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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강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 1
26.01.27(화)
이제 오늘부터는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보여주시고, 또 훈련시키시고 함께 하신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들을 불러 사역을 보내시는 파송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 또 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사역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운명이 이렇게 될 수 있고 또 제자들의 스승인 선생님 사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죠.
이 세례 요한이 갔던 그 길 이런 길을 예수님도 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도 이런 전철을 밟아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까지도 서슴없이 나갈 수 있는 각오 이것이 제자를 넘어서 사도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가복음 6장 7절 이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드디어 파송하시며 그들을 사도로 성장시키는 장면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믿음이 더욱더 커가기는커녕 갈수록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또 제대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저희들이 함께 생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는 마가복음 중반 이후를 달려갑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는 예루살렘 여행 장면 마가복음 8장 27절부터 10장 52절까지를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포인트입니다.
예루살렘 여행의 목적에 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로 점점 깊어지는 제자들의 오해와 무지
자 세 번째는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본격적으로 함께 오늘 본문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 결국은 십자가를 지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이죠.
먼저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장 27절에 빌립보 가이사랴 또 가이사레 빌립보라고도 하죠.
이 도시 아주 북단에 갈릴리 북단에 있는 휴양도시입니다.
여기에 가셨다가 그 다음에 다시 내려오셔서 갈릴리 가운데로 통과하시고 또 마가복음 10장 1절에 보면 유대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건너가십니다. 건너편으로 가셔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라고 그럽니다.
올라가시는 길로 가셨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될 도시가 있는데 바로 여리고를 거쳐서 올라가셨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자 그런데 이 모든 길을 갈 때 여행길을 갈 때 유달리 이 본문에서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길이라는 표현입니다.
길은 헬라어로 호도스라고 합니다.
호도스 길에서 벗어난 걸 엑스호도스라고 그러죠 엑스호도스
여러분 이게 어디서 많이 본 표현 아닙니까? 영어로 하면 엑소더스입니다. 탈출이죠.
탈출이라는 말은 출애굽이라는 말은 엑스로도스 길로부터 엑스 벗어난 것 이게 이제 엑소더스 출애굽이죠.
어쨌든 이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도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유달리 이 길 가는 것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하시고 이 사건이 길 중 그러니까 이 제자도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중에 일어난 사건임을 많이 강조합니다.
자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라 여러 마을로 지나가시는데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말씀하십니다. 길에서라는 표현이 등장을 하죠.
그 다음 보시면 또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 물어보십니다. 너희들이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길이 또 나옵니다.
자 그 다음에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때 또 한 사람이 와서 묻습니다.
그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죠.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있는 맹인을 치유하시는데 이 예수를 그가 보게 된 다음에 눈이 떠진 다음에 길에서 따랐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다 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얘기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도의 길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보아야 할 건가 이 전체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제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길에서 예수님을 더 발견하고 깨닫고 진심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갈수록 보지 못하게 되고 깨닫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점점 어두워지고 감겨져 간다라는 것을 우리가 이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은 8장 27절에서 10장 45절 물론 오늘 우리가 봤던 본문은 이제 10장 52절까지를 포함합니다만 이 사건 전후로 해서 벳세다 맹인이 눈을 뜨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여리고의 맹인 바디메오가 눈을 뜨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자 제자들은 점점 눈이 감기는데 이 사건 전후로 맹인들이 눈을 뜨는 이 기적들이 일어나죠.
사실 이 부분 마가복음 8장 27절부터 10장 52절 사이에는 거의 기적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귀신이 쫓겨난다든지 이런 일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단 귀신 쫓겨나는 일은 한 번 일어나는데 그것도 제자들에 관련해서 일어나고 또 어 이 눈을 뜨는 기적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데 이것은 다 제자들의 영적 무지와 대조돼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눈을 떠야 된다.
제자들도 눈을 떠야 된다라는 걸 자꾸 다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 이방인들 또 예루살렘의 다른 제자들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 그들은 눈을 뜨지만 제자들은 갈수록 무지하고 눈을 감고 있다. 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장차 고난 받아야 될 부분에 대해서 말씀 하십니다.
8장 31절에 내가 곧 십자가를 치고 끌려가고 고난받아야 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오해하죠. 그러자 예수님이 그렇게 하면 아니다.
원래 나는 이 일을 위해서 왔고 이 일을 위해 가야 된다. 다시 수정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이 제자들이 가는 길 가운데 예수님이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 게 순환 예고입니다. 예고를 하면 반드시 제자들이 오해를 하고 이 오해를 예수님이 다시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정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수난 예고와 오해와 또 바른 이해로의 교정 이것이 반복적으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만큼 제자들은 예수님을 많이 속으로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 보면 예수님을 이해하고 따르려면 내 안에 있는 고정관념과 선입견과 욕심까지도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기적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제자들에게 있는 내적 동기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결국 그 속에 있는 내적 동기들이 변해야 예수님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음을 이 전체 구도를 통해서 마가복음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본격적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에 들어가셨습니다.
자 여러분 이곳이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많은 신들을 섬기던 이 다신교의 상황 또 어마어마한 신전 앞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느냐 과연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물어보십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상황 가운데서도 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물어보시는 거죠.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을 무엇으로 인정하고 고백하고 있었느냐 선생님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고 선생님으로 계속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판신전 앞에서 예수님이 야 너희들 나를 뭘로 생각하느냐 제자들은 여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이것 말고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고백했던 또 다른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건 뭐냐하면 예수님을 향하여 유령이라고 생각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니까 하나님으로 이해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유령으로 착각하기도 했더라는 것입니다.
자 그동안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했던 호칭을 보면 상당한 오해와 무직 가운데 있다는 걸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반대로 자신을 끊임없이 계시하시는데 인자라고 계시를 종종 하셨죠.
인자는 뭐하시는 분입니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라는 건 인자가 곧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왜 죄사함은 하나님밖에 하시지 못하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이 인자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하자 너희들은 나를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을 하죠.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요. 엘리야라고도 하고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도 합니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여기 엘리야 그리고 선지자 중 하나 이것은 다 구약에 예언되었던 메시아의 예언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자 말라기 4장 9절 말씀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요.
그 다음에 신명기 18장 15절에 보면 내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 선지자 중 하나 이게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거든요.
그래서 모세 엘리야 이런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자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고백을 듣기 원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하죠. 주는 그리스도시입니다.
자 이 고백은 예수님이 원했던 하나님의 아들 귀신이 고백하고 하나님이 선포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까지는 미치지 못합니다만 그래도 예수님을 메시야 라고까지는 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이 메시아입니다.
그리스도 헬라어로 그리스도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죠 주님은 네시아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이 고백조차도 기뻐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를 칭찬을 하지요
이를 알게 한 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자 이 고백을 하고 나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경고하셨죠.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러시느냐?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 메시아에 대해서 갖고 있는 잘못된 기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아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러 예루살렘으로 가시죠.
그 메시아가 아니라 바로 이 세상 예루살렘의 왕으로 등극하실 세상 정치의 권력자로 등극하실 예수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라 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이 고백 후에 예수님께서 비로소 예수님이 어떤 사역을 감당하실지 본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이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다고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죠
또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셨다 비로소 그동안 제자들이 이 주님을 볼 수 있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이제 비로소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이 고백 이후에 예수님께서 드러내놓고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 붙들고 항변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지난번 마태복음을 공부하면서 구체적으로 자세히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생략을 하겠고요. 이렇게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의 오해를 교정시켜주십니다.
뭐라 그러느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른다. 따른다 라는 건 뭡니까? 제자도의 길을 가려거든. 이라는 겁니다.
그러려면 자기 부인하고 십자가 지고 또 자기 목숨을 잃을 각오를 갖고 나아가야 된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강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 2
자 이 일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가를 정말 아주 신비로운 방식으로 보여주시기로 작정을 하시죠.
엿새 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앞에서 어떻게 되느냐 변형됐습니다. 트랜스피거레이션 그 모습이 놀랍도록 변화하셨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셨느냐 어떻게 변화되셨느냐
제가 이 마가복음 9장 3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놀랍게 변화된 겁니다.
이거는 장차 우리가 영광의 부활의 몸으로 하늘나라에 가서 맛볼 그러한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이 보여주시면서 그 다음에 더 놀라운 거 자 이렇게 변화되고 나니까 구약에서 예언했다는 그 이 놀라운 선지자들 엘리야 모세 함께 나타나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죠
자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을까요?
누가복음 9장 31절을 보면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이야기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별세라는 것 헬라어로 보면 엑소도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엑스호도스죠 출애굽입니다.
이걸 이제 영어로 엑시트라고 하죠.
주차장 가면 많이 있는 것이 엑시트 엔트런스입니다.
지금도 그리스에 가면 이 말 그대로 사용을 합니다.
엑소더스 출구 그리고 에이소더스 에이스는 인투라는 뜻이죠.
인투 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입구죠 입구 엔트런스 자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과 함께 뭐 얘기하느냐 출애굽할 것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 지실 것을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 지시는 이 예수님이 그냥 일게 선생님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놀라운 신령한 영광을 입고 계신 놀라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거를 그대로 보여주죠
이 모습이 뭐냐 이 제자들은 막 어안이 벙벙해서 예수님 우리 여기서 초막 짚고 그냥 아예 눌러 앉죠 자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구름이 덮이면서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자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말씀 십자가를 지는 게 무엇이고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제대로 들으라고 하나님 또 제자들에게 권고하시는 겁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제자들이 이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향하여 뭐라고 고백하느냐 바로 이전 절인 9장 6절을 보면 랍비여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아직 랍비 다른 말로 하면 선생님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자 이들이 이 놀라운 기적을 보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경고하시죠.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날 때까지는 자 지금 예수님은 부활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아라
살아날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왜 이거 미리 말했다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와서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기대로 십자가 지는 걸 반대하고 막아설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예수님의 이 메시아의 비밀 인자가 누군지를 말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이게 사실은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무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자꾸 오해 무지로 예수님을 내 마음대로 제단하고 싶고 이런 예수님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자꾸 예수님을 네 틀 안에 집어넣으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마음을 갖고 자꾸 예수님의 사역과 정체성에 대해서 비밀로 붙이십니다.
자 예수님이 이렇게 산에서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고 내려왔는데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 하나님의 아들이 주신 은혜와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이 제자들에게 와서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하는 사람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아들을 고쳐주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들을 보고 뭐라고 하느냐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고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을 참고 계신다는 거죠.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고백하고 바른 믿음으로 주님의 길을 걸어가야 되는데 이렇게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헤매는 제자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9장 31절에 보면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3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두려움이 또 앞섭니다.
자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는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자 지금 예수님이 몇 번에 걸쳐서 지금 반복해서 말씀하시는데 이 정도 되면 이제 이해하고 깨닫고 이게 뭡니까? 라고 진지하게 물어봐야죠 근데 그렇게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것은요
제자들이 길에서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한 겁니다.
뭐냐 예수님이 물어봅니다.
너희들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 티격태격한 것이 뭐냐 그러자 이들이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쟁론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크냐 다른 말로 하면 이제 예수님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왕으로 등극하실 텐데 왕으로 등극하면 누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느냐 이거 갖고 자기들끼리 지금부터 서열 경쟁 자리 싸움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너무너무 답답해 하십니다.
나는 지금 십자가 지로 가는데 너는 지금 너희들이 원하는 메시아 너희들이 원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상을 집어넣고 나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하느냐 너희들이 나를 따라와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자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거의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놀라서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합니다.
왜요 그동안 제자들이 앞서서 선생님의 길을 인도했는데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앞장서서 가시거든요. 그러니까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두려워하죠.
자 이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당할 일 뭐냐 자 우리가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
거기가면 대제서장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고 능욕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지만 3일 만에 다시 살아할 것이다.
놀라운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하십니다.
이 예언을 제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이 와중에 야고보 요한이 와서 선생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뭐냐 그랬더니 하는 말이 영광 중에서 하나는 주의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는 영의정 하나는 좌의정 주님의 참모로 앉게 해주십시오. 정치적 출세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지금 제자들의 마음에는 자기 안에 있는 탐욕 출세욕 이러한 것들로 가득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자 예수님이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하고 구할 때 이 안에 욕심이 가득하면 무얼 구하는지도 모르고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물어보시죠. 너 내가 마시는 잔 고난의 잔 마실 수 있겠느냐 제자들이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만 무슨 의미로 그렇게 대답했는지를 모릅니다.
자 이 얘기하는 걸 듣고 나머지 열 제자 야고보 요한에 대해서 어떻게 합니까? 화를 냅니다. 벌써 제자들 안에는 알력 다툼 시기 질투가 가득한 공동체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죠.
자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유명한 마가복음 10장 45절의 말씀을 않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게 예수님이 오신 중요한 목적이고 지금 십자가를 치러 가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자 이런 것 보면 제자들이 참 이해를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이르러서 기적 하나를 베푸시는데 뭐냐 바로 디메오의 아들 맹인거지 바디메오를 치유해주시죠.
자 영적인 무지에서 자유케 하고 봐야 되는데 너희들도 좀 봐라 상징적으로 바디메오를 치유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님께서 여리고까지 오셨습니다.
이제 여리고에 도착하면 곧 예루살렘으로 가로질러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자 오늘의 적용점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주님 가시는 길을 따라가자
제자도에 가장 큰 유혹이 뭡니까?
내가 원하는 길 예수님을 내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하는 욕망 이것들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길 그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영광을 종이 되는 곳에서 발견하자
자 주님의 영광을 높은 곳에서 으뜸이 되는 곳에서 첫 번째 되는 곳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고 섬기고 종이 되는 것 인자가 운 것은 섬기려 오신 것이지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죠.
자 세 번째입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말씀을 가까이 하자 자 주님의 시선으로 봐야 됩니다. 우리 욕심과 세상 풍조에 따라 보면 예수님을 봐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분이 누구신지를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게시해주신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날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마침내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의 마지막 최후를 고하시고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하셨던 예수님의 반성전 사역 어떻게 펼쳐질지 다음 시간에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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