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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도는 동시집 『바람이 자라나 봐』의 머리글에 자신의 삶과 문학적 여정을 간단히 기록한 글이 있다.
삼척군 임원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마을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바다와 육지가 어깨를 비비며
철썩철썩 노래부르는 마을,
이른 새벽 통통거리며 출렁거리며 달려나가
해님을 건져올리는 어부들이 사는 마을.
그는 그런 곳에서 바다와 육지의 노래를 들으며 자라났다고 말한다. 또 그곳에서 일출보다도 더 성실한 어부들의 삶을 보면서 자랐다고 말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강릉사범학교를 나와 교사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월간 잡지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그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의 격려로 ‘동시인’이 되었지만, 동시 다운 동시는 쓰지 못했다고 겸손해 한다.
8년간의 외도를 마치고 교직에 돌아온 그는 곧 교육전문직인 장학사가 되었다. 그리고 교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부터 동시 「바람이 자라나 봐」를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싣겠다는 통보를 받고 승낙한다. 한편으로 개인에게는 너무 영광스런 일이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이 작품은 이석현이 주간으로 있던 『소년』지에 발표한 작품이었다. 그는 자신이 자라던 고향 마을을 잊지 못했다. 고향을 잊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고향’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라는 작가가, 자연의 마음으로, 자연의 소리로, 자연의 그림으로 표현한 동화와 동시를 가슴으로 읽고 가슴으로 암송하면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연’의 곁에서 가슴으로 좋은 동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본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동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고 겸손해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동시를 쓸때까지 동시집을 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동시집을 냈다.
본인이 교장으로 있을 때 어린이들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 동시 ‘바람이 자라나 봐’를 국어시간에 배웠어요. 우립 ks 친구들 모두 교장 선생님과 함께 했던 지난 이야기 하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교장 선생님의 동시를 외웠답니다.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의 또 다른 동시를 읽고 싶습니다.”
이런 말에 아이들에게 또 다른 동시를 보여주고 싶어서 동시집을 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이가 들어도 참 마음이 맑고 고운 시심을 가진 걸 알 수 있다.
김지도의 작품세계는 그의 동시집 뒤에 실린 글들을 참고하였다.
동시에 관심을 갖고 쓰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되었지만 활자화된 것은 1963년이다. 월간 『교육자료』9월호에 추천 작품이다.
소꿉놀이
김지도
납작한 돌로
방을 꾸미고
순이가
“여보…”
“호, 호호….”
불씨를 피우면
훈이는
길다란 담뱃대로
씨걱 씨걱 …
바람은
솔솔
순이 편.
해님은
시무룩
훈이 편에 손뼉.
이 동시를 미당 서정주는 다음과 같이 평 하였다.
‘ 씌여지고 있는 말들이 우리 민족의 실생활어(實生活語)이며 전체적으로 과장됨이 없고, 정서도 많이 내밀(內密)되어 있다. 특히 쉽고도 아름다운 말을 갖고 있는 것이 반갑다. ’
김지도는 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 두고 잡지사로 직장을 옮긴다. 그리고 편집기자 생활을 한다. 그런 중에 1973년 월간 『아동문학』12월호(통권 1호. 서울 아동문학사)에 동시 「탄마을 새벽」이 추천 발표된다. 심사위원은 조유로, 송명호, 이상현, 김사림이었다.
탄마을 새벽
김지도
광부의 목소리를
가득 실은 탄차가
덜컥
덜컥
산중턱
밤새 다문 갱구를 열면
까맣게 깔렸던
어둠이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갱속에서 따라온
새벽이
광부의 삽 끝에 매달려
반짝인다.
탄마을의 아침은
언제나
갱속에서 실려 나온다.
탄광지대를 찾아 색다른 이미지의 채광을 해본, 김지도씨의 ‘탄마을 새벽’을 추천으로 올린다.
죽음, 공포, 고돤 생활로부터 아침으로 탈출하는 주제의식, 그리고 발상도 깔끔한 편이다.
다만 살만한 이미지의 가지를 때로는 대담하게 쳐서 시(詩)를 보다 단단하고 투명하게 하는데 애쓰길 바란다.
김지도 씨의 발상법과 상상력의 저탄(貯炭)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 작품에 대해 이오덕은 1975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편으로 발행한 「동시(童詩), 그 시론(詩論)과 문제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4연까지 읽으면 제법 선명한 영상이 떠올라 뭔가 있을 듯하다가 결국 그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감각의 조각밖에 되지 못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생활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표현은 거의 없으며, 지극히 사소하고 지엽적인 표현에 불과하고 단편적인 묘사에 그치고 말았다.’
남진원은 평소에, 이오덕의 글을 몇 번 대하면서 편협된 사고로 작품에 대한 매도 내지 혹평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아왔다. 이오덕은 평소 ‘생활 현장’이나 사실적 일이나 이야기에 대해 집요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의 시에 대한 평을 보면 대체로 경험적 사실의 적나라한 표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다. 어찌 보면 그러한 작품들은 시의 범주에 들기에 매우 거북한 치졸한 것들일 수도 있었다.
김지도의 추천 작품에 대한 것도 매우 협소한 자기 편향적 시각에서 멈추어 있음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도는 이오덕의 이 평문을 읽고 소년동아일보에 「산」이란 동시로 응답하였다.
산
김지도
산은 아무나 하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산은 성을 내면서
불끈 일어서지도 않습니다.
태풍을 일게 하여
바다를 뒤집어놓은 바람이
떼지어 산을 흔들어 봅니다.
산은 달싹도
하지 않습니다.
흔들다
흔들다
지친 바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좁니다.
산은 산끼리 속삭입니다.
나무들을 꼬옥 잡아주자고
바람을 안아서 재워주자고.
월간 『아동문학』은 그 이듬해에 폐간되었다. 김지도는 다시 1974년 월간 시 전문지인 『풀과 별』7월호에 ‘광부’가 추천된다.
광부
김지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오누이들을 두고 숨진 어머니는
아름드리 나뭇가지에 살다가
땅속에 묻혔다.
땅 속 깊은 곳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오랜 세월을 두고
석탄으로 변했다.
광부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켜식 한켜씩
캐내어,
켜마다 다른 이야기를
빠알간 방울 풍선에 채워
낮에는 해님께 띄우고
밤에는 달님께 띄운다.
석용원, 김사림은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흔히 우리나라의 동시를 보고 시(詩)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김지도 씨의 작품은 그러한 시가 없다는 동시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 든든하다.
땅 속 깊은 곳에서/해 달이 된/오누이의 소식을 들은/어머니는/오랜 세월을 두고/석탄으로 변했다. (중략)
이 「광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애절한 사연은 진실로 광산촌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리라. 「광부」의 작품 구조는 대단히 토속적이고, 잃어져가는 우리의 전설 내지 정신까지 추출하는 작업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아래의 글은 추천완료 소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10년 하고도 우수리가 붙는 나의 문학수업에는 그동안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 있었는지 반성한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여 수억 년을 땅 속에 묻혔다가 불꽃으로 다시 솟아오르는 석탄처럼 비록 인화는 늦었지만 인화된 불씨만은 꼬옥 간직하고 활활 솟아야겠다. 기회를 마련해 주신 두 분 선배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빠의 오늘을 기뻐하는 [업식]이와 [우리]를 위해 동심을 잊지 않는 어른이 되겠다.
김지도는 추천 이후 『소년』,『아동문학평론』,『소년동아』, 『한국일보』등에 이따금 작품을 발표하였다. 1977년 『아동문학평론』겨울호에는 동시 「탄마을 냇물」을 발표하였다.
탄마을 냇물
김지도
광부가
땅 속 깊은 곳에서
캐낸
까만 불씨를
제 몸에 녹여 싣고
바다로 내려가는
탄마을 냇물
마을 사람들은
수영을 할 수 없고
빨래를 할 수 없는
까맣고
못난
탄마을 냇물을
일 년 내내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밤새 다독거려
하루에
하나씩
해를 빚는다.
이 글을 김요섭은 시 전문지 심상(心象) 1978년 4월호에 「소재의 개척」이란 제목으로 평을 하였다.
『아동문학평론』제7호에 김지도씨는 「탄마을 냇물」이라는 좀 더 다른 소재에다 앵글을 잡은 시작을 내놓았다.
광부들이 캐낸 석탄을 소재로 다룬 시는 그동안 별로 못대했다. 이 시인은 석탄과 광부를 통하여 대지 안쪽에서 태양과 같은 생명력을 획득하고자 한다. 대지와 같은 힘의 원천을 갈구하는 이 시인의 의도가 역력히 보인다. 그러면서 감동의 불꽃을 점화시키지 못했다.
분명히 이 시는 광물적인 단단함을 언어의 질로 해야 했는데, 이 시작에서 서술적 언어의 질은 식물성의 부드러움이다. 식물성의 부드러움, 온화함, 따스함 이런 것이 그동안 어린이 시가 길들여져 온 정서이며 가치이기도 했다.
새로운 소재를 시로써 형상화할 때 또한 새 소재와의 새 정서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이미 친숙된 소재와의 관계에서 길들여져 온 정서는 일단 깨뜨려야 하며, 그 잔재조차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김지도는 1979년 3월 서울시 초등학교 교사로 되돌아온 뒤 20여년간 교육전문직에 있는 동안 작품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중에도 동시 「바람이 자라나 봐」가 2002년 발행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는 영광스러운 일이 있었다.
바람이 자라나 봐
김지도
잔디밭에서
앙금앙금
기어다니던
봄바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푸름푸름
그네를 타던
여름 바람이
낙엽을 몰고
골목골목
쏘다니던
가을바람이
어느새
매끄러운 얼음판을
씽씽 내닫는 걸 보면
바람도 우리들처럼
무럭무럭 자라나 봐.
- 2002 국정교과서 국어책에 수록작품 -
권오훈(1937 - )의 아호(雅號)는 율산이다. 1937년 강원도 강릉의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1956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강릉에서 근무하다가 서울에 올라가 초등학교에 35년간 근무하다가 교감으로 명예퇴직하였다.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1975년에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동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82년 한정동아동문학상, 2003년 우리나라 좋은 동시 문학상, 김영일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품집으로는 제1동시집『해뜨는 집』(월간문학사,1978), 제2동시집 『해야 해야』(청목사, 1980), 제3동시집『아기가 만든 해』(월간문학사,1981), 제4동시집『꽃 편지 새 친구』(1985,월간문학사),제5동시집『해와 함께 달과 함께』(1987, 융성출판사), 제6동시집『청개구리의 달』(2005, 세진문화), 동시선집 『권오훈 동시 선집』(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5.)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호숫가에서」등이 있다.「아버지의 바다」,「한글이라는 꽃」등이 있다.
호숫가에서
권오훈
물새 한 마리가 수직으로 내려꽂힌다.
별안간
부리 끝에 찔린
호수 한쪽이
꼼틀
놀란 눈빛 세운다.
물새들이 한꺼번에 날개소리로 날아오른다.
그제야
불안함을 가라앉히는
호수 한 자리가
반짝반짝
고른 숨을 쉰다.
이 작품은 2005년 3월 5일 ≪한국명작동시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하여 예림당에서 묶은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 명작 동시』에 수록된 105편 중의 한 편이다.
아버지의 바다
권오훈
아버지가
바다에 일 나간 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은
온통 바닷물결로 출렁거리고
뱃머리에 부딪치는
물소리, 물소리는
내 베갯머리에 와 찰삭인다.
식구들의 무게를 지고
바닷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어깨에는
찬바람, 파도소리
쏴!
쏴!
물이랑에서
힘겹게 건져 올리는 그물에는
퍼덕, 퍼덕거리는
은빛 무게들.
아버지가 일 나간 밤에는
내 방안은
물결이 일렁이는
아버지의 바다가 된다.
한글이라는 꽃
권오훈
홀소리,
넌 닿소리의 꽃이다.
닿소리,
넌 홀소리의 꽃이다.
서로의 꽃이지만
등 돌리면 꽃이 될 수 없다.
둘이
손잡았을 때만 꽃이 된다.
한글이라는
으뜸 꽃.
박화목은 권오훈의 동시집 『해뜨는 집』서문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동시 있어서 하나의 뜻(혹은 메시지)을 함축시켜 동시의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전달한다는 일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 어떤 분은 동시가 어린이들에게 그저 읽혀지고 불리어지는 ‘노랫말’의 것에서 그 이상으로 굳이 발전시킬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오늘의 동시가 고도의 언어예술이어야 하는 과제를 놓고 볼 때, 어린이를 위해 시를 쓰시는 문학가들에게도 투철한 상황의식이며, 내일에의 비전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음을 부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동시의 효용에 있어 인간형성이며, 성장기 아동들에 있어서의 가치관 정립은 오늘의 아동문학가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제를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동시 작품 속에 어떻게 응결시키고 승화시키느냐는 것은 기법상의 문제로도 매우 까다롭고 무척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동시는 ‘노랫말’의 차원에서 다른 차원의 문학으로 지향하는 그 어려운 작업을 극복해야 하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쓰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어렵고 까다로운 과제를 의식하면서 꾸준히 동시를 써오는 몇 분 아동문학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옛 선도자적인 시인들 중에서 나는 이번 동시집 『해뜨는 집』을 상재하는 권오훈 시인을 서슴없이 꼽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론적인 근거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 분의 작품세계에서 오늘 우리 동시의 과제를 묵묵히 그가 실천하고 있다는 증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시의 소재며 제재가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자연 사물에서 찾아낸 점은 그가 얼마나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지는 정서가 중요한가를 체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정서 문제는 오늘 산업사회 구조에 있어서 인간 형성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상되고 있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자연에 대한 이 시인의 부드러우면서도 심상에 깊숙이 파고드는 정서 감각은 어느 한 편의 시를 읽더라도 이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가령 ‘쬐그만 봄 바람’에서 ( 중략 ) 싯귀를 읽어보아서도 이 분의 시 감각이 얼마나 서정적이고 섬세한 가를 대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시편들을 예거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이렇듯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지는 정서를 통해, 성장기 아동들의 의식구조 속에 물질에서 정신으로의 가치관을 억지스럼 없이 바꿔놓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이 시인의 동시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점은 향토적인 얼의 형상화입니다.
이것은 이분이 전통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며 , 그것을 오늘에 이어지게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걸음을 시작한 우리의 근대문학이 진정 한국문학이 되어야하는 역사적인 과정에서 아동문학도 그 핵심 속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내일에의 비전을 가지고 작업하는 시 작업에 있어서 권오훈 시인은 아주 시초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무릇 문학인의 소산에 있어, 결코 만족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또 어떤 평점을 성급히 내린다는 것도 금물입니다.
이 시인이 이번 시집을 내는 기회에 스스로 시작(詩作) 과정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확인이 됨은 물론, 어린이들의 앞날을 위해 더한층 꿈과 슬기를 심어 주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큽니다.
권오훈의 첫 동시집 『해뜨는 집』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두서없는 내 소감을 여기 적어 머리말에 대신합니다.
이를 요약하면 박화목이 말하는 권오훈의 시 세계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지는 정서, 향토적인 얼의 형상화, 전통적인 것에 대한 소중함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호숫가에서」, 「아버지의 바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물에 대한 역동적인 이미지를 그려낸다.
권오훈 동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사물의 연관성이다. 세상이 조화되어 이루어지는 것을 파악한 그는 ‘사물 연관성’이란 것으로 표현하였다.
퉁소
권오훈
퉁소는
스스로
제 노래와 춤을 못 갖는다
우선 입술에서
바람, 바람을 빌려야한다
빌린 바람을
관으로 밀어넣어
각기 다른 구멍에서
몸을 비비게 하여 넋을 살려내야
노래가 된다
그래서
그 노래는 마음, 마음마다
고운 빛깔로 들어서서
보이잖는 춤이 된다
즐거운 춤이 된다.
퉁소가 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바람을 빌렸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사물의 연관성’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앞의 동시 「아버지의 바다」, 「한글이라는 꽃」 등의 동시도 사물 연관성에 의해 창작된 작품이다.
1970년대 중반 작가인 전세준(全世俊 1940 - )은 젊어서 해파리동인문학회장을 지냈다. 197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늪의 소리」가 입선한다. 전세준은 그 후 동화와 동요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는데 1993년엔 『한국아동문학연구』신인상에 동화 「잘 키워드릴께요」가 당선하며 아동문학 문단에도 모습을 내보였다.
전세준은 강릉문학의 산 증인이기도하다. 오십여년 전 『학도주보』와 강원일보, 중앙일보 학생 작품란에 투고하여 작품을 발표하였다. 강릉사범학교 학생 당시에는 박명자, 이충희와 은사이신 윤명으로부터 글쓰기를 배웠다. 1958년 처음으로 ≪강릉시 4개 고등학교 합동문학의 밤≫을 주도하는 등 학생 문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고 강릉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술회했다. 그러나 강릉문단에 문예지의 추천이나 당선을 하고 본격동화가 시작된 것은 매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전세준은 1975년부터 문단에 나왔지만 소설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었다. 아동문학은 1993년 『아동문학연구』를 통해 본격 동화창작이 이루어진 셈이다. 강릉아동문학에서 동화창작의 층이 얕은 것은 강릉아동문학의 취약점으로 들 수도 있다.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나온 김용성(김동산)이 있지만 그 이후 동화작품의 발표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동문학가는 동시를 중심으로 쓰면서 지엽적으로 동화창작을 하였던 것이기에 동화문학의 발전은 매우 느리고 더디었다 할 수 있다.
2000년 대부터 적극적으로 솔바람동요문학회에서 동요 발표로 활동한 전세준은 1999년 동요곡집 『시골장터』,『기다림』등을 펴냈다. 2001년에는 수상집 『회상의 문턱에서』(주문인쇄), 1997년 꽁트집 『비틀거리는 바다』(주문인쇄), 동화집 『잘 키워 드릴께요』, 1998년 동화집『아빠를 찾았어요』등을 상재하였다. 이외에 2016년대에 들어서 동화집 『고향을 잃어버린 소나무』등을 펴냈다. 지역에서 많은 문학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강릉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관동문학, 솔바람, 한국아동문학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육신문』에 꽁트 입선, 『공무원 연금』에 건강수기 입선, 공명선거 실천 노랫말 입선, 제42회 한민족 통일문예 입상, 2011년 제1회 강릉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5년에 『아름다운 글문학상』, 2016년, 동화집 『고향을 잃어버린 소나무』로 관동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제26회 불교동요 공모에 동요 「부처님의 미소」, 「깊은 산 계곡에서」가 당선하였다.
20세기 중엽 프랑스의 프랑스의 평론가 롤랑바르트는 신비평의 대표적인 존재였다. 그는 말했다. 애크리튜르(Ecritare) 개념을 제시했다. 모든 글은 권력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이라 했다. 그러니까 모든 글은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적인 글이라면 권력이 되어 있지 않은 글, 순수한 글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글쓰기의 영도(Degree Zero)’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준은 강릉시 주영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였다. 교사로 정년퇴직을 한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명예나 교단 권력을 초개 같이 버리고 교직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천직으로 여기며 오직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긍지로 한생을 교육을 위해 바친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문학 또한 ‘문학상’에 조금도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작품 쓰기에만 노력하였다. 초창기에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도 작품성에 문제가 아니라 그의 소신과 철학이 각종 문학상에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문학상 수상은 70대 후반에서야 그 진가를 모두들 인정하여 많은 수상을 하게 된 것이리라. 그렇기에, 전세준의 문학성이 돋보이는 것은 전세준의 문학적 언어가 바로 롤랑바르트가 말한 ‘영도의 글쓰기’처럼 순수한 언어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의 미소
전세준
법당에 앉아 계신 부처님이 빙그레
너희들 지금 왔나 보고 싶었다
다정하게 미소 짓는 부처님 보기 미안해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절을 했어요
법당에 앉아 계신 부처님이 빙그레
잘 왔다 어서 오너라 기다렸단다
따사롭게 미소 짓는 부처님 보기 미안해
무릎 꿇고 엎드려 절을 했어요.
전세준은 2016년 관동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글을 쓸 때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글을 쓰고 나면 해산(解産)의 기쁨을 느낄 뿐이라고 자신의 작품관을 밝히고 있다.
글이라고 써 온지가 58년이 지나고 있지만 실제 내 자신이 어떤 문학관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것이 소설은 41년 전이요 아동문학은 23년이 지났지만, 그 동안 내 나름대로의 어떤 문학관을 가지고 글을 써왔다는 기억은 없다. 문학에 대한 무거운 사명감이나 둑자들에 대한 목적의식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 동안 나는 문학이 무엇이며 왜 글을 써야 하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내가 쓴 글을 독자들이 많이 읽어주기를 바란다거나 한 편의 명작(?)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의지로 쓴 글은 솔직히 한 편도 없다.
이야기가 될 것 같기에 소설을 쓰고, 재미있을 것 같아 동화쓰고 혼자 흥얼거리고 싶어 노랫말 쓰기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독자들을 의식하며 글을 쓰지 않는다. 내 글이 끝나면 난, 그것으로 해산(解産)의 기쁨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 누군가가 읽던 안 읽던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전세준의 동화 역시 앞의 작가들과 같이 ‘재미’와 ‘교훈’ ‘작품성’ 중에 교훈성을 더 드러낸 동화작품이다.
관동문학상 수상 작품의 하나인 전세준의 동화 「별들이 하고 간 이야기」는 글의 도입부부터 긍금증을 한껏 안겨준다는 데서 글의 흥미로움을 제공하고 있다. 성격이 다른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말 잘 듣고 약속을 잘 지키는 기철이와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책임감이 없는 기복이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기복이에게 약속의 중요성을 알고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알게 하는 동화이다. 이 작품에서는 문학성보다는 교육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2016년 관동문학상을 수상한 『고향을 잃어버린 소나무』이야기는 현대문명의 풍요 속에서 훼손되어가는 환경 파괴를 그린 작품이다. 맑은 물소리 들리는 물가에 살던 소나무들이 어느 날 도시의 2층집 정원수로 옮겨진다. 여기에서 늙은 소나무의 말을 통해 환경 훼손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개워준다. 역시 환경 훼손의 고발과 함께 교훈성이 내포된 글이다.
동화, 전세준의『고향을 잃어버린 소나무』를 전재한다.
고향을 잃어버린 소나무
전세준
늙은 소나무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별들로 가득 차 있고 저만치 떨어져있는 멋진 집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오늘도 밝은 청문 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늙은 소나무가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이 한 달 전쯤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나무는 마음 편하게 하루라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늙은 소나무의 고향은 산골 마을에서 한참 들어간 아담한 선속 골짜기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 옆이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산새들이 조잘조잘 노래하고 겨울이면 거울같이 맑게 얼음이 얼고 그 밑으로 졸졸졸 노래 부르며 흐르는 시냇가 옆에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큰 아기 소나무들이 쏴아 쏴아 노래 부르는 예쁘고 다정한 마을이었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그곳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오면서 자기 보다 더 큰 아기소나무들과 행복하게 살아 왔습니다. 눈비를 맞으며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소나무는 나이를 먹으며, 더 키는 자라지 않았고 몸둥아리는 점점 거무스름하고 두껍게 변해갔습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온 사방으로 뻗은 다리들은 점점 힘이 없어졌고, 하늘 향해 옆으로 뻗은 팔들이 위로 크지 못하고 옆으로 옆으로 비틀어져 바람에 흐느적거렸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간 어느 날 한나절이었습니다. 늙은 소나무가 늦잠을 자고 긴 하품을 하면서 눈을 떴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야! 여기야, 여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 그래. 그래 더 올려!”
그 순간 늙은 소나무는 땅속으로 뻗은 다리가 조여 오고 온몸이 칼로 몸을 베어오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아야! … 왜 이러냐?”
늙은 소나무는 비명을 지르며 골짜기를 내랴다 보았습니다.
“부르릉! 덜컹!”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소리가 골짜기를 울렸고 바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온 몸이 흔들렸습니다.
‘무슨 일이람?’
너무나 놀란 늙은 소나무는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온 몸이 핑그르 돌면서 늙은 소나무는 쾅 소리를 내면서 졸졸졸 흐르는 골짜기 아래로 우지직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습니다.
“엄마야!”
늙은 소나무 보다 더 큰 아기 소나무들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야! 그래 되었어! 이 정도 소나무는 정말 찾기 힘든 것인데 …”
“응, 정말 잘 생겼네! 아주 정원에 심기에는 멋진 소나무야! 어서 계속 작업을 하세!”
잠시 기계소리가 멈춘 골짜기에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었습니다. 엄마 둘레에 있던 아기 소나무들의 외침이 점점 아득하게 들려오면서 늙은 소나무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늙은 소나무가 다시 정신이 든 것은 한나절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야! 정말 멋진데… 아주 우리 정원에 잘 어울려! 모두 수고 했어요!”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너무나 놀랬습니다. 쓰러져 있던 자신이 우뚝 서있고, 꽁꽁 묶였던 두 다리는 땅 속 깊숙이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소나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뜰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산골짜기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 지은 이층집이 보였고 고향 산골짜기에서만 볼 수 있었던 큰 바위들이 동그란 연못 둘레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아기 소나무들과 같이 소나무들의 고향 여기저기에서 자라고 있던 나무들이 옹기종기 이층집과 새로 만든 연못 주위로 가득 심어져 있었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그때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양지 바른 이곳에 새로 이층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집 둘레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덧 정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 언덕 아래로 내려갔고 이층집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 왔습니다. 주인인 듯한 사람들이 집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고 산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피아노 소리도 흘러나왔습니다. 아마 이곳으로 이사 온지가 얼마 되지 않은 듯 싶었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슬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웃에서 같이 살아온 아기 소나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산새들의 노랫소리도 없었고, 골짜기 시냇물 소리도 없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가끔 집 주인인 듯한 아저씨가 넓은 정원을 삥 둘러보면서 늙은 소나무 아래까지 왔고 고개를 들어 소나무를 쳐다보곤 했습니다.
“음, 정말 잘 생긴 소나무야! 죽지 말고 잘 커야 할 텐데…”
이렇게 한마디 하면서 소나무를 어루만지곤 했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온 종일 심심했습니다. 언제나 내려다보이는 연못 속 비단 잉어들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밤이면 꼬마 아가씨가 치는 피아노 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끔 여러 사람들이 정원에 모여 술잔을 나누며 높다란 불판 위에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이 연기를 피우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뜨거운 불판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이상야릇한 고기 냄새도 싫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숨 쉬던 그 맑은 공기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때마다 늙은 소나무는 울퉁불퉁 생긴 자기의 모습을 원망하였습니다. 아기 소나무들처럼 하늘로 쭉쭉 뻗어 날씬하게 자랐으면 이곳까지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못 생긴 것도 억울한데 이곳까지 와서 고통을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애들아! 너희들도 답답하지?”
하루 종일 좁다란 연못속에서 빙빙 도는 비단 잉어들도 불쌍했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원에는 밝은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고기 굽는 연기는 정원 하늘을 타고 하늘로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에그그 …… 저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는 별들도 이 냄새 때문에 …”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연기 때문에 하나 둘 그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늙은 소나무에게는 아름다운 밤이 아니었습니다.
골짜기에서 보던 그 아름다운 밤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차라리 눈을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연못 속 비단잉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원에서 떠들썩하던 등산객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게 들려오면서 늙은 소나무는 아이들이 자고 있을 골짜기를 생각하며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솔바람이 살랑살랑 늙은 소나무를 잠재웠습니다.
“ ……… ”
“어머나! 어쩜 그렇게 잠을 잘 자요? 무척 부럽군요!”
어디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늙은 소나무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피아노 소리도, 등산객들의 떠드는 소리도, 솔바람의 자장가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정원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도 사라졌고, 하늘에 다시 별들이 소손거리고 있었습니다.
“누구세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오늘 처음 만났구만요! 저는 달님이에요…”
“네? 달님이!”
늙은 소나무는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둥근 달님을 보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여길?”
“아! 놀랬어요? 미안해요.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둥근 예쁜 얼굴로 별들의 나라로 여행을 다니지요. 어두운 길도 밝혀주고… 어디서 오셨어요? 지금까지 못 보던 얼굴이기에 지나다가 잠깐 쉬어가려고 …”
달님은 늙은 소나무에게 소곤소곤 정답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저는 이곳에 처음 왔어요. 깊은 산골짜기에서 살다가 갑자기 이곳으로 … 억지로 끌려왔답니다. 내가 뭐 아름다운 정원수라나 …”
늙은 소나무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 무척 반가왔습니다.
“그렇군요! 여기 새로 지은 별장 같은 집 뜰 앞이군요. 아, 저기 비단 잉어들이 사는 연못도 있지요.”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둥근 달님은 이곳 사정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소리로 무척 시끄러웠는데 … 옛날 살던 곳이 그립지요?”
달님은 늙은 소나무가 가여워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달님은 참 좋겠어요. 별나라 여행도 하고 온 동네 구경도 다 할 수 있어서…”
“그래요.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얼굴을 크게 가다듬고 세상 구경을 다니지요. 산속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온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즐겁게 산답니다.”
“어머나!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나는 …”
늙은 소나무는 두고 온 아이들 생각에 목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이 더욱 슬펐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이 이젠 이곳에 정 붙이고 살아야지요. 그런데 언제나 이곳에만 있어야 하니…”
달님은 늙은 소나무가 불쌍했습니다.
“……”
소나무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대로 밤마다 여행을 떠나 다니는 달님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이제 꽃피는 봄이나 매미들이 노래하는 여름과, 빨간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가을, 그리고 하얀 겨울을 지내다 보면 이곳도 정이 들거에요.”
“그래도 내가 살던 고향이 좋은데… 그곳엔 내 아이들도 있고… 사람들은 왜 좋은 집을 새로 지으면 우리들을 괴롭히는지… 우리가 아름다우면 찾아와서 보면 될 것을 ……”
늙은 소나무는 긴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꿋꿋하게 잘 살아야 해요. 이곳으로 이사 온 예쁜 나무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서 버려지는 것을 몇 번 보았어요. 산골짜기에다 버리고 다시 또 옮겨 심고…”
달님은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본 듯싶었습니다.
“옛날부터 산이나 들, 바위 하나라도 모든 자연과 사람들은 친한 친구였지요. 해님도, 시냇물도, 바다 그리고 산과 들, 산토끼와 노루… 모두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같이 뛰놀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우리들을 해치기 시작했어요. 자기들 욕심을 채우고 자기들 편하고 아름다움을 혼자 갖고 싶은 그 욕심 때문에 … 우리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지요….”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나무가 파헤쳐지고 산이 무너지고… 강물이 넘쳐흘러 마을이 물에 잠기고 …”
늙은 소나무도 산골짜기에 있을 때 나무나 많은 일들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쿠! 내가 너무 오래 있었네! 내일 또 놀러 올게요! 우리 자주 만나요!”
달님은 나뭇가지에서 일어나며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가시게요? 자주 놀러 오세요. 기다릴게요.”
늙은 소나무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합니다.
달님은 차츰차츰 별들의 마을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나무는 너무나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그러나 새 친구 달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꿈을 가슴에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달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엄마! 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 저도요… 저도요…’
산골짜기에서 같이 살던 아기 소나무들이 엄마를 찾는 소리가 늙은 소나무의 귓속을 파고 들었습니다.
“아기들아! … 애들아!”
늙은 소나무는 ‘쏴아… 쏴아…’ 들려오는 솔바람 소리 쪽으로 두리번거리며 살폈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늙은 소나무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멀리 여행하고 있는 하늘 높이 뜬 달님이 따뜻한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내려다보이는 방 안에는 전기가 모두 꺼지고, 정원을 지키는 둥근 외등이 늙은 소나무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동요와 동시, 시조 등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최도규(1943 – 1992)이다.
최도규는 본관이 강릉이다. 1943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명주군에 속한 송양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강릉상업고등학교를 나오고 춘천교육대학을 마치고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국민학교에 재직하는 과정에서 상지대학을 졸업하였다. 부인으로는 교사로 근무하다가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이옥순 여사가 있고 슬하에 2남을 두었다.
1992년 교통사고로 작고하였다.
최도규는 동시인이면서 시조시인이다. 한 작가가 세상에 나와 작품을 쓰면서 살다가 가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그러니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라고 ….
동요와 동시, 동시조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최도규는 1969년부터 문학에 대한 공부를 한 것 같다. 그의 작품이 잡지에 추천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6년째인 1974년이었다. 그러니 1974년을 전후하여 강원도 삼척군 황지읍 황지중앙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문학공부를 하였다고 생각된다. 최도규는 이때 「교육자료」에 동시를 응모하여 그해 11월, 동시 ‘봄날’이 1회로 추천되었다. 추천을 한 분은 이석현이었다.
최도규는 1974년「교육자료」에 동시가 추천되면서부터 작고하기 전 까지 약 18년 간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76년 10월호로 『아동문예』에서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79년 첫 동시집 『교실 꽉 찬 나비』(성민사)를 낸 이후 바로 그 다음 해인 1980년 동시집『이사 가던 날』(창조의 샘)을 내었다. 1년 사이에 낸 동시집이어서 그런지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1983년엔 동시조집 『빼꼼이와 짱구』(창조의 샘), 1988년 낸 책은 동요집인 『달맞이 꽃』(아동문예사)이다.
시집으로는 1991년, 유일하게『오늘 우리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대신출판사)이 있다.
1975년부터 강원도 삼척군 화전국민학교에 근무하였다. 이 학교에는 이미 남진원이 1973년부터 근무하고 있었다. 남진원이 학급문집을 낸 것을 최도규가 보고, 같이 문학공부를 하자고 하였다. 이런 관계로 남진원은 최도규의 영향을 받으며 글공부를 하였다. 당시 최도규는 『교육자료』와 『새교실』에 작품 투고를 하며 좋은 작품이 있으면 가져와서 읽어주며 감탄을 하였다. 그런 덕분에 글을 보는 내 눈도 많이 높아질 수 있었다. 그후 이 학교에 김진광이 왔다. 김진광은 또 남진원의 동시 쓰는 걸 보고 영향을 받아 글을 썼다. 내가 김진광에게 한 일은 별로 없다. 다만 문학 서적이 있으면 서로 읽고 배우자며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김진광의 작품을 보고나서는 최도규가 내게 한 것처럼 엄청나게, 칭찬을 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이 학교에는 마석규, 안효선 등의 작가들도 여기에서 문학 수업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 노력으로 마석규도 기독교 아동문학상에 입선 하였다. 당시 기독교 아동문학상에는 해마다 입상하였는데 최도규는 당선, 남진원은 입선, 김진광은 당선, 마석규는 입선을 하였다. 안효선은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서 『별어곡』이 당선하였다. 이쯤 되면 강원도 삼척의 화전국민학교는 가히 문인을 배출하는 학교가 되었다. 그 좌장은 단연, 최도규였던 것이다. 최도규는 1943년 생으로 우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기에 늘 ‘도규 형!’으로 모셨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한 아동문학 단체로 강원아동문학회가 있다. 강원아동문학회는 1971년 10월 6일 춘천의 밀물다실에서 발기인 모임을 갖었다. 1972년 1월 6일 춘천의 밀물다실에서 모였다가 춘천 초등학교에서 창립총회를 갖었다. 최도규는 초창기부터 강원아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최도규는 「교육자료」에 이어 1975년 「새교실」 6월호에 동시 ‘아가’로 1회 추천을 하였다.
1975년 11월엔 『교육자료』에 동시 ‘목동’이 2회 추천을 받았다.
조약돌 아동문학회는 김원기, 엄기원, 엄성기 등이 주축이 되어 강릉을 중심으로 아동문학 활동을 하던 동인이었다. 최도규는 1976년 조약돌 아동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1976년 – 1978년까지 강원도 삼척군 창죽분교에서 근무하였다.
1976년 5월 『교육자료』지에서 동시 「샘물터」로 천료를 받았다.
1976년 6월에 『새교실』에서 「콩서말」로 동시 추천 2회를 받았다.
1976년 8월에는 동시 ‘2월’로 『아동문예』추천을 받았다.
1976년 9월 『새교실』지에서 동시 「해바라기」로 추천완료를 하였다.
1976년 10월 동시 「고목」, 「교실 안 붕어」 등으로 『아동문예』에서 추천완료를 하였다. (추천:이재철)
1976년에는 경사가 겹친 한 해였다. 국제청소년 문화교육상 문학부문을 수상하였다.
1977년 5월 제21회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 「교실 꽉 찬 나비」로 당선을 하였다. 심사위원은 이원수, 박경종이었다.
1977년 5월 제6회 기독교아동문학 현상작품 동요 동시부문 당선하였다. 심사위원은 석용원이었다.
1976년엔 국제청소년 문학교류회 문화교육상 문학부문을 수상하였다.
1977년 9월 『소년』에 동시 「성묘」를 발표하였다.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당선작은 「교실 꽉찬 나비」였다. 같은 해 기독교교육 아동문학상에 당선하였다.
1978년 2월 『소년중앙』에 동시 「난롯가에서」를 발표하였다.
1979년 7월 동시집『교실 꽉 찬 나비』(성민사)를 발간하였다.
1980년 9월 동시집 『이사가던 날』(창조의 샘)을 발간하였다.
1980년 『시조문학』에 시조 「장독대」로 시조 추천을 받았다.
1980년 3인 공저 동시집 『할머니 이야기』(교학사)를 발간하였다.
1981년 - 1983년 원주 중앙초등학교 근무. 상지대학에 편입하여 공부를 했다.
1982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다.
1983년 동시조집 『빼꼼이와 짱구』(창조의 샘)을 발간하였다.
1984년 동시 「갈대」로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실제 작품의 제목은 동요집 『달맞이꽃』에 수록 작품은 「갈대밭」이다.
1987년부터 1988년 1989년 1991년 『감자』 동인지를 발간하였다. 『감자』 동인으로는 최도규, 권영상, 김진광, 남진원, 마석규 등이었다.
1988년 동요시집 『달맞이꽃』(아동문예)을 발간하였다.
1988년 강원아동문학상을 수상한다.
1988 - 1990년 정선군 남선국민학교에 근무한다.
1991년 시집 『오늘 우리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대신출판사)을 발간한다.
1992년 교통사고로 작고하였다.
그간 한국문인협회 정선지부장을 지냈고 한국아동문학회 원주지부장도 지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한국동요문학회원, 강원아동문학회 부회장, 강원동요동인회 회원, 관동문학, 북원문학, 조약돌, 감자 동인으로 활동했다.
최도규의 작품들은 서정성의 미감이 향토적 정서와 어우러지며 우리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이러한 서정성은 최도규 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서정성이다.
최도규는 동시 「달맞이꽃」을 통해 전통적 서정성을 주옥같은 언어로 표출하고 있다. 이 동시는 2004년 울산동요사랑 창작동요에서 김동근 곡으로 발표되기도 하였다.
저문 하늘 살포시/달이 뜨면은/강변에 달맞이꽃/곱게 핍니다.//강물에 아롱진/노오란 달을/밤마다 꽃잎으로/떠올리다가/강변에 달맞이꽃/달이 됩니다.//강변에 달맞이꽃/곱게 피면은/하늘에 동그마니/달이 뜹니다.//밤마다 달을 향한/노오란 꿈을/이슬에 내려앉아/닦아 주다가/밤하늘 둥근 달은/꽃이 됩니다.
- 최도규,「달맞이꽃」(솔바람동요문학 9집「꿈꾸는 애벌레」, 2013) -
동시집을 발간할 때 서문이나 발문을 쓴 동시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본 최도규의 작품세계는 어떤 것일까? 그의 작품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것을 알 수 있다.
첫 동시집 『교실 꽉 찬 나비』의 서문은 문덕수가 썼다. 아마 「새교실」에서 동시 추천을 받은 인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우 우수한 작품을 쓰는 작가로 언급하고 있다. 동시 <아가>를 추천하고 추천사에서 재능이 번득인다고 했고 다른 작품에도 그런 대목이 많다고 칭찬을 하였다.
다음은 문덕수의 서문 내용이다.
최도규씨는 내가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일은 없지만, 서로 글로 알게 된 지는 그럭저럭 3,4년은 되는 것 같다. 내가 「새교실」이라는 잡지의 부탁으로, 투고 시 작품의 심사를 맡아 한 일이 있는데, 그 때 열심히 투고한 분 중의 한 분이 바로 최도규씨였다.
직접 만나는 일이 없이 투고한 분과 심사한 분이 작품을 계기로 계속 알게 되는 일은 가끔 있기는 하나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작품이 인연의 계기가 되므로 특히 우수한 작품이 아니면 인연을 맺어주기가 어렵다. 그 동안 3,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또 내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최도규씨의 이름을 엊그제 만난 사람처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의 작품이 준 인상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을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계속 쓰고, 그것을 평생의 보람으로 꾸준히 밀고나가는 힘, 그런 의지력은 더욱 중요하다. 최도규씨는 이제 작품집을 내게 되었거니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소질과 그것을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는 의지력을 다 갖춘 시인이다.
태양은/목이 말라/옹달샘 깊숙이/내려앉는 한낮에//잠은/아가를 데리고/맴을 돕니다.//고/작은 손/쪼악 펴/만세 부르다/내릴 생각 잊은 채/그냥 그렇게 돕니다.
(‘아가’의 1연에서 3연)
이 작품에서 이 시인의 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새교실」의 부탁으로 추천을 할 때 이렇게 적었다.
[이 달의 응모작 중에서는 최도규씨의 「아가」가 제일 낫다. 시상과 소재는 평범하나 비유와 구성이 뛰어나 한층 돋보인다. 이를 테면, ‘태양은 목이 말라 옹달샘 깊숙이 내려앉는 한낮에’는 의인법을 쓴 대목이지만 실감이 나도록 표현되어 있다. 발상에서 완성될 때까지 절실한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비유 구성이 잘 되어 있다.]고.
「아가」라는 작품을 읽어 보면, 지금도 나의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작품 외의 다른 작품에도 그의 재능이 이같이 번득이는 대목이 많다.
- 이하 줄임 -
동시집 『교실 꽉 찬 나비』의 발문은 엄기원과 김종상 두 분이 썼다.
엄기원은 최도규시인을 아동문학을 공부하는 자세가 퍽 진지하고 겸허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최도규 선생은 문학의 재질과 소양이 꾸준한 노력과 겸허한 자세로 마치 가을볕에 익어가는 사과처럼 탐스런 결실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작품은 시로서의 문학성과 교육성을 지닌 무게 있는 작품이라고 하였다.
작품 「콩서말」에서는 아버지의 몸무게가 콩서말이라는 무식한 대답이 오히려 부모의 깊은 애정과 두메의 흐뭇한 인정의 세계로 이끌어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작품에서 고향을 배경으로 한 토속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도 하였다
‘어린이’라는 제약과 특수성에 부대끼면서도 적절한 시어를 골라 항상 싱그럽고 새로운 동시를 쓰는 재주가 놀랍다고 하였다.
김종상은 최도규의 동시를 ‘애정과 감성 위에 구축된 시세계’라 하였다. 즉, 교육적인 사랑과 문학적인 감성을 동시에 지닌, 어린이들에게는 가장 영양가 높은 양식이 되고 있다고 했다.
「봄날」, 「9월」 등 동시의 일부분을 예로 들면서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마음 밭에 자연의 위대한 사랑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또 기계문명 속에 멍들어가는 어린이의 마음속에 자연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향토와 자연에 대한 애정도 지극해서 인간과 자연의 생활을 하나로 관조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이외에도 생활의 단면을 매우 감동적으로 그려내기도 하고 차원 높은 상상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표현 한다고도 했다.
1983년엔 동시조집 『빼꼼이와 짱구』를 상재(上梓)하였다. 동시가 자유롭게 쓴 어린이를 위한 자유시라면 동시조는 시조의 형태에 맞추어 어린이와 동심이 깃든 어른을 위해 쓴 시조 작품이다.
서문은 시조시인 이상범이 ≪사물을 대하는 새로운 눈과 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는 동시조 「산촌일기ㆍ둘」에선 , 사물을 관조하는 차분하고 예리한 눈을 발견할 수 있었고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일상의 가장자리를 두루 만질 줄 아는 생각의 손끝마저 만나볼 수 있었다고 하였다. 작품 「봄비」에선 동심의 티 없이 맑은 결을 타고 목숨의 신비와 환희, 그리고 그 생동감을 찾아내기에 족한 듯싶었고 순수한 장난 끼마저 섞인 동심도 함께 포착할 수가 있어 수긍을 하게 한다. 그리고 동시조의 묘미가 진정 어디에 있는 가를 독자로 하여금 깨우치게 한다고 했다.
조규영은 발문에서 ‘때깔 있는 소박한 작품’이라 하였다. 그가 쓴 글에서 최도규의 작품세계는 다음과 같다.
- 산나물 냄새가 묻어나고 개울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꾸밈없이 표현한 작품에서 인간다운 내면과 소박한 마음을 볼 수 있다.
- 언어가 깨끗하다고 한다. 깎고 다듬어진 정결함이라 하였다.
동요집 『달맞이꽃』은 1988년 동요 동시집으로는 마지막 시집에 속한다. 김종상은 서문에서 작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의 동요에는 시조에서 다듬어진 세련된 우리의 서정과 가락이 스며있어 진한 향수와 친근감을 준다고 하였다.
시인들은 처음 시를 쓰는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매우 기이하지 않은 물음이지만 한편 아주 중요한 물음일 수도 있다. 그 대답에 따라 시의 방향이나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도규는 1977년 7월 『교육자료』에 발표한 동시 「생일 아침」의 시작 노트에서 처음 시를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시작 노트]
간밤엔 나린 비가 조그마한 웅덩이에 갇혔습니다. 하늘을 누비던 때와는 달리 어쩜 숨막히는 곳에, 그러나 애써 닦아내는 물빛 맑은 몸매로 그리움 일렁이며 웃음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낮이면 하늘이 내려와 어루만져 주고 밤이면 별들이 내려와 숨바꼭질을 하기 때문입니다.
십리 밖에서 하나 둘 모이는 까무잡잡한 아이들, 그들은 나에게 시를 쓰게 했고 그래서 보람을 느끼게 했습니다.
까마득히 잊었던 생일을 엄마는 잊지 않았군요.
최도규는 십리 밖에서 모이는 까무잡잡한 순박한 산골 아이들, 그들 때문에 시를 쓰게 했다고 말한다. 즉 꾸밈을 모르고 자연을 닮은 시골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좋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떤 방향의 동시를 쓰고 싶었던 것일까?
1988년 펴낸 동요집 『달맞이꽃』에는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기를≫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 책 끝에 있다.
「‘서당개 십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한다. 문학을 한답시고 동시를 써 온 지도 벌써 20년, 나는 가끔 서당 개만도 못한 것 같은 자신을 돌아본다. 누굴 위해 동시를 빚는가.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고 독자야 읽든 말든 월간지나 계간지에 몇 마디 씩 오르내리면 뛰어난 동시고 훌륭한 작가일까.
어른, 아니 시를 쓰는 작가들도 그냥 눈 한번 스쳐버리는 작품들을 어린이들이 얼마나 읽고 감동을 받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맛있는 음식은 먹는 순간이 즐겁고 먹고 나면 건강에 유익하듯이 누구든지 읽는 순간이 재미있고, 읽고 나면 오래오래 여운이 남는 작품을 쓰고 싶다.」
위에서 보면 그의 작품에 대한 철학이 그려져 있다. ‘어린이에게 쉽고 재미있고 여운이 남는 시’ 이것이 그가 지향하고자 한 동시에 대한 철학이다.
실제로 앞에서 많은 분들이 최도규의 시를 이야기할 때 서정적이고 읽히는 시라고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시집 속으로 들어가 보면, 작품 속에 그려진 작품은 최도규 특유의 재미와 감동이 깃들어 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공감을 주는 동시들로 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세분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가 발간한 동시집을 종합하여 보았다.
최도규의 작품에는 순박한 시골의 삶과 자연의 진경(眞景), 어린이의 소박함이 담긴 정겨움이 표출되었다.
동시 「콩서말」을 비롯하여 「장날」, 「골이 깊은 산」, 「샘물터」, 「진달래」, 「산마을 1」, 「산마을 2」, 「산아이 1」, 「산아이 2」, 「옹달샘」, 「메아리」, 「반딧불」, 「목동」, 「가을 하루」, 「초가을」, 「고갯길」 등의 많은 작품에서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산이 높아/깊어진 골짜기//골이 깊어/높아진 산//구름도 어지러워/한나절을 돈다.//잘 익은 햇살이/굴러 내릴 땐/산그늘이 달아나고/망울진 메아리로/푸르게만 터지는 소리/아!/청아한 새소리//오늘도/바람을 보내/하늘/파아랗게 쓸어 놓고/마알간 도랑물에서/높이를 잰다./깊이를 잰다./골이 깊은 산.
- 최도규, 「골이 깊은 산」 -
이 작품은 동시집 『교실 꽉 찬 나비』에 수록되었고 소년한국일보 캠페인 ‘시를 읽읍시다’의 「이번 주의 명시」로 소개된 글이다. 아래와 같이 박두순이 도움말을 달았다.
「 이 시에는 산과 골짜기ㆍ구름ㆍ해ㆍ메아리ㆍ새소리ㆍ바람ㆍ하늘ㆍ도랑물이 어우러져 있어,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시인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것을 ‘구름도 어지러워 한나절을 돈다.’라고 표현했다.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산이 가파른 모습을, ‘햇살이 굴러내린다.’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잘 익은 햇살은 맑디 맑은 햇볕을 말한다. 햇살이 산을 내리비치자 산그늘이 사라지고, 메아리 소리가 터진다. 그때 맑은 새소리가 어울린다. 또 맑은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며 하늘의 구름을 쓸어낸다. 도랑물이 말갛다. 거기에 산 그림자가 비친다. ‘내 키가 얼마나 될까?’ 산이 제 그림자의 높이를 재어 본다. 참으로 조용한 풍경이다. 평화로운 산골이다. 이 시의 멋과 맛이 여기에 있다. 」
박두순은 이 작품에서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 한 폭의 산수진경이 아닌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읽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글이다. 마치 금강산 일만 이천 봉 구경을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언어의 조탁과 표현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최도규의 작품에서 단연 돋보이고 뛰어난 점이 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들이 그의 눈과 손에 들어오면 기막히도록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비범한 물상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마술사의 손으로 쓰여 진 듯, 느낌이다.
동시 「봄날」은 1974년 11월 『교육자료』에서 동시 1회 추천을 받은 작품이다.
하얀/겨울 벗고/언덕이/햇살을 모아/녹일 때//팔랑팔랑/계절은/파랗게/큰다.//걸음마/한나절에/늙어버린 아지랑이//고물고물/고향 잊고/하늘 가득 안기고//몰래/키워 온/봉오리 진달래/햇살 먹고/발그레/얼굴 붉힌다.
- 최도규, 「봄날」 -
봄날의 정경이 그려져 있다. 눈이 녹고 새싹이 돋고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봄 들판의 정경이다. 시어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몰아간다. 몰래 키워 온 진달래가 햇살을 먹고 발그레 얼굴 붉힌다고 했다. 진달래가 피어나는 모습이 시골 처녀아이의 모습처럼 앳되게 그려졌다.
동시 「목동」은 1975년 2월 교육자료 동시 2회 추천 작품이다. 「목동」에서도 평화로운 풍경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목동의 팔베개에/졸음이 와 앉아/산에 걸린 하늘을/눈 속에 가둔다.//싸리순 칡넝쿨/한입 가득 돌리며/황소가/산허리를 먹어 없애면/겁 먹은 갈잎/바르르 떨고/산을 타던 개미들도/방향이 없다.//도룽 도룽/익어가는 숨소리/바람이 몰고 가고/딸랑 딸랑/소방울/땀방울로 맺혀/목동의 이마엔/반짝이는/여름들.
- 최도규, 「목동」 -
산에서 황소를 돌보는 목동의 모습을 그렸다. 목동의 눈에 졸음이 올 때 쯤이면 황소는 칡넝쿨을 먹으며 산허리를 돌아간다. 갈잎이 흔들리고 개미들이 움직이는 모습조차 시인의 눈은 놓치지 않는다. 목동의 잠자는 숨결을 도룽도룽이란 의성어를 사용하였다. 새롭고 적절한 의성어이다. 한낮에 소들이 산을 돌아가며 풀을 뜯고 목동이 낮잠을 자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동시에서 이렇게 자연주의 문학으로 성공한 작품은 드믈다.
동시 「옹달샘」도 이런 유형의 작품에 속한다. 이 작품은 1977년 5월 제6회기독교아동문학상 당선작이다.
산만큼 깊은 골에/조심스레 자릴 트고/퐁 퐁 동그라미/걸러 올린 옹달샘//하늘은 작아도/하루는 하루/산새소리 흥겨워/물살이 일고/산나리 웃어 주어/ 더 맑아지면//눈빛 맑은 산짐승의/거울이 되고/크고 작은 나무들의/사진이 되고//산푸른 이야기/종일 모아 담다가/산그늘이 무거워/촐랑 넘으면//조약돌 매만지며/숲속에 숨어/졸졸졸 산소리/풀어내는 산시내.
- 최도규, 「옹달샘」 -
누가 읽어도 잘 전달되는 쉬운 작품이며 재미를 준다. 옹달샘은 산속의 동식물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조약돌 매만지며 숲속에 숨어 산의 숨결을 풀어낸다고 하였다. 억지를 가하지 않은 무위의 자연에 대해 사랑의 시선으로 보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로 독특하게 작품을 그려 내었다.
최도규의 동시 속에 담겨지는 자연은 평화롭고 순수하다. 자연은 동식물이 서로 교감하는 곳이다. 여기서 더 한 발 나아가 사람들과도 소통의 장소이다.
작품 「산마을 1」에서는 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의 순박한 삶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둥우리를 틀고/산은/제멋대로 솟아/평수를 잴 만큼/좁혀진 하늘에/하얀 구름이 뛰어 넘는다.//산마을은 외로워도/두 눈 반짝여/크로바를 쓸며/네잎을 찾는 꿈많은 아이들//텔레비전은 못 봐도/기차는 못 타 봐도/착하게/착하게만 자라/고운 꿈 가득히 크로바에 건다.//산내음 향긋이/바람은 흔들며/옥수수 잎에 내려서고/산푸른 얘기소린/종일/산새들이 토해//하늘은 작아도/태양은/하루를 살며/퐁퐁 솟는 샘물을/내려와 마신다.
- 최도규,「산마을 1」 -
산새들의 지저귐을 ‘종일 산새들이 산 푸른 이야기를 토해낸다’고 하였다. 싱그러움이 물씬 묻어드는 구절이다. 산골이기에 산과 산의 거리가 가깝다. 그러니 하늘은 작아 보인다. 그래도 하루를 살며 퐁퐁 솟는 샘물을 내려와 마신다고 하였다. 산과 산새와 태양이 모두 하나의 가족처럼 끈끈하게 엮어져 더욱 정겹다.
최도규의 동시에는 자연의 풍경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 작품 뿐 만아니라 사람들의 뭉클한 인정과 가족의 사랑이 녹아 있다.
이런 작품을 몇 편 들면 「아가」, 「걸음마」, 「첫 돌맞이」, 「알까 모를까」, 「토마토」, 「빼곰이와 짱구」 등을 들 수 있다.
태양은/목이 말라/옹달샘 깊숙이/내려앉은 한낮에//잠은/아가를 데리고/맴을 돕니다.//고/작은 손/쫘악 펴/만세 부르다/내릴 생각 잊은 채/그냥 그렇게 돕니다.//송 송/땀 방울/꿈 방울로/익을 때//얼굴 가득/행복한 웃음으로/피고// 엄마의 일손도/아가 따라 돕니다.
- 최도규,「아가」 -
「새교실」에서 첫 추천을 받은 작품이다. 여름 한낮에 평화롭게 잠이 든 아가의 모습을 중후한 표현으로 멋지게 나타내어 감동을 준다. 태양이 목 말라 옹달샘 깊숙이 내려앉았다는 표현, 아가가 평화롭게 잠든 모습을 ‘만세 부르다 내릴 생각 잊었다는 것, 송송 땀방울 꿈방울로 익어갈 때 행복에 겨운 엄마의 일손도 아가 따라 돈다는 표현은 누구나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참신하면서도 무게 있는 이미지이다. 엄마의 사랑을 은근하게 작품 속에 녹여놓았다.
따스한 엄마와 아기의 사랑을 자연의 서경과 어울려 빚어낸 최도규의 동시 ‘아가’는 조용한 감동을 안겨주는 인간의 정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다.
최도규의 시의 특징이라 할까, 매력이라 할까? 그것은 글의 흐름이 자연의 묘사로 이어가는 것 같았는데 그 끝을 보면 인간의 진한 정이 배어있는 점이다. 그래서 그 이상으로 감동을 전해 받는 것이다.
최도규의 작품에는 순수 무구한 동심이 담겨있다.
순수 무구한 동심의 표출을 한 작품으로는 「소풍날」, 「교실 꽉 찬 나비」 등에서 볼 수 있다.
햇살이 더욱/요란스럽게 뵈는 하늘/그 하늘이/웃음 속에 묻히고//몇 날을 두고 사룬/오색빛 꿈들을/꽃으로 풀어내며/ 목소리 낭낭히/들판을 날은다.//터지는 웃음 속에/오늘은 모두/활짝 핀 꽃//하늘도 신이나/꽃구름 펴고/아이들은 훨훨/꿈실은 나비가 된다.
- 최도규,「소풍날」-
소풍날의 즐거움을 표현하였는데 느낌이 살아있고 생생하다. 동시는 예술성과 교육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하기에 동시쓰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도규의 동시를 읽으면 잘 조화된 동시를 만날 수 있다. 동시 「소풍날」은 이런 면에서 성공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꿈이 담겨 있어서 싱그럽다.
1977년 5월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작품인 「교실 꽉 찬 나비」는 현재 강릉의 경포호숫가의 시비에 새겨져 있다.
최도규의 동시에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최도규는 어린이와 자연에 대한 소박한 믿음에서 출발한 아름다운 상상력은 동시를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수처럼 한 편 한 편 동시로 뿜어져 나왔다. 최도규의 마음은 시를 분출하는 활화산이었다. 최도규 시의 밭은 자연이었고 산골 사람들이었고 소박하고 꾸밈없는 아이들이었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떠나가야 했다. 그걸 보며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대신하였다.
이사가던 날
최도규
도시로 간다고
떠들썩 하지만
아버지 담배는 자꾸 줄었다
어머니 눈물은 샘이 솟았다.
멍 멍 멍
삽살이도 앞산에다
목소리를 걸어두고
풀벌레, 솔바람, 개울물
소리
소리
소리
순이는
눈망울 가득 담고 있었다.
- 동시집 『이사가던 날』에서 -
역시 이 작품에서도 빼어난 시적 묘사가 나온다. ‘삽살이도 목소리를 앞산에다 걸어두고….’ 라는 표현이다. 살아 움직이는 듯 실감을 준다. 아버지 어머니 삽살이 순이 모두 이사 가는 슬픔, 아니 정든 자연의 모습을 두고 떠나간다는 아픔을 읽을 수 있다.
박넝쿨/엉킨 틈새/한줌 볕살 서성이면//돌방석/깔고 앉아/달콤히 삭혀가던//소박한/초가 뒤란에/맛의 고향 장독대//싸리울/넘나들며/해종일 어우르다//고추장/된장 내음/붉게 타는 고추 짱아//어머니/마음까지도/함께 삭던 장단지
- 최도규,「장독대」 -
고향의 장독대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초가집 뒤란에 장맛이 익어가던 장독대. 싸리울 넘나들며 고추장 된장 내음 나고 어머니 마음까지도 함께 삭히는 장단지의 모습이 얼마나 구수하게 달콤한가. 언제 읽어도 지치지 않고 푸근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최도규의 동시는 꽃처럼, 노을처럼 피워놓은 주옥같은 서정동시들이다.
1988년 아동문예사에서 상재한 동요집 『달맞이꽃』에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서정시들이 모여 있다. 동요의 형태로 지어졌기에 읽으면 음악적인 운율마저 느낄 수 있어 더 정감을 준다.
최도규는 그의 시작노트에 언급한 것과 같이 산골아이들의 순박한 모습이 좋아 시를 쓴다고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꾸준히 자연속에서 아이들과 호흡하면서 창작활동을 해 왔다. 동시의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쉽고 재미있게 읽혀진다. 일부 작품은 어른들이 읽기에 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삶과 어린이의 소박함이 담겼다. 평범한 사물들을 최도규 특유의 비유와 활유적 방법에 의해 신선하게 표출하였다. 즉 개성미가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대부분의 소재가 생활과 밀착된 자연물이다. 그런데 자연물과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의 정과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즉, ‘동심 적 자연주의 문학’이라 칭하고 싶다. 흙냄새 깔린 토속적인 향기를 내며 소박한 시골의 정취를 그렸다.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속성으로 하고 있다. 꽃처럼 노을처럼 피워놓은 주옥같은 서정시들이다. 일부 작품에선 시의 구조가 서정적이면서 서사적인 구조를 유지하기도 하고 서경적이면서 서사적인 구조를 갖는다. 또 일부 작품에선 어린이에겐 어려운 시어의 사용이 있었고, 어른들의 정서에 맞는 동시들이 많았던 점은 동시 구분의 발전적인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평소 개인적인 창작 활동도 쉼 없이 이어졌지만, 많은 문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문학의 폭을 넓히고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분이다.
최도규는 문학 속에 사람의 정과 사랑을 담아 향토색 짙은 서정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한 떨기 꽃처럼, 한 자락 노을처럼 피워놓은 주옥같은 서정 동시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음 밭에 심어져 감동의 꽃잎으로 피어나리라고 본다.
교실 꽉 찬 나비
최도규
어쩌다
교실에 날아든
한 마리 나비
책을 쓸던
까아만 눈들을
모두 낚아 올린다
책갈피를 뛰쳐나간
눈망울들도
장난 속을 튀어나와
살포시 여는
앞니 빠진 입들
선생님도 슬그머니
빼앗기는 눈동자
마알갛게 빛을 낸
유리그물에 걸려
열린 창 옆에 두고
호륵호륵 날다
아이들 눈 속으로
쏙쏙 들어가
교실 안은
꽃밭
꽈악 찬 나비.
- 1977년 5월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작품 「교실 꽉 찬 나비」-
최도규에 이어 김완성(1941 - )은 1977년 ≪소년중앙 문학상≫에 당선하며 아동문학 문단에 이름을 올린다.
김완성은 1941년 8월 20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면 동화리에서 출생하였다.
춘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강릉원주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 12월 「소년중앙」 창간 9주년기념 50만원 고료 동시·동화 모집에서 김완성은 황지국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동시 부문에 「보리밭」이 최우수작에 뽑혔다.
같은 해인 1977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햇빛들의 나들이」가 당선되었다. 동시가 당선된 이후 시와 시조에 창작에도 활발하였다. 동시집으로는 『탄광촌 아이들』(도문사, 1978.10), 『비누방울』(가리온출판사, 1982.11)등이 있다. 1983년엔 동시집 『비누방울』로 제8회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산가 일기」당선, 1991년,『문학세계』 시 당선 등으로 시조와 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강원도문화상(1995)을 수상하였다.
한국아동문학가협회, 강원시조문학회, 강릉문인협회 등의 회원이었고, 강릉 지역의 문학동인인 해안, 관동문학 등의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강릉지부장,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 pen회원, 한국국어교육학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1년, 설악산 대명레저타운 본관 앞에 「설악산」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시 「개심사 가는 길」이 소개되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시집에 『시인의 길』오상, 1992. 『관계』등이 있다. 시집『결』은 2002년 도서출판 아티스트에서 발간되었다. 『마침표의 침묵』(2012)이 있다. 2012년 11월 『김소월과 백석 시의 민족의식 연구』를 지식과 교양에서 출간하였다.
2016년에는 전영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감자를 먹는 사람들』(월간문학사)로 수상하였다. 2016년 11월에는 김완성 시선집 『경포대의 달』(시월)을 상재하였다.
김완성은 초등학교, 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사직한 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강릉원주대 평생교육원에서 문학지도를 하고 있다.
2017년에는 ❰서정시학❱에서 여행시집 『길 밖에서 풍경을 걷다』를 발간하였다.
1990년대부터는 아동문학 활동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시 창작과 강릉원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 강의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도계
김 완 성
보리밭에 작은 물결이 일면
울타리 기어오르는 호박 덩굴처럼
사알짝 올라가고.
봉숭아꽃 필 무렵엔
해바라기 대궁모양
쭈욱쭉 뻗어가고.
햇빛을 가득 담은 석류가 터지던 날
달빛에 메밀꽃 강물 되어 여울질 때
지난 해 입었던 아가 옷만큼 줄어들더니,
문풍지가 부엉이 울음을 흉내내고
별들이 유리창에 얼어붙던 밤
몽당연필같이 작아진 빨간 기둥.
비누방울
김완성
노오란 밀짚을 불면
동그란 풍경들이
퐁퐁 솟아납니다.
동그란 나무
동그란 집
동그란 꽃밭
하늘로 동동 떠오르고,
지나가던 구름
날아가던 새
한 옹큼 바람마저
방울 속에 동그랗게 갇혔습니다.
밀짚을 입에 문 남이도
무지개빛 방울을 타고
하늘로 동동 날아오르고
환하게 웃으며 구경하던
엄마의 어린 시절도
어느새 방울에 실려
꿈처럼 동동 떠오릅니다.
밀짚 대롱 끝에
동그란 풍경들이
자꾸만 자꾸만 살아납니다.
햇빛들의 나들이
김완성
복숭아 얼굴이 빨갛게
타오르는 한낮
과일과 곡식들을 키우느라
땀 흘리던 햇빛들이 왁자그르
냇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송사리랑 아이들 몸뚱이에
온통 매달린 햇빛들은 물장구치며
찰방댔습니다
깜짝 놀란 물고기들이 지느러미를
마구 흔들고 아이들은 자맥질로
잠방거립니다
냇물 속에 잠자던 나무들은 꿈틀꿈틀
잠이 깨고 놀란 매미는 물속 나무에서
자지러지게 웁니다
더욱 신이 난 햇빛들은
반짝반짝 하얀 이 드러내고
껄깔댑니다
우루루 냇물 뛰쳐나온 벌거숭이
아이들 몸뚱이에서 햇빛들은 아우성치며
쏟아져내렸습니다
조약돌에 무지개로 부서진 햇빛들은
해님에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 1997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동시 당선작 -
김완성의 동시는 위의 작품처럼 구체적 이미지들이 역동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러한 역동성은 동시 전체를 즐거움으로 빠져들게 한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이 감각적인 이미지가 뛰어나다.
남진원(南鎭源 1953 - ), 호(號)는 동우재(動友齋), 이당(伊堂). 물내. 1977년 2월엔 남진원이 『아동문예』로 아동문학 문단에 등단하여 합류한다. 남진원은 1976년 1월 샘터사에서 발행하는 『샘터』지에서 ≪샘터시조상≫을 수상함으로써 시조 등단은 아동문학보다 1년 앞섰다.
남진원은 생활이 더 힘들고 가난할때, 정신은 예리하고 날카롭고 맑아지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남진원이 생각하는 문학 중의 문학인 아동문학은 언제나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그런 문학을 하게 된 동기부여가 『아동문예』이다. 그리고 『아동문예』를 발행하던 박종현 주간이다.
남진원은 말한다. ‘나는 문학을 합네 하면서, 젊어서는 방종 같은 호기와 허세도 부렸다. 그런 배짱도 허세도 없으면 또 어찌 문학을 하랴?’
사고의 자유로움이 보장되어야 할 문학이기에 어떤 구속도 받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기에 남진원에게 있어서 가난은 그조차도 호사스런 것이었다. 지금도 가난하기 때문에 삶은 지극한 행복 속에 있다고 말한다.
남진원은 1953년 10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 양지마을에서 아버지 남기혁 어머니 전영숙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태어난 고향에서 다니고 그때 할머니의 포근한 사랑 속에서 보냈다. 그랬기에 1973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을 태백시에 받았지만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소원이었다. 드디어 5년의 태백 화전 국민 학교 근무를 끝내고 고향인 정선의 문래 초등학교에 부임하였다.
1977년 4월 27일 강릉에서 아내 김정자와 결혼식을 하였다. 이후 8월 29일 아들 [대순]을 낳았다. 아내와는 36년을 함께 하였다.
첫 부임지인 삼척군 황지읍 화전 국민 학교. 1973년 10월 13일, 스물한 살의 나이지만 만으로는 19세의 어리고 풋풋한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젊은이가 교사로 부임한 날이다.
눈이 내린 1975년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시간, 햇살에 녹은 눈은 지붕에서 맑은 물이 되어 흙 마당에 떨어지고 있다. 문득 어린 날 처마에 떨어지던 낙숫물이 어느 날, 남진원을 뒤흔들었다.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아침 / 지붕엔 토옥 토독 겨울이 헐리는데 / 볕 묻은 흙담 밑에서 봄은 자리 트는가.
위의 동시조 「늦겨울 아침」 한 수를 지어 샘터사에 투고 했다. 이 작품 한 편이 남진원의 인생을 새롭게 이끌 줄이랴!
이 동시조 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싱싱함, 맑음, 따듯함 등이 담겨있다. 들뜨고 신선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1976년 1월, 샘터시조상을 받게 되고 문학 작품들은 알에서 깨어난 새들처럼 부화하기 시작하였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시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늦겨울 아침」으로 표출되었다. 아름다운 고향의 여름밤은 「여름밤」이란 동시로 다시 탄생하였다.
할머니 이야기 / 아가 귀에 / 풀어놓는 밤 // 아가는 / 하나 둘 / 별을 / 손가락에 걸으며 / 이야길 듣는다 // 눈꺼풀 사르르 / 꿈나라 찾아 / 벌서 / 꼬옥 쥔 손바닥 // 할머니 이야기가 / 한 웅쿰 / 별이 / 한 웅쿰
- 남진원, 「여름밤」 -
1975년 간난신고 끝에 나온 첫 동시 추천 작품(1976년 3월호 교육자료 동시 1회 추천)이다. 이후 시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1976년, 연거푸 「교육자료」와 「새교실」에서 추천을 받게 되어 1년 동안 두 곳에서 각각 3회 추천완료를 받았다.
그러나 1976년 작품 응모에 힘을 쏟다가 결국 신경성 위장병으로 그 해 7월 위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몸을 돌보지 않다가 그 후유증으로 내내 고생을 하고 있다.
참으로 숨 가쁜 시간이었다. 그해 7월 위장 수술을 한 뒤 강릉 집에서 휴양을 하고 있었다. 당시 얼마나 가난했는지 병석에 누워있으면서 제대로 먹을 것도 먹지 못해 더욱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새교실』에 투고 작품을 보내놓은 터라 어찌 되었는지 궁금했다.
당시의 집은 강릉초등학교 바로 뒷 편에 있었다. 지금은 그 집 터엔 집은 온데간데 없고 재료들만 쌓아놓은 창고자리가 되었다. 그 집터가 드세어 그런지 그곳에서 우리집안은 쫄딱 망했다.
2학기 개학이 되자 수술한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우고 강릉초등학교로 찾아갔다. 힘이 너무 없어서 다섯 발자국을 가지 못한 채 쉬다가 쉬다가 겨우 도착했다. 어느 교실 문을 드르륵 하고 열었다. 교실에 있던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 해골 같은 사람이 서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자초지종을 겨우 이야기하고 『새교실』 잡지를 얻었다. 밖에 나와서 펴 보는 순간, 그곳엔 「공원」이란 작품이 2회 추천으로 나와 있었다. 집에도 겨우 겨우 돌아와 누운 채 그 시를 읽으며 종일을 보냈다.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 황지 화전국민학교로 다시 나갔는데 그때도 몸 상태는 수술 후라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 쓰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학교 공터에 꽃망울이 맺혔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떤 푸른 희망과 기다림을 갖게 되었다. 병이 낫기를 바라는 희망과 작품이 추천완료 되기를 바라는 기다림이었다. 그 모습에서 착안하여 시 한 편을 쓴 것이 완료추천 작품이었다.
나비가 찾아와 다시 꽃이 필 때를 기다리며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이 추천 완료되어 한 해 동안에 『교육자료』와 『새교실』 추천을 모두 끝내었다. 돌이켜보면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을 해내었다.
그 무렵 어린이들 작품도 지도를 하였다. 「어린이강원」에 발표되는 화전 초등학교의 아이들 작품을 모아 1976년 12월 황지 ≪새서울다방≫에서 최도규 선생님과 함께 화전초등학교 어린이 작품 시화전을 열었다. 아마 그 지역에서는 최초의 어린이 시화전이었을 것이다.
이런 문학의 여세를 몰아 『아동문예』에 동시 응모작을 보냈는데 1977년 2월호에 곧바로 천료가 되었던 것이다.
1980년엔 정선읍에서 전태규, 남진원, 최승호, 이갑창 등이 모여 정선아라리문학회를 조직하였다. 회장은 전태규가 맡았다. 1987년부터 한국문협정선지부로 활동하였다.
1980년 5월에 월간문학사로부터 당선 전보 통지를 받았다.
『교육자료』를 천료 후 1981년 3월 『교육자료』에 시 ‘저녁상’을 발표하였다. 고향의 여름 저녁은 생생한 경험이 내재된 풍경화였다.
1983년 1월엔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봄빛’이 당선되었다. 동시집 『싸리울』을 낸 이후였다.
1983년 5월엔 계몽사에서 공모한 계몽아동문학상 동요동시 부문에 동시조 「봄빛 3장」이 당선되었다.
문학의 열기를 몰아 이듬해인 1984년에는 제4회 강원아동문학상을 받는다. 강원일보 1984년 11월 25일자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곧 시의 소재」라는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1985년에는 『동화마을』 여름호에 동화 「한여름밤의 꿈」을 발표하고 6회에 걸쳐 ≪어린이강원≫에 연재 동화 「왕밤할아버지와 달래」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렸다.
1989년 5월에는 ≪제31회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스포츠서울≫, ≪중앙일보≫, ≪서울신문≫등에서 수상 보도를 하였다. 그리고 동시집『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를 도서출판 『화술』에서 상재한다.
1990년 국정교과서 4-1 읽기 교과서에 동시 「어머니」가 수록되었다. 명주 국민 학교에 있을 때였다.
동시 「어머니」는 딸 아이의 모습을 소재로 하여 쓴 글이다. 1992년엔 강릉시의 남강 국민 학교에 근무하였다.
4월에는 계몽사에서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동시집을 내었다. 그리고 문학에 전념하기 위해 이해 5월 사표를 내었다. 7월 20일에는 글짓기지도서 『재미있는 동시쓰기 나라』를 서강출판사에서 발행하며 글짓기 지도에도 힘을 기울였다.
나이 41세, 1993년11월에는 한국문인협회 강원도지부에서 수여하는 ≪제12회 강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 10월에는 강원도에서 시상하는 ≪강원예술인 대상≫을 수상하였다. 12월 17일에는 ≪제4회 관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해 9월엔 국정교과서 2-2읽기 교과서에 동시 「산골버스」, 「가을 한낮」이 수록되었다. 동시 「가을 한낮」은 내용 중 첫 행만 수록되고 전면에 가을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동시「산골버스」는 전문이 수록되었다.
44세 되는 1996년, 아동문예사에서 제정한 ≪제18회 한국동시문학상≫을 수상(심사위원: 박홍근, 문삼석, 박성배, 송재찬, 정두리)하였다.
1997년에는 대교출판사에서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를 상재하였다.
이 해 12월에는 강원일보신춘문예에서 동시 부문 심사를 맡았다.
1998년엔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로부터 〈우수창작도서〉로 선정되었다.
2002년에는 강원시조문학회에서 수여하는 ≪강원시조문학상≫을 받았다.
2003년 7월 8일에는 ≪강원도 문화상 문학부문≫을 수상하였다.
2004년에는 시집 『장자의 하늘』을 태원출판사에서 상재하였다. 이 시집으로 ≪강원펜문학 제1회 번역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1월 30일에는 『한국현대시인사전』에 인물 내용이 수록 (한국시사 편찬 p.481)되었다.
2006년엔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국정교과서 5학년 1학기 교과서에 「그때 그 고향집」 동시가 수록되었다. 지난 번 교과서에 수록 되었을 때는 저자의 이름이 빠졌지만 이번부터는 이름이 수록되었다.
2010년에는 한국아동문학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달의 우수작품상≫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한마음선원≫에서 공모한 어린이선법가에 최우수작으로 당선을 하였다.
2012년, 『아동문예 』3,4월호에 동시 「뒷걸음질」, 「나무에게 듣다」를 발표하였다. 10월에는 11번째 시집『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를 상재했다. 2013년에는 강원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열두 번 째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를 상재했다. 2014년에는 ≪관동문학회≫에서 주관하는 작고 문인 구영주, 염근수, 최도규, 최정애에 대한 세미나 주제 발표를 하였다.
2015년에는 「난설헌의 고택에서」이라는 제목의 시조로 ≪제22회 현대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어서 ≪2018 동계올림픽 노래 가사 공모≫에 동상 수상을 하였고, 제32회 동시집 『산골에서 온 동시』에 있는 몇 편의 동시로 ≪제32회 불교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동시집도 두 권이나 내었다. 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사에서 『남진원동시선집』도 발행했으며 동시집『산골에서 보내온 동시』도 상재하였다.
2012년 아동문예지에 발표한 동시 「뒷걸음질」이 2015년 5-1 읽기 국정교과서에 실렸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강원아동문학회장을 맡아 회를 운영하였다.
초등학교 퇴직 후에는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그와 동시에 태백 태성전문대학(현, 태백관광대학), 영동대학, 강원도립대학 등에서 10여 년간 교양국어, 문예창작과 논술 등의 시간제 교수로 출강을 하였다.
남진원의 동시는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부터 비롯된다. 남진원은 작품에서 자연을 생명력이 넘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신현배는 2015년 여름호 『새국어 생활 제25권 제2호』에서 남진원의 작품 「산」을 예로 들면서 작품 세계를 말하고 있다.
산은 옹달샘이 콧구멍이다. / 산이 숨 쉬는 모습을 볼래? / 산은 하늘을 들이마시고 맑은 노래를 물길로 내보내지. / 날마다 산이 푸르고 건강한 이유를 알겠다.
- 남진원, 「산」전문 -
남진원의 「산」 역시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상상력의 눈으로 산을 바라보면서 “산은 옹달샘이 콧구멍”이라고 했다. 그리고 “산이 숨 쉬는 모습을 볼래?”라고 말하면서 “산은 하늘을 들이마시고 맑은 노래를 물길로 내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면 ‘시의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언어의 그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만큼 독창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산이라는 시적 대상을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 시는 산을 신격화된 산이 아닌 인간화된 산으로 형 상화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예부터 산은 신이 내려오는 곳이자 산신이 사는 신의 공간이었다. 고려 때나 조선 때에도 특정 산들에 신격을 부여하여 국가의 수호신으로서 나라 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정기적으로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 그려진 산은 전통적인 숭배의 대상인 ‘성스러운 산’이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똑바로 누워서 콧구멍으로 숨을 쉬는 산이다. 산은 옹달샘이 콧구멍이기 때문에 옹달샘에 비치는 하늘을 들이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숨을 내쉴 때에는 맑은 노래를 물길로 내보낼 수 있다. 숨쉬기 운동만 잘 해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날마다 산이 푸르고 건강한 이유”가 산이 숨쉬기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마지막 구절이 공감 을 준다. 이 시는 산도 숨을 쉰다고 밝힘으로써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숨 을 쉰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작품으로 시인은 생명의 소중함과 우리 가 잊고 사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 이하 줄임 -
어머니
남진원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 봐
뒷모습을 지켜보시는 그 마음
나도 알지
- 국정교과서 4-1 읽기 교과서 수록. 서울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게시 -
물 빗자루
남진원
우리 집 앞쪽으로 흐르는
방터골 작은 개울물
가만히
옆에 앉아 있으면
때 묻었던 마음
한 개
두 개
세 개 …
물 빗자루로 잘잘잘
씻어 내린다
새 길 나듯
마음 길 환해진다.
- 동시집 『선골에서 보내온 동시』 중에서 -
은빛 소문 사이로 끼어들어야지
남진원
춥다고 입소문만 무성하더니
간밤에 찾아온 눈 요정
사람들 가슴 속에 기쁜 마음
크레파스 자국처럼 그려 넣고
소문을 ‘즐거운 날’로 바꾸어 놓았어.
하얀 길
하얀 나무
잠자고 있는 자동차
그 위로
햇살이 솜처럼 부풀어
떠다니네.
오후 쯤
경포대 호숫가 회색 벚나무 가지에
회색 털을 가진 참새들 날아오면
나도 벚나무 가지 옆에 서서
참새들 지저귀는 사이로 끼어들어야지.
은빛 소문 사이로 끼어들어야지.
이 작품은 2005년 3월 5일 ≪한국명작동시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하여 예림당에서 묶은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 명작 동시』에 수록된 105편 중의 한 편이다.
산골 버스
남진원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굽이굽이
숨었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숨고
또 찾았다
또 숨었다
종일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 1996년 국정교과서 2-2 읽기 책에 수록 -
그때 그 고향 집
남진원
어머니는 통통하게 살진 강아지보다 더 실한 호박을 반으로 뚝뚝 갈라서 검정 쇠솥에 넣고 쪘다. 박쥐가 후르르 후룩 어둠 속에서 날아다닐 무렵, 숟가락으로 호박을 떠 먹다가 입술과 코에 누런 호박을 붙인 채 잠이 들었다. 호박은 식어야 제 맛이라고 어머니는 남은 호박을 광주리에 담아 뒤울안 장 단지 위에다 포실하게 얹어 두었다.
뿌옇게 동이 틀 무렵
제일 먼저 잠이 깬 매미가
이슬처럼 투명한 울음을
새벽 속에다 거미줄처럼 쳐 댈 즈음
잠에서 깨어난 나는
광주리의 호박부터 찾았다.
눈을 비비며
광주리를 들여다보면
간밤의 어둠마저
단맛으로 섞여 있었지.
마루에 앉아
식전의 간식으로
배가 통통하도록 먹다 보면
바람이 날 부러워하고
담장 밑을 휘돌아 가던 구렁이도
날 부러워하였지.
정말
모두가 부러워하던
그 때 그 고향 집.
- 7차 교육과정 5학년 1학기『읽기』교과서 pp.30-31 -
뒷걸음질
남진원
뒷걸음질 하면
멀어지겠지
뒷걸음질 하면
네가 점점 작아 보이겠지
뒷걸음질 하면
나중엔 네가 안 보일지도 몰라
그러나 발자국은
여전히 네게로 향해 있지
- 2015년 교육과정 개편 국어 5-1 수록 -
김진광(金振光 1951 ~ )은 강릉교육대학을 다닐 때와 교직에 있으면서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를 다니는 동안 강릉에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강릉에 소재한 강릉원주대학교에서 교육대학원을 다녔다. 김진광은 동시, 시, 문학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