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넙죽 업드려 절을 하시렵니까? 죽은 체를 하시겠습니까? 돌을 까 뒤집거나 코피를 터뜨리겠습니까? 아니면 재수 없다 하고는 침을 세번 퉤퉤퉤 뱉으시겠습니까? 다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호랑이는 썩어빠진 양반이나 비린내나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귀신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또 물어봅시다. 콜레라가 걸렸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옛사람들은 범 고기를 삶아 먹거나 범 그림을 그려 붙였습니다. 범 왔다 세 번을 외치면 독감이 낳는다 했읍니다. 호(虎)자 부적, 쑥범도 효능이 있다 했습니다. 풍속통의에 이르기를 “ 요즘 사람들이 갑자기 악귀를 만났을 때 호랑이 가죽을 태워 물에 타 마시면 능히 악한 것을 물리칠 수 있다” 고도 했습니다. 호랑이가 워낙 용맹한 짐승이니까 능히 귀신이나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이러한 어리석은 믿음은 오늘날 보아 어리석은 미신입니다. 그러나 그 연원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단순히 벽사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우리의 조상이 바라보던 하늘입니다.
호랑이의 이야기에는 한국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호랑이는 구중궁궐이 있는 곤륜산의 하늘나라를 지킵니다. 복숭아 나무 아래서 못된 귀신을 죽입니다. 그런데 곤륜산의 주인과 복숭아나무의 주인은 서왕모입니다. 그리고 그 서왕모는 호랑이입니다. 정말 그러냐구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것이 신화지요.
1. 벽사맹호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호랑이가 삿된 것을 물리쳐 주리라는 신념이 그림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들이 모두 이빨을 들어내고 응얼거리거나 위협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다른 맹호도와 달라 보이는 것은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틀린 말이 없지요?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그린다” 라고 말이지요.
1. 벽사맹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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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억지춘향으로 무섭게 그려진 호랑이 민화,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호랑이 몇점을 볼까요.
1-1A1. 소나무 해와 수석 등이 함께 그려졌습니다. 마치 요즘 그래픽 디자인처럼 대담하게 생략하고 구성했습니다.
1-2A. 한잔 걸치고 어디 안주감이 없나 하고 겔겔거리는 호랑이 가족인데요. 모두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1-33. 소나무와 함께 그려졌지만 까치를 볼 수 없습니다 물론 까치와 호랑이에서의 까치와는 표정이 다릅니다.
그런데 까치와 호랑이와 벽사호랑이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다른지 한번 볼까요? 왼쪽은 좀 전에 보여드린 벽사호랑이이고 오른쪽은 까치와 호랑이, 즉 작호도입니다.
어쩐지 벽사호랑이는 무섭게 그려지고 까치와 호랑이의 호랑이는 웃음을 띠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벽사의 호랑이는 외부의 사기를 막기 위해 위엄을 부려야 하고 작호도의 호랑이는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까치로 부터 전해 받으니까 기뻐서 웃는 것입니다. 구분이 되시죠?
그런데 왜 호랑이인가요? 용맹하거나 힘이 센 동물은 많습니다. 사자나 곰, 코끼리 등이지요. 그런데 유독 호랑이인 이유는 다음 민화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2.죽림출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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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출호도입니다. 대나무밭에서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호랑이가 대나무밭에서 사나요? 아뇨. 호랑이와 대나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호랑이의 용맹함과 대나무에 얽힌 벽사의 의미가 결합된 것입니다.
담문록에 의하면 서방 산중에 큰 산귀가 있어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병에 걸린다 했습니다. 이전이라는 사람이 산귀를 무서워해 아침 저녁 대나무를 불속에 넣었지요. 그 터지는 소리에 귀신이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폭죽의 기원이라고 하지요.
민화 몇점을 볼까요? 대나무밭에서 나오는 호랑이는 모두 용맹스런 모습입니다. 때로는 까치와 호랑이 그림에서 까치를 빼어버린 경우도 있지만 분명히 그 표정은 맹호로 바뀌어 있습니다.
신도 욱루 개명수
장천사 산신 4-5
호랑이는 매우 용맹한 짐승입니다. 풍속통의라는 책에는 호랑이를 “양의 동물, 백수의 우두머리” 라 묘사합니다. 또 “능히 귀신과 도깨비를 잡아 후리치고 부러뜨리며 깨물어 먹을 수 있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근원에는 신도 욱루, 그리고 개명수의 신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벽사호랑이는 귀신을 씹어 먹습니다. 이 호랑이는 신도와 욱루입니다. 도삭산의 복숭아나무 아래를 지킵니다. 금계가 울었는데도 하늘 문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을 왼새끼로 꼬아 죽입니다. 다른 그림 봅시다. 이 호랑이는 개명수입니다. 하늘궁전의 입구인 곤륜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곤륜산의 주인은 서왕모입니다.
귀신잡는 호랑이는 장천사와 함께 다시 등장합니다. 도교의 창시자인 장도릉이 천하의 귀신을 물리치고자 호랑이를 타고 떠납니다. 호랑이 발밑에 갈갈이 찢어진 귀신이 보이죠? 장천사와 호랑이 원형이 있습니다. 바로 산신도입니다.
3.산신신호도
산신4-4 산신도143 산산4-8
산신과 신호도를 합한 것입니다. 신호(神虎)란 신령스런 호랑이라는 뜻입니다. 산신을 모시고 있거나 또는 벽사 호랑이에 신호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산신이 아무리 보아도 여자같지요. 여자 산신과 이에 시중드는 여자시녀랄까요?
다른 산신도를 볼까요? 1. 여자처럼 보이지만 수염이 있고 호랑이는 애교를 부리네요. 2. 스님처럼 그려졌구요. 호랑이는 애완동물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3. 노인에게 아예 기대고 아양을 떱니다. 모두 애교스런 호랑이입니다. 그러니까 벽사호랑이는 무섭게 그려지고 산신호랑이와 까치와 호랑이의 호랑이는 애교를 떨고 있는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작호도의 호랑이는 하늘에, 산신도의 호랑이는 산신에 아양을 떱니다.
서왕모
이 그림의 산신은 여자입니다. 후세에 이렇게 여자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마는 그 원형은 서왕모입니다. 서왕모는 동물신입니다. 머리를 산발하고 호랑이 이빨을 하고 있으며 잘 으르렁거린다 했습니다. 호랑이지요. 후세에 호랑이와 곤륜산 신선인 서왕모가 함께 그려집니다. 호랑이와 남신선은 여신선보다 늦게 나타납니다.
서왕모가 남성화하는 것은 모계사회의 부계화와 연관됩니다. 덧붙여 삼신이 산신이 됩니다. 삼신은 환인 환웅 환검의 개국신입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자상한 손길이라는 이미지가 겹쳐서 삼신할매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삼신할매는 바로 서왕모의 모습입니다.
호랑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붙인 것이 아닐까요?
낙화 호랑이
호랑이 판화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떼놓을 수 없는 영수입니다. 벽사의 존재이면서 희보사상의 주역, 즉 까치와 호랑이에서 하늘의 기쁜 소식을 받는 하늘 민족을 표상하기도 했습니다. 백두산 호랑이는 바로 민족정기를 뜻합니다. 그 백두산 호랑이가 바로 서왕모입니다.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곳은 곤륜산입니다. 그 곤륜이 백두산입니다. 그러니까 곤륜산+서왕모+개명수+신도+욱루+장천사 등의 신화나 전설이 호랑이에 모두 집결하여 오늘날 볼 수 있는 산신도 출호도 신호도 등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요즘도 한국음식점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호랑이 그림입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집집마다 호랑이 그림 하나쯤은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뿐입니까. 호랑이 뿐 아니라 호랑이껍질, 호피도 벽사의 뜻으로 썼습니다. 신부에게 잡귀가 덤비지 못하도록 친 호피나 서가의 호피장막 등은 역시 벽사의 중요한 소도구였습니다. 그러고보면 마치 호랑이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옛날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귀신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스럼 종기까지도 귀신이 있다하여 이를 막고자 대문에 그려 붙인 그림이 있습니다. 문배(門排)라 했습니다. 귀신을 문전에서 쫓아 낸다는 뜻이지요.
기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