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가 될 때까지 군 생활과 직장생활을 해 오는 동안, 법적으로는 년 25일간의 휴가가 보장 되었지만 선뜻 휴가 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시대에 살아 온 나는 5일 이상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
20대에 우연히 세계 배낭여행에 대한 정보를 접한 이후 '여건이 되면 세계 각국을 배낭여행으로 다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은퇴 2년 전인 58세 때부터는 세계적인 도보여행가인 '한비야'씨의 '세계오지탐험'여행기를 읽으면서 배낭여행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다가 여행작가인 김남희씨의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을 읽고는 '바로 이거다'하고
곧 바로 배낭여행의 첫 출발지를 '산티아고 길'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목표가 정해지자 180km의 제주도 일주, 5.16도로 횡단과 추자도, 우도. 비양도 일주를 하였다.
어느 날 제주 올레길이 만들어 졌다는 얘기를 듣고, 2008년 1월부터 산티아고로 떠나기 직전인 2009년 4월까지 올레 길
82회, 약 2.100km를 걸으며 착실하게 걷는 준비를 하였다.
동시에 '네이버'의 '카미노까페'에서의 제반 정보 수집과 비행기, 열차, 민박집 예약도 하였다.
2009년 5월9일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 6월 7일 산티아고, 6월 12일 피니스테레, 6월13일 묵시아 까지 총 920km의
산티아고 카미노 길을 마치고 스페인 마드리드와 프랑스 파리를 9일간 배낭여행을 한 후 6월24일 무사히 귀국하였다.
심장병 등 몇 가지 지병이 있고 영어도 서툴고 나이도 63세인데다 배낭 및 유럽여행은 처음 하는 것이라 떠날 때는 약간의
불안함도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모든 게 기우였다.
특히 외국인들은 70-80여세의 사람들도 무척 많아, 나도 앞으로 20-30 년?은 충분히 걸을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도 되었다. 내가 만나 같이 걸은 사람들 중 최고령자는 85세 독일인 남자였고 노르웨이의 92세 노인은 매년 걷는다고
노르웨이 사람한테서 듣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을 포함 35개국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았으며 자연스럽게 한국, 제주도, 제주도 올레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미리 한국과 제주도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갔더라면 하는 아숴움이 많이 남기도 하였다.
카미노를 준비 하느라 1년동안 걷는 연습은 물론 영어공부를 나름대로 조금 했었지만 영어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면 바디 랭귀지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여행의 목적중 가장 크게 잡은 것이 모든 준비 즉 정보 수집을 포함, 항공기, 기차, 민박집 예약 등을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해결하다보니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까미노 길을 걷는 자 중 많은 사람이 영어가 제2 외국어이기에 그들도 아시아인과 영어로 소통하는 게 신기한 듯, 영어회화
연습하는 기회로 여기는 듯 보였다.
그래서 서로의 얘기를 알아듣기 위해 경청하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나는 하루 중 그들과
2시간 이상을 얘기 할 수 있는 저녁시간이 가장 기다려졌고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었다.
'네이버 까페'에 글을 올리신 '백두산'님의 얘기가 정말 맞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하기를 외국인이 영어할 줄 아느냐고 물으면 처음에는 ‘ 못 합니다’... ‘조금 할 줄 압니다’... ‘할 줄 압니다’,,,,
‘물론이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거꾸로, 만나는 외국인에게 ’영어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던데 꼭 맞는 말이었다.
다만 외국인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하다.
지난 49일을 되돌아 보면 첫째, 예상했든 것보다 더 많은 즐거움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 둘째, 영어와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셋째, '카미노 까페‘로 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제주올레'길에서 연습한 게 주효하여 실전? 에는
더욱 쉽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카미노까페‘의 까페지기님을 비롯한 많은 회원님들, 제주 올레길을 만들어 가시는 서명숙 이사장님 이하
사무직원님들과 카미노 길에서 만난 30여명의 한국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제주올레도 게스트하우스 문제등 몇 가지만 해결되면 산티아고 길 못지않은 훌륭한 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길이나 숙소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주도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하는 도민들의 태도라는 것을 이번에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길을 물었을 때마다 항상 상냥한 미소와 더불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른길을 안내해주는 수 많은 경험을 거의 매일 겪었으며
그때마다 진한 감동을 느낀 게 사실이다.
특히 내가 발등이 부어 절뚝거리며 걷자, 걸어가는 나를 붙 잡고 막무가내로 신발과 양말을 벗겨내서는,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말씀 하시며 맛사지 해주신 시골의 할아버지,
버스 정류장에서 앉아 쉬고 있는 나에게 걸어가다 가방에서 약을 꺼내, 바르라고 주신 독일 순례자,
길가 BAR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발을 당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정성스럽게 맛사지 해주신 오스트리아 할머니,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을 본 스페인주민이 차를 타고 가다 멈추어서는 '잘못 왔다'며 20여분 이상을 오던 길과
반대로 태워주신 일등........
한가지 꼭 하고 싶은 말은, 제주올레 길을 걷거나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그 걷는 길이 더욱 즐거워지고 보람되려면 걷기 전에
먼저 감동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이다.
꼭 같은 길을 걷는데도 어떤 사람은 도로상태가 안 좋다, 길 표시가 잘못 되었다, 숙소가 안 좋다, 코 고는 사람 때문에 잠 한숨
못 잤다, 음식이 안 맞는다는 등 불평 불만 만을 토로한다.
나 같은 경우는 미리 감동받을 자세가 되어 있기에 제주 올레 길에선, '이 길을 만드신 분들이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고 매번 걸을 때 마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일기도,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음식도 짜면 짠 대로, 딱딱한 바케뜨 빵을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 세끼 먹었
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하겠느냐’하고 생각하고 먹으니 맛이 좋기만 하였다.
연 6일이나 비가 올 때는 하루에도 10여 차례 비옷과 배낭 커버를 입었다, 벗었다 하고 바지와 신발, 양말까지도 흠뻑 젖었지만
하나도 귀찮거나 힘들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 헤매거나, 카미노를 끝내고 스페인 마드리드와 프랑스 파리를 9일간 여행할 때도 전철과 버스를 잘못 탄
게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힘들긴 해도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기에 그 고통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고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수 있었다.
이 모든 게 나는 감동을 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확신한다.
산티아고 길을 다녀오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산티아고 길은 제주 올레길과 어떻게 다른가? 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산티아고는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밀밭과 파란 하늘, 중세시대에 지어진 고풍스런 성당,
값싸고 비교적 쾌적하게 구축된 도보여행 인프라(숙소,도로 등), 현지인의 따뜻한 친절과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의
친교'등이 특징이라면,
올레 길은 각 코스마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하늘, 바다, 오름, 마을 길, 밭 길, 숲 길, 모래사장, 밀감 밭 등 세계 어느곳에
가서도 볼 수 없는 오직 제주에서만이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그림같은 풍경들이 압권이다.
서로 비교 가능한 바닷가 만을 본다면 제주 바다가 훨씬 아름답다'고 얘기하곤 했다.
결론적으로 천년의 역사를 지닌 산티아고 길과 2년여의 짧은 역사를 가진 제주 올레 길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넌 센스이지만
풍광 하나만 본다면 제주 올레길도 산티아고 길 보다 결코 못지않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일 정
1) 5, 9 : St.Jean Pied De Port -Orrison..........(7.5km)
2) 5,10: Orrison-Roncesvalles....................(24.8km)
3) 5,11: Roncesvalles-Larrasona.................(26.5km)
4) 5,12: Larrasona-Cizurmenor....................(20.3km)
5) 5.13: Cizurmenor-Cirauqui.................... (27.4km)
6) 5.14: Cirauqui-Villamayor................... (24.5km)
7) 5.15: Villamayor-Viana.................... (31.2km)
8) 5.16: Viana-Ventosa............................ (30km)
9) 5.17: Ventosa-Santo Domingo................. (30.8km)
10)5.18:Santo Domingo-Belorado................. (23.5km)
11)5.19: Belorado-Ages......................... (28km)
12)5.20: Ages-Burgos............................ (25.9km)
13)5.21: Burgos-Castrojeriz.................... (40.7km)
14)5.22: Castrojeriz-Fromista.................. (25.9km)
15)5.23: Fromista-Calzadilla.................... (37.3km)
16)5.24: Calzadilla-Bercianos................... (33.3km)
17)5.25: Bercianos-Mansilla..................... (26.5km)
18)5.26: Mansilla-Leon............................ (17.3km)
19)5.27: Leon-Orbigo............................. (37.6km)
20)5.28: Orbigo-Astroga............................ (17.8km)
21)5.29: Astroga-Acebo............................. (39.9km)
22)5.30: Acebo-Ponferrada.......................... (16km)
23)5.31: 발등 부어 휴식
24)6.1 : Ponferrada-Cacabelos...................... (17.9km)
25)6.2 : Cacabelos-Pereje.......................... (13.9km)
26)6,3 : Pereje-La Faba..............................(17.5km)
27)6.4 : La Faba-Triacastella...................... (26km)
28)6.5 : Triacastella-Barbadelo.................... (22.7km)
29)6.6 : Barbadelo-Areixe............................(35.5km)
30)6.7 : Areixe-Arzua.............................. (37.6km)
31)6.8 : Arzua-Monte Do Gozo........................ (38km)
32)6.9 : Monte Do Gozo-Santiago.................... (4.6km)
33)6.10: Santiago-Negreira.......................... (23.8km)
34)6.11: Negreira-Olveiroa.......................... (32.3km)
35)6.12: Olveiroa-Finisterre......................... (31.1km)
36)6.13: Finisterre-Muxia............................ (28.3km) 총계:920.9km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산티아고 가는 길)
전설에 의하면 성 야고보(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큰 야고보-야고보가 둘 있었음)는 이베리아 반도 서 쪽 끝까지 선교하러
왔었고 그 후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간 그는 서기 44년 헤롯왕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한다.
성 야고보의 시체를 그의 두 제자들이 사공도,닻도 없이 돌배에 태워 바다로 보냈는데 그 배가 이베리아 반도 끝 갈리시아
해변에 도착한다.
그 후 시체는 '리브레돈'이라는 산에 묻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무덤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특히 5세기 서고트족과 8세기 이슬람교도들의 침입과 전란을 겪으면서 그의 무덤은 소재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9세기에 은둔자인 수도승 '페라요'가 별 빛을 따라 간 들판에서 한 구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고 영주와 왕으로
부터 그 유골 이 성 야고보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 되자 이 기적적인 사건은 유럽전역으로 일파만파 전해졌다.
이 전설에 따라 이 곳 지명이 라틴어인 campus stella(별들의 들판)라고 불리다가 후에 콤포스텔라로 굳어지게 되고
야고보의 스페인어 이름인 산티아고를 붙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 새로운 성지의 지명이
되었다.
성 야고보의 묘가 발견 된 9세기는 이슬람교도에 대항하는 레콘키스타 운동이 막 시작 하던 시기였으며 강대한 적과 싸우기
위한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던 때 였다.
그리스도교의 영토에서 발견된 산티아고의 묘는 이 정신적 지주에 딱 어울리는 조건을 지녀 역대 아스투리아스 왕에 의해
묘는 보호되고 성지와 순례의 길이 갖추어졌다.
이 사건은 유럽 그리스도교 사회에 일대 센세이숀을 일으키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무덤을 보기위해 몰려 들었다.
결국 콤포스텔라는 12세기에 전성기를 누리며 로마 중세때 부터 예루살렘과 로마와 나란히 그리스도교의 3대 성지 중
하나로 손 꼽혔다.
특히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성지순례를 한 번하면 평생지은 죄의 반을 감면 받을 수 있고 7월 25일과 일요일이 겹치는
성스러운 해에 성지순례를 하면 평생지은 죄를 감면 받을 수 있다는 칙령을 발표한 이 후로 15세기까지 순례의 길은 번성하게
된다.
이후 점점 쇠락하다가 20세기 들어서는 극소수의 스페인 사람들만이 이 길위에 섰다.
그러다가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를 방문한 이후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메인 도로를 1993년 유네스코에 의해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또한 프랑스 각지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4개의 도로도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출발지는 다르지만 매년 600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산티아고로 몰려들고 있다.
2009,5,7(목)-5,8(금)맑음
...ST,JEAN PIED DE PORT/(알베르게: 8 유로)
20:00-22:45(3시간 45분)....인천-홍콩(cx419)
23:45-06:30( 12시간 5분)...홍콩-파리(cx261)드골공항
07:30-08:00(30분)..............드골 공항-몽파르나스
10:20-16:20(6시간)............몽파르나스-바욘-생장 피드 포르
서울-파리 왕복 항공료(케세이 퍼시픽):1.100.000원
파리-생장 피드 포르 열차료(떼제베및 일반열차):200.000원
인천 공항 입국장에 들어가니 고추장과 선 블록이 액체라, 가방 기내 반입이 안 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프론트로 나와 짐을 탁송했다.
'짐을 탁송하면 이따금 분실 되거나 늦게 나와 애를 먹는다'는 얘기를 '까페'의 어느 글에서 읽은 게 화근이 된 셈이다.
처음 타 보는 홍콩의 '캐세이 퍼시픽' 항공기 ! .....
승무원, 식사, 운항 상태 등 매우 좋다. 한글자막 영화 보다가, 자다가, 식사 두 번을 하고 예정 시간인 파리에 5월 8일
6시30분에 도착 하였다. 마중 나오겠다고 한 ‘경희’가 안 나왔다.
실망감과 더불어 당황한 나머지, 배낭 속에 '몽파르나스' 가는 기차 안내 메모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배낭 외부
포켓의 전자티켓을 꺼내 몽파르나스라고 인쇄된 것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 중 2명이 친절? 하게도 버스 정류소에 안내해 준다.
조금 기다리니 차가 와서 16.5유로를 내고 버스에 승차하여 일단 유럽에 성공적으로 첫 발을 내 딛었다고 안도하며
느긋이 바깥을 보며 출발 하였다.
10여분 쯤 지나자 그때서야 갑자기 생각이 난다.
공항에서 ‘몽파르나스’(MONPARNASS)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야하며 그 기차 값은 이미 한국에서 지불 된 상태라는 것을...
‘몽파르나스’에서 ‘바욘’(BAYONNE)까지 가는 '떼제베' 고속열차 출발 시간은 10시 20분이라 시간은 충분 하지만
프랑스에 도착 하자 마자 16.5 유로를 쓸데없이 낭비한 게 너무 억울하였다.
'몽파르나스'에 도착하여 역사(驛舍)를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매표소에 가서 출력해 간 영수증을 보여주며 표로 바꾸려고
카드를 제시하였다.
"결재한 카드와 틀리다" 면서 "다시 결재해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
카드가 왜 재발급 되었는지를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한국에서 결재한 카드의 영문 이름이 여권의 이름과 스펠링이 다르기에 재발급 받고 왔는데 결국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서 결재한 것은 취소시킬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디 믿을 수가 있나.
그러나 방법이 없다. 핸드폰을 안 가지고 갔기에 카드사에 전화도 할 수 없고....
시간을 보니 아직도 세 시간이나 남았다.
역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보니 사람들이 이따금 씩 우체통 같은 노란
'체크기'에 가서 표를 체크하는 것 같다.
주위 사람에게 물으니 표를 본인이 체크하는 거란다. 그래서 나도 체크하였다.
10시 10분이 되자 전광판에 '이룬'(IRUN)가는 열차가 나온다.
게이트는 9번이라 표시되어 있어서 9번이라 쓰여 진 팻말 앞에서 열차에 올라타기 직전 승차 하려는 승객에게 표를
보여주며 문의하니 프랑스어로 말을 하므로 알아듣지는 못하겠으나 더 가라고 손짓한다.
한 참 더 가다 복장을 단정히 차려입은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표를 가리키며 내가 탑승 할 열차는 16번 열차라고 한다.
그때서야 표를 보니 16번 열차라고 쓰여 있다.
16번 열차 타기직전에 또 다시, 탑승하는 신사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어보자 다행히도 영어로 "이 객차가 맞다, 올라
타라" 한다.
짐을 선반 위에 올려 놓고 그의 앉으니 그가 나 보고 다시 표를 보여 달라더니, "이 표는 입석이다. 조금 기다려 보고
자리가 비면 앉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복도에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다시 한 번 표를 찬찬히 보았더니 국내에서 출력한 전자 티켓에는 좌석이 분명히 있었는데 아까 재 발급하면서
이 친구가 고의인지, 실수인지(분명히 실수이겠지만) 입석표를 발급한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객석이 다 차서,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오니 한 젊은이가 기둥을 한 손으로 붙잡고 잠을 자고 있다.
기댈 대 라곤 창 쪽으로 나온 가느다란 문기둥이 유일하다.
조그만 의자에 앉아 창 기둥을 붙잡고 밖을 보니 출입구의 창문이 조그만 하여 시야도 매우 좁다.
이곳에 앉아 4 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심 하기도 하고 불안 하기도 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본인 스스로 나오겠다고 하던 ‘00’가 안 나오는 바람에 당황한 나머지 전혀 어렵지도 않은 일에
미스에 미스를 거듭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의 불찰을 탓 할 수밖에...
12시가 되자 객실에 있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빵과 치즈, 과일, 음료수 등을 꺼내 먹고 있는게 보인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다. 아까 역에서 빵과 음료수라도 사 올 껄 하는 때 늦은 후회만이....
한 가지가 꼬이니 연속해서 일이 꼬인다.
‘그래 오늘은 실컷 꼬여라, 이것도 나중엔 다 좋은 추억이 될 터이니..
’내일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생장’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한 후 독일인 '노베르뜨'(NOBERT)와 5시쯤 식당에 갔다.
7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고 하여, 시내를 구경하다가 7시에 점심 겸 저녁으로 우리나라의 복음 밥 비슷한 '빠에야'
(PALLEA)를 주문했는데 맛이 좋았다.
‘노베르뜨’는 나 보다는 영어를 잘 하지만 그도 아주 능숙하지 않기에, 만만해서 더욱 좋은 것 같다.
(출국직전 인천공항에서)
전(全) 여행기간 난생 처음으로 수염을 길러서, 수염이 났을 때와 안 났을 때를 비교해 보기 위해
출국 하는 날 면도 한 모습이다. 다녀오고 나서 비교해본 결과 내 생각엔 수염을 기른게 더 나아 보인다.
허나 주위에서 웃을까봐 귀국 하는 날 다시 면도를 하였다.
('몽파르나스'의 노숙자)
우리나라 노숙자는 대로에선 자지 않는데...
('몽파르나스' 역 앞)
-'GARE MONPARNASS'(GARE는 역이라는 뜻)라고 쓴 간판이 보인다.
('몽파르나스'역 내부)
열차 출발시 까지 충분한 여유가 있었는데도 파리에 도착하자 마자 발생한 몇가지 사건? 으로 인해 긴장한 탓에,
점심 준비를 하지 못해 저녁 8시까지 굶는 불상사?가...
(열차표 체크기)
(고속열차 통로의 입석)
-갑자기 문이 열리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마음 편하게 쉴 수도 없었다.
(스페인식 복음밥 '빠에야')
('생장 피드 포르')
서로 다른 나무 줄기가 이어져 한 나무가 된 모양이 이채롭다.
(알베르게 입구)
(1일차) 2009,5,9(토)맑음
ST.JEAN PIED DE PORT-ORRISON(7.5km-2시간 13분) (알베르게:30 유로)
-'생장 피드 포르'는 고대 바스크(BASQUE)지역의 나바레(NAVARRE) 왕국의 수도였다.
'생장'이라는 도시는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다.
'생장'은 전 세계 순례자들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관문이며 또한 피레네 산맥을 통하
론세스 바예스로 가는 통과 구간이기도 하다.
이곳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증명서(크리덴시알:CREDENCIAL)와 마을에 대한 지도,
가이드 맵등을 얻을 수 있다.
06시 30분 기상, ‘알베르게’식당에서 '바게뜨'(딱딱한 빵)에 '까페 꼰 레체'(밀크 커피)를 먹고 07시 07분 출발,
날씨는 청명 하였고 새벽이라 곳곳에 안개가 자욱하다.
'오리손' 산장에 도착하기 직전, 앞서가는 사람이 있어 뒤에서 보았는데도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고 있었다. '올라‘ (OLA:안녕이라는 스페인 인사)! 하고 인사하며
옆에서 보니 과연 추측대로 아주 나이 많아 보이는 남자 분이셨다. 국적과 나이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을
붙이면 더 힘드실까봐 그냥 지나쳐서는 멀리서 풍경을 찍는 것처럼 하며 그의 사진을 찍었다.
저 나이에 ‘까미노’ 길을 걷는 게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과 야생화, 그리고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예쁜 산 밑의 집들을 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피레네 산맥을 2 시간가량 넘으니 9시 20분경 ‘오리손’에 도착하였다.
기분이 좋아서 인지 아니면, 제주 올레 길에서 충분한 연습을 한 탓인지 날아갈 듯 몸이 가쁜 하다.
거기다가 동행하는 ‘노베르뜨’도 나와 보속이 비슷하여 너무도 좋았다.
숙소는 12시 되어야 연다고 하여 시원한 맥주 한 잔씩을 하였다.
12시에 방 배정을 받아 침낭을 펴고 샤워와 빨래를 한 후 야외 벤치에 앉아 ‘바게뜨’ 빵과 ‘까페 꼰 레체’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하루 종일?, 무려 10 시간을 ‘노베르뜨’와 1 년간 배낭여행을 한다는 오스트렐리아 처녀 ‘레이첼’(RACHEL)과
함께 지나가는 순례자와 주위 경치를 감상하며 있었다.
1시경이 되자 ‘오리손’에 묵는 여자 순례자 2명이 숙소 뒷산으로 올라가는 게 보인다.
"우리도 한 번 둘러보자"고 ‘노베르뜨’에게 제안하니, 그냥 “지나가는 순례자와 주변 경치를 보는 게 너무 즐겁다”며
“자기는 안 가겠다”고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주저앉아 ‘내가 이곳에 단순히 걷거나 구경하러 온 게 아니잖은가?
60평생을 바쁘게만 살아오다 처음으로 맞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인데,
제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느긋하게 하루를 음미하며 보내자’ 하고 생각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10시간을 한 의자에 앉아 지내 봤는데 역시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좀 지겹지 않을까’ 하고 생각 했는데 막상 마음을 달리 먹고 앉으니 너무도 좋았다.
만일 제주에서나 서울에서 이렇게 앉아 있으라면 너무도 힘들었을 것이다.
세상사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 라는 말이 실감 나는 하루였다.
2시 쯤, 한국인 여자 2명이 도착했으나 숙소를 미리 예약 안 한 탓에 25 유로를 주고 숙소 뒷 편에 있는 텐트에서
자기도.... 난 미리 예약을 했기에 천만다행이다.
’네이버(NAVER)‘의 ’까미노(CAMINO) 까페‘의 도움을 첫 번째로 받은 케이스이다.
오후 7시부터 숙소(2층) 아래층에서 소고기, 콩 삶은 것, 스프, 빵, ‘비노 틴또’(VINO TINTO:레드와인)로 30여명의
순례자들과 식사를 하였다.
우리 테이블엔 독일인 남자 2명, 아일랜드 여자 2명,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서 환담을 하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가졌다.
아일랜드인 ‘로르나’(LORNA)는 2주간의 휴가를 얻고 온 직장인인데 성격이 매우 쾌활하고 사교적이었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도 저녁 식사 후 만나,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과 염소들)
(야고보에 대한 설명)
야고보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등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 영어식 발음이 '제임스' 혹은 '지미', 프랑스어식
발음이 '자크', 독일어식 발음이 '야코프', 스페인어식 발음이 '이야고'인데 그 앞에 성자(saint)호칭이 붙어
산티아고(santiago)가 된 것이다. 전 세계 국가에서 산티아고란 도시가 많이 있는 이유다.
(산티아고 가는 루트)
levante길,la lana길,madrid길, ebro길,norte길,inglesy maritimo길,plata길,frances길 등의
루트가 있는데 이 중 까미노 프란세스길이 대표적인 길이다.
(길가에 널어놓은 팬티들...)
-누가 ?, 왜 ?, 널었을까 ?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는 노 순례자 )
눈치 안 채게 찍느라고 사진이 흔들렸다.
산티아고 갈때까지 4회 이상 크고 작은 산 들을 오르게 되는데 우리나라처럼 급경사의 산은 없다.
그래도 순례자 모두 10kg 내외의 짐을 지고 가므로 평지보다 무척 힘든건 사실이다.
(안개 낀 새벽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
...외국인들은 모두 스틱을 사용하고 있다.
생장'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27 km 지점인 '론세스 바예스'까 지 가는 이 길이 '까미노 프란세스' 전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데 정말 경치가 너무 예뻐서 숨이 막 힐 지경이다.
공기가 맑고 풍경이 너무 예뻐 기분도 짱이고 걸음도 한결 가볍다.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는 '생장'마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오리손'이다 )
나는 '까미노' 전 기간동안 긴 바지를 입고 걸은 반면 외국인 들은 하나 같이 반 바지를 입고...
내가 따뜻한 남쪽지방 출신이라 추위에 약한 것이리라...
(해발 650M의 '오리손' 산장)
오른 쪽 건물 1층은 식당겸 '바르'(BAR:바)이고 2층은 순례자 숙소,오른 쪽의 텐트는 숙소가
모자랐을 때 이용하는 야외 숙소이며 왼 쪽의 지하는 순례자 숙소, 위에는 야외 벤치가
놓여 있다.
(2년 째 배낭 여행중인 '레이첼'(호주, 24세)과)
쾌활하고 성격이 좋은 그녀는, '중간에 다리 부상으로 중도 하차 하여 아일랜드 병원 치료 중'이라고
메일로 알려왔다.
(지나가는 양 떼를 찍기 위해 모두 바쁘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레이첼'이다.
(장장 10시간을 이 한자리에서...)
(뒤편 언덕에 자리잡은 텐트(25유로)는 침대방(30유로)과 별 차이가 없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거나
늦게 도착한 순례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날도 3시쯤 도착한 한국인 두 아가씨가 이 텐트에서 잤다)
(아일랜드인 '로르나'(LORNA)와 만찬장에서)
활달한 성격의 Lorna 양은 간호사로 2주의 휴가를 얻어 까미노 중인데 내년에 남은 여정을
내가 만난 아일랜드인들은 대부분 Lorna 양 처럼 무척 활달하고 상냥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