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고대 희랍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다른 개념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시간하면 거의 대부분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벽시계입니다. 요즘은 디지털로 된 시계를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우리가 시간하면 떠올리는 하루 24시간, 한 달, 일 년. 이런 물리적인 시간이 '크로노스(kronos)'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은 모두가 같습니다. 크로노스는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객관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죠.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우리의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은 모두가 다릅니다. 크로노스가 양적인 시간을 의미한다면,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이기 떄문입니다.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시간을 자신의 성장하고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듭니다. '같은 시간 동안 어떻게 저렇게 멋진 것을 만들어 내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만의 카이로스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카이로스는 나에게만 허락된 시간으로 나의 선택에 의해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적인 시간이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시간을 잘 쓰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계획을 잘 세우고 시간을 쪼개고 아껴서 쓰는 것을 보고 우리는 시간을 잘 쓴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게 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뭔가 멋진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공적인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결국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양적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정말 질적으로도 그 시간을 잘 쓰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경력이 쌓이고, 그 경력만큼 일을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사람을 뽑을 때, 그 분야에 대한 경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많이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같은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은 모두가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시나요?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던가요?
경력은 중요하지만, 저는 교사의 깊이가 경력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얼마나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느냐에 교사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밀도 있는 시간을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에게 집중했던 시간이고,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시간이고, 또 내가 가진 것들을 비워내는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들을 가졌던 선생님들과 대화를 해보면, 경력을 넘어선 넓이와 깊이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즐겁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저도 저의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카이로스의 다른 말은 기회의 신입니다. 고대에 그려진 카이로스를 보면, 그는 앞머리는 길고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짧습니다.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쪽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죠. 등에는 두 날개가 있는데, 그걸로 부족했는지 발의 뒤꿈치에도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앞머리는 길고, 뒷머리는 민머리입니다.
앞머리가 긴 카이로스는 누구나 붙잡을 수 있지만, 뒷머리는 민머리이기에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다고 해요.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는 날개를 가졌기에 재빨리 사라집니다. 기회가 있을 때 저울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고, 칼처럼 주저없이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기회는 한 번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에서 수십 번씩 기회를 마주치며 살아갑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하루 동안 선택을 하는 횟수는 150회이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150번이라는 우리의 선택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중요한 기회일 때도 있습니다. 더욱이 교사는 나 자신에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 기회와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매일 마주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POOR)은 '번번히 반복적으로 기회를 무시해 버리는 것'(Passing-Over-Opportunities-Repeatedly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그 기회를 번번히 습관적으로 무시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아이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친절하게 잘 모르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좋은 선택이며 기회입니다. 나의 작은 배려로 인해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찾고, 감사하는 순간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