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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문정공(文正公: 휘상충尙衷) 할아버지의 신위 봉안 문제로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이미 오래 전에 매안(埋安)된 문정공의 신주(神主)를 다시 봉안한다는 것은 결국 문정공을 불천위(不遷位)로 모시고 매년 기제사(忌祭祀)를 받든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불천위(不遷位)는 과연 어떤 개념일까?
1.
불천(不遷)은 '(신위神位를) 옮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처음 보인다.
☞<別子為祖 繼別為宗 繼禰者為小宗。有百世不遷之宗 有五世則遷之宗。百世不遷者 別子之後也 宗其繼別子者 百世不遷者也。宗其繼高祖者 五世則遷者也。"<별자(別子)는 조(祖)(=시조)가 되며, 별자를 계승하면 종(宗)(=大宗)이 되고, 별자가 아닌 아버지(녜禰)를 계승하면 소종(小宗)이 된다. 따라서 백세(百世)(대)토록 옮기지 않는[불천不遷] 종(대종)이 있으며, 5세(대)가 되면 옮겨야 하는 종(소종)이 있다. 백세토록 체천(遞遷)하지 않는[즉 불천不遷] 것은 별자의 후손이니, 별자를 이은 자를 종(대종)으로 삼는 경우에는 백세 동안 체천하지 않고, 고조를 이은 자를 종(소종)으로 삼는 경우에는 5대가 되면 체천한다.>>☜
이 구절은 가계 계승과 제사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별자(別子)'는 제후(諸侯=王)의 아들 중에 적장자(嫡長子)를 제외한 아들들을 말한다. 여기에서 ‘별자를 계승한 이가 종(宗)이 된다.’는 것은 별자와 그 적장자가 대종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버지만을 계승하는 이가 소종이 된다.’는 것은 별자의 중자(衆子) 즉 대종이 될 수 없는 이들이 소종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제후의 적장자는 다음 세대에 제후가 되고, 제후의 별자의 적장자는 별자를 계승하여 대종을 이루며, 별자의 중자들은 소종을 이루게 된다. 대종은 그 시조(始祖)인 별자의 묘(廟)를 백세토록 옮기지 않지만[불천不遷], 소종은 5세(대)가 지나면 묘를 옮기게 된다[체천遞遷]. 이것이 바로 종법(宗法)이며 이른바 '불천위' 개념의 시초이다. (아래 도표 참조)
제후(諸侯)=왕(王) | 적장자(嫡長子) → 제후=왕 | 적장자 → 제후=왕 | 적장자 → 제후=왕 |
별자(대종 파조: 불천위) |
별자(대종 파조: 불천위) | 적장자(大宗) |
중자(小宗) |
별자(別子) 대종(大宗)의 파조(派祖) (불천위不遷位) | 적장자(대종大宗) | 적장자(대종) |
중자(소종) |
중자(衆子)(소종小宗) | 적장자(소종) |
중자(소종) |
2.
이러한 『예기』의 불천위 개념은 본래 제후의 별자와 관련된 것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신하(공신)에 적용된 것은 조선 제 7대 임금인 세조 때의 일이다. 세조실록 세조 3년(1475년) 3월 21일자 기사에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종묘(宗廟)의 제도를 참고하여 상고(詳考)해 보니, 천자(天子)는 7묘(廟)이고, 제후(諸侯)는 5묘(廟)이고, 대부(大夫)는 3묘(廟)이니 줄어들기를 둘씩 하여서 제도를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훈(功勳)은 조(祖)라 하고, 덕망(德望)은 종(宗)이라 하여 칠묘(七廟)·오묘(五廟) 이외에 또 백세 불천위(百世不遷位)가 있으니,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세실(世室)과 노(魯)나라 세실옥(世室屋)이 이것입니다. . . . . . 오공신(五功臣: 조선 개국(開國)ㆍ정사(定社)ㆍ좌명(佐命)ㆍ정난(靖難)ㆍ좌익공신(佐翼功臣))의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삼묘(三廟) 이외에 별도로 일실(一室)을 만들어 그 제사를 받들게 하여, 성조(聖朝)의 덕 있는 이를 높이고 공 있는 이에 보답하는 은전(恩典)을 넓히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즉, 종묘의 불천위(세실) 제도를 신하(공신)에게 확대 적용한다는 것이다.
3.
이러한 규정은 세조 때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한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그대로 법제화(法制化)되었다. 다음은 『경국대전』 예전(禮典) 봉사(奉祀)조에 나오는 규정이다.
☞"文·武官六品以上, 祭三代, 七品以下, 祭二代, 庶人, 則只祭考妣。宗子秩卑, 支子秩高, 則代數從支子。 ○ 始爲功臣者, 代雖盡, 不遷, 別立一室。 ○ 曾祖代盡當出, 則就伯·叔位服未盡者, 祭之。"
(문무관(文武官) 6품(品) 이상은 3대(代)를 제사 지내고, 7품(品) 이하는 2대(代)를 제사 지내며, 서인(庶人)은 단지 부모 제사만을 지낸다. 큰집 맏아들(宗子)의 관품(官品)이 낮고, 작은 아들 또는 작은 집 아들(支子)의 관품(官品)이 높으면 대수(代數)는 높은 쪽 아들(支子)의 것에 따른다. ○처음 공신(功臣)이 된 자는 대수(代數)가 비록 다하였더라도 신주(神主)를 옮기지 않고, 따로 1실(室)을 세워 둔다. ○맏집에서 증조(曾祖)의 제사를 지낼 자손(子孫)의 대수(代數)가 다하여 사당에서 신주(神主)를 내보내야 할 경우에는 윗 항렬(伯叔)로서 제사 지낼 차례(位服)가 다하지 않은 자에게 신주(神主)를 보내서 제사 지내도록 한다.)☜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6품 이상 품관은 3대(증조부모), 7품 이하 품관은 2대(조부모), 품관이 아닌 일반인은 부모만 제사를 지내도록 되어 있었다. 이때 자손들의 관품이 다른 경우에는 관품이 높은 쪽을 기준으로 하였다. 그러나 명종(明宗) 이후에는 관품의 구별 없이 사족(士族)들은 모두 4대봉사(四代奉祀: 고조부모까지)를 하게 되는데, 이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경국대전』의 규정은 형식적으로만 존속하였을 뿐 그 실효성을 상실하고 모두가 4대봉사를 제례의 원칙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4대봉사 원칙에 따라 가묘(사당)에 봉사자의 부모ㆍ조부모ㆍ증조부모ㆍ고조부모의 신주를 봉안하여 제사(기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만약 봉사손이 사망하여 그 다음 대가 봉사손이 되면 고조부모는 5대조부모가 되어(친진 親盡) 그 신주는 사당에서 내와 다른 최장방(最長房) 현손(玄孫)에게 옮겨져(체천遞遷) 제사를 받들다가 마지막 현손이 사망하면 마침내 묘소에 묻었다(매안埋安, 또는 매주埋主).
4.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었다. 바로 불천위(不遷位)이다. 불천위는 불천지위(不遷之位) 또는 부조(지)위(不祧(之)位)라고도 하는데 4대가 지나 친진(또는 대진 代盡)하였더라도 신주를 체천ㆍ매안하지 않고 영구히 사당에 봉안하여 해마다 기제사를 받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불천위의 대상이 될까?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르면, 처음으로 공신이 된 자(始爲功臣者 시위공신자)가 그 대상이 되며 비록 대수가 다하였더라도(代雖盡 대수진) 신주를 옮기지 않고(不遷 불천) 따로 1실을 세운다(別立一室 별립일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법제화된 개념의 불천위이다. 『경국대전』의 불천위 규정은 조선 후기 고종 2년(1865년)에 간행된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수정 없이 그대로 존속하였다. 그러므로 법제적(法制的)으로 불천위가 되는 대상은 '처음으로 공신이 된 자(始爲功臣者)'뿐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시위공신자'가 제후의 별자처럼 불천위가 되는 것이다. (참고: 다시 위에서 언급한 종법에 비유하면, 불천위가 되는 '시위공신자'는 새로운 가계(家系)의 시조(始祖)가 되는 셈이다.)
5.
오늘날, 국불천위, 유불천위(향불천위), 사불천위(문중불천위)니 하는 말들을 쓰고 있지만 이것들은 후세인들이 편의상 만든 용어로 모두 법제적 개념이 아니다. 반복하면, 불천위는 그냥 '불천위'일 뿐이고, '시위공신자'뿐이다. (주의: 역대 국왕(+왕비)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 정전의 불천위는 이 개념과 구별된다.)
물론 기록을 보면 '시위공신자'가 아닌 불천위들이 많이 나온다. 모두 비(非)법제적 불천위들이다. 엄격히 말하면, 법전을 벗어난 '탈법적(脫法的)' 불천위인 셈이다. 흔히 임금이 불천위로 허락한 신위(神位)라고 해서 '국불천위(國不遷位)'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금의 개인적 판단에 의한 것이지 법제적(즉 법전에 의한) 불천위는 아니다. 그것이 설령 임금의 가족(친인척)이라 하더라도 임금 개인이 정한 불천위이지 법제적 개념의 불천위는 아닌 것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불천위가 소속 집단의 영광과 명예의 상징이 되자 혈연ㆍ지연ㆍ학연으로 얽힌 집단이 조정(임금)에 소(疏)를 올리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학덕(學德)ㆍ충절(忠節) 등의 명목으로 '시위공신자'가 아닌 인물을 불천위로 지정 받는 특전(부조지전不祧之典)을 누리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원우(院宇: 서원+사우)에 많은 인물들이 배향되었는데 이들을 흔히 유불천위(향불천위)라 부르지만 원우(院宇)에 배향되었다고 그대로 '불천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원우(院宇) 향사(享祀)는 기제사(忌祭祀)가 아니며, 배위(配位: 부인)가 제외된다는 점에서 원래의 법제적 불천위 개념과는 다르다.
따라서, 법제적 개념의 불천위(즉 시위공신자의 신위)를 제외한 나머지 '불천위'는 비법제적 불천위로서 개인 또는 개별 집단의 사적(私的) 영역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국가의 법전(『경국대전』 등)에 의해 성문화(成文化)된 불천위가 아닌 비법제적 불천위는 개인 또는 개별 집단이 원하는 바에 따라 선정한 것이다. 이른바 사불천위(문중불천위)도 여기에 해당된다. 개별 문중(門中)에서 특정한 인물의 신위를 불천위로 봉안할 만하다고 판단하여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해마다 기일(忌日)에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받드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조선 시대가 아니니 『경국대전』(또는 『대전회통』)의 규정을 준수할 이유도 없으려니와 누구로부터도 불천위를 허락 받아야 하는 세상도 아니다. 불천위는 이제 사적(私的)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댓글 현대 사회에서 불천위를 허락하는 법과 관리하는 기관도 없습니다.
현대는 가정의례 준칙에서 할아버지까지 제사를 모시는 2대 봉사를 권고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현실이 이런데 신규로 선조님을 불천위로 모시자고 한다면 무슨 근거로 불천위를 모셔야 될까요?
어차피 불천위를 허락하는 법이나 기관이 없으니 꼭 사불천위로 모시고자 한다면 내 마음대로 정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교가 없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국가입니다.
<성인도 세속을 따르라 했다.>라고 합니다.
현재는 세상이 빠르게 변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태에 적응해야 종중도 발전을 합니다.
그러니 후손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의 수립도 생각을 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전통도 살리면서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일이 주가 되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종중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천위 봉안은 다수의 후손들이 원하면 봉안하고, 원하지 않으면 그만 두면 됩니다.
이것은 우리 문중의 문제입니다.
다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외(門外) 사람들의 눈치를 볼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①사당 관련(건립) 경비 문제, ②추후 유지ㆍ관리 문제, ③후손들의 봉사 참여도 문제
등을 세밀히 고려하여 결정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비를 들여 새로 사당을 세워 신주를 봉안해 놓고
유지ㆍ관리를 제대로 못해 폐허가 되게 하거나
장소가 후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어서 봉사(奉祀) 참여도를 현저히 떨어뜨리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