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한 사회주의자 독립투사 창해 최익한이
3.1 만세운동 때 옥고를 치른 이당 김은호가 그린 춘향상을 비판
1939년 5월 26일 제9회 춘향제의 김은호 춘향상 입혼식과 창해 최익한
일제강점기 1939년 5월 26일
제9회 춘향제에 이당 김은호의 춘향그림으로 일본신사 입혼식을 성대하게한다.
다음날 동아일보 신문 2면에 친일화가 이당 김은호 춘향그림 입혼식 기사와 3면에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인 독립투사 창해 최익한이 쓴 김은호 춘향상에 대한 칼럼이 실린다.
동아일보 2면에 이당 김은호 춘향 초상화로
제9회 춘향제는 입혼식으로 춘향제를 성대하게 거행했다고 기사화한다.
3면에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인 독립투사 창해 최익한은 이당 김은호 춘향상은 열녀 춘향상도 아니고 처녀춘향상도 아니다. 저 초상화는 도대체 누군가라고 한다.
▣ 창해(滄海) 최익한(崔益翰) 연보
△1897년, 울진군 북면 나곡2리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 수학
△1911년, 15세에 영남학파 거두인 곽종석(郭鍾錫) 문하생으로 들어가 5년간 수학
△1917년, 곽종석의 권유로 서울로 상경해 신학문 수학
△중동학교 졸업 후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2년 동안 영문학 수학
△3.1운동 후 항일운동 가담, 임시 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동
△1919년 8월,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군자금 1,600원 모금 사건 발각
△1921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4년형 선고
△1924년, 감형으로 석방
△출감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에서 수학하며 사회주의 사상 심취
△1925년, 사회주의 사상 단체인 일월회(日月會) 가입, 조선공산당 일본부 입당
△귀국 후 1927년 4월, 전진회(前進會) 협의체인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참석
△조선공산당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28년 2월 검거돼 징역 6년 선고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 논설위원으로 활동
△신문 폐간 후『춘추』지에 글 발표
△1945년 8월, 조선공산당 장안파 조직
△1945년 9월, 사회노동당 후신인 근로인민당 중앙위원
△1947년 12월, 민족자주연맹 참여
△1948년, 월북
△1948년 8월,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회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선출
△1949년~1950년『력사제문제』등에 논문 발표, 1955년『력사과학』등에 논문 발표
△김일성대학(金日成大學) 강의?
[출처] 경북 울진 출신으로 월북한, 다산 정약용 연구가 최익한(崔益翰) (1897~ ), <여유당전서>를 최초로 완독
작성자 이북도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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