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밝이술을 마셨습니다
ㅡ 권남희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정월 대보름이면 어머니는 으레 가족들에게 오곡밥과 함께 반드 시 청주 한 잔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귀밝이술이지요. 맛없는 술을 꼭 먹어 야 하냐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덕담 술을 다 마실 때까 지 지켜보면서 일 년 동안 좋은 소식만 듣고 복을 누려야 한다는 주문을 외웠습니다.
한국수필가협회에 좋은 일이 생기기만 기도하면서 귀밝이술 한 잔을 마 셨습니다.
큰일을 맡으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4월 1일 만우절에(April Fool's Day) 첫 임기를 시작하니 꿈인가 어리둥절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설날이 4월 1일이었 다고 합니다. 물고기를 선물로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지요. 프랑스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었던 달도 4월입니다. 한국의 4ㆍ19혁명을 생각하니 의로운 일 을 시작하기에 좋은 기운을 주는 달이 분명합니다.
1971년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하신 조경희 선생님과의 만남을 생각합니 다. 1987년 수필등단을 한 신인을 만난 식사 자리에서 격려를 해주셨습니 다. 그 후 어쩌다 공식행사에서 마주치고 종종 먼 발치에서 뵈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송파수필작가회 초대 회장을 맡았을 때는 조경희 회장님을 모시고 산귀 래에서 심포지엄도 했지요. 그 후 한국수필문학상을 마지막 선물처럼 안겨 13 주시더니 영면하셨습니다. 성공회 장례식장에서 많은 수필가가 눈물을 흘렸 습니다.
다음 해 뜻하지 않게 저는 격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을 맡았습니다. 당 시 이철호 이사장 주변에는 능력 있는 제자와 수필가들이 많았는데 수필강 의 두어 군데 하고있는 무명 수필가를 주간으로 발탁한 일은 사건이 분명 했습니다. 제 인생의 선물 편집주간 직함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고래처럼 한 인간을 용감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한국수필을 4월의 물고기라 불렀지요.
2007년 3월에는 월간 한국수필로 전환하여 2018년 3월 말까지 편집주간 으로 13년을 근무하면서 행복했습니다. 봉사하느라 힘드셨던 존경하는 역대 이사장님을 꼽아 봅니다.
유혜자 계간수필 발행인, 정목일 선수필 발행인. 지연희 문파문학 발행 인. 장호병 문장 발행인 최원현 명예이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문학을 천직처럼 붙잡은 무모함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거미줄 같이 가느다란 인연이 시간과 엮여 밧줄로 내려오는 게 삶이지 않을까요.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는 톨스토이 말처럼 문학을 사랑하고 몇 문 장씩 새겨가는 하루가 쌓여 작가의 운명을 완성하겠지요.
아끼고 존경하는 한국수필가협회 임원과 회원 여러분!
온전히 사랑과 배려, 응원으로 태어난 또 한 사람의 이사장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