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글쓰기13
미정이는 어디 있나? (해방일지1) (사소)
몇 개월 전 드라마를 보고 작가 박해영은 구씨를 왜? 알코올홀릭과 호빠 마담으로 설정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글쓰기를 했었다. 이 글을 리뉴얼하게 된 건, 드라마를 보고 자기가 구자경이 돼서 며칠째 술을 마시고 있다는 선배의 연락을 받고 나서다.
'우리에게 미정은 과연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 걸까?'
드라마 처음은 구자경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3.4회까지 방영되는데 구씨는 미정에게
"진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달라질 수 있는 거니?"
한 두 마디만 묻고 매일 술만 마실 뿐,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끌고 간다. 미정의 날아간 모자를 줍기 위해 도움닫기로 하천을 훌쩍 뛰어넘는 곡예를 선보일 때쯤 구씨가 분명 국대였거나 몸을 잘 쓰는 직업을 가졌을 거라는 추즉이 난무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구씨에게 이상한 사람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조폭인 듯한 백 씨가 등장하면서 구 씨가 재벌 2세 상속자라든지, 범죄 카르텔에 연루된 법조인이거나 정치적 희생양이든지 별별 생각이 들수록 자칫 통속적인 삼류의 초치는 김 빠지는 설정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그때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 정주행을 막 끝낸 상태였고,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인간에 대한 태도'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해영 작가는 구씨를 굳이 왜 호빠 마담으로 설정했을까? '구찌보다 구씨'라는 말로 팬심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가 폭발한 반면, 또 한 측에서는 “호빠 조폭 알코올 중독 남주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것을 추앙이라고 포장했다”며 “굳이 범죄자한테 서사 주고 사연 주고 공감되게 만드는 게 범죄 미화다” 등 반응을 기사화한 모 신문 리뷰를 읽으며, 기자가 퍼 나르기만 하며 왜 작품 분석을 하지 않는 걸까? 싶었다.
구한말 봉건시대가 끝난 지 이미 백하고도 이십 년이 흘러가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남성성에 대한 규정은 여성 비하만큼이나 답답하다. "남자가 뭐 할 짓이 없어서" 라거나 "0 달린 거 떼어 버려라"거나 지금도 남성에게 요구하는 가부장성과 성차별은 남자만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몇 해 전 인가? 잘 나가던 여자 연예인이 호빠 출신 남성과 연애를 하느니 결혼을 했다느니 항간에 무성한 가십이 오르락 내리락할 때, 오히려 그녀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적어도 관계가 형식적 역할극이 아니고, 남성만이 책임지고 여성은 지배에 순종하며 잉여를 누리는, 노동에 대한 기생과 시간의 착취 어디쯤은 아닐 거란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의 가부장적 인식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실패하면 실패했다고 위안거리를 찾아, 성공하면 그 후 허무를 채우기위해 외도의 길에 들어선다고 한다. 물론 엄청나게 이기적인 인간 상실의 모습이지만 이는 결혼을 서로 간의 교감보다 형식적 배역 설정으로 고정시켜버린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면에서는 그녀가 온전한 선택을 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 프리티 우먼'의 쥴리아로버츠는 거리의 매춘부였으나 사람들은 그야말로 귀여운 여자의 로맨스 영화로 기억하기도 하고, 콜걸 출신으로 우리나라 국격을 높인 거니만 해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직업 차별을 없앤 가능성의 나라인지 반증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국민들이 언급하려거든 거니 얼굴이라든지 성형이라든지, 입은 옷이나 콜걸을 들먹이기보다 비판의 본질을 얘기했으면 한다.
잠시 삼천포로 빠진 김에 대척 점에 선 '개'의 상징을 보자. 구씨의 '굶주린 들개'는 사방에 은신할 곳 하나 없고 굶주린 자, 구씨의 아바타인 동시에 그런 구씨가 개에게 자기 살을 물어 뜯기고 싶은 충동적 자학의 상징이다.
반면, 굥과 같이 등장하는 거니의 '애완 개'는 거니가 구씨랑 같은 직업의 세계에 있었으면서도 상반되게 최대한 자기를 멋져 보이게 포장하는 깨물어주고 싶은 상류사회의 액세서리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고 싶은 인간과, 차별적 계급을 열망하는 그 무엇에 대한 '설정의 다름'이라고 해야 할까?
결론으로 돌아가서, 드라마에서 박해영 작가는 두 자아를 말하고 있는데 그중 한 자아 구씨는 우리 사회, 자본주의의 밑바닥에서 폭력을 일삼으며 성의 자기 결정권까지 팔아야 하는, 가장 멸시당하는 인간!
배신과 죽음을 껴안을 수밖에 없어, 스스로가 파괴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인간을 형상화하기 위한 스펙으로 호빠와 알코올 중독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늘 불안한 상태에서 들판의 들개처럼 경계 태세인 호빠 출신 구씨!
죽이고 물고 뜯고 뺏는 세계에 있었던 구씨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고 자기 몸에서 썩은 물이 흐르는 것 같다는 구씨!
구씨는 미정에게 이렇게 말한다.
" 추앙을 하면... 계절이 바뀌면.. 봄이 오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니?"
그는 이 뫼비우스같이 반복되는 절망적 삶의 패러다임을 깨기 위해선 완전히 다른 경험이 필요하다는 미정에게 부탁한다.
" 너 알바 할래?
너만 만나면 이상해.
생각지도 않은 말이 줄 줄 나와"
"내가 호빠 선수로 들어갔을 때 죄다 하소연이야.
"10회만 끊자! 상담의 기본은 원래 10회야."
그런데,
요새 가끔 내 안에 구씨를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10회 상담 끊고 또 끊어줄 미정이가 필요하기 때문일까? '
질문을 몇 달째 해오다가 어쩜 우리 안에 구씨와 미정이가 공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첫댓글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구씨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다만 호빠 마담이라는 직업과 알코올중독에 대해서는 굳이 왈가왈부해야 되나 싶고, 만약 그가 그 두 가지 때문에 범죄를 지잘렀다면 문제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구씨가 호빠를 이용하고도 외상을 갚지 않은 백화점 여종업원에게 백화점에서 잔인하게 돈을 받아내는 장면이 나와요. 그는 폭력과 불법을 아주 많이 저질렀을 거예요. 그가 그렇게 지옥을 헤맨 이유이기도 하죠. 성을 사고 팔며 나락으로 빠졌던 같아요. 다만 그 직업이 핵심은 아닌데 자꾸 곁가지를 짚는 것 때문에 뭐지 싶었던 거예요.^^
오, 구씨의 매력에 푹 빠졌었지요. 모름지기 드라마는 남주든 여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해야 한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