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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쌍계암 삼소굴 원문보기 글쓴이: 상민 시자
오늘은 《금강삼매경》 가운데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내용이 많이 어렵습니다.
평생 수행하신 수행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래서 신라 원효대사께서는 금강삼매경을 주석한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지으셨고, 이 논저와 함께 《기신론소》는 원효 사상을 대표하는 백미라고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이라 하였습니다.
어떤 어려운 내용이라 하여도, 백번만 읽고 살핀다면, 다 뜻이 통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렵다 하여 한번만 보지 마시고, 80번 종도만 읽으신다면, 뜻이 통하여, 일맥상통하는 부처님 가피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北涼失譯人名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기사굴산(영취산) 안에서 큰 비구의 무리 1만 명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니, 그 이름은 사리불, 대목건련, 수보리 등으로서 이와 같은 많은 아라한들이었다. 一時佛在王舍大城耆闍崛山中,與大比丘衆一萬人俱,皆得阿羅漢道,其名曰舍利弗、大目犍連、須菩提,如是衆等阿羅漢;
또한 보살마하살 2천 명이 함께 계셨으니, 그 이름은 해탈보살, 심왕보살, 무주보살 등으로서 이와 같은 보살들이었다. 다시 장자 8만 명도 함께 계셨으니, 그 이름은 범행(梵行) 장자, 대범행(大梵行) 장자, 수제(樹提) 장자 등으로서 이와 같은 장자들이었다.
또한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의 사람인 듯 아닌 듯한[人非人] 60만억 무리가 있었다.復有菩薩摩訶薩二千人俱,其名曰解脫菩薩、心王菩薩、無住菩薩,如是等菩薩;復有長者八萬人俱,其名曰梵行長者、大梵行長者、樹提長者,如是等長者;復有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人非人等六十萬億。
그 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일체의 대중을 위해 대승경전을 말씀하셨으니, 일미(一味)․진실(眞實)․무상(無相)․무생(無生)․결정(決定)․실제(實際)․본각(本覺)․이행(利行)이라 표현하셨다. 爾時,尊者大衆圍遶,爲諸大衆說大乘經,名一味眞實無相無生決定實際本覺利行。
“만일 이 경전을 듣거나 네 구절의 게송만을 받아 지녀도 이 사람은 곧 부처님의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일체 중생을 위한 위대한 선지식이 되리라.”若聞是經,乃至受持一四句偈,是人則爲入佛智地,能以方便敎化衆生,爲一切衆生作大知識。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을 말씀하신 뒤,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으셔서는 곧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셨다.佛說此經已,結加趺坐,卽入金剛三昧,身心不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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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상법품(無相法品) 金剛三昧經無相法品第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삼매로부터 일어나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경지는 참다운 법의 모습인 결정성(決定性)에 들어가기 때문에 방편과 신통이 모두 모습 없는[無相] 이익을 얻게 하느니라. ”爾時,尊者從三昧起,而說是言:“諸佛智地入實法相,決定性故,方便神通皆無相利。
유일한 깨달음의 진리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모든 2승(성문, 연각)들이 알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부처님과 보살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라. 제도할 수 있는 중생에게는 모두 한맛[一味]의 가르침을 설하느니라.一覺了義難解難入,非諸二乘之所知見,唯佛菩薩乃能知之,可度衆生皆說一味。”
이 때에 해탈보살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正法)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상법(像法)이 세상에 머무르는 어지러운 시대[末劫/말법]에 사는 5탁(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의 중생들은 가지가지의 악업이 많아 3계를 윤회하며 벗어날 때가 없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후세 중생을 위해 한맛(일미. 一味)의 결정적인 진실을 설하셔서 저 중생들이 함께 해탈하도록 하여 주십시오.”爾時,解脫菩薩卽從座起,合掌䠒跪而白佛言:“尊者!若佛滅後,正法去世、像法住世,於末劫中,五濁衆生多諸惡業,輪迴三界無有出時。願佛慈悲,爲後世衆生宣說一味決定眞實,令彼衆生等同解脫。”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해탈보살)여, 그대는 내가 세상에 나온 원인을 물어서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며, 저 중생들이세상에 나온 결과를 얻게 할 수 있다. 이 오직 하나뿐인 중대한 일[一大事]은 헤아릴 수 없으니, 위대한 사랑과 연민[大慈大悲] 때문이니라. 내가 만일 말하지 않는다면 즉시 인색함과 탐욕에 떨어지리니, 너희들은 한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해 설하리라. 佛言:“善男子!汝能問我出世之因,欲化衆生,令彼衆生獲得出世之果。是一大事不可思議,以大慈故、以大悲故,我若不說卽墮慳貪。汝等一心諦聽諦聽,爲汝宣說。
선남자여, 만일 중생을 교화한다면 교화한다는 생각도 없고, 교화함이 없다는 생각도 내지 않아야 그 교화가 더욱 클 것이니라.善男子!若化衆生,無生於化,不生無化,其化大焉。
저 중생들이 모두 주체[心我, <心과 心所>]라는 생각을 여의게 해야 하느니라. 일체의 주체는 본래 공적(空寂)한 것이니라. 令彼衆生皆離心我,一切心我本來空寂,
만일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마음은 허깨비처럼 변화[幻化]되지 아니할 것이며, 허깨비[幻]도 없고 변화(變化)도 없으면 바로 생김[生]이 없는 법을 얻을 것이요, 생김이 없는 마음은 변화함이 없는 데 있느니라.”若得空心,心不幻化。無幻、無化卽得無生,無生之心在於無化。”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마음의 바탕은 본래 공적합니다. 그 공적한 마음의 주체는 아무런 색깔이나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닦아서 본래 공적한 마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衆生之心性本空寂,空寂之心體無色相。云何修習得本空心?願佛慈悲爲我宣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일체의 마음의 모습은 본래 근본이 없으며, 본래 근본이 없는 곳은 공적하여 생김이 없느니라. 佛言:“菩薩!一切心相本來無本,本無本處空寂無生,
만일 마음에 생김이 없으면 바로 공적함에 들어가나니, 공적한 마음의 경지에서 바로 마음의 공함을 얻느니라. 若心無生卽入空寂,空寂心地卽得心空。
선남자여, 모습[相]이 없는 마음에는 마음〔대상〕도 없고, 주체〔心我〕도 없나니 일체의 법의 모습도 이와 같으니라.”善男子!無相之心無心、無我,一切法相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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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처님께서 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생김이 없는 법인[무생법인 無生法忍]의 가르침은 본래 생김이 없는 것이다. 爾時,佛告心王菩薩言:“善男子!無生法忍法本無生,
모든 〔의식의〕 흐름은 생김이 없는 것이면서도, 생김이 없는 〔의식의〕 흐름이 아니기에. 생김이 없는 법인을 얻었다고 한다면, 곧 허망한 것이니라.”諸行無生 非無生行,得無生忍卽爲虛妄。”
심왕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생김이 없는 법인을 얻은 것이 곧 허망한 것이라 한다면, 얻을 것도 없고 법인(法忍)도 없는 것은 허망하지 않은 것입니까?”心王菩薩言:“尊者!得無生忍卽爲虛妄?無得無忍應非虛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왜냐 하면 얻을 것도 없고, 법인도 없다는 이것이, 바로 얻을 것이 있는 것이니라. 佛言:“不也。何以故?無得無忍是則有得,
얻을 것이 있고, 법인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생김이 있는 것이니라. 얻는다는 데서 생김을 지니게 되며, 얻게 되는 법을 지니므로 아울러 허망하게 되느니라.”有得有忍是則有生。有生於得,有所得法,竝爲虛妄。”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일러 법인도 없고 생김도 없는 마음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하옵니까?”心王菩薩言:“尊者!云何無忍無生心而非虛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인〔法忍〕도 없고 생김도 없는 마음이란, 마음에 형태나 단락(段落)이 없다는 것이니, 佛言:“無忍無生心者,心無形段,
마치 불의 바탕과 같은 것이니라. 불은 비록 나무 속에 있지만 그것은 결정된 바가 없는 바탕에 있는 것이므로,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요, 바탕은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니라. 猶如火性,雖處木中其在無所,決定性故。但名、但字,性不可得,
이치를 드러내기 위하여 설명을 빌려서 이름으로 삼았지만, 이름도 얻을 수 없듯이 마음의 모양도 그러하니라. 欲詮其理假說爲名,名不可得;心相亦爾,
그 있는 데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니, 마음이 이러한 것인 줄 알면 이것이 바로 생김이 없는 마음이니라.不見處所,知心如是,則無生心。
선남자여, 이 마음의 바탕과 모습은 또한 아마륵이란 과일[阿摩勒果<망고, 경전에서 겉과 속이 다른 경우를 설명할 때 주로 많이 인용되는 나무 열매로써, 아마라식(8식)에 비유함>]과 같아서 본래 스스로 생긴 것도 아니요, 다른 것을 따라서 생긴 것도 아니며, 함께 생긴 것도 아니요, 원인[因]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생김이 없는 것도 아니니라. 善男子!是心性相又如阿摩勒果,本不自生、不從他生,不共生、不因生、不無生。
왜냐 하면 끊임없이 새 것과 옛 것이 교체[代謝]하는 것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인연으로 일어나지만 생기는 것이 아니며, 인연으로 사라지지만 소멸하여지는 것도 아니니, 숨고 나타나는 것은 형상이 없는 것이니라. 何以故?緣代謝故。緣起非生、緣謝非滅,隱顯無相,
근본적인 이치는 적멸하여 있을 수 없는 곳에 있으며, 머무르는 것도 볼 수 없나니, 결정성(決定性)이기 때문이니라.根理寂滅。在無有處,不見所住,決定性故。
이 결정된 바탕은 또한 동일한 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요, 아주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늘 있는 것도 아니니라.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나오는 것도 아니요, 생기는 것도 아니며 소멸하는 것도 아니니라. 是決定性,亦不一、不異,不斷、不常,不入、不出,不生、不滅,
모두 네 가지의 비방[四謗<①증익방(增益謗): 존재하지 않거나 실체 없는 것에 대해 '있다'고 덧붙여 집착하는 비방. ②손감방(損減謗): 실제로 존재하는 연기(緣起)의 이치나 공(空)의 작용을 '없다'고 잘라내어 부정하는 비방. ③상배방(相違謗): '있다'와 '없다'를 동시에 맞다고 주장하며 서로 모순에 빠지는 비방. ④희론방(戲論謗):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非有非無)'는 식으로 말장난이나 분별에 치우쳐 진실을 흐리는 비방>]을 여의었고 말의 길이 끊어졌나니, 離諸四謗言語道斷;
생김이 없는 마음의 바탕[心性]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無生心性亦復如是。
무엇이 생김과 생기지 않음, 법인의 있음과 법인의 없음을 말하는 것인가? 云何說生不生、有忍無忍?
만일 마음에 얻음이 있느니 머묾이 있느니, 또 그 이치를 보느니 하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지혜를 얻지 못하리니, 그것은 영원한 어둠이니라. 若有說心有得、有住及以見者,卽爲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般若是爲長夜
마음의 바탕[心性]을 요별(了別)하는 자는 마음의 바탕이 이와 같아서, 바탕 또한 이와 같이 생김도 없고, 행함도 없음을 아느니라.”了別心性者 知心性如是;性亦如是,無生、無行。”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은 본래 행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 것 같으면, 모든 행함은 생김이 없을 것이며, 행함[行爲]을 일으키는 것도 생기지 않을 것이니, 생기지도 않고 행함도 없는 것이 바로 생김이 없는 행함[無生行]이라 하겠습니다.”心王菩薩言:“尊者!心若本如無生於行,諸行無生。生行不生,不生無行,卽無生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생김이 없는 이치로 생김이 없는 행함을 깨달았느냐?”佛言:“善男子!汝以無生而證無生行也?”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아니옵니다. 왜냐하면 만일 생김이 없는 행함이라면, 바탕과 모습[性相]이 공적하여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얻을 수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말도 없고 해설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것일진대, 어떻게 깨닫는다고 하겠습니까? 心王菩薩言:“不也。何以故?如無生行,性相空寂,無見、無聞,無得、無失,無言、無說,無知、無相,無取、無捨,云何取證?
만일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면 쟁론(爭論)이 되리니, 다툴 것도 없고 논의할 것도 없는 것이, 생김이 없는 행함이기 때문입니다.”若取證者,卽爲諍論。無諍、無論,乃無生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佛言:“汝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也。”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보리의 바탕 속에는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깨달을 것도 없고 알 것도 없으며, 분별할 모습도 없습니다. 心王菩薩言:“尊者!我無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菩提性中無得、無失,無覺、無知,無分別相,
분별이 없는 속에서 청정한 바탕에 합일하나니, 그 바탕은 아무것도 혼합되어 있지 않고 말씀과 해설도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도 아니며 모르는 것도 아니니, 가지가지의 본받아야 할 행함도 이와 같습니다. 無分別中卽淸淨性。性無閒雜,無有言說,非有、非無,非知、非不知;諸可法行亦復如是。
왜냐 하면 일체의 본받아야 할 행함은 있는 곳을 볼 수 없으며, 결정성(決定性)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얻느니 얻지 못하느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데,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겠습니까?”何以故?一切法行,不見處所,決定性故。本無有得、不得,云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그대가 말한 것처럼 일체의 마음의 흐름[心行]은 모습이 없으며, 주체〔體性〕는 고요하여 생김이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느니, 지니고 있는 가지가지의 식(識)도 이와 같으니라. 佛言:“如是,如是。如汝所言,一切心行,不過無相 體寂無生,可有諸識亦復如是。
왜냐 하면 눈과 눈의 감각은 다 공적한 것이며, 식도 공적하여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있을 수 없으며, 何以故?眼、眼觸悉皆空寂,識亦空寂,無有動、不動相,
안으로 3수〔受; 고(苦; 몸이나 마음에 싫고 괴로움을 느끼는 상태)․ 락(樂; 몸이나 마음에 좋고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 사(捨;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무덤덤한 상태)〕 없으니 3수가 적멸하느니라. 內無三受,三受寂滅;
귀․코․혀․몸․마음 그리고 의식과 말나(末那/7식)와 아리야식(阿梨耶識/8식)도 역시 이와 같아서 모두 생기하지 않는 적멸한 마음이며,생김이 없는 마음이니라.耳、鼻、舌、身、心意意識,及以末那、阿梨耶識亦復如是,皆亦不生寂滅之心及無生心。
만일 적멸한 마음을 일으키거나 생김이 없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생김이 있는 행함이요, 생김이 없는 행함이 아니니라. 若生寂滅心,若生無生心,是有生行,非無生行。
심왕보살이여, 안으로 3수〔受; 고(苦; 몸이나 마음에 싫고 괴로움을 느끼는 상태)․ 락(樂; 몸이나 마음에 좋고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 사(捨;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무덤덤한 상태)〕와 菩薩內生三受、
3행〔行; ①복업(福業/행): 욕계의 선업이며, 행복한 과보를 부른다. ②비복업(非福業): 욕계의 악업이며, 고통스러운 과보를 부른다. ③부동업(不動業): 색계·무색계의 선정(禪定)에 의한 선업이며, 흔들림 없는 과보를 낳는다; 복행(福行)․죄행(罪行)․부동업(不動業:無動行)〕과 三行、
3계〔戒; 대승보살이 지녀야 할 세 가지 계율인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말함. ①섭률의계(攝律儀戒): 모든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부처님의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계. ②섭선법계(攝善法戒): 마음을 다해 선한 일을 실천하고 공덕을 쌓는 계. ③섭중생계(攝衆生戒): 이웃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구제하는 대자비의 계〕를 일으키느니라.三戒,
만일 이미 적멸하여 마음을 내었더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은 항상 적멸하여 성과[功]도 없고 쓰임[用]도 없으며, 적멸의 모습[寂滅相]도 깨닫지 못하고, 또한 깨달음이 없는 데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若已寂滅,生心不生。心常寂滅,無功、無用,不證寂滅相,亦不住於無證,
머물 곳이 없는데 있을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모습 없음[無相]을 지니면 3수와 3행과 3계가 없는 것이니, 모두 적멸하고 청정하여 머묾도 없느니라. 可處無住摠持無相,則無三受、三行、三戒,悉皆寂滅淸淨無住,
삼매에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좌선(坐禪)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니 생김도 없고 행함도 없느니라.”不入三昧、不住坐禪,無生、無行。”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선(禪)은 능히 움직임을 섭수(攝受; 부처나 보살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거두어들여 올바른 가르침으로 이끄는 교화의 순리적 방법)하여, 가지가지의 허깨비와 어지러움을 안정시키거늘, 어찌하여 선(禪)이라 하지 않습니까?”心王菩薩言:“禪能攝動,定諸幻亂。云何不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심왕보살이여,
선(禪)은 곧 움직임이니, 佛言:“菩薩禪卽是動,
움직이지도 않고, 선(禪)이라 하지도 않는 것이, 생김이 없는 선[無生禪]이니라. 不動、不禪是無生禪。
선(禪)의 근본 바탕[本性]은 생김이 없는 것이니, 생김을 여읜 선의 모습[禪相]이요, 禪性無生,離生禪相;
선(禪)의 본성은 머묾이 없는 것이니, 머묾을 여읜 선(禪)의 움직임이니라. 禪性無住,離住禪動。
만일 선(禪)의 근본 바탕[本性]에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이 없는 줄 안다면, 생김이 없음(무생선 無生禪)을 얻으리라. 若知禪性無有動靜,卽得無生;
생김이 없는 지혜는, 또한 머무는 것에 의지하지 않으며, 마음 역시 움직이지 않나니, 無生般若亦不依住,心亦不動;
이러한 지혜 때문에, 그러므로 생김이 없는 반야바라밀(무생반야바라밀)을 얻느니라.”以是智故,故得無生般若波羅蜜。”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생김이 없는 지혜[無生般若]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므로, 어디에서도 떠나지 않습니다. 心王菩薩言:“尊者!無生般若於一切處無住於一切處,無離心、
마음에 머물 곳이 없으며, 처소가 없는 데에, 마음을 머무르게 하여, 머묾도 없고 마음도 없습니다. 無住處,無處住心、無住無心,
마음이 생김 없이 머묾[心無生住],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이 바로 생김이 없는 머묾입니다.心無生住,如此住心,卽無生住。
세존이시여, 마음이 생김이 없이 머무르는 것은 헤아려 생각할 수 없는 것이거늘, 헤아려 생각할 수 없는 가운데서 말할 수 있습니까?”尊者!心無生住不可思議!不思議中可不可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佛言:“如是,如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