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가 사는 일상을 아주 많이 바꾸어 놓았다. 일상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그리고 교육까지도 뒤흔들었다.
이렇게 모든 게 혼란스러운 지경이었지만 내 일상은 그래도 평온한 편이었다. 올해 육아휴직을 한 까닭이다. 코로나19로 내가 세운 계획들이 거의 대부분 물거품이 되었지만 어디 하소연할 처지가 아니었다. 급작스럽게 개학이 미뤄지고 수시로 교육과정이 바뀌는 극도로 어지러운 학교 상황에서 난생 처음으로 온라인 수업이란 걸 해내야만 하는 처지에 처한 주변 선생님들에 비하면 내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런 시기에 육아휴직을 해서 운이 좋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업과성장연구소 수도권 심화과정을 밟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심화과정 선생님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수업 고민을 놓지 않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도 교사로서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아갔다. 선생님들이 앞서 가는 게 보였다. 그러자 불안해졌다. 선생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안한 일상을 살고 있어 좋은 것보다 온라인 수업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해 아쉽고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내년에도 코로나19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이 병행되는 상황은 계속될 것 같은데 아무런 경험이나 준비 없이 복직을 해야 한다는 게 걱정이 되었다.
복직하기 전에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나 화상 회의 프로그램 등 기술적인 것들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능 좋은 태블릿 pc가 욕심이 나기도 했다. 무얼 준비해야 할지, 무어가 필요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조급한 마음만 앞섰다. 그런 중에 『온라인 수업, 교사 실재감이 답이다』를 읽었다.
이 책은 수업과성장연구소 신을진 소장님이 그간의 연구와 사례를 바탕으로 온라인 수업의 실천적 원리인 “교사 실재감”을 소개한 책이다. 1부 ‘교사 실재감의 실천 원리’에서는 “교사 실재감”의 개념과 원리를 제시하였고, 2부 ‘교사 실재감 실천 사례와 공감 코칭’에서는 “교사 실재감”의 네 가지 원리 각각이 적용된 사례를 소개하였다. 3부 ‘온라인 수업 Q&A’에서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온라인 수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1부이다. 보통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론보다는 실제에 더 관심을 가진다.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실천하는 자리에 있으니 이론보다는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들을 원하는 것이다. 나도 현장에 있을 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 책 1부에서 제시된 “교사 실재감”의 개념과 원리는 무척 흥미로웠고 그 자체로 위안이 되었다. 이론이 위안이 된다니! 하지만 정말 그랬다. 교사의 설 자리가 점점 흔들리고 교사의 존재 가치가 위협받는 시대, 이제까지 쌓아 온 수업에서의 전문성마저 무너져버린 요즘, 수업에서 교사의 존재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교사 실재감”이 주는 위로는 컸다. 또한 그것을 온라인 수업에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네 가지 원리(연결되는 관계 만들기, 교사 존재감 나타내기, 수업의 흐름 이끌기, 피드백으로 다가가기)까지 제시하고 있으니, 마치 위기에 처해 있다가 튼튼한 동아줄 하나를 붙잡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을 읽기 전 조급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1부를 읽으면서 대학원 공부가 다시 하고 싶어졌다. 소위 말하는 ‘연구’가 하고 싶어진 거다. 탄탄한 이론이 제대로 쓰이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새삼 다시 느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그 이론을 적절히 적용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풀어내는 일은 짐작컨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2부에서 제시된 네 명 선생님들의 “교사 실재감” 적용 사례를 읽으면서 진짜로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떠올렸다. 바로 “나는 어떤 수업을 하기 원하는가. 왜 그런 수업을 하고 싶은가. 내가 하고 싶은 수업에서 학생들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안휘준, 전진우, 조은주, 심효은 선생님은 바로 이 질문을 붙잡고 씨름했다. 선생님들에게 이 질문이 없었다면 “교사 실재감”이 아무리 훌륭한 온라인 수업의 실천 원리라 해도 별로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온라인 수업을 위해 어떤 기술을 배우거나 장비를 갖추기 전에 다시 한 번 내 교사됨의 자리를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수업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원리를 차근차근 적용한다면 온라인 수업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부에 나온 네 분의 선생님들 중 세 분이 중등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안휘준 선생님 말고는 모두 중등 선생님이고, 중등 수업 사례이기 때문에 초등 선생님들께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수업의 본질에 초등과 중등의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온라인 수업에 대한 고민은 초등보다는 중등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초등에서도 이 네 가지 원리를 실현한 사례들이 나오면 좋겠다. 그렇게 될 때 “교사 실재감”의 실천 범위가 넓어지고 연구도 더욱 깊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최근에 중등 선생님 한 분과 수업 나눔 대화를 했다. 선생님의 고민을 공감하며 듣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대화는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지만 선생님의 고민을 깊이, 구체적으로 나누진 못했다.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선생님께 이 책을 선물로 드렸다. 이 책이 선생님의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못 다한 이야기의 아쉬움을 달랬다. 현장에 계신 선생님을 직접 만나 수업 나눔 대화를 하고 보니 이 책이 선생님들께 얼마나 실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으로 고민하고 홀로 씨름하는 선생님들께 꼭 한 번 읽어보라고 두 번 세 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어둡고 괴로운 시기에 이렇게 탁월하고 좋은 책이 나와 참 반갑고 다행이고 감사하다. 지금도 아이들과 연결되기 위해, 자신이 지향하는 수업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수업을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이 책이 그러한 선생님들께 위로와 도움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