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시: 성주사를 생각하며
성주사를 생각한다.
백제시대 영혼들을 위하던 부처님
세월이 지난 후에 신라의 왕궁에서
지원했던 성주사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자신이 존엄성을 성찰하려는 서원
바람이 불어오고 눈보라 처도
영혼들의 아픔을 치유했던 성주사
눈 밝은 선 수행의 납자들을 길러냈던
강물보다도 더 맑은 흐름의 세월 앞에
촛불 밝히면서 두 손을 모으던 백성들
세월의길 밖에서 만났던 생명들
그리움으로 잠을 청해 보련다.
성주사 부처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때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기억한다.
들풀이 눈뜨고 있는 날
석양노을이 온 산을 보듬고 있을 때
들판에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니
황금빛을 토해내면서 바람이 일어난다.
만나던 이들은 해어지지 않으려고
두 눈을 마주 보며 서로를 위로하는데
절망하면서 절망의 거리를
나비처럼 날개를 접고 앉는다.
지나간 밤하늘에 별들이 내려와서
그날에 속삭이던 거리를 거닐 면서
신라의 최고의 고승 무념 선사에게
들풀을 꺾어 받치오리니
내 심장에 남은 한 생을 기억해
성주사에 타는 들풀이 되고자 한다.
아 아 나를 안고 있는 들꽃 같이
가지 않는 길
가지 않는 길 앞에는 바다가 있고
바다 멀리에는 오색 노을이 자리를 펴고
설움에 눈물 흘리는 하마 같은 속삭임
시간의 저쪽에서 들러오고 있는 새의 눈물
날개를 접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날
아리랑 아리랑 성주사 부처님 아리랑
두 눈을 감고 있어도 그리운 사랑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
그날에 우리는 서로를 안고
대나무 꽃이 피는 산천에
풀피리를 불고 있었지
흐르는 세월의 문덕에 앉아 있는 몸
설겅에 걸어두었던 꽃이 아름답다
가지 않는 길에 나를 서있게 하네.
진흙 부처님
진흙으로 빚은 불상은 물에는 견디지 못해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불에 견디지 못해
세월이 지난 후에 타고 남은 흙덩이
진흙으로 돌아가 연꽃을 피우자구나
연꽃아 피어라 어서 피어라
뜨겁게 타는 불덩이에서 핀 꽃
연꽃 부처님이 되어 하늘을 항해
바위로 배를 만들어 타고 가네.
구름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비올 바람은 비를 몰고 가지만
타는 사막에 피는 꽃들을 안고
바람이 되어 진흙 부처님을
연꽃위에 앉히고 떠나가네.
나는 너의 심장이 되어
성주사 법당에 연꽃으로 피어
세월의 바위 돌을 굴리면서 가리
비오는 날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연의 들풀이 자라는 소리
코끼리가 피리를 불고 있는 밤
석양에 노을은 성주사에 내려온다.
어둠이 지나가는 밤에 배를 띄우니
도솔천궁에 나는 극락조가 되어
낭해화상의 돌비를 같은 세월
구름에 얼굴을 묻고 살자 말하네.
나는 너의 눈물이 되어 흘리는 피
심장 속에 흐르고 있는 핏덩이
그날에 우리는 다정한 속삭임으로
비오는 날에 폭포가 된다.
임진왜란의 상처 성주사
임진외란의 상처가 성주사만 있으랴
조선8도에 남긴 그날의 아픔이야
누구에게 하소연하려나.
조선의 정치는 붕당 정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병들어 죽어가는 몸이라면 몰라도
눈 번쩍 뜨고 심장에 피가 솟아오른 몸
곤장으로 맞아죽은 그러한 아픔
세상일 모두 잊고 살자 말해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을 어이하리.
보령에 있는 성주사는 임진왜란의 상처
어떻게 하여 그날을 영혼을 위로할까
그 모습 그 대로 얼굴보이면 되지
아름다운 그 얼굴 그 모습 같이
바위 돌에 얼굴 색이는 아픔을
푸른 들판에 서서
푸름이 들판을 장엄하고 있는 오후
나비는 어디에서 날아오고 있는지
한 무더기 새떼가 날아가 버린
텅 빈 방에 나타난 미륵보살
성주사 미륵님의 화신을 기다리는데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날
이제 다시 푸름으로 다시 찾은 들판
저널은 들판 위에 나비가 날고
그날에 세웠던 성주사 부처님
푸름에 잠을 청하는 날에
비오는 날 무지개가 우뚝 솟아서
내일에 오는 그리움을 던진 날
세월의 기다림을 아쉽게 어긴다.
성주사에 낙엽이 날아오고 있을 때
바람은 아직도 무섭게 낙엽을 떨구고
기나긴 밤을 슬프게 지내던 미륵님
내일을 기다리고 기다려 보네
비가 내린 성주사 터
비가 내린다.
세월의 장막을 뚫고 내리는 비
신라의 무념 스님이 참선을 하던 터인데
참선하는 이들의 눈빛이타는 불꽃이어도 소용없네.
지나가는 소낙비에 온 몸이 적신 다해도
부끄러워해야할 알몸으로 달려도
기다리는 것은 어둠이 내려온 밤에
보름달을 바라보고 눈물 흘릴 뿐이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물건이라고 해도
성주사가 불에 타는 날에 아픔만 같으랴
문무왕 신라의국토를 통일한 이후
김인문 동생에게 백제의옛 땅을 물려주었지
백제의 땅 위에 성주사를 세우고 나서
당나라에서 배에 타고 오는 이들을
성주사 부처님을 친견하게 했으니
그것으로 족한 믿음의 국토였다.
그런 힘이 있었던 성주사 얻는데
검은 구름이 산을 들고 일어날 때처럼
타오르는 국토의 장엄을 이주하려 했네.
신라의 불교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성ㅈ사 부처님은 신라 백성을 위해 기도했는데
고려가 건국되고 왕건이 국왕이 되고
성주사는 왕을 위한 사찰이었다.
고려가 선을 크게 일으키고 있었던 시기에
성주사는 고려불교를 지키려는 서원으로
보조 지눌의 가르침을 선양했고
호국불교의 역사를 전승했네.
아 고려가 멸망하고 난 뒤에 성주사는
조선 왕조의 후원 사찰로 옷을 갈아입고
태종 시대까지 그 모습이었는데
세종은 성주사를 선교양종으로 병합했지
성주사는 교종 중심의 이름으로 변경
명종 시대 승과를 볼 때에는 교종 승려로
그들이 조선을 수호하려고 나섰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성주사 승려들은
전라도를 수호하는 호국 승려의 옷을 입고
청주성 전투에 참여했던 성주사 승려들
성주사 승군들이 청주성을 회복하는데 나섰고
후에 조선이 승군들의 집결지가 되었던 성주사
성주사에 일본군이 머물다 갔는데
철수하면서 불을 질렀다
명나라 수군 계금장군이 불에 타는
그 모습 보고 성주사에 왔을 때
일본군에 의해서 불에 타버린 성주사
명나라 수군들이 성주사의 타는 불꽃을 보고
전라도 이순신 수군에 합류했네.
명나라 수군 계금 장군이 돌아왔을 때
성주사는 불에 타 없어지고 탑비만 남았는데
그날에 그 탑비가 지금도 남아있어서
오늘 날에는 국보가 되었네.
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주사를 복원하여
백제 시대 신ㄹ 시대 융성했던 구산선문을
다시 회복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네.
성주사 부처님이시여 위신력을 보이소서.
사명 스님이시여 일어나시라
사명 스님이시여 일어나시라
한국불교는 절망하며 비틀거리며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음이여
서산 스님과 사명 스님이여
조선의 망국을 지켜낸 호국스님
어이하여 그날의 명성이 소멸해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해매인 불교
오늘의 불교를 통탄하지 않을 수 없네.
사명 스님이시여 위대한 스님이시여
밀양에서 풍천 임씨 가문에 태어난 것은
전생에 도솔천 내원궁에서 인연을 맺어
조선백성을 구하시여 내려오신 사명스님
사명 스님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불타의 정신을 실천하신 스님
스님은 출가하여 승과 시험 준비하는데
시험과목인 전등록 선문염송을 학습했다
조선에서 불교를 절망하게 했던 세종임금은
고려 시대로부터 전승되어오던 불교를
선교양종으로 분리해 버리고 말았지
선교양종으로 고찰해 보면 구산선문도
그 역사성을 모조리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세종이여 그대는 조선을 구한 성군이라고 말하지 말라
조선에 불교를 소멸하게 한 임금이다.
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과제는 바로
조선불교를 회복하게 하였던 시대를 바로 보고
바르게 학습하여 그 정신을 전승해 나가야 한다는 점
조선에서 불교를 회복하게 하였던 시대는
명종이 등극하면서 조선불교를 회복하였다
그 가운데 문종왕후의 불심으로 칭송한
허응당 보우스님의 노력이었다
허응당 보우스님이 없었자면
조선불교는 어둠 속에서 진흙 밭에서
고통을 참고 견디는 연꽃처럼 그날을
기다리며 살았던 몸이였다.
명종 6년에 선교양종을 복립하여
승과 시험을 보는데 승려들을 선발했다
1차 승과에 합격한 스님은 서산 스님이었다.
조선에 불교를 회복하는 날이었다.
우리의 스님 사명 스님이 등장한 시기는
명종 16년에 승과 시험에 장원을 하였다
우리의 스승 사명 스님이여 조선불교를
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발원하니
오늘의 한국불교를 지켜주소서
사명의 이름이 전국에 펴진 이후
조선에 불교는 호국불교였다
사명스님의 호국사상은 법화사상
어쩌면 그리도 현명한 정신 수행자의 길
어린 나이에 불교에 입문하여
승과에 합격한 수행자들을
지도하였던 사명 스님이여
조선불교를 지킬 수 있는 날
성주사에 무념 선사 같은
돌사자처럼 불교를 지킨 위인
오늘의 이 시대에 내투시라
우리의 위대한 사명 스님
내일에는 희망과 용기를 주실
보령에 가서 보니 사명스님이
성주사지에 찾아갔던 원규는
풍천 임씨의 후예답게 살아서
역사를 지켰던 선승이었다.
사명 스님은 승과 시험에 합격한 이후
금강산에서 수행할 때에 법화경을
법화경 6만 9천자를 익힌 사명 스님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수행자
금강산에서 경전을 탐독한 수행자였다
경전을 탐독하지 않고서는 불교를
바르게 성찰할 수 없다는 사실
그렇게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정여립 이라는 관료가 대동계를
조직하고 이이를 비판한 정치지도자
그를 반란의 괴수로 지목한 것은
서인 동인들의 당파논쟁으로
정여립 사건으로 서산 사명 스님도
연루되어 옥에 가두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여립 사건은 3년간 지속되었는데
조선 백성들의 삶은 고달팠다
조선의 백성들의 삶은 너무도
고달픈 삶이었다.
일본에서는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를 보이는데 일본 승려
현소스님은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
조선에 사신으로 온 현소스님은
조선에 국토를 자세히 고찰했다
아 그날이 왔다
조선을 침략하는 그날
일본군이 부산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줄 알고
막지를 못하고 있던 이유는
통신사의 판단이 말해주고 있다
당시 동인 서인들이 서로 논쟁을
그렇게 권력을 장악하려는 의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시기에
선조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의주에 몽진해 있던 시기
묘향산에 있는 서산스님을 청하여
조선에서 가장 높은 승통지위를 부여하고
조선의 승려들을 모집하여 조선을 구하라는 협력
그날을 바로 7월 1일이었다.
서산 스님은 조선에 승통이라는 직책으로
격문을 보내 승군을 모집했는데
당시 사명 스님은 건봉사에 있었을 때
승군을 모집하여 1000명을 거느리고
승군의 총본부였던 평양에 있는
법흥사에 갔다.
법흥사는 조선승군의 총본부였기에
사명스님이 법흥사에서 소임을 다하였는데
평양전투에 참전하려는 준비를 하였다.
조명 연합군은 평양 전투 4차에 참여하려는
이여송 제독과 부총병 임자강 등 3만 명
조선에 승군도 2200명이 참전했다.
선조 26년 1월 8일에 평양전투는
대승을 거두고 일본은 철수하였다.
평양전투 승리의 날을 기억하자
평양 전투에 승리자는 승군이었고
조선의 승군에 역사를 기억하게 하자
선조임금이 선포한 승군의 날을
오늘에 와서 7월 1일로 승군의 날
승군의 날 승군의 날을 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