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도 넘은 낡은 사진 한 장이 앨범사이에 끼어있다.
70년대 초에 동부 전선엔 정말 눈이 많이도 왔었다.
밤 사이에 1~2 미터는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그래서 야전군 사령부에 스키부대가 절실해서 급작스레 만들어진 부대 였으리라.
사단에 많은 예하 부대들이 있겠지만 1개 소대를 뽑아 2사단 진부령에 스키 훈련을 받으라는 지령에 수많은 소대들 중에 우리 소대는 담첨되었다
하기야 소대 내에 당시 킥복싱 챔피언도 있고 유도 3단이나 합기도 3단 대원들도 있어서 사단내 특수 업무는 도맡아 수행했던 소대니 당연하기는 햇지만 스키를 본 적도 없는 내겐 줄 잘못 선 탓에 갑자기 2월 어느 날 진부령으로 한달간 스키 훈련을 떠나야 했다.
지금 어딘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 추운 겨울에 트럭을 타고 찾아간 진부령 어느 골짜기엔 초등학교가 있는데 학교 운동장에 가득한 눈이 2미터가 넘어 등교하는 길만 군에서 부르도저로 길을 내서 아이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높은 눈 담벼락 사이로 교정을 들어가던 시대였고 우리가 도착한 막사라는 곳도 시멘트 건물이 아닌 엄청난 적설량 위에 설치된 커다란 군용 텐트였는데 아마도 2미터 눈위에 설치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 달간의 스키 훈련동안 단 한줌의 흙을 볼수도 없고 세숫물도 눈을 녹여 써야 했으니 말이다.
스키는 50년도 더 된 노르웨이 산 "노르딕" 이라 하는 짧은 길이의 스키인데 바닥이 워낙 낡아서 매일 왁스를 바르며 공을 들여야 그나마 두 날의 스키가 보조를 맞추워 앞으로 나아가는데 잘못 바르면 한쪽 발이 먼저 나아가기에 우선 왁스 바르는 기술부터 읽혀야 했던 시절 누가 담아 준 사진인지 모르지만 낡은 사진 두어장이 남아 있다.
원래 스키복이 하얗는데 그냥 군복만 입은 것으로 봐서 교육이 없는 휴일이었던 모양이다.
나야 아직 첫 휴가도 못간 새까만 일병이고 고참의 이름은 기억도 안나지만 아마 상병으로 호적의 오기로 나이가 늘어있어 19살의 나이에 너무 일찍 입대 한 나를 동생처럼 보살피던 고참이다.
암튼 요즈음 20~30 쎈티 적설량을 가지고 "폭설" "대설특보" 라고 기상청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스키를 타던 야산은 나무들이 송두리채 모두 눈 속에 파묻혀서 나무 꼭대기 줄기도 잘 보이지 않았으니 아마 나무의 높이 만큼이나 적설량이 쌓였으리라.
글쎄 4미터 혹은 7~8 미터?
암튼 작은 산 능선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마을은 지붕보다 높은 눈으로 지붕만 겨우 보일 정도라 서로의 집을 분간하기도 쉽지 않으니 마을도 기본이 2~3 미터의 적설량이었을 것이고 ~~
어쩌다 대나무로 스키를 만들어 타고 온 동네 아이들에게
"너희들 집 찾아 갈수 있어?"
라고 물어보면
"에이 아저씨들 걱정마요, 우리 폴 한번 찍으면 바로 집까지 가요!"
하며 내리 달린다.
당시 스키 스틱을 폴이라 부르던 시절이다.
그런데 단 한번의 도약으로 몇 킬로나 떨어진 집까지 날라간다는 아이들의 스키 실력은 우리보다 월등했다. ㅎㅎ
지금은 히말리야나 알프스 어느 깊은 산골에나 찾아 볼 수 있는 그림같이 하얀 그런 마을이 사라진게 너무 아쉽다.
그래선지 어쩌다 영하 20가 넘고 폭설이 80 쎈티가 넘는 거친 산행이 젊은 회원들에게 겁을 집어 먹게해서 하산 하자는 말을 듣지 않고 가던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는 것은 그날들의 고생과 추억 때문이리라.
친구들은 이런 사진을 어쩌다 카톡에 올리면
"넌 다시 알프스에 갔냐?"
라고들하지만 여기는 그저 남쪽 요즘 눈이 많이 내린 호남정맥의 일부 "장안산 " 정맥구간일 뿐이다.
바람이 많이 거세지만 열심히 찾아보면 그 날들의 마을들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도 시력이 많이 나빠진 탓도 있지만 이젠
"그 마을들이 어디에도 아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