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딸 읽기} ⑤:
{목사의 딸}은 故 박윤선 목사님을 존경하시는 분들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①
朴埰同 (2015.03.14.07:13)
다음은 ‘{목사의 딸} 정성욱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추천의 글>’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박윤선 박사님 약점이 본의 아니게 한국 교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교적인 권위주의, 사머니즘의 결과였던 기복주의, 복음을 왜곡한 율법주의적 요소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목사의 딸} 89쪽까지 읽었습니다. 비록 3/1 정도 읽었습니다만, 저는 이 3/1에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한 몸’으로서 ‘몸만이 아니라 신앙이 하나 돼, 하나님을 아는 일에서 하나 돼, 한 사명감으로 주님을 위해 한 길을 걸어가신 故 박윤선 목사님과 故 김애련 사모님의 사랑, 참된 부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목사의 딸} 25쪽~26쪽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열아홉살쯤 됐을 어느 날, 어머니 앞에 아버지가 떡하니 나타나셨다. 어머니는 그때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주셨다.
“네 아버지가 선천에 계실 때인데, 하루는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을 무심히 보시다가 갑자기 고향에 두고 온 내가 떠오르셨던 모양이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선천으로 데려와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결심하셨단다. 성격 급하신 아버지는 곧장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을 설득하셨는데, 허락을 받지 못하자 밤중에 몰래 나를 업고 도망쳐 나와 기차를 타셨단다. 나는 시집 와서 집 밖으로 나온 게 그때가 처음이어서 아버지를 잃어버릴까 봐 아버지 두루마기 고름만 붙잡고 따라다녔단다.”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신성학교 부근에 방 한 칸을 얻어 지내시면서 기초적인 것을 가르쳐 어머니를 보성여학교에 보내셨다. 어머니는 이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살림하면서 공부를 하셨는데, 시집온 뒤로 줄곧 베 짜는 일을 도맡아 하셨을 만큼 손재주가 좋으셔서 자수를 놓아 생활비에 보태기도 하셨다. 현실 감각까지 있으셨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평양에서 숭실전문 영문과를 졸업할 때까지 자수 놓는 일을 계속하셨다.
아버지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밤에 어린 신부를 업고 가서 보성여학교에 입학하게 하신 일은 비록 아버지 깊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을지라도, 어머니로서는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자식도 없던 터라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일은 짧은 어머니 생애를 위로하시려는 하나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혼한 지 10 년만인 1932년에 춘호 오빠가 태어났고, 두 해 지난 1934년에 춘자 언니가 세상에 나왔다. 두 살 터울이었으므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일이 몹시 힘드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태중에 품었다가 출산해 기르시는 동안, 아버지는 평양신학교를 다니셨다. 춘호 오빠가 태어났을 때 비로소 온전한 가장이 된 아버지는 평양신학교 2학년에 다니고 계셨지만, 집에서는 책 읽은 일에만 몰두할 뿐이셨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내를 업고 도망치시는 박윤선 목사님 모습, ‘멋진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아름답고 멋진 영화,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격 급하신 아버지”라는 말이 눈길을 끕니다. ‘이 이야기를 하실 때 김애련 사모님께서 쓰신 말일까?’ 하는 의문 때문에 제 눈길을 끈 것입니다. 또한 “성격 급하신 아버지”라는 말과 이어지는 말, 아버지에 관한 박혜란 님 평가 “비록 아버지 깊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을지라도”라는 문장도 눈길을 끕니다.
그런데 이 문장들보다도 제 눈길을 끄는 문장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을 무심히 보시다가 갑자기 고향에 두고 온 내가 떠오르셨던 모양이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선천으로 데려와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결심하셨단다.”라는 문장입니다. ‘야~, 박윤선 목사님 부모님께서는 여자가 배워서 무엇에 쓰냐 하는 우리나라 전통문화 남존여비 사고로 반대하셨을 건데, 신학문을 하시는 선각자로서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빨래하는 아낙네들 모습을 보시며 이때 이미, 여자가 배워서 어디에 쓰냐,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것이 여자 일이다, 하는 남존여비의 유교 문화 사고에서 벗어나 계셨구나. 그래서 남존여비의 권위주의에 저항할 수 있으셨구나. 김혜란 님은 “깊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고 평가하셨지만, 남존여비 사상에 물드신 부모님 반대를 대비해 이미 도망까지 작정하신 일, 박윤선 목사님 깊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하는 생각 때문에 제 눈길을 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