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백지영의 노래 제목이다. 처음 들었을 때 그 가사는 나에게 매우 섬뜩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뻥뚫려 채울 수 없어서 죽을 만큼 아프기만 해, 총맞은 것처럼.” 매우 폭력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노래가 뜰 수 있게 된 데는 바로 그 끔찍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노래 가사에서 가장 영양가 있는 그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총을 맞으면 탄두가 들어가는 쪽의 상처는 아주 작으나 나오는 쪽에는 커다란 상처가 생긴다고 들었다. 총열 안쪽에 강선이 있어서 발사된 탄두가 회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바닷가에 가거나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느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그동안에 가슴이 뭔가에 꽉 막혀 답답했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걸 스트레스나 화가 쌓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느낌들이 눌려 쌓여 울화가 되고 울분이 되고 화병이 된다. 넓은 바다에 가거나 높은 산꼭대기에 오르면 하늘과 땅 사방이 막힌 데 없이 열려 있어 그런 울화가 일순간 사라진 듯한 기분이 된다. 마음속에 쌓여 나를 짓누르고 있거나 가로막고 있는 무언가가 순식간에 없어진 느낌이다. 폭력적인 어떤 행위를 통해서 무언가를 박살내버릴 때도 그와 비슷한 쾌감을 얻는다. 우리의 가슴속을 답답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뭘까?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전남대 인문대 빨간 벽돌 건물 2층 앞면 왼쪽 맨 끝에 「정독실」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공부방을 나와 내 친구들 몇 명이 문리대 행정실에 요구해서 만들었고, 거기에 책상과 의자들을 들여놓아 독서실처럼 꾸며서 그 공간을 우리들 7-8명이 전유해버렸다. 먼저 차지한 놈이 임자인 세상이었다. 취업 공부를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거기에서 공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냥 편리한 아지트였다. 각자 책상 위에 책들을 잔뜩 놓아두고 빈 시간에 쉬기도 하고 또 수업 시간이 되면 책을 집어 들고 강의실로 갈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학기말 고사가 끝난 날 구성원 모두가 모여서 여느 때처럼 노닥거리다가 누군가가 책들을 찢어버리자고 제안했고 모두들 좋은 제안이라고 동의가 이루어져서 우리는 각자 책을 찢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온건하게 찢다가 점점 열기가 고조되더니 나중에는 모두들 거의 날뛰듯 책을 찢어서 공중에 던져댔다. 찢긴 종잇조각들이 바닥에 발목까지 수북해졌다. 광란의 도가니였다. 그러고 나자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그런 유사 폭력 감정과 행위가 어쩌다 왜 그렇게 분출되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회적 질서로터의 억압과 현실적 삶의 조건에서의 제약을, 무언가를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 해소하려는 욕구가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눌려 있는 건 아닐까? 그 「정독실」은 우리가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 십 몇 년이 지난 후에 내가 인문대 교수로 근무하게 되면서 찾아가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후 「정독실」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한 사회의식이 발전하면서 없어졌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적어도 착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 심리 상태가 간혹 ‘착한 사람 강박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른다는 걸 의미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에 ‘도덕’ 혹은 ‘바른생활’이라는 교과목이 있었다. 그 교과서에는 주로 착한 어린이가 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우화나 일화의 형식으로 담겨 있다. 그 가르침은 요약하면 ‘권고’나 ‘당위’, ‘책임’과 ‘의무’, 그리고 ‘금지’이다. 그걸 통해서 우애나 우정, 약속이나 공중도덕, 친절이나 선행, 인내나 희생, 금욕이나 절제 등의 가치들이 주입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에서 만난 어떤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거나 적선을 요청하는 노숙자에게 한 끼 식사비를 건네주거나 노약자에게 지하철 자리를 양보하거나 혹은 땡볕 길바닥에 좌초된 지렁이를 구조하여 풀 속에 놓아주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권고의 선행을 실행하는 것에서부터,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거나 욕심이나 욕구가 일어나도 억제해야 한다거나 또는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강한 금지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과 문명의 특성이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 억제된, 좌절된 욕구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그 ‘무언가’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즉 자신을 억눌러야 한다는 의식이 우리에게 일종의 강박증이 되어 마음의 밑바닥에 쌓이는 건 아닐까?
20세기 초중반 미국 남부 소설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로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 1925-1964)가 있다. 그녀는 가톨릭 집안 출신으로 종교적 믿음이 그녀 삶의 바탕을 이루었고 그것이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은 범죄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시피 한다. 그녀의 대표적인 단편 중 하나가 「착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A Good Man Is Hard to Find”)이다. 총을 든 세 명의 탈옥범들—주로 그들 중 우두머리인 “미스핏”(Misfit)이라는 흉악범—이 가족 나들이 가는 할머니와 그녀의 아들 내외 그리고 갓난아기를 포함한 그들의 세 자녀로 구성된 한 평범한 가족 여섯 명 모두를 하나씩 총으로 쏘아 죽이는 상황을 묘사한다. 미스핏은 전형적인 남부 신사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소설 결말 부분에서 할머니와 선악 논쟁을 벌인다. 그는 아무 죄 없이 죽음의 형벌을 기꺼이 감당한 예수가 세상의 선과 악에 대한 균형을 깨뜨렸으며, 자신은 지은 죄가 없는데도 원죄라는 근거를 확인할 길 없는 죄 때문에 인생에서 고통이라는 과도한 벌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죄와 벌, 선과 악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극악한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그 무너진 균형을 복원하려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소설 끝부분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할머니에게 총을 쏘며 미스핏은 “만약 누군가가 그녀의 일생동안 매 순간마다 그녀에게 총을 쏘았더라면, 그녀는 착한 여자로 살았을 텐데”라고 중얼거린다. 문명사회 속에서 착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는 여전히 야만적 폭력의 본성이 억눌려 있고 그것이 어떤 때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솟구쳐 오르는 걸까? 오코너가 시사하는 바는 폭력에 대한 절실한 체험적 깨달음이 없이는 선의지가 생겨나기 어렵다는 것일까? 그래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매 순간 총을 쏘아 죽이고, 폭탄을 터뜨려 죽이는 폭력이 행해지고 있는 걸까? 백지영은 가슴이 총 맞은 것처럼 뻥 뚫려 죽을 만큼 아프다고 노래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첫댓글 참 이상하죠? 감정과 상황의 모순 속에서 정리 될 수 있다니...ㅎ ^^
한국어 책을 찢어버리고 나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신 거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