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詩作 하다 / 정선례
올해도 시 창작 수업을 신청했다. 문학관에 일주일에 한 번 매주 목요일 저녁 시간에 유명 시인에게 배운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를 달려가지만, 그날이 설레고 기다려진다. 벌써 5년째다. 농번기에는 종일 바쁘게 일하고 세수만 하고 나간 적도 있다. 어느 해에는 밤늦은 시간에 돌아오다 졸음운전 해서 아찔했던 적도 있었다. 그 뒤부터는 아무리 추워도 차에 히터를 켜지 않는다. 그리고 창문을 살짝 열고 다니기도 한다. 추위를 많이 타지만 추운 것이 위험한 것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에서다. 출발하기 전 한 시간이라도 잠을 자고 집을 나서면 돌아올 때 졸리지 않는다. 일상에서 나는 어떤 것도 시작은 거창한데 마무리는 늘 흐지부지한다. 내게 가장 부족한 걸 꼽으라면 ‘끈기’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오리무중은 기본이고 작심삼일도 길다. 뭐 하나 진득하니 마무리를 못 하는 내 성향에 이렇게 오래 하다니 스스로 대견하다.
첫 수업이다.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강의실이며 문우들이 낯익어 긴장감보다는 정겹다. 수업을 들을때는 나도 금방 그럴듯한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시를 배우고부터는 더듬이를 세우고 기어가는 달팽이가 되어 시적인 것이 없나 늘 주의를 살피게 된다. 일상의 모든 소재가 글쓰기의 재료가 되기에. 이 수업을 듣게 된 동기는 수필을 잘 쓰려면 소설의 구성과 시의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서다. 일기가 아닌 문학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여러 해 수강하는 동안 지방 문예지에 등단한 문우도 여럿이다. 책을 의무적으로 사는 조건으로 등단해 주는 문예지도 있다고 했다. 나는 아직은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지금은 습작에만 집중한다. 어느 젊은 문우는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며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큰 상금을 받는 문학상도 받았다. 반면 내 시는 항상 상투적이고 익숙한 문장에 갇혀 있다. 자기 시를 읽고 선생님께 첨삭을 받는 데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읽게 된다. 매주 시 한 편을 단톡에 올려야 수업에서 다뤄진다. 내가 쓴 시는 매번 문우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시는 운율과 감각적인 느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 생각을 이미지와 비유 낯선 언어로 함축해서 써야 한다는데 시를 조금 알게 되니 쓰기가 더 어렵다. 이쯤에서 시 쓰기는 포기하고 읽는 독자로만 남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겨우내 시를 읽느라 수필은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요즘 시 잘 쓴다는 젊은 시인들의 시집이다. 안희연 <당근밭 걷기>, 남지은 <그림 없는 그림책>, 조시현 <아이들 타임> 김이듬 <투명한 것과 없는 것>,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을 읽고 똑같이 따라 썼다. 대리만족을 느낀다. 예전에는 시가 여운이 남고 공감이 되었다면 이번에 읽은 시집들은 재미있다. 어떤 시는 반복해서 읽어도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럴 때는 무작정 반복해서 읽는다. 그러다 보면 화자의 시선에 가 닿기도 한다. 이 수업을 듣기 전에는 문정희, 안도현, 도종환, 정현종, 송수권, 강은교 시집을 주로 읽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시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그때가 좋았다.
시나 산문 소설 등은 말을 다루는 일이다. 머릿속에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글로 옮기려 하면 써지지 않는다. 예전에 의식의 흐름대로 무작정 써지던 시기도 있었다. 일기가 그랬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문장 구성을 고민하다 보니 글 쓰기가 점점 더 어렵다. 오늘은 또 어떤 시를 쓸까 생각에 잠기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풀꽃시인 나태주 시인은 말하기를 "시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한다. 비록 문우들과 함께 엮은 시집이지만 벌써 다섯 권의 시집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이런 흔적들이 모여 언젠가는 내 이름이 오롯이 적힌 시집을 품에 안을 날과 마주하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앞만 보고 나아가련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저 달팽이처럼.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수필도 잘 쓰게 될 것이기에.
첫댓글 하하, 시를 공부해서인지 제목도 감각있습니다. 농사일에 수필에 시까지 부지런도 하셔요. 올해는 선생님 이름이 적힌 시집을 기대합니다.
시작은 잘하지만 정작 똑 부러지게 잘하는 건 없어요. 먼 훗날 시집 나오면 가장 먼저 선생님께 보여 드릴게요.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선생님 글 제목에서 언어 유희 같은 것을 느꼈어요. 시도 수필도 승승장구하길 응원합니다.
다시 함께 공부하게 되어 반가워요. 지현샘, 글쓰는 실력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거 아시죠? 응원해요.
갓난아기였던 태은이도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컸네요. 아기는 천사의 또 다른 이름이죠. 볼 빵빵 태은이 귀여워요!
@정선례 진짜 고맙습니다. 선생님 시 곧 만나보고 싶어요.
와, 시를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 계시네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글이 참 좋습니다. 힘든 농사지으면서 시, 수필을
다 하시니 대단하십니다. 듣고 배우신게 어디 가겠어요. 쓰신 글에 스며들어 표현되겠죠. 이번 글이 그렇습니다.
좋아하는(선생님 글) 선생님께 칭찬받으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네요. 고맙습니다.
그동안 시 공부를 많이 하셨나 봐요. 글이 깔끔하고 술술 읽힙니다.
제 글이 조금이라도 나았졌다면 교수님과 선생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와, 시를 오래 쓰셨네요. 선생님이 글에 쏟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시도 궁금합니다.
시 공부 하면서 수필 쓰시는 분들의 글은 다르더군요. 군더더기 없이 울림을 주는. 다양한 능력을 지니신 선생님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