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와 선비정신
기사도니 무사도니 하며 아무 데나 도道를 붙여서 헷갈리게 하는데 무식한 일본인들 소행이다. 무도니 궁도니 서도니 하는게 모두 잘못이다. 무술과 사예射藝와 서예書藝로 바로잡아야 한다. 도道가 아니라 예藝와 술術이니 예술藝術이다. 태권도는 틀렸고 태권술이 맞다. 유도가 아니라 유술柔術이다. 주짓수가 바른 이름이니 일본어로는 주주츠다.
요즘은 젠틀맨과 레이디인데 젠틀맨은 가문의 장남 상속자이고 레이디는 어원으로 보면 우유를 따라주는 사람이다. 우유를 나눠주는 것도 일종의 권력이라 하겠다. 젠틀맨이든 레이디든 권력있는 사람이니 엘리트다. 기사도라고 하면 엘리트의 덕목으로 되어 있다. 무예를 숭상하고 레이디에게 친절하고 명예를 중시하고 독실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것들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가짜 기사도다. 그냥 갖다붙인 말이다. 사실은 레이디의 미션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기사도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면 공주의 손등에 키스를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뭔가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예를 숭상하고 레이디에게 친절하고 명예를 중시하고 신앙이 독실해봤자 그냥 폼잡는 것일 뿐이다.
돈 키호테는 둘시네아 공주를 위하여 예배당에서 밤새워 갑옷을 지키고 있었지만 보통은 공주의 명령을 받아 성 밖의 해자를 건너는 다리를 지킨다거나 하는 식이다. 나중에는 무슬림 전사 몇을 해치우고 오라는 보다 센 임무가 주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저지르고 와야 한다. 방구석에 가만이 앉아서 레이디에게 친절하네 어쩌네 해봤자 가짜이다.
발자크가 자신이 숭배하는 공작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하루에 50잔의 독한 터키쉬 커피를 마시며 15시간씩 일하다가 51살에 과로사로 죽은 것이 진짜다. 기사도를 실천하면 명성을 떨치고 마을의 영웅이 되어 대접받는다. 기사도란 레이디의 명령을 받아 미션을 클리어 하는 것이다. 상속권은 장남에게만 가므로 차남 이하는 모험여행을 떠나야 한다.
명성을 얻으면 공주의 부름을 받아 미션을 부여받고 잘 되면 공주의 은혜를 입어 영지를 차지한다. 이런 전통이 지리상의 발견과 신대륙 진출로 연결됨은 물론이다. 게르만족은 선사시대부터 비슷한 전통이 있었다고. 남녀를 불문하고 열다섯 살이 되면 마을에서 쫓겨나는데 신라의 화랑도와도 연결된다고 한다. 화랑들도 무리지어 전국을 돌아다녔다.
몽골은 반대로 막내가 집안의 솥단지를 차지하여 가문을 계승하고 장남과 차남이 추방된다. 징기스칸의 세계정복은 이런 전통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장남이 제일 멀리까지 가야 하므로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가 유럽까지 쳐들어간 것이다. 몽골과 같은 데릴사위제 습속을 가진 한국도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고 해서 옛날에는 먼 곳에 장가를 보냈다.
선비는 사士의 무리輩이니 사士의 옛발음이 선이었다고. 그런데 왜 무리냐? 원래 사는 무리다. 선비는 임금을 호위하니 요즘이라면 청와대 참모진이 선비다. 조국, 임종석, 탁현민, 백원우, 장하성이 선비다. 이들은 몰려다니므로 무리다. 검색해보니 대한민국에 현재 선비 49명이 일하고 있다. 옛날에는 국가의 규모가 작았으므로 선비의 숫자가 많았다.
춘추시대 중국에는 대략 4천 개 국이 존재했고 일본에는 300개 구니가 존재한다. 선비는 임무를 받은 사람이며 인간의 에너지의 크기는 임무의 크기에 비례한다. 임무가 없고 에너지가 없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선비는 개인이 아니라 팀의 일원이다. 시골에 짱박혀 개인행동이나 하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완벽을 수행한 인상여가 선비의 표상이 된다.
선비는 인상여처럼 임금의 명령을 받아 적국에 사신으로 가서 적국의 왕과 담판을 짓고 결과를 얻어오는 사람이다. 임무의 크기만큼 에너지가 있다. 에너지가 있어야 선비다. 스스로 자신에게 임무를 주어야 한다. 당신에게는 어떤 임무가 주어져 있는가? 임무를 얻으려면 공주를 만나야 한다. 레이디를 만나기다. 레이디는 우유를 따라주는 사람이다.
문명을 만나야 하고, 역사를 만나야 하고, 진보를 만나야 하고, 천하를 만나야 하고, 신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임무를 부여받고 동료와 팀을 이루어 실천하는 사람이 선비다. 혼자 에헴 하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선비의 도는 무예를 숭상하고 레이디에게 친절하고 신앙이 독실하고 명예를 중시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해치우는 것이다.
의관을 정제하고 도덕을 지키고 폼을 잡고 하는 것은 흉내에 불과하다. 당신이 청와대 참모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하긴 청와대 참모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든 목숨을 걸고 임무를 해치울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한국사는 유례없는 독특함이 있다.
한국은 선비를 길렀고 그들은 엘리트였으며 그들은 다르다. 신라의 화랑도부터 엘리트였다. 엘리트가 중심을 잡았기에 왕조가 500년씩 가고 천 년씩 지속된 것이다. 엘리트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난 체하며 열등의식을 들키는 진중권스러운 행태라면 곤란하다. 그런 자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유시민처럼 가벼운 자라도 곤란하다.
유시민을 적국에 사신으로 보낼 수 있겠는가? 무리다. 자기보다 약자를 바라보며 계몽하려는 자는 엘리트가 아니다. 걸핏하면 나치가 어떻고 하며 가르치려 드는 것이 구조론에서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다. 자신의 엘리트 신분을 확인하려는 거다. 과연 자신이 엘리트가 맞는지 불안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 모름지기 천하를 상대해야 엘리트라 하겠다.
적국의 왕에게 한 칼을 먹일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혼자 나대는 자객은 선비가 아니다. 선비는 절대적으로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청와대에만 참모진이 있는게 아니다. 대기업에도 비서실이 있다. 어떤 집단이든 젊은 엘리트 그룹이 포진하여 단단한 코어를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김정은 뒤에 늘어선 할배들처럼 할배그룹이 포진하면 망한다.
근육운동을 해도 코어를 단련시켜야 한다. 국가에도 코어 역할을 하는 의사결정그룹이 있어야 하고 기업에도 반드시 그것이 있어야 하며 그들은 젊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어야 하며 그들은 동료의식으로 무장하고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혼자서 기묘한 술수로 뭔가 해보겠다는 자는 허접떼기다. 묻노니 당신은 선비인가? 임무를 해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