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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와서 반남박씨 후손들 중에 반남박씨를 대한민국 "6대 국반(國班)" 중의 하나라고 으스대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국반(國班)"이 뭐란 말인가? 추측컨대, '국가 차원의 양반(兩班)'(?!)이란 뜻으로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21세기 민주 평등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무슨 시대착오적(時代錯誤的)인 양반 타령? 신분주의 계급사회였던 조선 시대 문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國班이라는 말이 왜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쓰이고 있는 걸까?
문헌을 검색해 보면, '國班'이란 말은 사학자 이성무(1937~2018) 교수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하 <민문대백과>)의 '양반(兩班)' 항목에서 사용한 것이 시초가 되어 일반 대중에 유포된 말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성무 교수도 <민문대백과>의 초판(1991년/1995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수정판(인터넷판)(2022년)에서 양반의 위계(位階) 가장 위에 "國班"이라는 범주를 새로 만들었다. 그는 兩班의 위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이성무 교수는 2018년에 사망하였다고 하는데 <민문대백과> '양반' 항목의 수정본(인터넷본)은 2022년으로 되어 있어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그리하여 같은 양반 중에는 문묘에 종사된 대현(大賢)이나 종묘 배향공신(配享功臣)을 배출한 국반(國班) 및 대가(大家)ㆍ세가(世家) 이외에 도반(道班) · 향반(鄕班) · 토반(土班) · 잔반(殘班) 등의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인터넷판. 兩班항). ※녹색으로 표시된 구분은 초판에는 없었음. ※"대가(大家)"와 "세가(世家)"도 國班과 같은 위계의 양반인지는 모호해 보인다. 다만, 이성무 교수 이후의 호사가(好事家)들은 大家와 世家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다. '대가'와 '세가'는 국어사전에 표제 항목으로 올라 있다.)
즉, 國班은 '문묘에 종사된 대현이나 종묘 배향공신을 배출한' 양반 가문을 일컫는 말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성무 교수의 이 정의를 <위키백과>와 <나무위키>에서 사용하면서 國班의 정의를 슬쩍 비틀어 버렸다. 다음을 비교해 보라.
(1) 이성무(<민문대백과>): "문묘에 종사된 대현이나 종묘 배향공신을 배출한" 가문.
(2) <위키백과>/<나무위키>: "문묘 종사 대현과 종묘 배향공신을 동시에 배출한" 가문.
이성무 교수는 國班을 <A 또는 B(= A ∨ B)> 형식으로 정의한 반면, 두 <위키>는 <A 그리고 B(= A ∧ B)>의 형식으로 정의하고 있어, 전자의 경우(논리합: disjuction)는 그 범위가 상당히 넓은 반면, 후자의 경우(논리곱: conjunction)에는 딱 6개 가문만 들어가게 된다. 바로 이 후자의 범주에 반남박씨가 들어가 있다. 즉, 반남박씨인 현석공(휘 세채世采: 1631~1695)이 바로 문묘(1764년 3월)와 종묘(숙종 묘정: 1722년 5월)에 함께 배향되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라. 신분주의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도 없었던 '國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21세기 민주 평등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느닷없이 가부장적(家父長的) 개념의 가문(家門)을 들고나와 무슨 카스트 제도처럼 가문의 등급을 나누다니 이 얼마나 가당찮은 행위인가. 그것도 한 개인의 자의적(恣意的)인 잣대에 의해서 말이다!
현석공(=문순공)이 1764년(영조 40년) 5월 15일(음) 영조의 특지(特旨)로 문묘에 종향(從享)됨으로써 반남박씨 가문 전체가 갑자기 國班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닌가. (말도 안되지만) 그래도 만약 문순공(=현석공) 혈손 가문이 國班이 된다고 한다면 그건 그나마 인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밖의 모든 반남박씨들이 하루 아침에 느닷없이 國班이 되다니 무슨 도깨비 놀음도 아니고 . . . .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런 이상한 말놀이에 취해 우쭐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현석공 한 분으로 인해 전체 반남박씨가 어느 날 갑자기 國班이 되었다면, 같은 논리로 경술국적(庚戌國賊) 8인 중에 평재공(휘 제순齊純: 1858~1916)이 들어 있으니 반남박씨를 대한민국 '8대 국적(國賊)' 가문이라 부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반남박씨 사람들은 기분이 무척 상할 것이다. 아니, 불같이 화를 내면서 공격적 태도를 보일지도 모른다. 성과 본이 같은 어느 특정한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성관(姓貫) 전체가 國班이 되기도 하고 國賊이 되기도 한다면,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닌가.
시대착오적인 '6대 國班'이란 말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다. '6대 國班'이라니!!! 참 낯간지러운 말이다. 온몸이 오글거리고 듣기 민망한 말이다. 게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보면 國班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여 A貫B氏도 國班, C貫D氏도 國班, . . . . 너도 國班 나도 國班이란다. 國班이 뭐라고 . . . . . '국반'(!?)의 후예들이여, '국반'이라 허세 부리기 전에 행동부터 '국반답게' 하라. 나는 국반도 아니려니와 국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나는 얼마 안되는 논밭 뙈기를 가지고 평생을 산골에서 농사짓고 사셨던 우리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 점 불만도 원망도 부끄러움도 없다. '國班'이여,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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