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와 생활
1. 들어가는 말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대나무는 벼과 대나무아과에 속하는 식물로 아열대 및 열대에서 온대지방까지 분포한다.
특히 아시아 남동부, 인도양, 태평양 제도가 주산지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에 신라 학자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송죽을 심으며 책을 읽었다는 기록이 나오며, 고려시대에 쓰인 <동국이상국집>에 대나무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오고 있는 점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아주 먼 옛날부터 심어 왔음을 알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대나무는 연평균기온이 10℃ 이상이며 연중 최저기온 -10℃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간강우량이 1,000㎜ 이상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까지 그 서식지가 올라가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적정지대라서 경상도와 전라도지역이라야 경제성이 좋으며 충청지역의 대나무들은 경상도나 전라도의 대나무에 비하여 키가 작고 굵기도 가늘다.
한편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어 가볍고 질겨서 건축자재와 가구용 재료로 활용하였으며 농사용 자재, 어구, 낚싯대, 장대 등 그야말로 일상생활 여러 분야에 긴요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쓰여 왔다.
2. 대나무의 종류
대나무는 학술적으로 왕대 속, 조릿대 속, 해장 죽속으로 나누고 그것들은 세분하여 수많은 종류로 나누지만 여기에서는 대나무를 생활에 활용한 사례를 다루려 함으로 구체적인 종류는 생략하고 왕대와 신우대로 간단하게 나누어 살펴보고자한다.
1). 왕대
대나무 중에서 “왕대 속은 잎이 쉽게 떨어지며 키가 20m까지 큰다.”고 하였고 “해장 죽속에 속하는 해장 죽은 키가 6~7m쯤 자라며 잎 집이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고 가지가 마디에서 3개 이상 나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충청남도 이남에서 심고 있다.”라고 되어 있어 우리지역에서 가꾸는 왕대는 해장 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건축재, 가구용재, 농사용 자재, 어구, 낚싯대, 장대 등 다양하게 활용한다.
2). 신우대(조릿대)
같은 대를 가리켜 조릿대라고 하고 또 신우대라고도 하며 두말 모두 표준말이다.
신우대라는 이름을 놓고 생각해보면 왕대가 있다면 신하대가 맞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신우대는 어감으로 봐서 시누이대, 즉 시누대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는데 이에 동조하는 주장으로 “대나무에 비하여 시누이겪이라 시누대라 했다는 말”, “시누대의 잎이 부딧치는 소리가 시누이의 잔소리 같아 시누대라고 하였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한편 일본에서 조릿대를 시노다케, 이를 줄여서 시노라고 한다면서 여기서 비롯된 이름이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우대는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므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아무튼 표준말은 신우대이며 건축재, 빗자루용재, 화살대, 복조리용 재료 등으로 활용한다. 우리지역에서는 신우대와 조릿대를 구분하여 부르며, 조릿대라 부르는 산조릿대(山竹)는 자생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고 간혹 관상용으로 기르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3. 대나무활용사례
1)대나무로 만든 물품들(죽세공품)
죽세공품을 만들려면 우선 대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그것을 폭 3cm정도로 쪼갠 다음 속껍질을 제거한 후 그것을 다시 겉대와 속대로 나누어 가른다. 겉대는 다시 2mm정도로 가늘게 쪼개어(대오리라고 함) 바구니 등 용품의 면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속대는 부드러워 용품의 살(기둥)을 만드는 데 쓰며 1.5cm폭으로 쓰기도 하고 용품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1∼2cm 정도로 쪼개어 쓰기도 한다. 일부 죽세공품은 속대를 면으로 쓰는 제품도 있다.
(1). 바구니
속대로 만든 살을 햇살 퍼지듯 사방으로 뻗혀 놓은 다음 가늘게 쪼갠 대오리로 둥글게 결어 나가다가 적당한 크기에서 살을 세워 결어나가기를 계속하여 속이 깊숙하게 만든 그릇으로 짚공예품인 멱서리(우리지역에서는 메꾸리라 부름)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하여 밥, 떡 등 익힌 음식과 과일이나 말린 나물 따위를 담는데 쓴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는 음식물을 바구니에 넣어 보관하였고, 특히 보리쌀을 삶아 바구니에 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곳에 걸어놓고 끼니때마다 조금씩 꺼내어 밥을 짓던 기억이 난다. 작은 도시락용 바구니에서부터 중간크기의 바구니, 큰 바구니까지 크기도 다양하며 뚜껑을 만들어 덮기도 한다.
(2). 소쿠리
속대로 만든 살을 1.2cm정도 간격으로 10여개(크기에 따라 다름) 벌려 놓
은 다음, 가늘게 쪼갠 대오리(겉대)로 결어 전체 면을 만들면서 중앙부분은 깊고 가에 부분은 점점 올라오도록 마치 바가지처럼 등그스름한 용기를 만들되 한쪽 면은 살을 갑자기 직각으로 꺾어 올린 다음 둥근 테를 만들어 씌운다. 농작물이나 생활용품 등을 담는 데 쓰인다. 크기도 대, 중, 소 다양하며 튼튼하여 무거운 물품을 넣어도 되고 나물 캐는 아낙들의 속칭 나물바구니는 앞의 바구니가 아니라 바로 이 소쿠리이다.
(3). 채반
①소쿠리와 같이 속대로 만든 살을 1.2cm정도 간격으로 여러개 벌려 놓되 가운데는 길게, 양쪽은 점점 짧게 해서 전체모양을 등글게 한 다음, 가늘게 쪼갠 대오리(겉대)로 결어 전체 면을 만든다. 중앙부분은 약간 깊고 갓 부분은 올라오도록 한 다음 둥근 테를 만들어 씌우는데 소쿠리와 다른 점은 소쿠리는 둥근 바가지 형 용기인데 비해 채반은 둥글고 편편한 약간 우묵한 그릇이다.
채반은 채소나 나물 따위, 또는 만들어 두었던 떡이나 부침개 등을 밥솥에 넣어
찔 때 썼다.
②또 다른 채반은 네모진 채반으로 속대를 폭 1cm정도로 약간 넓고 얇게 쪼개어 가로줄과 세로줄을 짜깁기 형식으로 만들되 울이 없이 넓적하게 엮어 만든 다음 네모진 테를 만들어 씌운다.
(4). 용수
바구니와 비슷하게 속대로 살을 놓고 가늘게 쪼갠 대오리(겉대)로 결어 통은 좁고 깊이는 깊게 만든 둥글고 긴 그릇으로 술을 거를 때. 죄수의 얼굴을 가릴 때, 벌의 쏘임을 막을 때 등에 썼다.
(5). 고리짝
①대오리로 바구니와 비슷하게 결어서 만들되 모양을 네모지게 하며 뚜껑까지 만들어 덮는다. 평소에 옷 따위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두지만 혼례식 뒤에 사돈댁에 보내는 이바지음식을 보낼 때 사용하기도 했다. 사투리로 둥구리짝 또는 동고리짝 이라고도 했다.
②채반2와 같이 바탕부분을 만들고 옆 부분은 바구니와 비슷하게 가늘게 쪼갠 겉대로 결어서 올려 만든다. 뚜껑부분은 바탕과 같은 방법으로 만든 다음 네모진 테를 씌워 만든다.
※고리짝은 버드나무가지로 만들지만 대로도 만들었다.
(6). 옹통바구리
대오리로 바구니와 비슷하게 결어 만들되 전체적인 모양이 아래와 위는 좁고 가운데는 넓어 마치 요강모양으로 등글게 하고 4개의 발과 손잡이까지 만들어 들고 다니기 편하게 하였으며 바다에 조개잡이 갈 때, 시장에 갈 때, 또는 물건을 넣어가지고 다닐 때 등에 썼다. 크기는 대개 지름 30∼36cm정도로 만들었으며 튼튼하여 토끼나 닭 한두 마리씩 넣어가지고 다닐 수 도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 ‘옹통바구리’(청라면), ‘옹탱이’(주산면), 또는 ‘끈다리’(미산면)라고 불렀다.
(7). 사과가구
속대의 폭을 1cm정도로 약간 넓고 얇게 쪼개어 엉글엉글하게 엮되 대각선 즉, 빗살무늬로 엇갈리게 엮어 구멍의 모양을 마름모꼴무늬로 만든다. 사과 6∼9개정도 들어가는 작은 가구이며 손잡이까지 만들어 과일 장사들이 사과를 넣어 팔았기 때문에 사과가구라고 했다.
(8). 조리
조릿대로 만들지만 우리지역에는 조릿대가 귀하여 신우대 또는 왕대(겉대)를 가늘게 쪼개어 만들었다.
집집마다 조리(사투리로 조랭이라고 하였음) 한두 개씩은 두고 사용했고 특히 정월 대보름에는 복조리를 사 두어야 복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어 정초에 조리를 많이 사서 걸어두고는 1년 내내 하나씩 꺼내 쓰기도 하였고 그 복조리 속에 동전 등 액수가 적은 돈을 넣어두는 풍습도 있다.
(9). 다람치(낚시바구니) · 다래끼
네모모양의 바구니를 만들 듯이 하되 더 높게 만들면서 점점 좁혀 아가리가 좁고 바닥과 몸체가 넓게 만든 바구니로서 사투리로 다람치라고 하며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아서 넣는 용도로 쓰기 때문에 뚜껑을 이중으로 만들었고, 목을 더 길게 하여 마치 호리병처럼 만드는 경우도 있었으며, 바닷가에서는 크고 윗부분을 넓게 하여 짊어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드는 등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였다.
다람치와 비슷한 다래끼는 씨앗을 담아 놓는 그릇이며 멜빵을 달아 어깨에 메고 다니며 씨앗을 뿌리는 용도로 썼다.
(10).갈퀴
속껍질을 제거한 대를 폭 0.5∼0.6cm 정도로 쪼개어 한쪽 끝을 불에 그슬려 일정한 모양으로 구부린 갈퀴 발 16개를 가지런히 놓은 다음 두 개의 간대를 이용하여 한쪽은 벌어지게, 또 한쪽은 한데 모아서 묶은 다음 1.2m 정도의 대막대기에 단단히 묶어 맨다. 산에서 솔가리(우리지역에서는 솔가루 또는 솔걸이라고 했다)나 가랑잎 등 땔나무를 채취할 때, 농산물 타작 후 거친 북데기를 거두어 내는데, 그리고 보리 등 씨앗을 뿌린 후 흙을 덮을 때 긴요하게 쓰였다.
(11). 죽부인(竹夫人), 죽침(竹枕)
겉대를 3cm정도 폭으로 쪼개어 대각선으로 서로 엇갈리게 엮어 기다란 원통형을 만들고 양쪽 끝을 마무리 한다. 여름에 시원하게 안고 잔다는 뜻에서 죽부인이라고 한다. 죽침은 죽부인과 비슷한 방법으로 작은
베개를 만들어 여름에 사용하였다.
(12) 대자리, 부채, 연, 참빗, 활, 화살, 빗자루, 삿갓, 키
여름철 시원하게 깔고 사는 대자리, 머리를 손질하는 참빗, 활(弓), 신우대로 만드는 부채(扇), 연(鳶)의 살, 화살(矢)의 대 등도 있고 빗자루(신우대비는 전체로 만들고 왕대비는 끝부분으로 만든다), 그리고 삿갓과 곡식을 까부는 키(簸또는 箕)도 대나무로 만들어 썼다. (삿갓은 갈대, 키는 버드나무로 만들지만 대나무로도 만들었다.)
2) 그 밖의 대를 생활에 활용한 사례
물을 대기 위하여 대로 만든 홈통(竹筧), 대나무로 엮어 만든 사릿문(竹扉), 절에서 불사 때 스님이 손바닥을 쳐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竹篦), 그늘 막 또는 가림 막으로 쓰는 죽렴(竹簾), 대오리를 엮어 만든 죽롱(竹籠), 대나무로 만든 의자, 가축을 기르는 닭장, 토끼장, 흙벽 속에 넣는 욋가지(욋대가지), 부엌에서 쓰는 살강, 빨래 줄이나 과일을 딸 때 쓰는 청때미(竹竿/대막대), 농사용지주대(토마토 및 고추 지주대), 지지대(비닐하우스지지대), 강태공들의 낚싯대, 훈장선생님의 서상(書床)대, 노인들의 담뱃대, 밥상위의 젓가락, 뜨개질용 바늘, 바늘대(가마니치기용품), 잉앗대(베틀의 부품), 등글개(효자손), 죽장(竹杖), 상장막대(남자가 죽으면 상주가 대나무 상장을 짚고, 여자가 죽으면 오동나무 상장을 짚음), 죽창(무기), 바다에서 쓰는 통발 등 어구, 김살(해태 양식장에서 씀), 김발(채취한 김을 말리는데 씀) 민물고기를 잡는 발(참게발, 통발), 퉁소, 피리, 대금 등 피리류를 만드는 데 쓰고, 붓대, 붓통, 화살 통, 대침(竹釘), 침 대롱, 대의 뿌리로 만드는 지팡이, 우산대 등 그 예를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으며 또한 한지(韓紙)로 문을 바를 때 댓잎을 끼워 넣어 멋진 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무당이 ‘신 내림굿’을 할 때 대나무가지를 이용하였다.
이 밖에도 추운지방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스키를 탔으며 우리지역에서도 스키까지는 못되지만 대쪽을 이용하여 눈 쌓인 언덕에서 미끄럼 타던 어린 시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3)대나무와 음식, 술, 약용
어린 죽순으로 만든 ‘죽순요리’는 옛날부터 고급음식의 일종이고 김칫독에 댓잎을 넣으면 발효를 더디게 하여 오랫동안 동치미 맛을 낸다며 김장독에 댓잎이 붙은 가지를 넣는 것을 보아왔다.
밥을 지을 때 댓잎을 넣어 지으면 향긋한 내음이 나므로 이를 이용하여 경상도나 전라도의 일부지역에서는 대롱밥, 대통밥, 죽통밥 등의 이름을 붙인 향토음식을 만들어 지역 특산품으로 인기리에 팔고 있고 더 나아가 죽순찜, 죽순회, 대나무술, 대나무계란찜 같은 일반적인 것뿐만 아니라 댓잎냉면, 대나무삼계탕, 대통구이 등 다양한 대나무관련 음식들을 개발하여 팔고 있다.
댓잎을 삶은 물로 빚은 술은 풍증이나 열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댓잎을 이용한 죽엽주가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이를 연상시키는 댓잎술을 민속주로 개발한 지방자치단체가 있는가하면 이름을 잎새술이라고 붙인 소주도 있는 것으로 안다.
중국의 죽엽청주가 지금까지도 애주가들의 입맛을 돋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든 죽염은 예로부터 건강을 지켜주는 신비한 식품으로 알려져 왔으며 인터넷에 의하면 “약용으로 왕대나 솜대의 줄기 내부에 있는 막상피(膜狀皮)는 죽여(竹茹)라 하여 치열(治熱)과 토혈(吐血)에 사용하며, 왕대나 솜대에서 뽑아낸 대기름은 죽력(竹瀝)이라 하여 고혈압에 쓰일 뿐 아니라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왔다. 댓잎(竹葉)은 치열·이수(利水)·청심제(淸心劑)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4. 정신세계 속의 대나무
1)지조와 절개의 상징
“나모도 아닌거시 풀도 아닌거시/곳기 뉘시기며 속은 어니 뷔연다/뎌러코 사시에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윤선도(尹善道,1587년 7월 27일 ~ 1671년 7월 16일, 조선시대 중기, 후기의 시인·문신·작가·정치인이자 음악가)의 오우가(五友歌)에서 보듯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며 곧게 자라기 때문에 옛날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식물로 여겨왔다.
'대쪽 같다'라는 말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굳게 지킴을 뜻하며 대나무를 소나무와 함께 송죽(松竹)으로 부르기도 하였고 매화·난초·국화와 함께 사군자, 그리고 십장생의 하나로서 귀하게 생각해 선비들이나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문학과 그림의 소재로 애용되어 왔다.
2)대나무관련 속담
○“대나무 꽃이 피면 그 집은 망한다.” 왕대는 60년 만에 한 번씩 꽃이 피며 꽃이 핀 후 말라죽는다. 오랜만에 대밭이 꽃을 피우고는 죽어버리니 흉조로 여겨 생긴 속설인 것 같다.
○“대밭이 망하면 전쟁이 날 징조다.” 대나무 꽃이 피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과 비슷하다고 본다.
○“대지팡이 짚고 넘어지면 아버지가 죽는다.” 남자가 죽으면 대나무상장을 짚는데서 생겨난 말 같다.
○“꿈속에 죽순을 보면 자손이 많아진다.” 한꺼번에 많은 죽순들이 나와서 빠른 기간 내에 자라므로 그런 말이 생긴 것 같다.
○“댓진 먹은 뱀” 이미 운명이 결정된 사람이라는 뜻.
○“대 끝에서도 삼년(竿頭過三年)”역경에 처하여 있는 사람에게 좀 더 참고 견디라고 격려할 때 쓰는 속담.
○이관규천(以管窺天): 대롱으로 하늘을 엿본다는 뜻으로, 사람의 견문(見聞)이 매우 좁음을 이르는 말.
○대못박이: 대못이 물건을 뚫지 못하듯 어리석어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
3)대나무관련 설화
○신라제 24대 유리왕때 이서국(伊西國)의 침략이 있어 곤경에 처했는데 갑자기 귀에 댓잎을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물리쳐 준 후 사라졌다. 이때 미추왕의 능에 댓잎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미추왕이 도운 것으로 알고 그 능을 죽현릉(竹現陵)이라고 불렀다.(삼국유사)
○「만파식적(萬波息笛)」설화는 신라 신문왕 때 동해에 작은 산이 하나 떠내려 왔는데, 그 산에 신기한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왕이 그 대를 베어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장마가 지다가도 날이 개며 바람이 멈추고 물결이 가라앉는 등의 신기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국보로 삼았다.(삼국유사)
○낙산사(洛山寺)의 연기설화(緣起說話)에서는 의상(義湘)이 낙산의 바닷가에서 관음의 현신을 만나 그 계시대로 한 쌍의 대가 솟아나는 곳에다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모셨는데 그 절이 낙산사이다.(삼국유사)
○구전설화로는 엄동설한에 죽순을 구해서 부모를 봉양한 효자의 이야기가 전라북도 완주군과 경기도 강화군에서 채록되었다. 이 설화는 부모를 정성껏 모시면 하늘이 돕는다는 교훈적 내용을 담은 효행 담이다.
※이상 설화들은 인터넷에서 퍼온 내용들이다.
4)대나무 이야기들
○잔미산 (웅천과 남포사이에 있는 해발 416.8m의 산.) 꼭대기에 옥미봉 봉수대 터가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수부리 산성의 흔적, 그리고 남쪽으로 대천리 산성의 흔적이 전한다.
이 터 한쪽에 신우대밭이 있는바 이곳 군(軍)시설에 신우대밭이 있다는 것은 화살용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전국적으로 산중에 신우대밭이 있으면 군 시설이 있던 곳이 아닐까 연관해 생각할 수 있다.
○“봉황은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의 새이니까 역시 귀한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하는 것일까?
○왕대밭엔 도둑이 들어도 신우대밭엔 들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유는 왕대는 톱으로 베어내지만 신우대는 낫으로 베어내는바 베어낸 밑 부분이 마치 송곳처럼 날카롭다. 그 수많은 송곳들에 발이 찔릴까 무서워 어두운 밤에 도둑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호랑이 그림을 보면 대개는 대나무와 같이 그려있다. 일설에 의하면 호랑이는 산중의 왕이지만 코끼리는 당해내지 못한다고 하며 코끼리는 상아가 걸려서 대밭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는 코끼리가 없는 대밭을 즐겨 찾는다는 것.
○옛날부터 지진이 나면 대밭으로 피하면 살 수 있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한다. 시골지역 지진 대피요령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죽세공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사과가구는 엉글엉글하게 만들어 아주 가벼우므로 잘 묶어 매기만 하면 많은 양을 짊어질 수 있다. 호랑이가 나오는 고갯길을 갈 때 사과가구를 잔뜩 짊어지고 가면 호랑이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짐을 보고 깜짝 놀라 달아난다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자주 보았다.
5.끝내는 말
대밭(대숲)은 농가소득에 크게 한몫을 했다. 모든 집에서 그리고 살림 각 분야에 죽세공품을 사용하였기에 그 수요가 엄청나게 많았으므로 죽세공들의 수입도 만만치가 않았지만 이에 따라 대숲을 가진 사람들은 대나무를 팔아 수월찮은 수익을 올렸다.
그래서 대숲을 가진 농가에서는 매년 대밭에 퇴비 등을 두툼하게 깔아주고 그 위에 황토를 덮어주었으며 바닷가 대밭 집에서는 죽은 복쟁이(복어), 불가사리 등 못 먹는 생선 따위를 거름으로 주는 등 대밭 가꾸기에 정성을 기울였다. 대숲에서 나오는 수익이 짭짤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좋은 대밭 한 개가 논 다섯 마지기(1000평/3300㎡)보다 낫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옛날에는 생활용기로서 죽세공품이 짚 가공품(보령문화제5집, 1996년 “짚의 문화를 돌아보며”참조)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었다. 곡식, 과일, 채소 등 무겁거나 덜 가공된 식자재들은 짚 가공품에 담아두고, 옷가지, 빨랫감 등 가벼운 물건이나 말린 나물과 삶은 보리쌀, 떡, 부침개 따위의 익힌 음식 등 정갈한 식품들은 죽세공품에 담아두었기 때문에 집집마다 그 수요(짚 가공품+죽세공품)가 매우 많았었다.
그러나 사회의 발달에 따라 푸라스틱용품과 스덴용품, 고무용품들이 쏟아져 나오자 이것들은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이제 향수에 젖어 어쩌다 한 두 개씩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민속촌에나 가야 그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을 뿐 사람들의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끝)
이 글은 보령문화 제 28집에 실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