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쪽 팔이 없는 아버지가 창피했다
어머니는 얼굴을 익힐 때쯤 돌아가셔서
생각도 나질 않는다.
시골에 사는 외팔이 아버지는
몸이 성한 사람들보다
두 배 세베 더 일을 했지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
우리 가족은 배부른 적도 없었고
장마당에서조차 새 옷을 사 입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나는 이러한 가난이 싫었고
나아지지 않는 시골생활이 싫어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다.
과외나 학원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사치일 뿐이었다
그냥 정말 그냥
무식하게 남들보다 덜 잠자고
닥치는 대로 책 한 권을 더 읽고 더 읽었다.
그렇게 쌓아온 실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나의 꿈을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명문대에 입학도 하고
대기업에 취업도 하였으며
집안이 괜찮은 아내를 얻어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와
000을 아느냐고 물었다.
가족들은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며 어리둥절하는 순간
나는 동사무소 직원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방문 목적을 물어보니
시골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내 가족들은
내가 고아라고 속여온 터라
부모나 가족이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가족들 몰래
얼마간의 용돈을 통장으로 보내는 것 외에는
일체 소식을 단절하고 살아왔다.
아버지 사망 소식을 접하고
가족들에게는 지방 출장을 이유로 시골집을 찾았다.
시골집에는
동네 어른들이 아버지 시신을 안치하며
간단한 장례준비를 도와주고 계셨다.
누추한 방안에 들어서니
홀아비 냄새가 코를 자극했으며
누렇게 변한 방바닥에는 한 장의 편지가 놓여있었다.
「아들아!
그동안 보내준 용돈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연락처도 없고 소식도 없었지만
너를 원망하지는 않았단다.
내가 외팔이가 된 것은
어릴 적 뒷산에서 불발탄을 가지고 놀던 너를 발견하고
네 몸에서 불발탄을 빼앗아 던져버리는 과정에서
나의 한쪽 팔이 날아가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란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져가고 있구나
너에게 따듯한 밥 한 끼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명절 때 새 옷을 입히지도 못한 게 한스럽구나
미안하고 사랑한다. 아들아.」
나는
아버지의 짧은 편지를 읽어 내리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외팔이 아버지를 어머니 산소 옆에 모시고
서울로 향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한탄스럽고 죄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 고향은 6.25전쟁 당시 38선이 있던 곳으로
휴전을 앞두고 한치의 땅 이리도 차지하려고
아군과 적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쳐진 전방지역이라
불발탄이 많았던 지역이다.
첫댓글 부모님의 자식 사랑에는 항상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가슴이 찡하는 감동적인애기 잘보았습니다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