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이덕형선생묘 및 신도비(漢陰李德馨先生墓및神道碑. 경기도 기념물.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산82번지)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 선생은 임진왜란 때 정주까지 왕을 호종했고, 청원사(請援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파병을 성사시켰다. 광해군 때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삼사(三司)에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과 폐모론을 들고 나오자, 이항복과 함께 이를 적극 반대했다. 이에 삼사가 모두 이덕형을 모함하며 처형을 주장했으나, 광해군이 관직을 삭탈해 이를 수습하였다. 이덕형선생 묘는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와 합장(合葬) 단분(單墳)이다. 봉분 앞에 원수방부(圓首方趺;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의 묘표, 혼유석, 석상, 향로석이 차례로 설치되어 있다. 그 좌우로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등이 건립되어 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이수방부(螭首方趺; 용이 조각된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의 신도비는 조경(趙絅)이 비문을 지었으며, 외증손 오시복(吳始復)이 글씨를 쓰고, 외증손 정규상(鄭奎祥)이 전자(篆字)를 썼다. 건립한 시기는 비석의 측면에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해 알아보기 힘들다. 다만 비문의 글씨를 쓴 오시복의 벼슬이 행(行) 이조판서로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오시복이 이조판서로 재직하던 1692~1693년 사이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출처 : 문화재청)
영의정문익공한음이선생덕형지묘(嶺議政文翼公漢陰李先生德馨之墓)증정경부인한산이씨부좌(贈貞敬夫人韓山李氏祔左)
신도비(神道碑)는 묘역 아래 3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방형의 화강암 기대(基臺)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올린 것으로 이수의 조각이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비문은 조경(趙絅)이 글을 짓고 오시구(吳始口)가 글씨를 썼으며, 정규상(鄭奎祥)이 전액(篆額)을 하여 1653년(효종 4)에 건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