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수상자 : 강미란
수상 년도 : 2023년
수상 작품 : 불경스러운 언어, 삶을 쓰는 사람들
—이은희의 『불경스러운 언어』를 읽고
불경스러운 언어, 삶을 쓰는 사람들
책 속 문장을 따라간다. 나도 모르게 고전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이은희 작가는 수많은 고전 수필을 찾아 “기갈이 들린 사람처럼” 정독(情讀)하고 체독(體讀)한다. 8년이란 긴 세월을 하루같이 선인들의 글쓰기에 빠져 18, 19세기 동서양 최고 문장가의 명문장을 지면에 길어 올린다. 책은 눈이 아니라 온 감각으로 읽는 것, 그리하여 좋은 문장의 울림은 몸이 기억한다. 그러니 각각의 편마다 작가의 삶이 비유되지 않았으랴. 작가만의 문체로 엮은 『불경스러운 언어』를 나도 기갈이 들린 사람처럼 읽고 또 읽는다. 밑줄을 그으며 옛 선인들의 마음과 글쓰기를 만난다.
작가가 삶의 경험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 문장에 마음이 머문다. 고전과 현대의 만남이다. 낯설고 새로운 창작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조선의 문장가와 이은희 작가의 정신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마음이 닿는 문장을 필사하며 작가만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 자세도 배운다. 고전에서 느낀 감상에 철학을 덧붙여 자신만의 문체를 현대수필로 해석했으니, 이보다 좋은 글쓰기 인문학 도서가 어디에 있겠는가 싶어서이다.
글쓰기에 미친 사람이 있다. 무려 11권이나 수필집을 출간한 중견 수필가 이은희 작가와 조선 최고의 문장가 이덕무, 이옥, 김려, 허균, 홍길주, 심노승 등이 그러하다. 그들은 ‘불경스러운 언어’의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은희 작가의 『불경스러운 언어』는 여느 수필집과는 결이 다르다. 많은 서적을 읽은 내공이 쌓여 탄탄한 문장력과 풍부한 사유로 이어져 독자에게 고전의 진수를 보여준다.
일상의 체험과 감동을 언어로 생명화하는 일은 글을 도구로 한 창조 작업이다. 안병욱 교수는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속에 간절하여 견딜 수 없을 만큼 절실할 때, 깊은 공감의 메아리가 혼에서 혼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생명에서 생명으로 전달되는 글을 쓰고 싶어질 때 써라.” 강조하며 “혼의 울부짖음이 없을 때는 글을 쓰지 말라”고 했다. 『불경스러운 언어』 26편 속 문장가나 이은희 작가는 아마도 이러한 마음으로 글을 썼으리라 생각하니 그동안 절실함과 문학적 열정이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불경스러운 언어』는 문인으로서 마음가짐과 글쓰기 자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서얼 출신에 궁핍한 삶을 살면서도 책에 집착한 간서치 이덕무,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에 불응하여 충군(充軍)의 고초를 겪은 이옥, ‘글쓰기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칭하는 효전 심노승 등이 나의 마음을 파고들어 창작의 나아갈 길을 밝혀준다. 이은희 작가는 “하루 한시도 수필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모하는 이덕무에서 페르난두 페소아까지’ 최고의 문장가들이 궁금하여 ‘책의 꼬리 잇기’식으로 선인들의 글쓰기 정수를 찾아낸다. 이은희 작가의 문인으로서 정신과 열정은 본받을 일이다.
이옥과 유득공의 글은 언어의 생명화를 통한 영혼의 울림이다. 『고운당필기』에 오른 유득공의 「북어」는 보잘것없는 것을 세밀한 관찰과 묘사로 마음에 있는 심상을 작가만의 언어로 다시 살려낸다. 언어는 사물과 인간의 속성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유득공의 『봉성문여(鳳城⽂餘)』에 실린 작품, 시기(市記)에서 종이창의 구멍을 통해 시장풍경을 엿보는 장면은 기이한 발상이다.
옛 문장가들에게 모든 만물과 시공간이 글감이다. 그들은 삶에서 길어 올린 소재를 다양한 시각으로 묘사한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자신만의 사유를 독특한 문체로 빚어낸다. 내가 사물이 되고 사물이 내가 되는 순환적 구조를 통해 진리를 터득하게 하니 더욱 공감과 감동을 안긴다.
작가는 상허 이태준과 다산 정약용의 「벽」을 공감각 표현의 장(場)으로 표현한다. 벽을 바라보다가 벽에 어린 순간을 포착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비우면서 벽이 주는 운치를 묘사하여 작가만의 공감각의 장(場)을 연출한다. 이은희 작가도 다듬잇돌 위에 분청사기 ‘달항아리’를 놓고 다산의 「국영시서」, 그림자놀이를 하듯 한다. 이것이 바로, 선인과의 교감의 장이 아니랴. 참으로 고전과 현대의 어울림의 장이다.
수필을 쓰며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공허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상처받으면서도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덕분이다. 책을 필사한 값으로 양식을 들인 이덕무나 생계유지를 위해 ‘파시 떼워!’를 외치던 유득공이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글, 명문장을 후대에 남길 수 있었으리라.
『불경스러운 언어』에서 선인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한 문장, 한 단어가 가슴에 깊이 파고든다. 수필 쓰기는 삶을 쓰는 일이다. 삶이란 크게 열려 있는 문과 같다. 그 문을 드나들며 내 안에 수많은 ‘나’와 직면하고 타인과 관계하며 문제와 마주한다. 작가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는 앙가주망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네오필리아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 고전의 문화와 정신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 일은 글쓰기로 가능하고 그것이 작가의 소명이다. 이은희 작가는 고전에서 해답을 찾는다. 『불경스러운 언어』를 탐독하며 ‘치유에 이르는 글쓰기’에 방향을 잡는다. 삶을 글로 쓰며 마음을 일으켜 삶의 활력을 얻었던 과거의 문장가들을 만나게 해 준 덕분이다.
‘불경스러운 언어’는 전혀 불경스럽지 않다. 작가의 삶을 일상을 담고 있어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필은 인간학이다. 삶의 철학을 담는 문학이다. 수필은 사대부들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패악질을 부려도 살아남은 문학이다. 21세기는 그 시대에 빛을 보지 못한 ‘열하일기’나 이옥의 ‘불경스러운 언어’가 대세이다. 『불경스러운 언어』는 삶을 쓰는 글이고 계속 써야 할 글이다. 수필을 쓰는 작가들은 어떤 글쓰기의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이은희 작가의 책에서 글쓰기 인문학의 정수를 느끼리라. ‘하루 한시도 수필을 잊은 적이 없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나부터도 수필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수상 소감
내 인생의 한 권의 책, 『불경스러운 언어』
뜻밖의 수상 소식은 부족한 저에게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이덕무는 오우아(吾友我), “나는 나를 벗으로 삼는다.”라고 했지요. 정녕 저에게 수필은 사유와 자기 성찰로 보다 나은 삶으로 거듭나게 하는 나의 벗이요,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독서는 타인의 삶의 경험에서 ‘나’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불경스러운 언어』는 고전에서 해답을 찾게 했습니다. 명문장을 후대에 남긴 문장가들을 만나며 ‘나’를 일깨우고 막힌 생각을 열었습니다. 사유와 정서를 넘어 남다른 창작의 열정을 불태운 조선의 문장가와 명문장을 창작의 지침서로 삼고 싶습니다.
독서문학상 대상 수상 소식을 접하며 어떤 작가로 남을 것인지 자세를 다잡아 봅니다. 『불경스러운 언어』, 삶을 쓰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새로운 창작으로 기이한 작품이 빚어지길 소망합니다. 내 인생의 한 권의 책, 『불경스러운 언어』를 만나게 해 준 이은희 작가님과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강미란 ngmi77@hanmail.net
『한국수필』 등단(2016).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충북PEN문학 사무국장. 충청투데이 에세이 필진. 『영광21신문』 영광상사화축제 수필대상, 『좋은 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 충북대 수필문학상 최우수상, 수필집 『나의 퀘렌시아』, 『차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