운동기능이 모든 운동학습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됨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기저에 낙천성과 긍정성이 내재되어 있으면, 어떠한 고난이나 역경의 상황에서도 민첩하고, 긍정적인 판단을 통해서 난관을 극복하는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우리말 사전은 '민첩(敏捷)하다'는 말을 "동작, 이해, 판단 따위가 재빠른 것"으로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 NRSV를 보면 '마음이 민첩하다'는 말을 'an excellent spirit was in him,' 즉 '뛰어난 기상 혹은 정신이 그 속에 있었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어 성경 NIV는 '민첩하다'는 말을 'exceptional qualities,' 즉 '탁월한 자질'로 해석해 놓기도 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빌 4: 13)는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크리스챤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민첩한 판단을 통해서 패배의식에서 승리의식으로 패배적 삶으로부터 승리의 삶으로 역전시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 12: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 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패배에서 승리로 이끄신 예수님의 낙천주의적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악순환에 빠진 내 인생 선순환으로 바꾸는 긍정습관’의 저자인 조양제는 16여 년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습니다. 평범한 인생이었지만 삶의 마디마디마다 잠복해 있던 고통과 고난으로 스스로를 단련시켰습니다. 2008년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 이후 큰 충격과 죄책감으로 한동안 스스로를 부정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불행이라고 생각한 그 사건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긍정 선순환의 법칙을 전파하는 긍정 전도사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양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찬양하는 좋은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직접 실천하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바로 이점이 오늘 설교의 핵심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식과 이론으로 삶가운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필요하고,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교제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9:27~3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마 9:27~30절)
예수님께서는 믿음대로 되라고 이론이나 지식으로가 아니고, 예수님을 따라 부르짖으며, 행동으로 옮겨 실천을 하였더니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 출생)와 D(Dead,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라고 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선택은 관념이 아니고, 행동입니다. 실천인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우리의 인생은 실천적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학교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그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고민하며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삶은 어떤 삶을 선택하여 실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명사적 의미가 아닌 동사와 형용사적 진행형의 의미임을 믿으시고,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낙천주의적 선택을 통해서 예수님과의 지속적인 실천적 교제로 말미암아 한 주간도 매순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신앙
오늘 본문 7-8절을 보면 바벨론 나라 안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들이 다리오 왕에게 한 가지 법, 즉 금령(禁令)을 만들어 선포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금령이 뭔고 하니 앞으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는 법이었습니다. 다니엘을 막장까지 몰아넣으려는 술수였습니다.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모략이었던 것입니다. 밑바닥까지 내려보내기 위한 수령과 방백들의 괴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낙천적인 하루 세 번의 기도 신앙이 바닥을 치고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했습니다. 다함께 10절 말씀을 읽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낙천주의적 신앙생활이 아니면 오늘 말씀에 나오는 다니엘과 같은 정해진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막장까지 내려가는 밑바닥 상황에서 과연 지속적으로 정해진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긍정적 사고를 통해서 낙천주의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자굴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자기의 고향이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엎드려 기도할 수 있는 낙천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찬양하며 막장인 바닥에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냥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으면 가장 좋았을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정탐꾼을 보내지 않고 약속을 바위처럼 믿고 나아갔으면 아마 가데스 바네아에서 네게브 사막을 거처 헤브론으로 그냥 진입했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나흘 길도 채 안 걸려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막장인 최저 밑바닥의 광야생활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낙천주의 신앙생활자인 모세를 통해서 막장 광야생활의 바닥과 홍해의 바닥을 거쳐 예루살렘 입성의 기초를 마련하셨습니다.
꼴찌가 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콧 해밀턴과 켄 베이커리(2010)가 저술한 Great Eight: 스콧 해밀턴의 행복을 위한 8가지 기본기에 보면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다니엘과 모세와 같은 현대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케이팅 미국 올림픽 대표선수였던 스콧 해밀턴은 치명적인 사고로 인해 심각한 인생의 막장에서 바닥을 치고 승리의 삶으로 발전시킨 사람입니다. 일등에서 꼴찌로 전락한 인생의 모습가운데 좌절하지 않고, 바닥을 치고 승리한 스콧 해밀턴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의 막장과 같은 삶속에서 낙천주의이신 예수님을 닮아 바닥을 박차고 승리하시길 소망합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장애물을 통과하여 승리자가 되려면 큰 시련과 고난이라도 각오하면서도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끈질기게 참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의 생각도 마음도 말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바꾸어 버리십시오.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이 엄습해올 때 즉시로 비관적 상황이나 생각은 떠나라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하고서 부정적으로 보고했던 정탐꾼과는 달리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단호하게 고백하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결국 정탐꾼 10명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광야의 바닥을 치고, 희망과 소망의 땅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앞을 바라보며 나가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해 가는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앞을 보지 않고 백미러를 쳐다보게 되면 다시 막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과거를 자꾸 쳐다보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추돌사고를 일으켜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40:17에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선포하시면서 앞을 바라보면서 성실하고 힘차게 바닥을 치고 총리를 향하여 달려나갑시다.
패배와 실패의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은 실패자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승리와 성공, 건강, 풍요로움, 기쁨, 평화, 행복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런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에 커다란 그릇을 마련한 사람에게만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심을 믿으시고,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사 43:19)라고 말씀하심을 기억하면서 한주간도 매시간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신앙
오늘 말씀 단 6: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자굴 속에 들어간 다니엘은 머리카락 하나 상함이 없이 건짐을 받았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관계회복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건강한 몸으로 나오고 오히려 다니엘을 잡으려고 했던 사람들과 가족들이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낙천적인 신앙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위기 앞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꼿꼿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다니엘을 죽음의 막장에서 바닥을 치고 총리자리로 올려놓은 낙천주의 신앙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의 빈칸을 채워야 합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있어서 하나님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장 9~10절)’
예수를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믿음의 행위를 통해 끊어졌던 교제가 회복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는 것이다. 로마서 8장 32절에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더 이상 과거의 치명적 결함의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닌 삶의 빈 칸에 채워지고, 한계상황이 극복되며 영원한 그리움이 사라져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박성민, 2010. 완전 소중한 비밀. 순출판사). 다시말해서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어 예비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비된 축복을 받기위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삶, 그리고 긍정적인 선택의 기초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에 있음을 먼저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Covenant)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약속은 이해관계로 맺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불리할 때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파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며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후회하지 않으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실행하십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막장과 패배의 삶가운데 있다고 해도 변함없이, 반드시 소망을 이루어 주시고 성취해 주십니다(빌 4:13; 막 9:23; 히 10:38).
렘 29:11~13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만나고 있으므로 부정적인 삶속에 빠져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부정의 수렁에서 벗어나서 낙천적이고 긍정으로 향해야 합니다.
영국의 존 메이어 수상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집이 하도 어려워서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일을 한 후에 간단히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대신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습관은 그가 이후에 은행의 간부와 정치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도 이어져서 그는 서민들이 출입하는 식당을 즐겨 찾았습니다. 그가 사는 집도 서민층이 사는 동네에 살았습니다. 수상이 된 이후 기자들은 그에게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다. 항상 희망을 갖고 일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게 했다. 하늘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복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관계회복을 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든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고 항상 희망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언제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얼굴에 웃음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매일 몸 세포의 1%가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고 말합니다. 매일 1%의 변화가 쌓이다 보면 3개월이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셈이 됩니다. 생활양식을 바꾸는 데 3개월 정도가 걸리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신기한 점은 세포의 재생속도가 미리 정해진 각본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포에 쇠퇴할 것이냐 성장할 것이냐를 알려주는 핵심적 신호는 움직임입니다. 움직임이 없는 생활양식은 세포의 쇠퇴를 촉진하며, 활동적 생활양식은 재생을 촉진한다는 것입니다. 세포의 재생 속도를 결정하는 또 다른 핵심적 신호는 감정입니다. 부정성은 세포의 쇠퇴를 촉진하며, 낙천적이고 긍정성은 성장을 촉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낙천적이고 긍정성은 아주 기초적인 생물학적 수준에서도 생명력을 주는 셈이 됩니다(바버라 프레드릭슨, 2009. 긍정의 발견. 21세기북스). 하물며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인생의 생명력은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관계의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낙천주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의 삶가운데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일을 이루셨고 지금도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나머지는 우리 몫입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면 단순히 말씀을 묵상하고 믿는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과감히 믿음의 말을 하고 자신과 가족의 승리를 행동으로 선포하면서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의 단절되고, 미성숙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보내지 않는 한 하나님은 새로운 관계에 대한 회복력을 허락하지 않으심을 명심하시어 하나님과의 새로운 신앙모습으로 관계를 회복하시어 한주간도 우리의 호흡속에서 영존하시는 주님의 성호를 높혀드리는 승리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1.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신앙
2.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신앙
3.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신앙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E. P. Seligman)은 낙관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낙관주의자가 병에 덜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낙관주의자는 행동하고 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사실은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은 만족도가 낮은 사람보다 다이어트하고 금연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적 지지 때문입니다.
친구가 더 많고 삶에 사랑이 더 풍부할수록 병에 덜 걸리게 됩니다. 행복한 사람의 인적 네트워크는 불행한 사람의 것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나이가 들면서 친교 범위와 친밀도가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에 기여하게 됩니다. 불행은 친구를 동반하지만, 친구는 불행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셋째, 생물학적 메커니즘 때문입니다.
낙관주의 효과를 가능케 하는 것 같은 다양한 생물학적 경로가 존재합니다. 그 하나가 면역 체계이다. 낙관주의자들의 혈액은 비관주의자들의 혈액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반응합니다. 또 다른 메커니즘은 통속적인 유전학입니다. 행복하고 낙관적인 사람은 심장혈관 질환이나 암을 물리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마틴 셀리그만, 2011. 플로리시)
이모든 조건과 상황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저와 여러분 모두는 낙천주의적 신앙을 통해서 매일매일의 삶속에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