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성신관(五輪成身觀)
밀교의 수행은 불‧보살 등의 제존 형상과 의미를 나타내는 인(印, mudrā), 깨달음의 내용을 드러낸 진언(mantra)과 종子(bīja) 등을 선정 중에 사용한다. 또 입단‧관정(abhiṣeka)은 진언밀교의 가르침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것을 갖추지 못하면 가르침을 밝히지 않고 비밀로 한다.
불교사적으로 밀교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위주로 종자관‧오자엄신관‧오상성신관, 만다라 의궤 등의 행법이 체계화되었다. 이것은 유식의 전식득지(轉識得智) 이념을 밀교적 수행법으로 포섭한 것이다. 이는 행법의 밀의성을 강조하며 현교와 달리 '즉신성불'이라는 수행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오륜관(五輪觀, pañca-maṇḍalakasmṛti)의 전거가 되는 『대일경』은 수행을 중요시하는 밀교의 특성으로, 대승교학을 밀교의 수행법으로 포섭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승교학의 핵심 주제였던 중관(Mādhyamika)‧유식(Vijñaptimātra)‧여래장(tathāgata-garbha) 사상 등이 밀교의 수행법과 연관되어 설해진다. 이러한 교의에 대한 밀교적 해석과 더불어, 수행법 체계 안에 이를 증득하는 방법을 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관학파에서 이해한 직관적 진리관과 유식학파에서 탐구한 분석적 인식론 등이 밀교의 근원적 원리에 통합되고, 다시 신비적 직관과 전인적 종교체험으로 현실세계에 현현하게 된다.
또 『대일경』의 일체지지(一切智智)는 지‧수‧화‧풍‧공이라는 현상계의 물질적 상징성을 차용하여, 구체적 형태로 일상 원리 가운데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진리성 자체이며, 그 속에 신비적으로 체험하는 가능성을 내포한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일체지지는 현실을 초월한 이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살아 움직이는 원리이다.
다음으로 『금강심론』에서 설하는 오륜관을 살펴보기로 한다.
위의 인용문에는 먼저 오대의 모형인 오륜성신도와 이를 하나의 윤원으로 통합한 그림을 제시한다. 그리고 오륜관은 오대로 자재를 얻어 오지여래를 성취하는 선정으로 다음과 같이 관하라고 한다. 즉, 앞의 오륜성신도를 별도로 관하거나, 하나의 윤원에 합작한 그림[五智總觀圖]을 총체적으로 관하라고 설한다. 다시 말해 일승관의 일륜에서 오륜을 따로 관찰할 수 있고, 또 오륜이 곧 일륜이라는 일승의 도리를 총괄적으로 관찰한다. 동시에 오지여래는 오방‧오불로 짝할 바가 아니며, 곧 방위 없는 한 부처임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즉, 별관의 오륜이 총관의 일륜이 되는 일승의 도리이며, 오방‧오불이 결국에 한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고, 자신의 다섯 지혜로 바른 깨달음을 얻기를 설하고 있다.
그런데 벽산이 여기에 오지를 결합한 것은 금강계와 태장계의 융합을 시도한 것이다. 즉, 공대는 법계체성지, 풍대는 평등성지, 화대는 묘관찰지, 수대는 대원경지, 지대는 성소작지로 생각하고, 각기 별도로 관찰하거나 오지총관도(五智總觀圖)를 총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본래 오대의 종자를 몸에 가지(加持)하는 것에서, 종자를 윤형으로 하나씩 관하거나 전체로 관하는 법을 설한다. 더욱이 다섯 가지 윤형에 오지여래를 배대하여 자기 몸의 성품으로 관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선무외(善無畏, 637~735) 번역의 『존승불정수유가법의궤』와 『삼종실지파지옥법』 의궤로, 모두 양부경전의 내용을 통합하는 측면에서 서술되었다. 『삼종실지파지옥법』에는 중국의 오행‧의학사상의 영향으로 오장신체관으로 변용되며, 정신적 향상의 깨달음과 인간의 현실적 생활이 개입한 결과이다. 구까이도 오장을 오자로 가지하고 오장을 오대‧오불‧오지로 관하여, 즉신성불하는 『오장삼마지관(五臟三摩地觀)』으로 대일여래의 몸을 시현하는 설이 있다. 진언종 신의파(新義派)의 조사인 각번(覺鑁, 1095~1143)도 『오륜구자명비밀석(五輪九字明秘密釋)』으로 오장설의 교의를 설하였다. 또 조선 중기의 저술인 『비밀교』에도 오장신체관을 전용한 내용이 있다. 사실 『비밀교』 찬술 이전에도 칠대법체설의 『칠대만법』(선조 2년, 1567)이 간행되어 우주적 진리와 인체의 그것을 동일시하는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여기에 무주는 열반 사덕을 대입하여 공덕을 설하고 있다. 네모진 것은 지(地)의 정덕(淨德)이고, 둥그런 원은 아덕(我德)이며, 삼각형은 상덕(常德)이고, 반원은 낙덕(樂德)이며, 공(空)은 정상의 한점으로 가운데 점에 해당한다. 평등성지의 낙덕은 지나치지 않고 원만하게 조화를 이룬 것이며, 선정의 기쁨이 넘쳐도 마장이 되지 않는 청정무구한 순수한 기쁨이다. 묘관찰지의 상덕은 일체존재를 원융무애하게 차별 없이 비추어 보는 지혜이다. 대원경지의 아덕은 성상체용(性相體用)을 융통무애하게 한번에 비추어 보는 지혜이다. 성소작지의 정덕은 조금도 오염 없는 일체 무작위 공덕의 지혜이다.
이처럼 오륜관에 열반 사덕의 배치는 오지여래의 유입으로 인하여, 대일여래의 네 가지 별덕인 사불의 공덕으로 상응하는 것이다. 그 공덕을 보면 평등의 순수한 낙덕, 차별 없는 항상함의 상덕, 본체와 현상이 무애한 아덕, 오염 없는 무작위의 정덕으로 오지여래의 공덕이라 할 수 있다. 전술한 것처럼 중국이나 일본도 오자관(五字觀)에 그들의 문화나 사상을 삽입하여,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행법으로 계승‧발전시켰다. 아래에서 무주가 설하는 오륜관을 들어보기로 한다.
자기 몸을 중심으로 해서 관찰하는 법은 밀교에서 오륜신관(五輪身觀) 또는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이라 한다. "내 아랫도리는 지(地)에서 성소작지를 갖추었고, 내 복부는 대원경지이기 때문에 아주 원만스러운 지혜를 다 갖추었으며, 내 심장은 묘관찰지이기 때문에 모든 관찰하는 지혜를 다 갖추었고, 내 목 위에는 풍(風)이기 때문에 평등성지를 다 갖추었으며, 공(空) 자리는 머리 꼭대기인 정상으로서 가운데 중심인 동시에 총덕을 온전히 갖추었다."
위의 인용문은 자신의 신체 네 부분과 네 가지 지혜를 차례로 배대하며, 마지막 정수리는 공(空)대로 온갖 공덕이 모이는 법계체성지에 해당한다. 이처럼 현실적이고 다가가기 쉽게 오지여래의 공덕에 맞춰 설하고 있다. 본래의 오자관(五字觀)이 종자를 중심으로 신체와 본존이 가지되는 것이라면, 벽산의 오륜관은 윤형과 오지를 신체에 배대하여 관하는 수행법이다. 사실 동아시아 불교는 범자의 종자에 익숙하지 않고, 실제로 불보살을 더 친근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즉, 불보살을 찬탄하거나 기원하는 것을 선호하므로, 오지여래의 공덕을 함께 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대일경』의 실천의궤는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의 종자인 아(阿, a)‧바(縛, va)‧라(囉, ra)‧하(唅, ha)‧카(佉, kha)를 진언행자의 몸에 배치하여, 수행자의 육신과 법계의 실체가 다르지 않음을 관상하는 수행이다. 경전의 설법을 들어보기로 한다.
나는 본불생[本不生, 본래부터 태어나지 않는]의 이치를 깨달아 언어의 길을 떠났고, 모든 번뇌에서 해탈을 얻고 인연을 멀리 여의었다. 허공 같은 공(空)을 알아 실상의 지혜를 냄과 같고, 모든 어둠을 이미 여읜 티 없는 제일의 실제이다. … 본존유가(本尊瑜伽)에 안주해서 오자에 가지(加持)하는데, 각기 하체‧아랫배‧가슴‧정수리‧미간에 마음을 집중하여 차례로 맞게 안립한다.
경전에는 본불생(Ādyanutpāda)의 법을 깨닫고 언어를 여의어 번뇌에서 해탈하며, 허공같은 공(空)을 아는 실상의 지혜이고 청정한 제일의 실제라고 설한다. 이는 다름 아닌 종자의 뜻을 차례로 나타낸 것이다. 첫 구절은 아(阿)자와 바(縛)자에 해당하는 의미이며, 둘째 구절은 라(囉)자와 하(唅)자에 상응하는 뜻이고, 마지막 공(空)은 카(佉)자에 해당하는 의미이다. 이처럼 다섯 종자를 각기 해당 몸에 안치하여 본존유가를 실천하며, 불타 가지력의 실상 지혜인 반야의 깨달음으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행자는 자신의 몸인 오륜에 대일여래를 뜻하는 다섯 종자를 배치하여, 자신의 몸을 법계의 대일여래로 관상하는 것이다. 자신과 대일여래의 본래 동질성을 체현하는 입아아입관(入我我入觀)의 수행법이라 한다. 종자의 본래 뜻으로 바자는 범어의 언어(vāktva), 라자는 과실(rajas), 하자는 인연(hetva), 카자는 허공(kha) 등의 앞 글자에서 온 것이며, 이로 인하여 일체지지의 자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자는 불생(不生, anutpāda)에서 온 개념이며, 아자 없이 자모(字母)를 이룰 수 없고 일체 가르침의 근본이라 한다. 아래에서 오자‧오색‧오대와 몸의 배치를 살펴보기로 한다.
'아'자는 금색이 두루하고 금강륜(金剛輪)의 작용이 되며 하체에 가지되어 유가좌(瑜伽座)라 한다. '바'자는 안개 속의 흰색 달빛이고 아랫배에 가지되며 대비수(大悲水)이다. '라'자는 세모의 첫 햇살처럼 진한 붉음이며 심장에 가지되고 지화광(智火光)이다. '하'자는 풍륜 가운데 강한 불꽃의 흑색이고 미간에 가지되며 자재력(自在力)이라 한다. '카'자는 공점을 더해 일체색이 되는 모양이며 정수리에 가지되므로 대공(大空)이라 한다.… 발에서 배꼽까지 대금강륜을 이루고, 이로부터 심장까지 수륜을 사유해야 하며, 수륜 위에 화륜, 화륜 위에 풍륜이 있다.
아자는 황색으로 하체에 가지되며 지대의 금강좌이고, 바자는 흰색으로 아랫배에 가지되며 수대의 대비수이다. 라자는 적색으로 가슴에 가지되고 화대의 지혜광이며, 하자는 흑색으로 미간에 가지되고 풍대의 자재력이며, 카자는 일체색으로 정수리에 가지되고 공대의 허공이다.
금강륜에서 허공륜까지는 거꾸로 하면 기세간의 안립 순서이며, 오륜을 각기 식재(息災)‧증익(增益)‧항복(降伏)‧섭소(攝召)‧성취 등으로 설한다. 이를 대응하면 금륜에서 재난을 없애고, 수륜에서 복덕을 증진하며, 화륜에서 번뇌를 항복받고, 풍륜에서 성품을 섭수하며, 허공륜에서 일체사(一切事)를 성취하게 된다. 마치 깨달음을 성취하는 단계와 유사하며, 금강계 오위(五位)의 발심‧수행‧보리‧열반‧방편과도 통한다. 신체적으로도 허리 아래에서 가슴을 거쳐 정수리까지 이르면 무언가 초탈되는 느낌이다.
또 일체색이라는 것은 『금강심론』의 "고요한 본체는 바람 성품의 검은 금색, 불의 성품의 붉은 금색, 물의 성품의 흰 금색, 땅의 성품의 누런 금색 등이 순수하게 섞여, 자마금색(紫磨金色)의 한 줄기 광명이 항상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색을 말한다. 각각의 색에 금색을 더해 자마금색의 보랏빛[청색] 황금색이 된다. 이와 같이 일체지지는 오자‧오대‧오륜 등의 구체적인 상징으로 표현된다. 오자와 오대라는 관법의 대상과 행자의 몸인 오륜이 일치되고, 근원적 원리인 오색과 오성(五性)이 추가되어 행자의 몸과 동일함을 관하는 것이 된다. 즉, 오자‧오륜‧오색‧오대 등이 대우주인 대일여래의 상징이 되며, 이로 인해 행자의 몸과 동일하게 관하여 대일여래와 합일되는 체험을 얻게 하는 것이다.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