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작은 삶을 훈련해야할 때이다/ 신앙계 2020년 2월호/ 안희환(예수비전성결교회, 사단법인예수찬양방송선교회 지도목사)
코리텐 붐 여사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여성입니다. 그녀가 언니 베시와 함께 나치의 수용소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은 그들이 거쳐 간 수용소 가운데 가장 힘ef고 고달픈 곳이었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방에 벼룩이 득실거렸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수용소 안에서 언니 베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벼룩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코리 텐 붐은 자신도 하나님께 늘 감사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언니가 벼룩에 대하여 감사 기도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녀는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언니, 아무리 범사에 감사한다고는 하지만 벼룩까지 감사해야 하는 거야?”
그때 언니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 모든 환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벼룩을 주신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겠니? 그래서 감사기도를 드리는 거란다.”
후에 코리 텐 붐은 언니 베시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갇혀 있는 수용소에 벼룩이 워낙 많다보니 간수들이 수용소 근처로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간수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회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벼룩에도 감사할 수 있었던 신앙 훈련은 이후 코리 텐 붐이 숱은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평상시에 이루어지는 삶의 훈련이 결정적일 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는 성경 인물인 다니엘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 정적들의 모함에 의해 사자굴에 던져져야 합니다. 배고픈 사자들은 다니엘의 육신을 다 찢어서 삼켜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끔찍한 상황을 앞둔 다니엘이 아플까봐,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니엘이 그런 담대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전에 하던 대로(단6:10)”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가지고 “전에 하던 대로의 영성”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영성이 아니라 전에 하던 것들이 누적되어 생기는 영성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에 하던 대로의 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 굴러 떨어질 때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기도가 안 나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 하던 대로의 영성”을 가진 사람만이 그처럼 깜깜한 처지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깨달은 저는 감사의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감사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내용들이 거창하거나 엄청난 것들이 아니라 상당히 작고 사소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계란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어쩌다가 계란이 생기면 우리 사 남매 가운데 막내인 여동생에게 그 계란이 주어졌습니다. 여동생은 계란을 밭 밑에 깔아둡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계란이 어느 정도 덥혀지면 밥 위에 간장을 넣고 비빕니다. 계란과 간장이 석인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면 제 입에는 침이 고였습니다. 얼마나 그 밥이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저는 호텔 조식을 먹을 때 탄수화물인 밥을 먹지 않고 그 대신에 삶은 계란 세 개를 먹습니다. 이전에는 네 개도 먹고 다섯 개도 먹었는데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딱 세 개만 먹습니다. 절 보고 한 자리에서 계란을 세 개나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튼 집회 나갈 때 계란 세 개를 먹는 것이 제 조식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 화장실은 바깥에 뚝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집이 쓰는 화장실이 아니고 여러 집이 같이 써야 했습니다. 여름에는 난방이 참 잘 되었고 겨울에는 냉방이 참 잘 되었습니다. 장마철이 되면 범람하는 물로 인해 화장실이 넘쳐흘렀습니다. 더러운 것들이 집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런 비위생적인 환경 덕분에 제 몸은 부스럼이 생기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저는 화장실이 두 개인 집에서 삽니다.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습니다. 집에 5층에 있기 때문에 장마철이 되도 물에 잠길 일이 없습니다. 이웃과 같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급한 것을 참고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화장실 갈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거의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저는 성격이 원래 내성적입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랑과 칭찬을 받지 못하니 움츠러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중1때 교통사고로 왼팔이 잘리고 병원생활을 너무 오래 한 덕분에 학교까지 일 년 꿇게 되니 더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같이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함께 뭔가를 먹으러 가는 아이들 속에 끼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원에 입학해도 잘 어울리지 못하기는 매일반이었습니다.
지금 제 주변에는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전화 한 통화만 해도 달려와 주는 이들이 많습니다. 갑작스럽게 번개 팅을 열면 20여명 이상 모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것도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귀한 분들이 기꺼이 달려와 줍니다. 저는 그렇게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좋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돈은 벌어오지도 않으시면서 술을 퍼마시는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과자 한 봉지 안 사오시면서 과자보다 비싼 담배를 연기를 날려버리는 아버지가 너무하다 생각했습니다. 잘 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고생스럽게 일하시며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나중에 크면 복수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는 당하지만 크면 매일 때리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지금 저는 아버지가 좋습니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습니다. 아버지는 올해도 2번이나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성경을 쓰는 것도 하고 계십니다. 교회에서 기도회를 하면 열심히 나가십니다. 정말 훌륭한 장로님이시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노력하시는 장로님이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 저는 공부를 무척 못했습니다. 특별한 아이들만 남겨놓고 가르치는 나머지 공부 반 출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어서 며칠씩 땡땡이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 일로 부모님께 혼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빠지던 말든 학교 측에서는 저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았으니까요. 저는 혼자서 어슬렁거리다가 제풀에 지쳐서 다시 학교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니 공부를 잘 하기는 불가능할 수밖에요.
지금 저는 머리 나쁘다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성경을 마음껏 인용하는 것도, 책 내용을 잘 정리해서 보지 않고 설명하는 것도, 자유롭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내는 것도, 설교 준비한 후 다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다 외워서 설교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팔을 잃은 후 지혜 달라는 기도를 계속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 덕분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써나가면 대책이 없이 많을 것인데 그 만큼 작고 사소한 것에서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이 훈련이 될수록 그 내용은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훈련이 결정적일 때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였습니다.
뇌수술을 앞두고 의사가 3번이나 위험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기쁨과 감사로 충만했습니다. 뇌수술 날짜를 잡은 후 목 디스크가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뇌수술 받고 몇 년 후 허리 디스크, 치아 균열, 갑산선의 무수한 혹, 폐병, 피하지방종양 등이 종합검진을 통해 한 번에 드러났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평소에 감사 훈련이 안 되었다면 내 팔자는 왜 이런가 하고 탄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교회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점점 심해져갈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딤후3:1). 그래도 아직 평안할 때 일상생활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정말 힘든 시대가 될 때 감사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의 작은 훈련들이 지금도 유익하지만 시대가 변할 때 더 큰 유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