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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길 위의 학교 | ||||||
바람난 가족, 뉴질랜드 가다 스카이타워에서 오클랜드를 한눈에 바라보다 <16·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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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베이(Mission Bay)는 오클랜드의 대표적 부촌이자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로 명성이 나있다. 바다 건너편에 봉긋하게 자리잡은 랑이토토섬이 거친 파도를 막아줘 바다는 늘 평온하다. 랑이토토섬(Rangitoto Islind, 260m)은 800년 전에 화산 폭발에 의해 생겨난 섬으로 ‘테마테파쿠아의 피가 흐른 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길게 이어진 랑이토토섬은 하우라키만 주민들에게는 보물섬으로 통한다. 해변가에는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 아이스크림집이 늘어서서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청소차가 웅웅 소리를 내며 공원을 깨운다. 눈앞의 랑이토토섬 너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머리를 쳐들다 수줍은 듯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바닷가를 걷는다. 개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은데 개똥하나 없다. 세 살 먹은 아이를 데리고 모래 장난을 하는 아버지, 지뢰 탐지기로 반지나 동전을 찾고 있는 할아버지, 조깅을 하는 아가씨, 주위를 청소하는 사람들이 미션베이 해변의 아침 풍경을 만들어낸다. 타마키(Tamaki) 드라이브코스를 달린다. 타마키 드라이브는 오클랜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요트가 쪽빛 바닷가 위에 평화롭게 정박하고 있다. 오클랜드 박물관에 들어섰다. 오클랜드 박물관(Auckland War Memorial Museum)은 오클랜드 시내 남동쪽 중심부 공원의 산 위에 자리해 시내가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1852년에 지어진 건물로 고딕양식의 3층 건물이다. 1층에는 해양 생물 및 마오리의 문화 역사, 2층에는 뉴질랜드의 동·식물 및 화산, 3층은 전쟁기념관으로 이뤄져 있다. 해양관에는 바다에서 서식하는 조개류, 어류 등의 모형 및 박제가 전시돼 있는 공간으로 미디어를 이용해 역동성을 살려냈다. 또 퍼즐 조각을 현미경에 대면 입체감이 나타나며 설명을 한다. 윤지와 형빈이는 현미경에 조각을 대보며 신기해한다. 마오리의 역사와 문화 전시 공간에는 1836년 만들어진 마오리족(族) 전투용 카누인 테 토키 아 타피리(Te Toki A Tapiri)가 길이 25m의 규모를 자랑하며 전시돼 있다. 테 토키아 타피리는 100여명을 태우고 마누카우만을 누비고 다녔던 전쟁용 카누로 마오리의 선박기술을 엿볼 수 있다. 2층의 조류 전시 공간에 특히 눈에 띄는 새가 있다. 지구에서 가장 큰 새인 ‘모아’다. 모아(Moa)는 날개 없는 대형 새로 키가 3m에 달했으며 17세기 말까지 뉴질랜드에 살았던 새이다.(소형은 19세기까지 존재했다고 함) 1천년 전 마오리족이 처음 이주했을 당시는 많이 생존했으나 산림 감소와 남획으로 멸종됐다. 모아를 통해 한번 멸종된 새들은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뉴질랜드 최고 명문 오클랜드 대학교 과학관(The University of Auckland)으로 갔다. 과학을 좋아하는 윤지와 뉴질랜드의 교육 체계 및 학교환경, 수업에 대한 학생과 교수의 준비 등에 관심이 많은 아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대 강의실에서 실험 도구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며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교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 바닥에 앉아 서로 토론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역동성이 느껴졌다. 우리는 강의실 뒤편으로 들어가 수업 진행 모습을 바라봤다. 아내는 자료실에 가서 커리큘럼과 같은 세부적인 내용까지 문의를 하고 자료까지 챙겼다. 오클랜드의 상징인 스카이 타워가 보인다. 스카이 타워(Sky Tower)는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328m이다. 53층 전망대로 올라섰다. 시내와 바다의 어우러짐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가장자리에 36mm의 두께로 만들어진 유리판위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시내가 펼쳐지는데 유리가 금방이라도 깨질까봐 아찔하다. 이곳에선 192m 높이에서 번지 점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탁 트인 공간에서 오클랜드 시내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리는 번지 점프(bungee jump)는 뉴질랜드인들의 개척정신 ‘한번 해 보자(Giving It a Go)’에서 시작됐다. 마지막 날의 아침 새의 지저귐이 요란하다. 저들도 우리와 헤어짐이 아쉬운 모양이다. 그동안 쌓였던 캠퍼밴 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닦아내는 아내의 모습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생활하며 채워진 오물 찌꺼기도 덤프스테이션(Dump Station)에 버리고 마음에 남아 있는 찌꺼기도 함께 버린다. 지금 돌아가면 언제 다시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하늘의 구름이 벗겨지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교포인 박수씨(27·여)를 만났다. 그는 아직 다 먹지도 않은 밥 숟가락을 친구에게 맡기고 우리를 스텔라 아르토이스(Stella Artois)로 안내했다. 본인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소개해 주며 주문도 도와줬다. 캠퍼밴을 반납하고 공항으로 갔다. 번잡한 공항으로 가는 길이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터널처럼 느껴졌다.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의미를 줬다. 광활한 대자연의 곳곳을 직접 찾아 헤매고 다니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의견충돌로 다투고 난 후 불편하기도 했지만 화해하는 방법도 알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큰 행복을 만들어내는지도 깨달았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불쑥 성장한 듯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각자의 큰 선물보따리를 지고 지구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나라 뉴질랜드의 첫 햇살을 마음에 품고 돌아왔다. 세계 아동 문학계의 거장인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오스트리아)는 취재를 간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꾸중과 칭찬을 통해 깨닫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자란다”고. <끝> 글·사진 박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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