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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능력을 회복합시다
2016. 4. 17(주일낮예배) 이사야 37:14-20
매일 2등만 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1등을 하기 위하여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늘 2등이었다. 정말 1등이 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지만 늘 2등이 되었던 이 학생은 1등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넘어 나는 할 수 없어! 하는 좌절감과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한 노파가 이 여학생을 찾아와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여학생은 노파의 그 질문에 1등을 하고 싶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1등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1등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파는 여학생에게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여학생은 남자친구에게 전화해서 절교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제는 1등을 할 수 있겠는지를 노파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노파는 여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매일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면 1등을 할 수 있느니라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기본을 지켜서 매일 열심히 공부하면 1등을 할 수 있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기도를 잘하고 싶으면 기도에 대한 이론을 배울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갈 때 어느틈엔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은 기도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고신교단은 기도와 많은 상관을 하고 있다. 신사참배문제로 옥고를 치루었던 주남선, 한상동목사님께서 1945년 해방후 출옥하게 되었다. 이렇게 옥고를 치룬 목사님은 바른 신학으로 공부한 교역자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때 정통신학을 가르치던 평양신학교가 폐교되었고, 한국은 일제의 허락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교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남선, 한상동목사님을 중심으로 바른 신학을 가르치는 위하여 고려신학교를 1946년 9월에 설립하였다.
그리고 신앙의 순결을 위하여 신사참배를 가결한 한국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교회는 회개가 아니라, 고려신학교를 폐교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1951년 경남노회를 중심으로 고신교단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고신교단이 태동하기 전에 있었던 큰 사건이 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박윤선교수는 한국교회가 신학의 부재로 인하여 신비주의 운동과 박태선의 전도관등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서 신학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거기서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6.25동란이 발생한 이후 부산으로 피난온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초량교회에서 부흥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부흥회에서 셋째날 새벽기도를 맡은 박윤선교수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상세하게 증거하면서 자신의 죄부터 공개적으로 회개하였다.
나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피해다녔으나 신사 참배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하고 찬송을 부르자 목회자 한사람 사람이 모두 눈물로 회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예정이었던 부흥회는 한주간 더 연기되어서 이주일동안 진행되었고, 이 회개운동이 울산과 온산으로 그리고 제주도로 퍼지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고신교단의 태동 때 있었던 사건이다. 우리교단은 일제강점기 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순교자의 피를 가지고 있으며, 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여 형성된 교단이다. 그런데 우리교단은 오늘을 기도의 날로 정하고 주일예배 시간에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도록 하였다.
왜 우리교단이 오늘의 기도의 날로 정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우리나라는 위기에 처하여 있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북한은 핵으로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고, 또 극우파와 극좌파의 극심한 대치로 나라는 뜻을 하나로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침체로 IMF때보다 살기는 더 어려워졌고, 빈부격차로 상실감은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청년실업문제, 사회의 노령화 문제, 복지문제 그 어느 것하나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교회는 부정과 부패로 인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고, 이슬람세력의 침투와 안티기독교의 확산으로 인하여 전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신사참배에 반대하며 눈물로써 기도하였고, 6.25 동란 때 회개하며 기도하였던 우리교단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전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자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유다왕 히스기야 때 앗수르의 침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BC 721년 앗수르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세력을 몰아서 남쪽 유다를 침략하였는데,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힘을 이길 수가 없어서 산헤립에게 은 300달란트(약 10,282Kg)과 금 30달란트(약 1,028Kg)을 바쳤다. 히스기야왕은 산혜립이 요구하는 그 많은 은금을 구할 수가 없어서 국고에 있는 은금은 물론이고, 성전기구와 창고에 있는 물건을 다 바쳤다.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히스기야는 성전 기둥과 문에 있는 금까지 떼어서 산헤립에게 바쳤다.
그런데 앗수르의 산헤립은 군대장관 랍사게를 보내어 유다를 다시 침략하였다. 그리고 산헤립은 랍사게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항복하면 포도와 무화과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고 유혹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므로 이제 백성들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하고 있는데, 산헤립의 유혹은 백성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하였다. 아니 이미 산헤립의 1차 공격 때 항복하여 은금을 바치는 것을 본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제 항복 외에는 아무런 답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히스기야가 행한 것이 기도였다. 앗수르의 산헤립과 싸워서 이길 힘은 없고, 또 온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도의 내용이 오늘 본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생각하기 전에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옳은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왜냐하면 유다왕이 20명이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19명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한 왕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릴 때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히스기야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는 뜻을 가진 히스기야는 언제나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산헤립의 1차 침략때 히스기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금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전기둥과 문에 있는 금까지 벗기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수고하여 산헤립을 돌려보냈지만, 또 다시 침략을 받아 조롱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히스기야 만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기도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왜 우리가 기도보다 자신의 힘과 방법을 더 의지하는가? 이동원목사님이 한국교회에 중보기도학교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동원목사님이 중보기도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 목사님께서 미국에서 사역하실 때 교회에 신실한 가정이 있었다. 부부가 다 의사인데 얼마나 신실한지 목사님이 그 가정으로 인하여 큰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남편이 울면서 목사님 아내가 죽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았는데 지혈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며 다급하게 전화를 한 것이다. 목사님은 그 전화를 받은 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밤에 리더되는 성도에게 전화해서 최집사님이 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하는데 위하여 기도하시고, 또 다른 분들에게도 연락하여서 기도부탁을 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30분을 달려서 병원에 도착했다. 그렇게 목사님이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남편이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할렐루야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방금 피가 멈추었다는 것이다. 목사님이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리고 목사님은 다음날 아침에 최집사님을 위하여 몇가정이 기도했을까? 확인을 위하여 전화를 했더니 11가정이 그 밤에 최집사님의 아내를 위하여 기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목사님은 다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중보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이동원목사님이 중보기도를 시작한 사건이다. 이동원목사님은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었다는 그 은혜를 체험한 후 중보기도 사역을 집중하였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더 많은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이동원목사님의 간증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응답해 주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났을 때 기도하기 보다는 내 힘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통하여 내가 원하는 응답이 없어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 본문을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조롱이 적힌 서신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하나님 보시옵소서, 하나님 들으시옵소서 하면서 기도하였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하였다. 히스기야의 기도내용인 사 37:18-20을 같이 읽어보기 바란다.
(사 37:18-20)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19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20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18-19절은 산헤립이 승리한 나라의 신들을 불살라 버린 내용을 말하고 있다. 히스기야는 그 일에 대하여 사람이 만든 우상을 사람이 불살라 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이 아니기 때문에 결단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20절에서 주 만이 여호와이신 줄 알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기도내용이었다. 히스기야가 간구하는 내용은 예루살렘의 회복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 보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시어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죽이시고, 산헤립이 고국으로 돌아가 자기 신전 니그록에서 경배할 때 그의 아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헤립을 물리치시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이 아니라,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전세계에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여호와되심을 나타내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나타나기를 기도하지 않고, 내 소원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기도모습은 어떠한가? 저는 한문을 잘 모르는데 이 시간 한문공부를 조금해 보기 바란다. 망할 망(亡)자 아래에 마음심(心)을 쓰면 잊을 망(忘)이 된다. 그런데 아래에 있는 마음심(心)을 옆으로 옮기면 분주할 망(忙)이 된다. 한자가 재미나지 않는가? 사람의 마음이 내가 망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으로 살면 분주하고, 또 건망증에 시달리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이 땅위에 어떻게 나타내어야 할 것인가? 이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드러나기를 소원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반드시 역사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내 삶과 이 땅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말씀을 맺는다.
연예인 중에 권소연이라는 분이 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권소연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고등학교가 아니라 국제상사에 취직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크게 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고 고집을 피워서 서울 삼촌집으로 갔다. 거기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집청소하고, 또 삼촌과 숙모 심부름도 잘했지만 6개월이 지나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짐은 고사하고 돌아눕지도 못하는 좁은 방을 월 1만 5천원 주고 빌렸다. 그렇게 방을 구한 후 제일 먼저 한 것이 교회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년 6개월 동안 새벽기도를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 기도한 것을 하나님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응답해 주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과 함께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았는데, 그 연극을 본 후에 연예인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부모님께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니 우리 집은 돈도 없고, 백도 없고, 얼굴만 예쁜데 절대로 연예인 안된다고 말씀하였다. 그런데 권소연 씨는 새벽마다 연예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을 하였다. 그래서 전단지를 뿌리고, 포스터를 명동에 붙여서 학교를 다녔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라면 반개를 넣고 푹 끓여서 먹고, 저녁에는 남은 라면 반개를 넣고 30분을 끓여서 먹었다. 그리고 대학때는 전단지 알바를 해서 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 하나님께 모든 연극영화과 아이들이 대망하는 방송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전도사님과 학생들 8명을 데리고 기도원에 기도하러 갔다. 거기서 권소연씨는 하나님 저를 배우 시켜 주십시오. 아니면 데리고 가세요. 그렇게 목숨을 내 걸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주일 새벽에 전도사님이 권소연씨를 부르는 것이다. 눈이 내리니 빨리 산을 내려가야 한다고 차를 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생 8명을 뒤에 태우고 출발했는데, 전도사님이 당황한 얼굴로 권선생 브레이크가 안된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권OO씨는 나는 배우는 안되는갑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낭떠러지 앞에서 선 것이다. 전도사님쪽 바퀴는 낭떠러지를 넘었고, 바퀴 3개만 땅에 닿아 있는데, 전도사님이 빨리 내려라고 고함을 친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 8명이 먼저 내리고 전도사님과 권OO씨만 앞에 앉게 되었다. 그때 전도사님이 권선생 내려! 하고 말할 때 권소연씨는 전도사님 먼저 내리세요 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배우시키지 않으실 것인가보다 생각한 권소연는 이제 죽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전도사님이 니가 내려야 내가 내리지 하고 말을 해서 보니 전도사님쪽은 낭떠러지라서 권소연씨가 앉은자리로 내려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차에서 내릴 때 권소연씨는 배우가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그런데 신기하게 MBC탈렌트 19기 모집이 있었다. 그 모집공고를 보는 순간 합격을 확신하였다. 1차, 2차 합격을 했고 이제 3차 면접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5명이 3차에 올라갔는데, 학교에서는 4명은 떨어져도 권소연는 합격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4명이 붙고 한명이 떨어졌는데, 그 한명이 권소연였다. 그 길로 영락교회로 뛰어가서 창자가 터질 듯이 기도하였다. 그때 나를 떨어뜨리지 왜 나를 살려서 이 창피를 당하게 하느냐?고 기도했다.
그리고 시청 직업소개소에 가서 직장을 구했는데, 그 직장이 바로 목욕탕 때밀이었다. 그 목욕탕 때밀이 언니가 아파트를 2채 샀다고 그 때밀이 제자로 소개해 준 것이다. 그렇게 한달정도 때밀이를 배웠을 때 때밀이 언니가 신문을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소연아 네가 연극영화과 졸업했다매, 장군의 아들2 여주인공을 뽑는다고 나가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욕탕 주소와 전화번호로 신청서를 내었는데 목욕탕으로 1차와 2차를 다 합격하고 3차 면접을 갔는데, 그때 권소연씨는 성경책을 가슴에 끼고 갔다. MBC19기때 낙방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은 다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다. 그래서 대기하면서 성경책을 따박따박 읽다가 2055번 수험생을 불러서 면접을 보았다. 그렇게 면접을 본 후에 합격발표를 기다리는데 2055번을 부르는 것이었다. 너무 좋아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송채환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름이 아니어서 다시 앉았더니 한 사람이 뛰어와서 니가 1등한 것 맞다고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더니 임권택 감독이 권씨는 유명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송씨로 바꾸고, 송에 맞는 채환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렇게 송채환씨는 2314명 중에 1등으로 방송에 데뷔하게 되었다. 그리고 MBC공채 19기 친구들은 뭐하는지를 찾아보았더니 그 친구들은 지나가는 아낙네 1, 포졸 1이 되어서 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송채환씨는 장군의 아들2에서 여자주인공 역할을 했고, 또 CF광고 3개를 연이어 찍으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송채환씨는 하나님이 그 간증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계획과 나의 계획은 달랐다. 그런데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때 나는 겸손해져 있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송채환씨는 하나님이 8개월 뒤에 응답해 주었기 때문에 처참하게 목욕탕 때밀이가 되어서 고생하도록 하였지만, 결국은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송채환씨의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지금 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지 않는다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심을 믿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가 될 수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