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이여, 용서하소서-(마지막회)
첫번째 차는 승용차였으며 새벽에 귀가하는 이미 폐광된 어룡광업소의 전수일 감독임을 확인하였다. 그는 폐광된 광업소의 장비들을 지키고 있었다. 채광작업은 중단되었으나 장비들은 아직 그대로 있었으며, 주 야간 교대로 폐광을 지키고 있었다.
두번째 차로 다가갔다. 노란색의 정선탄광 출퇴근용 뻐스였다. 운전사와 2명의 광부가 타고 있었다. 그들의 인상착의와 소지품들을 확인한 후 통과시켰다. 세번째 직행뻐스가 노란뻐스 뒤에 섰다. 박 형사가 뻐스의 왼쪽으로 돌아 운전수에게 갔고 이 형사는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새벽장을 보러가는 두 아주머니와 30대 광부 그리고 30대 초반의 여자와 검정색이 낡아서 허옇게 보이는 코트를 입은 30대 후반 또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선량한 얼굴과 맑은 눈을 가진 남자와 그 남자의 발 밑에 놓아 둔 검은 색 천으로 만든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가방위에 앉아 있는 7세정도의 여자 아이가 전부였다.
이 형사가 두 아주머니곁을 지나 가자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정월 초하루 새벽에 이게 웬 난리래요? 형사님인가 본데 무슨일이 일어 났는가요?”
“예.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카지노 강도를…”
그렇게 말하며 광부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어디에서 타서 어디로 가는 길 입니까?”
광부로 보이는 사람은 이미 이 형사의 눈빛에 기가 죽었다. 말이 떨렸다.
“예. 저요… 추전에서 탓습니다. 앞에 가는 통근뻐스를 놓쳐서 뒤 따라 오던 이차를 탔는데, 사북리 탄광까지 가는데요…”
이 형사는 광부앞에 섰지만 온 신경과 눈은 마지막 뒷좌석에 앉는 그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여자는 창밖을 보고 있었고, 흰 머리가 간간히 보이는 검은 머리를 자연스럽게 다듬은 한없이 착해 보이는 모습과 맑은 눈을 가진 약간 긴 얼굴의 그 남자는 낡은 코트속에 흰 와이셔츠를 입었으며 넥타이는 매지 않고 단추는 목까지 채워져 있었다. 양다리 사이에는 검은색 천으로 만든 역시 낡아 보이는 여행용 가방이 있었다. 그 가방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두툼해 보였다. 지퍼가 반쯤 열려져 있고 그 위에 여자 아이가 엉덩이를 두고 앙중맞게 앉아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딱딱한게 있어서 엉덩이가 아퍼.”
순간 이 형사의 직감같은 느낌은 반쯤 내려있던 오른 손을 본능적으로 허리에 찬 권총으로 가게했고 몸은 긴장되었다.
“애는, 성경책을 깔고 앉았으니 아프지. 너가 그곳이 좋다면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보며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이 형사가 고개를 아래로 하고 보니 아이가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며 주춤하듯 든 엉덩이 사이로 ‘성경전서’라고 황금색으로 쓰여진 낡은 성경책이 열려진 지퍼 사이로 조금 나와 보였다. 그 책은 평평하게 있지 않았고 비스듬히 누워있어 책 모서리가 앉은 아이의 엉덩이를 찌른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어디에서 타셨습니까?”
이 형사는 손을 오른쪽 허리에 찬 권총을 잡은채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의 자세로는 마음만 먹으면 0.5초안에 총을 꺼낼 수 있었다.
“장성에서 탔습니다. 정선까지 갑니다”
그 남자는 황지에 도착하기 전 장성에서 정선행표를 시간에 맞추어 사 두었으며 그 표를 내 보였다.
“신분증을 보여 주십시요?”
그 남자는 해 맑은 눈으로 이형사를 쳐다 보았다. 때가 묻지 않은 사람같았다. 이 형사도 40대지만 저런 맑고 선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 범죄자들만 늘 보아 왔으니 당연하였다. 그 남자는 코트속 주머니에서 검고 오래되어 모서리가 닳고 실밥이 터져 옆이 조금 벌어진 가죽 지갑을 꺼내 주었다. 지갑 안에는 만원짜리 2장과 흐린 프라스틱 창으로 가려진 포켓뒤 편에 겨우 읽을 수 있는 신분 증명서 카드만 달랑 들어 있었다.
이형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지갑을 다시 돌려주며 그 남자에게 말했다.
“새해 첫 날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요”
그 때 차 밖에서 운전사에게 행적을 묻고있던 박 형사가 뻐스안의 이 형사에게 소리쳤다.
“이 형사님! 이 차는 황지에서 출발하였고, 강도가 잡혔답니다. 6조에서 검거했답니다.”
이 형사와 박 형사는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펴서 목까지 감싸고 초소로 왔다. 뻐스는 시간에 늦어서 인지 벌써 저 아래쪽 커버를 돌아 빨간 브레이크등을 계속 켠 채로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박 형사! 지금 지나간 뻐스가 황지에서 출발했다고 하였나?”
“예. 운전수에게 물어 봤습니다”
“뭐 잘못되었습니까? 사북경찰서로 연락할까요? 차를 세우라고…”
“아니야. 잡혔다면서…”
박 형사는 추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초소안으로 들어갔다.
“왜, 장성에서 탓다고 했을까? 많은 빈자리를 두고 그 자리에 앉았을까? 아니. 내가 의심하다니. 그럴리가 없을거다. 그래. 그럴리가 없어.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 형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뻐스 불빛을 찾아 한참 동안 고개 위 평지에 서서 고개 아래를 내려다 보며 혼자서 착잡한 마음을 매서운 바람에 식히고 있었다..
“이 형사님! 카지노 강탈 미수범을 또 검거했답니다. 먼저 잡은 범인도 유사범죄를 모방한 사람의 짓 같은데요”
초소 문을 열고 박 형사가 외쳤다. 새벽 동이트기 시작한 동쪽 언덕 아래 아련히 보이는 사북읍을 바라보고 있던 이상대 형사는 박 형사의 외침을 들었다.
“이제 쫏아가도 잡을 수 있는데… 정선군 경찰서에 연락해도 잡을 수 있는데…”
이 형사는 다시 한번 뻐스가 멀어져 간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하얀 눈이 덮혀 겨우 차가 다닐 수 있는 산속의 길이 끝나는 낮으막한 언덕 위 군인 막사같은 낡았지만 하얀색의 건물앞에 택시가 섰다. 택시 문을 열고 그 남자는 검은색 롤백을 한 손에 들고 내렸다. 그는 내려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서 떠나가는 택시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언덕 귀퉁이를 돌아가던 택시가 보이지 않자 그 사람은 가방에서 또 다른 작은 검정색 천으로 만든 가방을 꺼내 왼손에 들었다. 그리고 10여 미터를 조심스럽게 걸어가서는 정문 앞에 서서 망설이다 열쇠를 코트주머니에서 꺼내 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갔다. 희미한 불이 겨우 비추는 건물 중간의 통로를 따라 걸어가다 불이 켜져있고 문이 열려있는 방 앞에 섰다.
“주무시지 않으셨군요?”
“예. 돌아 오셨습니까? 피곤하시지요?”
60이 넘은 듯 보이는 반백의 마음씨 좋아보이는 아저씨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다 놀라지도 않은 채 대답하였다. 그 남자는 책상 앞에 서서 말했다.
“이번 결산은 어떻습니까?”
“아끼고 절약하였으나 200만원이 부족합니다. 봄이되면 아이들 5명이 더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40명이 되는데… 좋은 후원자가 나서겠지요. 여행으로 피곤하실텐데 쉬시지요.”
반백의 아저씨는 고개를 들고 눈물이 거렁이는 눈으로 애처러운듯 그 사람을 보며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 3천만원이 들어 있습니다.”
그 남자는 어깨에 매었던 롤백을 책상 위 빈 곳에 올려 놓았다.
“후원자들을 만나셨군요. 그것으로 이제 2년간은 아이들을 잘 보살필 수 있을 겁니다. 후원자들은 이번에도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습니까?”
“예. 언제나 처럼 밝히기를 원치 않습디다. 때로는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를 때 가치가 더 높다고 하더군요”
반백의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의 얼굴은 피로에 지친 듯 하였고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반백의 아저씨 얼굴에는 감사하는 따뜻한 미소가 가득하였다.
“저는 들어가 쉬어야 겠습니다.”
“예. 편히 쉬십시요.”
그 남자는 왼손에 든 작은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 방을 나와 복도를 따라 소리없이 걸어갔다. 그 때 한 여자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통로 중간쯤에 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한 아이가 앉아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쎄지로야. 왜 우니? 왜 벌써 일어났어?”
아이는 그 남자를 보더니 반가워서 가슴에 안겼다.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에스더와 남자아이들이 같이 안 놀아줘요”
“그러니? 이제는 괜찮아. 새해부터는 모두가 너를 좋아 할거다.”
“정말이세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 이제 가서 잘 자라. 아가야.”
그 남자의 음성은 한없이 부드럽고 인자하였다.
“네. 그럴께요. 가서 잘께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 남자는 아이를 방으로 들여 보내고 복도끝에 있는 작은 방을 향해 소리없이 걸어갔다. 작은 가방을 든 왼쪽 어깨가 무거운듯 처져 있었다. 문은없고 낡아 희뿌연 검은색 천 만이 휘장같이 내려와 반쯤 방 입구를 가리고 있는 두평 남짓한 방에 책상과 의자 하나 그리고 길게 놓인 군용 접이식 침대. 그 방에는 그것이 다 였다. 그 남자는 작은 가방을 침대 밑에 밀어넣고는 피곤한 듯 침대위에 누웠다. 같은 시간, 검은 옷에 하얀 띠가 이마에 둘러진 검은 베일을 쓴 한 여자가 층계 위에서 말없이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눈물이 고인 채 고개를 들어 막 밝아 오기 시작하는 창가의 눈 덮힌 들판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그리고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그 여자의 투명하고 맑은 입술이 조금 움직여 열리면서 속삭이듯 말하는 간절한 기도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