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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생각》 일제 강점기 동화집
저자: 강봉구,송현주,이종석,정윤영
그림: 배지연
출판: 작은숲 ㅡ발행 2022.11.30.
목차
머리말 | 일제 강점기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 장경선
ㆍ하얀 손수건 | 강봉구
ㆍ한복 입은 소녀들 | 배지연
ㆍ미역국 | 송현주
ㆍ청산리로의 소풍 | 이종석
ㆍ오빠 생각 | 정윤영
책 소개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동화’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다
우리 역사 중 가장 가슴 아프고 암울했던 시기가 일제 강점기다. 「오빠 생각」에 실린 다섯 편의 동화들은 일제 강점기 시기 토지 조사 사업 이후 수탈의 대상이 된 농민들의 모습, 우리 독립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던 전투인 청산리 대첩, 태평양 전쟁 이후 강제 징용, 징병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정신대 동원 등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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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910년대 땅을 빼앗긴 농민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고 곧 전국적인 토지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선의 땅은 주인이 누구인지 문서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지 않아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주들의 땅은 점점 늘어났다. 조선 총독부가 주인 없는 땅이라며 몰수한 땅을 지주들에게 헐값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조선으로 이민 오는 일본인에게도 싼값에 땅을 팔았다. 토지 조사 사업 이후에 전라도 곡창 지대와 같은 곳에 일본인 지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일본은 토지 조사 사업을 하면서 전국의 모든 토지에 값을 정하고 세금을 매겼다. 이 세금은 이전에 농민들이 내던 소작료보다 더 많아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은 일본인 지주들에게 땅을 팔고 농민들은 다시 그 땅을 빌려서 소작료를 내고 농사를 지었다. 또한 일본인 지주가 늘어가며 지주로부터 소작지에 대한 관리를 위임받은 중간 관리인인 마름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미역국」(송현주)은 토지 조사 사업 이후 이러한 농촌의 수탈 현장을 잘 담아내고 있다. 하시모토라는 일본인 지주와 마름이었던 칠성아재, 소작을 지어도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소작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주와 마름의 눈치를 보며 해산한 다음날에도 일을 하러 나가야 했던 우애 엄마의 모습이 식민지 시기 힘없는 농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920년대 무장 독립 전쟁의 길
일본의 지배가 시작되며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진 독립 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해 자치 단체를 만들고 무장 독립 전쟁을 준비하였다. 1920년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독립군이 연합하여 봉오동 계곡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에 일본은 대규모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계획하였고, 이 소식을 접한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 등은 백두산 지대로 이동하게 된다. 청산리 부근에 집결한 독립군 부대는 일본군과의 전투을 계획하고, 전투에 유리한 백운평, 완루구, 어랑촌, 고동하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워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일본군 약 1,500명을 살상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가 독립 전쟁사에서 가장 큰 승리로 기록된 청산리 대첩이다. 「청산리로의 소풍」(이종석)은 일명 ‘키라’라는 일본인이 타임머신을 개발해 우리의 승리였던 청산리 대첩을 왜곡하려는 상황을 라이덴 군대의 비밀 요원인 현준이의 아빠가 막으려 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우리 독립 전쟁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청산리 대첩을 소개하며 동시에 현재 일본에 의해 일어나는 역사 왜곡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1930년대~40년대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
1931년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키며 중국과 전면전을 시작하였다. 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조선을 전쟁 기지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조선의 모든 사람을 천황에게 충성하는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다. 날마다 아침이면 모든 학교에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글인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도록 하였고, 어른들도 하루 일과에 앞서 이를 소리 높여 외우지 않으면 경찰에 끌려가 처벌당했다. 1939년에 총독부는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칠 것을 명령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불가능하도록 불이익을 주었다. 이에 많은 조선인들이 어쩔 수 없이 우리 이름 대신 일본 이름으로 자신과 자녀의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1941년에는 학교에서 조선말이 사라졌습니다. 조선어 시간이 아예 폐지되었고, 수업 시간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조선말을 사용하면 끌려가 맞거나 처벌을 받았다. 「한복 입은 소녀들」(배지연)에서 옥이 아버지가 몰래 아이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다 경찰에 잡혀간 상황은 이 시기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41년 일본은 선전 포고도 없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하며 태평양과 아시아를 무대 삼아 미국과 전쟁을 시작한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조선은 일본의 전쟁 기지가 되어 끊임없이 전쟁 물자와 사람들을 실어 날라야만 했다. 일본군에게 필요한 쌀을 마을 단위로 책정하여 이 양을 채우지 못할 경우 마을 사람 전체가 처벌을 받았다. 쌀 뿐만 아니라 무기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쇠붙이들도 공출하여 집집마다 사용하던 무쇠솥을 빼앗겼고, 놋으로 만든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까지도 내놓아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모자라는 노동력을 식민지 조선에서 충당하기 위해 1939년 징용령을 내려 조선인들을 일본으로 데려갔다. 강제로 끌고 간 조선인들은 대부분 일본 사람들이 일하기 힘든 광산이나 군수 공장으로 보냈다. 최근 영화와 TV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지게 된 군함도의 이야기처럼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제대로 먹을 것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너지는 탄광과 가스 폭발에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일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필요한 공사가 끝나면 끌고 간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잔인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일본은 조선의 청년들을 군인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지원자를 받아 보냈지만, 나중에는 징병제를 통해 강제로 조선인들을 전쟁에 동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1944년 ‘여자 정신대 근무령’이라는 법을 만들어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자들을 의무적으로 ‘근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공장에 나가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만들게 했다. 한편, 일본은 중국과 남양 군도 등지의 전쟁 지역에 있는 일본군을 위해 15세에서 19세에 이르는 꽃다운 조선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인의 성 노리개로 만들었다. 「오빠 생각」(정윤영)에서 이순이의 아버지는 이순이가 언니 경순이처럼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총각에게 시집을 보냈다. 이순이의 시어머니는 아들이 남편처럼 강제로 징용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할까 봐 소반에 물 한 그릇 떠 놓고 서둘러 아들의 혼례를 올립니다. 이러한 두 집안 어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순이의 남편은 순사에게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일본에 의해 징용, 징병,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가슴 아픈 가족들의 모습을 동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한복 입은 소녀들」(배지연)은 전쟁에 동원되는 또 다른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일본은 공장에 취직시켜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속여서, 혹은 정신대를 모집한다고 속여 위안부를 모집하였다. 「한복 입은 소녀들」의 옥이는 아버지가 경찰서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최씨 아저씨의 말에, 마사코는 정신대가 세상 공부를 시켜주는 곳이라는 아빠의 대답에 한복을 입고 옥이와 함께 트럭에 올라탄다. 많은 한복 입은 소녀들이 옥이와 마사코처럼 일본의 거짓 모집에 속아, 혹은 「오빠 생각」(정윤영)의 경순이처럼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전쟁터로 보내졌을 거라 생각한다. 만주, 중국, 필리핀,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 일본군이 가는 전쟁터마다 보내졌던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자, 일본은 이들을 동굴 속에 모아 놓고 폭파시키거나 참호 속에서 몰살시키기도 하였다. 그럴 시간이 없을 때는 그냥 버리고 떠나버리며 낯선 외국 땅에 버려진 일본군 위안부들은 이리저리 떠돌며 간신히 목숨을 이어 갔으며 살아남아서 고국에 돌아온 일본군 위안부들도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1991년,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의 용감한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실들이 뒤늦게나마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냈던 많은 이들을
만나고, 그 아픔을 공감하는 시간
1945년 해방 이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는 1945년까지 약 45만 명의 조선인이 강제 징용으로 고국을 떠나야 했다. 그중에는 원래 소련 땅이었지만 당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사할린 광산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이 땅은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일본은 이곳에 남아있던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해방 이후 소련이 공산 국가였기 때문에 한국과 외교 관계가 막혀 있는 상황이라 이들은 사할린 땅에 발이 묶였고, 그때 끌려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지금도 억울한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일본으로 강제징용을 갔던 조선인들이 일본 패망 이후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하에 일본은 이들을 화물선 우키시마호에 태워 오미나토 항에서 부산으로 돌려보내라 명령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오미나토에서 출항한 우키시마호가 돌연 방향을 돌려 일본 마이즈루 항으로 향하더니 8월 24일 해상에서 갑자기 폭음과 함께 폭발하였다. 아직도 폭발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이 사건으로 홋카이도, 아오모리, 도호쿠 등에서 강제 징용되었다가 조국으로 돌아갈 기쁨에 부풀어 있던 조선인 수천 명이 사망했다. 「하얀 손수건」(강봉구)에서는 징용에 갔던 아버지가 ‘우키시마호’를 타고 돌아오실 것을 기다리는 봉구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해방 이후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여러 사연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아픔을 공감하는 시간
「미역국」은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 이후 농사지었던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살아가며 힘들어 어려웠던 농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청산리로의 소풍」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독립 전쟁 중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청산리 대첩을 모티브로 삼아 현재 일본에 의해 자행되는 역사 왜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오빠 생각」, 「한복 입은 소녀들」은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이후 징용, 징병, 정신대, 일본인 위안부로 동원된 다양한 사연들을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얀 손수건」에서는 일본의 패망 이후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사연을 만나볼 수 있다. 짧은 동화 다섯 편을 통해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동화의 배경들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한 부분이지만 동화를 읽으며 그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냈던 많은 이들의 모습을 만나고 아픔을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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