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참된 힘과 능력
2024. 4. 28(주일낮예배) 사도행전 3:1-10
우리나라 최고의 유통업계는 롯데쇼핑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롯데백화점, 롯데아울렛, 롯데마트, 롯데몰 등 많은 거의 쇼핑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업체를 다 가진 것이 롯데쇼핑이다. 그런데 실질적 영업순이익을 롯데를 앞서가는 기업이 있다.
어떤 기업이 롯데쇼핑을 앞서가고 있겠는가? 순매출이 2015년 1조 493억, 2019년에 2조 2천 362억, 2023년 3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하는 이 기업은 다이소이다. 다이소의 박정부 회장은 지폐의 가장 낮은 단위인 천원의 힘을 믿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천원짜리 팔아서 3조를 벌 수 있을까? 하는 말을 한다. 그때 박정부 회장은 경영가치로 이겨내었다.
그러면 다이소의 경영가치는 무엇이겠는가? 다이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회사 비전과 미션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격 대비 최고의 가치를 갖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이소에는 이런 구호가 있다.
필요한 것은 다 있소(다양성) 다이소는 손님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진열해 둔다.
원하는 가격에 다 있소(가성비) 김난도 교수님은 가성비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라고 단어를 해석한다. 마찬가지로 다이소에는 원하는 가격에 가성비 좋은 물건들을 진열해 놓았다.
어디든지 다 있소(접근성) 다이소는 큰 대로변에 사람들이 접근하기 대형쇼핑몰이 있어야 하는 곳에 상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편히 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이소는 연간매출을 강조하지 않고. 다이소가 존재해야 할 목적을 강조하는 기업이었다. 이렇게 존재할 목적을 가진 다이소는 다이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면 기업경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46년간 증축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제 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성전 미문에서 만나게 된다.
왜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였겠는가? 예루살렘 성전에는 8개의 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문이 바로 미문이다. 높이가 20M가 넘는 큰 문인데, 고린도산 청동으로 제작하여 그 외면을 금으로 칠하였기 때문에 영어로는 Golden Gate 라 부른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미문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이 바로 미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기도시간에 그 미문 안으로 들어가며 모두 허영심과 교만이 가득하였다. 우리는 이런 멋진 성전을 가지고 있어! 하는 교만으로 그들은 성전을 왕래한 것이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눈에 들어왔겠는가?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의 마지막 부분과 오늘 본문은 대조를 이룬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였다. 그래서 성령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설교하였을 때 형제여 어찌할꼬? 하고 애통해 한다. 그때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말에 그들은 순종하여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 그래서 초대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초대예루살렘교회는 사람은 3천명이있지만, 건물이 없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였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있었다.
이것이 초대예루살렘 교회였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 ①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는 공동체였다. 또 ②자신의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 공동체, ③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는 장애를 가진 가난한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갈 때 장애를 가진 그 사람은 미문에 앉아서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그런데 베드로가 제 9시 기도시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면서 앉은뱅이를 본다. 그리고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6절) 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그래서 일어난 앉은뱅이가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성전이었다.
앉은뱅이가 왜 성전 안으로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갔겠는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은 자신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장애로 인하여 눈물 흘리는 어머니가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자신을 괴롭히고 조롱했던 사람들이 생각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은 성전으로 달려간다.
얼마나 성전에 들어가고 싶었으면 곧 바로 성전으로 달려갔겠는가? 그런데 유대인들을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한 유대교도들은 그 앉은뱅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런데 은과 금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초대교회는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이런 능력의 교회가 될 수 있었겠는가? 아빠 다람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엄마 다람쥐가 아빠 다람쥐에게 여보 외로워요. 나도 외롭고 아이들도 외로워해요 라고 말했다. 그 말에 아빠 다람쥐는 화를 내면서 외롭다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에 잠을 자던 형님 다람쥐와 동생 다람쥐가 잠을 자다 깨었다. 그리고 형님 다람쥐는 동생 다람쥐에게 저기 저 분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다 사주는 분이야 하고 말했다. 그 말에 동생 다람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저 분에게 우리 아빠도 사달라고 하자.
가정에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돈만 있으면 건강한 가정이 세워지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 중에 이 아빠의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교회가 교회되려면 재정이 많고, 또 많은 사람이 모이고, 많은 사역을 해야 교회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교회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자여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가? 열왕기상 6장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이 되던 해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다. 그리고 열왕기상 7장에는 솔로몬 궁을 건축하는 이야기와 함께 성전 기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백향목과 금으로 된 성전이 완공되었고, 또 예배를 드릴 때 필요한 모든 기구가 다 준비된 것이다.
그러면 솔로몬 성전의 건축은 끝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레바논 백향목으로 건축하고 그 위에 금으로 칠을 하여도 솔로몬 성전이 성전 될 수 있는 것은 열왕기상 8장의 사건이 있어야 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를 다 소집하고 레위인에게 언약궤를 어깨에 메어 성전으로 옮기게 한다. 그래서 언약궤가 성전에 입성할 때에 솔로몬 성전은 성전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교회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내주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실 때 여러분의 몸은 성전이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저와 여러분이 예배하는 이곳에 임재하실 때 우리교회는 성전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초대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초대예루살렘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었던 것은 건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세울 때 6절로 선포하는 것이다.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보았을 때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을꼬? 하는 눈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베드로는 주머니를 뒤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은과 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은과 금이 없으니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라고 하지 않고,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특징을 한번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형제여 어찌할꼬? 하며 애통해 한다. 그때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여서 그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초대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초대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떡을 떼며 교제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고, 또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에 힘썼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코끼리를 냉장고 안에 넣는 3단계가 있다. 냉장고 문을 연다. 그리고 코끼리를 넣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코끼리를 넣는 것이다. 그러면 기린을 냉장고에 넣는 4단계 방법을 아는가? 기린을 냉장고에 넣으려면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꺼낸다. 그리고 기린을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고, 기린을 넣는 것은 말로는 참 쉽다. 그런데 실제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정말 힘들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전파하고, 말씀대로 능력을 나타내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는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놀라운 모습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나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죄인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다는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칠 때에 한 상에 둘러서 밥을 먹는 형제가 될 수 있고, 또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나눠주어도 아깝지 않는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초대예루살렘 교회이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화려함과 웅장함은 있었지만,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 그런데 성전에서 더부살이로 예배를 드려야 했던 초대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고, 또 그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가 있었기에 능력이 있고, 또 교제가 있는 교회로 세워져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자여교회 안에 예수님이 있는가? 아니 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감사의 표현이 나타나고 있는가? 예수님이 함께하는 교회, 그 예수님을 향하여 감사가 넘치는 교회 자여교회로 세워져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