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기적, 허원의 완성! 백년 성지 성모당(1)
드망즈 주교가 허원을 드린지 만 2년 만인 1913년 12월 4일 주교관이 완공되었고, 1914년 10월에는 성유스티노신학교가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교구 재정은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세 번째 청원이었던 주교좌성당 증축은 기약이 없어졌고, 성모당 건립 또한 당분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6년 9월말, 대구에서는 콜레라가 번졌고 그 와중에 소세(Saucet, 蘇世德, 히포리토1877-1921) 신부가 늑막염에 걸려 생명이 위독해지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의사마저 가망이 없다고 진단한 상황에서 드망즈 주교는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신 루르드의 성모님께 다시 한번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성모님께서 소세 신부를 구해 주신다면 대성당 확장에 앞서 성모 동굴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소속 백백합보육원에 살던 아이들과 수녀들의 9일 기도가 끝나는 날, 소세 신부는 기적처럼 병세가 호전되어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드망즈 주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곧바로 약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1917년 7월 31일 동굴 부지정지 작업을 시작으로 성모당 공사를 착공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 증축을 위한 자금까지 마련되면서 주교의 세 번째 청원 또한 기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모당은 주교관과 신학교, 수녀원, 명도회관, 그리고 대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산동의 가장 아름다운 언덕에 자리 잡았습니다. 성모 동굴의 설계와 모형은 프랑스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을 본떠, 크기는 물론 바위 모양까지 실제와 가깝게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동굴을 둘러싼 외부 벽돌당은 교황 레오 13세가 로마 바티칸 정원에 지은 루르드의 성모 기념 동굴 벽돌당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1918년 1월 27일 설계도가 완성된 후, 4월 11일 바닥 정지 작업과 잔디 심기 작업이 끝났습니다. 5월27일에는 특별열차로 실어 온 돌이 동굴 아치 꼭대기에 올려졌습니다. 5월 30일 드망즈 주교는 직접 동굴 정면에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께 드린 허원)이라는 글귀를 새겼습니다.
착공 1년만인 1918년 7월 31일 완성된 동굴에 철책이 설치되고 제단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당의 주인공인 성모상이 없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대구주보 - 26년 6월 14일 교구 문화홍보국 장성녕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