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억해야 할 은혜
2023. 4. 16(주일낮예배) 열왕기하 23:21-23
여러분은 어떤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은 군인이 장교로 임관하기 전 야드바셈추모관, 통곡의 벽, 그리고 맛사다를 반드시 찾는다. 장교로 임관하는 군인이 야드바셈 추모관을 가는 이유는 2차 대전의 그 고통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2차대전 때 나치에 의하여 600만명이 학살되었는데, 야드바셈 추모관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추모관이다. 그래서 야드바셈 추모관에 들어가면 희생자들이 사용했던 책들이 있고, 또 그들이 신었던 신발도 가득있다.
어느 분이 야드바셈추모관을 방문했을 때 가이드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수용소에서 노동하던 수용자들은 신발이 찢어지거나 쓸 수 없게 되면 어린아이처럼 엎드려 엉엉 울었다. 왜냐하면 추운 겨울에 수킬로를 걸어서 부역장소로 이동하는데, 떨어진 신발로 걸으면 동상에 걸려 발은 썩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발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였기에 수용자들은 신발이 떨어지면 그 신발을 부여잡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던 것이다.
이것이 독일에 의하여 학살된 사람들이 삶이었다. 기차를 타고 수용소에 도착하면 노약자와 여인과 아이들은 같은 줄에 섰다. 그리고 그들은 목욕을 해야 한다는 말로 한 방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서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다 빼앗은 나치는 머리를 깍아서 카페트 재료로 사용하였다. 그렇게 유대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은 나치는 연약한 유대인들을 샤워기가 있는 샤워실로 인도한다. 그리고 문이 닫히면 그 샤워기에서 가스가 나와 모두 고통하며 죽었다. 이것이 연약한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도 별 차이가 없었다. 건강한 사람은 다른 줄로 세워져서 당장 죽음은 면하였지만, 만약 노역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그들은 서서히 죽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수가 무려 600만명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드바셈 추모관을 만들어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스라엘은 학살된 600만명의 사람을 기억하려 하고 있는가? 야드바셈 추모관의 마지막 방은 사람들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용서는 하되 기억하라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고통스러운 역사이지만, 그것을 기억함으로 다시는 그런 수치와 고통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꼭 기억해 할 것이 없는가? 저는 결혼한 후에 몇 년동안 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아내는 신년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달력에 체크하는 일이었다. 결혼기념일에 굵은 매직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서 결혼기념일 이라고 썼다. 그래서 제가 달력을 보고 결혼기념일을 챙기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와 다르다. 한 목사님이 결혼주례를 부탁하러 온 신랑신부에게 너희들 사귄지 얼마나 되었느냐? 고 물으면 2년 되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1283일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귀기 시작한 날을 일일로 정하고 매일 하루 하루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신앙인으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없는가?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 물으신다. 그때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3번 대답한다. 어떤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3번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하였기 때문이다고 한다. 또 어떤 목사님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3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베드로가 3번 부인한 것은 철저하게 부인한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베드로에게 3번 질문하므로 베드로가 진심으로 주를 사랑하는 것을 고백하게 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저는 오늘 왜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사랑을 물었을까?하는 질문을 해 본다.
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겠는가? 상황도 좀 독특하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여서 많은 고기를 잡게 하였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베드로는 제자들과 함께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고 물으신 후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여 153마리의 고기를 잡은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와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을 때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왜 상황이 비슷하겠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렸을 때 만선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죄인임을 고백하는 베드로를 예수님은 책망하지 않고, 그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였다. 그래서 베드로가 제자가 된 것이다.
무슨 말인가?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고 제자로 삼아주셨던 것이다. 그랬던 예수님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한 그 베드로에게 우리 예수님은 용서하고, 제자 삼아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나게 하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답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주님은 여러분께 무엇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는가? 이런 유머가 있다. 정말 오랜 만에 엄마는 미장원에 간 어머니는 미용사에게 30분만에 머리를 손질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말에 미장원 주인은 오랜만에 왔는데, 파머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미장원 주인은 파머를 하면 훨씬 더 예뻐질 것같다는 말에 엄마는 허락을 했다. 그래서 잠깐 머리 손질하러 간 엄마는 무려 3시간동안 머리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분위기는 정말 냉랭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엄마는 누나의 결혼식을 비디오로 보아야 했다. 엄마는 누가 결혼식 때문에 미장원에 갔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너무 난감하지 않는가? 그런데 저와 여러분도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단행한 내용이다. 요시야가 성전의 부서진 곳을 수리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래서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율법책을 발견한 요시야는 사반을 통하여 율법을 듣다고 옷을 찢고 회개한다. 그리고 요시야는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기구를 다 불태우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다 폐하였다. 아니 더 나아가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산당과 제단을 다 헐고 불살라 버렸다. 요시야는 철저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단행하던 요시야는 유월절을 시행하였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다. 이제 요시야가 어떻게 유월절을 지켰는지 오늘 본문을 함께 읽기 바란다.
(왕하 23:21-23)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성경을 좀 아시는 분은 오늘 본문을 읽으면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역대하 30장을 보면 종교개혁을 단행한 히스기야는 브엘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유월절을 지켰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사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왜 열왕기 기자는 요시야의 유월절만 인정하고 있는가? 히스기야는 유월절은 정한 때에 시행하지 않았고, 또 정결의식도 거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명기 사관에서 볼 때 히스기야의 유월절은 온전한 것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시야는 모세기 기록한 신명기의 율법 그대로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다.
어떻게 온전한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겠는가?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에빙하우스는 실험참여자들에게 완전하게 학습을 시킨 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망각량을 측정하여 도표를 작성하였다. 그 결과 망각곡선이 만들어졌는데, 그 도표를 보면 사람은 완전한 학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분이 지나면 42%를 망각하고, 한시간이 지나면 56%를 망각한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74%를 망각하고, 한 달이 지나면 79%를 망각한다. 그래서 20%만이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외워도 한 달이 지나면 거의 다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저는 우리교회가 교회당을 건축할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권사님들 중에 몇 분은 건축헌금을 하기 위하여 육모종에서 알바를 하였다. 아니 어떤 분은 아들도 모르게 모은 통장을 가지고 온 분도 있었다. 그래서 교회당을 건축하고 교회당 이전감사 예배를 드릴 때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 그 눈물을 기억하는가? 우리교회가 교회당을 건축하고 이전할 때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오늘 코로나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고통하지 않고,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교회를 살필 수 있는 교회가 되었다. 그래서 저는 감사와 함께 그 은혜에 합당한 목회를 하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늘 잊어버리는 망각곡선이론을 깨뜨리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원수를 돌에 새길 수 있는 것은 다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했어! 하는 것을 다시 새기고, 또 새기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하지 않는가? 요시야가 온전한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요시야는 율법을 읽고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가? 알게 되었다. 그랬던 요시야는 또 율법을 읽으면서 우상과 산당을 제거하였다. 그랬던 요시야는 율법에 따라서 유월절을 지켰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요시야는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라(21절)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요시야는 말씀을 읽고, 순종하고, 말씀을 읽고 지키는 가운데 온전한 유월절을 지키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지켜야 하는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바른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또 말씀을 통하여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또 버려야 할 것이 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지키고 순종하며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신 그 은혜 앞에 온전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다른 것은 잊어버려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였다는 이 은혜는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은혜를 기억하고 온전한 성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읽기 바란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고통하고, 싸워보기 바란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온전한 성도가 될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그 은혜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