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6 주일설교
열매 맺는 나무가 되게 하시려고
로마서 11:17~24
1. 시작하는 말
오늘은 4월 16일, 부활주일도 지나고 연중 가장 좋은 계절 봄입니다. 겨우내 나무들은 벌거벗은 채 찬바람에 떨고 꽃과 풀들은 죽은 듯 숨죽이고 있었는데 봄이 되자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나고 작은 풀에도 꽃이 피고 있습니다. 봄은 그 자체로 희망이며 하나님의 따스한 메시지입니다.
어둔 밤 지나면 새날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이 세상 슬픔이 지나고 나면 광명한 새날이 다가오네.
시편 19편에서 다윗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솜씨를 발견하고 바람 소리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듯이 우리 성도들은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본문 이야기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이방인이 유대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교만하면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 설명을 위해 바울은 감람나무의 접목(接木)하는 방법을 비유로 사용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참감람나무에 비유하고 이방인을 돌감람나무에 비유하면서 참감람나무 가지가 꺾인 자리에 돌감람나무 가지가 접목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공급받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참감람나무의 원가지도 꺾어버리신 하나님은 접목된 돌감람나무 가지도 언제든지 꺾어버릴 수 있다면서 이방인 신자가 유대인처럼 교만하면 버림받을 수 있음을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또 돌감람나무를 접붙여 주신 하나님이 참감람나무에서 잘린 원 가지들도 다시 접목할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은 믿음 없어도 유대인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3. 접목의 법칙
바울의 이 비유를 읽을 때 독자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비유는 일반적인 접목의 법칙과 정반대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접목한 나무의 품종은 뿌리가 아닌 가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품종 나쁜 나무에 품종 좋은 가지를 접붙이면 그 가지가 자라서 품종 좋은 나무가 됩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참감람나무의 뿌리에 돌감람나무의 가지를 접붙여서 참감람나무의 뿌리 덕분에 돌감람나무 가지가 좋은 품종이 되는 것처럼 말할까요? 감람나무가 도대체 무슨 나무이길래 그 나무는 뿌리에 의해 품종이 결정될까요?
저는 이것을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감람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연구해봤더니 올리브나무의 잘못된 번역입니다. 성경을 번역하던 시대에 올리브나무가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올리브나무와 비슷한 감람나무가 있는데 올리브나무를 감람나무로 번역해놓았습니다.
번역하면서 비슷한 다른 것으로 표현한 예는 이 외에도 많습니다. 대추야자 나무는 종려나무로 번역해놓았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신 그 꽃도 사실은 흰 백합화가 아니라 갈릴리 들판에 피는 양귀비, 아도니스, 아네모네를 뜻하는 말입니다.
4. 고목과 야생 모두 살리기
그렇다면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는 특이하게도 접목했을 때 뿌리가 품종을 결정하는 나무일까요? 여러 주석을 찾아봐도 이 문제에 대한 시원한 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을 고민하다가 저는 결국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바울은 접목의 원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접목의 원리와 관계없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교훈을 위해 다만 접목 이야기를 끌어온 것뿐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난제에 관한 해답을 존 스토트의 『로마서 강해』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존 스토트는 윌리엄 램세이의 글을 언급하며 팔레스틴이라는 예외적인 환경에서 이런 방식의 접목이 예나 지금이나 사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즉 늙어서 열매 맺지 않는 올리브나무에 야생 감람나무의 어린 가지를 접목해서 나무를 소생시킨다는 합니다.
그러니까 이 접목의 목적은 품종 개량이 아니라 늙어서 죽어가는 나무도 살리고 열매 맺지 못하는 야생 올리브나무에게는 기회를 주려는 조치였던 것입니다. 여기 돌감람나무는 품종 나쁜 나무가 아니라 관리가 안 된 나무였습니다.
5. 포도나무의 비유 교훈
접목의 교훈은 요한복음 15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제자들을 가지로 비유하면서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가지란 당연히 나무에 붙어 있는데 이런 말씀이 왜 필요할까요? 하지만 그 가지가 원래의 가지가 아닌 접목된 가지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접목된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은 열매 맺는 문제 이전에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할 만큼 중요합니다. 접목에서 대목과 접순 사이에는 이물질은 물론이고 공기가 들어가도 안 됩니다. 그래서 비닐로 꽁꽁 묶어줍니다. 그렇게 붙어 있을 때 그 가지가 뿌리의 수분과 영양분을 받아서 살고 열매를 맺습니다.
6. 원예를 통해 주는 교훈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포도나무 가지 비유와 바울의 감람나무 접목 비유는 모두 나무를 가꾸는 원리를 통해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왕 나무 이야기, 접목 이야기를 한 김에 원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는, 바울이 말한 올리브나무 접목 이야기입니다. 올리브나무가 늙어 새로운 가지가 나오지 않을 때 야생 올리브나무의 가지를 가져다 접목해서 나무도 살리고 그 가지에는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접목처럼 하나님도 유대인이라는 뿌리에 이방인인 우리를 접목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좋은 열매를 맺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실 올리브나무가 늙으면 접목해서 살리려고 노력하기보다 베어버리고 새 묘목을 심으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 올리브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즉 이 이야기는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입니다. 늙은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진 야생 올리브나무 가지는 바로 저이고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까불지 말고 겸손히 주를 섬기는 마땅합니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잠당 하게 하소서
7. 본성을 바꾸어주는 입양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팔레스틴에서의 예외적인 올리브나무의 접목이 아닌 일반적인 접목의 원리입니다. 과일나무는 접목을 통해 품종을 개량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열매가 사실은 접목을 통해 품종을 개량한 것들입니다.
씨앗이 없는 귤은 탱자를 이용해서 번식합니다. 노랗게 익은 탱자는 향은 좋지만 맛을 시고 떫어서 먹을 수 없습니다. 탱자 안에는 씨가 가득합니다. 그 씨를 심어서 탱자나무가 자라면 잘라버리고 귤나무 가지를 접목하면 귤나무가 됩니다.
단감은 어떨까요? 단감 먹고 씨 심으면 단감 나무가 자랄 것 같지만 단감 씨를 심으면 고욤나무가 자랍니다. 고욤은 조그만 열매에 씨앗만 가득하고 먹을 수 없는 감입니다. 그 고욤나무를 잘라버리고 단감나무 가지를 접목해야 단감나무가 됩니다.
저는 단감을 생각할 때마다 신앙교육 원리를 생각합니다. 신자가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가 저절로 신자가 되지 않습니다. 단감 씨에서 고욤나무가 자라듯이 신자의 자녀도 버려두면 불신자가 자랍니다.
성경에도 그런 불행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2:10에는 여호수아 시대의 사람들이 죽고 나서 그 후에 다른 세대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다음 세대, Next Generation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대, Another Generation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반드시 자녀에게서 불신의 싹을 잘라내고 믿음을 이식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을 심어주심으로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본성에 맞지 않는 의의 열매를 맺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입양, 즉 양자로 삼으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8. 수고(樹高)와 교만 낮추기
세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접목 이야기는 아니고) 나무의 키를 낮추는 이야기입니다. 모름지기 식물은 모두 위로 자라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처럼 위로 곧게 자라는 가지에는 열매가 맺지 않기에 농부는 위로 자라는 가지는 잘라버립니다(사진). 우리 사람도 교만하게 자기를 높이고 싶은 본성이 있는데 그렇게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 맺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의 교만을 잘라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키를 자랑하지 말고 열매를 자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만일 과목이 이미 키가 크게 자랐으면 키를 낮추어 주어야 사람이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의 과일은 사람이 딸 수가 없어서 까치밥이 됩니다. 그럴 때 농부는 수고(樹高)를 낮추기 위해 먼저 아래쪽에 숨어있는 눈을 틔워 가지가 나오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가지가 나오기 원하는 위치의 껍질을 잘라줍니다(사진). 그러면 아래에서 올라가던 영양분이 길이 막혀 숨어있던 눈에서 가지를 내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도 잘 나가다가 길이 막히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됩니다. 저도 목회가 형통했다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도 저는 논문 쓰는 것이 취미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저 자신을 세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길을 막으시면 많이 고통스럽지만, 대신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농부가 수고(樹高)를 낮출 때는 아래쪽에 새로운 가지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순차적으로 윗부분을 잘라줍니다. 만일 나무 윗부분을 한꺼번에 잘라버리면 뿌리와 가지의 수분 공급에 균형이 깨져서 나무가 죽게 됩니다. 그래서 아래쪽의 가지가 자라는 것과 균형을 맞추어 매년 조금씩 잘라냅니다(사진).
농부가 나무를 순차로 자르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어 새 사람으로 살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즉시 모든 것을 바꾸라고 하면 변화하고 성숙하기보다 좌절하고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점차로 성숙하도록 기다려 주시니 이 또한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9. 마치는 말
서두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을 보고 들판을 보면서, 계절이 변하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솜씨와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농부가 나무를 가꾸는 원리 속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믿음이 성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쓸모없는 야생 올리브나무 같은 우리를 참 올리브나무 뿌리에 접목하여 열매 맺는 가지로 자라게 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둘째는 품종 나쁜 나무 같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해 주셔서 본성을 거슬러 새사람이 되게 해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셋째로 우리를 변화시킬 때 일시에 모든 것을 바꾸라고 하면 좌절하고 죽어버릴까 봐 우리가 변화하고 성장하도록 기다려 주시는 은혜에 또한 감사합니다. 하나님도 기다려 주시는데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옆 사람에 대하여 빨리 변화하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견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