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103 – 낙타에게 이별 공부를 ? (사소)
찬혁샘에게 입사 며칠 후 ‘낙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아직 어린 청년이 긴 눈썹이 커튼처럼 드리워져서 눈을 내리 깔고 있으면 장난을 걸고 싶어진다. 데스크 샘들은 성냥개비를 몇 개나 올릴 수 있을까? 펌을 시켜줘야 한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는 연구원이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때까지만 근무하기로 했다. 때문에 하드 트레이닝 대상이 아니어서 엄격하지 않아도 되고 근무할 때까지 첫 직장에서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요새들어 행정 처리나 상담을 하는 데스크 직원들을 젊은 인력으로 채용하니 컴퓨터 조작이나 엑셀 등 프로그램 운용에 적응력이 좋다. 장단이 있긴한데 물론 학원 생리를 모르니 가끔 감각이 너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알려주면 적응하려 노력하는 것이 빠르다.
찬혁샘은 기존 샘들과는 다르게 마음 속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무언가 칭찬을 하면 바로 웃으면서,
“ 감사합니다. 보너스 ! 주시는 겁니까? ” 한다거나, “ 부상으로 하루 휴가 어떠십니까? ”
하기도 한다. 군대를 갓 제대하고 입사를 했으니 빳빳하게 각이 잡혀있고, 행동에 절도가 있다. 하지만 감성은 매우 섬세하다 못해 난처할 때도 있다. 어느 강사가 찬혁샘의 객관적인 행정 처리에 불만을 갖고, 개인적으로 찾아가 불만을 토로했다. 그날 그는 원장실에 들어와서는 30분이나 넘게 눈물을 찍어 냈다. 하도 내 앞에서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통에 나는 원장실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이후 창피할까봐 그 사실을 비밀로 해주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직원들에게 자기가 울었다고 광고를 하고다니는 게 아닌가? ‘ 참 신기한 청년이로세 !’ 나는 생각했다.
그는 여친이 있다.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직접 멘토가 되어 가르쳐줬던 제자이자 후배라고 했다. 그는 생명공학 전공자이고 여친은 약대생이니 인접 학문이어서 서로 대화도 잘 통할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학원은 입시학원인데다가 평택이 비평준화 지역이기에 주말 근무가 필수이다. 기숙사나 학사에 들어간 학생들이 주말에야 수업을 받으러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면접 때, 찬혁샘에게 여친이 있으면 힘들 건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안되니 취업에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여친도 일이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학원은 화요일 하루가 휴일이다. 휴일 전날은 여친이랑 여기저기 놀러 갈 거라고 매번 맘껏 부풀어 오르는 찬혁샘이다. 다녀오면 여친이랑 어디 어딜 갔다고 사진도 보여주고 여지없이 자랑을 해대는 게 참 귀엽기도하다. 하지만 솔로인 원장이나 임샘의 눈치는 절대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매 주말마다 다만 몇 분이라도 빨리 퇴근하려고 이런저런 저렇게 핑계를 대는 모습에 역시 어리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텝스 공부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심각하게 졸라댔다. 결국 매일 한 시간씩 빠른 퇴근 허락을 받아내고는,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두어 주에 한 번씩 토요일은 휴가를 내고는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마지막 시험을 본 다음날이었다. 여유가 생겨서 마음이 개운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눈밑이 팬더처럼 퀭해 있었다. 낙타 눈썹도 젖어 보였다. 그리고 데스크에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자꾸 어디로 사라졌다가 오랜 시간 후에 오는 것 같았다.
‘ 아뿔싸! 여친이랑 설마 헤어진 걸까? ’ 공부하느라 휴일도 만나지 못했을 터이니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예감이 스쳤다.
대체나, 같은 데스크 임쌤이 절대로 아는 척하지 말라고 하면서, 찬혁샘이 화장실 가서 내내 울고 온다고 했다. 임쌤은 찬혁샘이 5년이나 여친을 만났으니 지금 죽을맛일 거라고, 직장까지 탓을 하며 그만 둘 수 있다고 걱정을 한짐 했다. 나는 그에게 말도 못 건네고 숨을 죽이고 관찰을 시작 했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이별의 심리적 순서를 밟을 것인지 ,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아는 척을 못하고 울보 청년의 눈치만 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루 만에 그가 먼저 커밍아웃을 해왔다.
“ 원장님! 저 오늘부터 솔로 1일 째입니다 ”
‘ 헉! 이친구는 감정 표현이 역시 솔직하구나 ’
이후 나는 그에게 얼마나 힘드냐? 공부하느라 여친을 못 만난 거냐? 등 위로를 하며 왜 헤어졌느냐? 물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여친이 자기 때문에 손해를 보게 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니 많이 슬프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 내가 손해니 니가 손해니 이런 셈이 들게 되면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인데, 이걸 어쩌나? ’
나는 그럼 정말 이젠 안 만나는 거냐 물었다. 그런데 찬혁샘은 의외의 말을 했다.
“ 아니죠. 우리가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만나면서 서로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죠. 이제까지 맘속에 담고 차마 못 했던 이야기,
하나하나 다 나눠야죠. ” 의외로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 아니 헤어진 상태인데, 다시 만나는 거예요? 그럼 좀 이상하고 맘이 더 힘들지 않아요 ? ” 조심스레 물으니, 그는 헤어졌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듯 머리를 숙였다.
“ 네! 만난 세월이 길었으니까 서로 정리할 게 얼마나 많겠어요. 군대도 기다려 줬는데 말이죠. 좀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는 눈을 내리깔고 착잡하게 얘길 했다.
나는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를 이제는 솔직하게 서로 나눈다는 얘기에 솔깃했다. ' 그렇담 서로의 감정이나 생각의 지점, 오판했거나 믿었던 부분이 좀 가지런해 질 수도 있겠다. 서로 다르고 , 달라서 이해 할 수 없던 타인을 , 자기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이별하고 나서도 친구가 된 사람들이 부럽긴 했다. 더우기 건강한 이별을 통해 성장할 수 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젊은 친구들의 이별의 방식에 대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걱정하고, 이해하려하고, 마무리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니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진정한 용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새삼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 뒤늦은 공부라니...그렇다고 이미 이별한 사람을 다시 만나 저 친구들처럼 서로 정리를 할순 업지않나? ’ 며칠 어떻게 배울 것인지 나름대로 생각했다. 결국은 나머지반처럼 찬혁샘의 상황을 중계로 듣고 난 이후, 이별의 방식에 대한 후행 자습을 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후 나는 코로나에 걸려 휴가를 갖고, 며칠 후 학원에 나갔다. 찬혁샘의 낙타 눈썹은 이제 젖지 않았고, 판다가 되었던 눈 밑도 다시 복구 되어 있었다. 오늘 퇴근 전 여친과 이별의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지 살짝 물었다. 그는 대답대신 씨익 웃는다.
“ 설마 헤어지지 않기로 한 거예요? ”
이리하여 결국 나의 이별 보충학습은 끝이 났다.
첫댓글 단막극 연애 드라마 한 편을 감상한 듯합니다.
계속 ‘찬혁샘’이라고 하지 말고 ‘그’라고 바꿔 보세요. ^^
ㅎ 그라시아님! 감사합니다. 바꿔 넣어보니 문장이 좀 더 나아지네요. ^^
@사소 그런데, 찬혁샘이라고 할때와 "그" 라고 할때의 감정선은 좀 달라지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사소님, 정말 대단하세요. 문장을 이끌어가시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신 것 같아요. 웹 소설에도 한번 도전해보심이 어떠실까요? 소재와 등장 인물만 잘 잡으면 혹 선풍적 인기를 끌어서 영화화될 수도 있겠다는...
낙타가 등이 아니라 눈썹에 무언가를 얹을 수 있었구나~.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 소재네요. 눈썹이 낙타처럼 긴 청년, 눈물을 방울방울 흫리는 청년이 보고 싶기도 하고, 봐서 어쩌겠냐 싶기도 하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