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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1」토론 기록
일시 : 2020년 1월 31일(금) 오후 7시-
장소 : 카페 쏘렐라(송현동)
사회 : 협샘
참석 : 6명
발제 및 감상평
협: 각자 인상깊었던 부분은 토론 진행하면서 나오면 다루고, 우선 책을 읽은 소감을 이야기해보자.
배: 허선생님이 감동받아 울었다고 하셔서 궁금해 다 읽어보았다. 그런데 어느 부분이 그렇게 감동적인지 모르겠더라. 2년전 백두산 기행 때 심양을 방문했었다. 여행을 간다, 특히 해외의 새로운 곳을 간다고 하면 설레인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정말 여행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즐겁고 설레이는데 이 때는 생각지도 못할 고초를 겪었다. 여행이 지금처럼 좋은 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 지금 우리는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사신들의 여행도 이러한데 전쟁 시에는 그 많은 군사들 밥은 어떻게 해먹고 움직였나 하는 궁금증도 들더라.
협: 자신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그것이 여행의 주제인 것 같다.
허: 2년전 협님이 추천하셨을 때 반대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교만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나는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북한 학자가 번역한 책을 읽었는데, 책 뒷부분의 해석을 보며 벽돌과 수레이야기 등에서 박지원의 나라를 걱정하는 진심어린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애국이니 국가니 하는 말이 말뿐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는 진심이었구나. 당시 정조때 당쟁에 휩쓸리며 빛을 보지 못한 저자가 안타까웠다. 목숨걸고 가는 여행 중에도 견문을 넓혀 나라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지금 우리는 패키지여행을 따라가며 너무 편협하게 세상을 본다. 걸어서, 느끼며 다니는 여행이 필요하다.
홍: 고미숙씨의 연암에 대한 책(웃음과 역설)을 통해 연암을 소개받았었다. 내가 만나는 연암도 같을까 궁금했다. 결론은 고미숙씨의 표현은 반도 안된다는 것. 단편적으로 보던 연암이란 이미지를 통찰해서 보고 읽었다. 박지원은 한문 문장가로 한시를 잘 짓는 사람이다. 그의 글에는 감정적 풍요로움이 겹쳐 있다. 사물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누군가의 소개가 아닌 내가 담담하게 읽으니 박지원이 더 좋았다. 이 책을 먼저보고 여행을 갔다면 이 책을 따라서 여행기를 써 보았을텐데 참 많이 놓치면서 여행한 것 같다. 결론은 연암은 매력적이다. 누구와도 친해지려하고 코미디같은 에피소드들도 많이 만들었으며 그 안에 촌철살인의 풍자도 있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입신양명에 힘쓰지 않고 자신의 경계를 넓힌 그의 삶과 매칭되어 이 책이 더 특별하게 와 닿았다.
손: 중국과의 오래된 역사를 다시 읽으며 명-청대를 비롯해 중국의 역사와 지명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유득공의 열하일기 서문과 박지원의 일신수필서는 이 책을 통틀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집약한게 아닌가 한다.
협: 일신수필서의 첫 문장이 열하일기의 목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인 것 같다.
은: 벽돌, 수레 이야기 등이 인상깊었다. 특히 그 시대의 소방차 같은 물수레에 연암의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그 당시에 벌써 불을 끄는 이런 도구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는 청나라 사람을 되놈이라 폄하했는데 앞선 문물들이 소개되어 놀라웠다. 박지원은 호기심이 엄청난 사람이다. 새로운 걸 배우기 위한 열정이 대단하더라. 우리는 여행 가면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쁜데 정작 다시 찾아보진 않는다. 그런데 호질 부분에서 연암은 많은 번거로움을 이겨내고 다시 가서 벽에 붙은 내용을 필사해온다. 매번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서는 것도 욕심이 있으니 잠을 떨치고 간 것이다. 욕심도 많고 부지런하기도 했다.
홍: 낙타를 못 본 것을 한탄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은: 기상새설(欺霜賽雪)을 써주자 점포 주인의 인상이 돌아가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한문을 공부하고 싶은 뜻이 더 커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홍: 첫 부분에 간다니 설레었는데 날짜가 막상 정해지니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이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기술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은: 국경을 넘을 때 지금의 세관처럼 품목들을 점검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것이 옛날에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협: 박지원의 글실력과 한학에 대한 지식은 중국의 학자들에 비해서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 동년배인 홍대용이 몇년 전에 북경을 다녀왔다. 그런데 박지원은 황제의 부름으로 열하까지 갔다. 그래서 제목이 열하일기가 되었다. 나는 다른 분들과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박지원이 열하를 갔던 이 때가 1780년이다. 이 즈음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이, 미국에서는 독립선언이 있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신분제 사회로 계층간의 차별이 심한 나라였고, 청에 사행을 갔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이 중국은 화약, 종이 등 다방면으로 기술이 발전한 나라인데 사방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이유를 만리장성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즉, 만리장성은 외부세력을 막기 위한 목적, 즉 폐쇄적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조선이 이 때 이런 구시대적인 것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견마를 잡던 수행원 창대가 발이 다쳤을 때 박지원이 아닌 중국의 제독이 창대를 위해 큰 배려를 베풀었다. 박지원이 호기심도 많고 고민도 많은 인물이었지만 양반인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대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신분제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
허: 허균의 홍길동전은 17세기 작품이다. 홍길동은 율도국을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어 새로운 봉건질서를 만든다. 하지만 연암의 허생전은 봉건질서를 깨부수는 내용이다. 아마도 사행 시에 내 목숨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종복을 챙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호질'을 보더라도 양반을 크게 비판하고 있지 않나.
협: 허생전은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를 박지원이 정리한 것이다. 1권을 읽어보니 자신의 신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없는 것 같더라.
홍: 박지원은 분명 선비이다. 학문을 익혀 출세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 품위가 높은 수준의 사람이란 뜻에서 선비이다. 어딜 가도 문장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대화하고 신분이 좀 높더라도 일자무식이면 돌아섰다. 신분/계층 측면에서의 대화가 아닌, 실질적 지식인을 높이 평가하는 태도가 베어 있었다. 전통적인 질서 하의 신분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농부라도 글을 익혀 깨친 사람은 공경하는 장면도 있다.
협: 고미숙씨의 글도 재미와 해학의 측면에서 박지원의 글을 규정해버리니 나는 흥미가 없더라.
허: 과부가 남편을 따라 목숨을 버리고 열녀문을 받도록 상황을 몰아가는 것을 과하다고 말했다. 그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대단한 발언이다.
협: '호질'의 경우 벽에 붙은 글을 베껴 쓴 것이다.
허: 북한 학자의 번역을 보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뻔하니 그걸 피하려고 그런 에피소드를 넣은 것 같다고. 굉장히 신랄하게 양반사회를 비판하고 있으니까.
홍: 박지원은 정조가 계속 부르는데 응하지 않았다. 아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여행을 통해 갈고 닦은 유연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협: 문체반정이라 했다. 박지원이 쓴 초고본을 베끼고 또 그 베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또 베끼고 했다. 심지어 정조가 과거시험에서 박지원의 글을 베껴 쓰면 불합격시키라 명했으며 이 책은 금서가 되었다.
홍: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한 정조. 그 대척점에 박지원이 있었다. 그래서 갈등이 컸을 것이다.
협: 왕보다 인기있으니 정조가 불안할 만도 했다.
허: 코드는 맞지 않았나?
홍: 코드는 맞는데 사상이 달랐다.
협: 박영효(갑신정변)도 연암의 허생전을 보고 양반이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 태국여행에서 경찰이 길을 통제한 적이 있다. 이유를 알고보니, 새로 즉위한 국왕의 전 부인이 쇼핑을 마치고 되돌아가는 길에 길을 터준 것이었다. 이 시대에 통할 일인가하고 생각했다.
협: 책에 황사 이야기가 많다. 수년 전에는 제대로 검사가 안되니까 그냥 마시고 산 듯 하다.
배: 지금은 대기가 예전보다 더 좋아졌는데도 언론 등이 더 부각시키니까 예전보다 민감한 것 같다. 수질도 옛날이 더 나빴다.
협: 이제 책에서 각자 인상깊었던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자.
허: 박지원의 친구들
중 서자들이 많았다. 서자제도에 대한 비판도 있다. 당시로서는 깨어있는 선비로 사는게 힘들었겠다. 말만 양반이지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홍: 집안이 좋았던거지 자신은 가난했다.
협: 박지원의 아들도 그리고 손자(박규수)도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홍: 글만 읽었지 팔을 걷어붙이고 뭘 했을 것 같지 않은 박지원 덕에 부인이 힘들었을 것 같다.
은: 술잔의 크기(p.76)에 따라 값이 정해지는 부분을 읽으며 이들이 정말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벌써 청대에 우리나라 호프집의 cc 개념이 있었다니...
홍: 명은 명분을 중요시 했지만, 청은 유럽의 문화 등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 활용하였으니 조선 실학자들의 눈에 앞서간 것으로 보였을 것. 명이 청에 망하지 않았다면 과연 청처럼 했을까?
허: 구들 놓는 법, 벽돌 만드는 법, 가마로 굽는 법 등에서 청에 비해볼 때 우리의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홍: 수레를 만들면 길은 자연스레 뚫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자학은 말과 글만으로 주장하는 학문으로 실학과 베이스가 다르다. 수레나 가마 등은 서민들의 삶과 직결하여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양반들이 관심이 없었다.허: 어딜 가나 관우의 묘가 있다. 삼국지 중에서 관우를 특히 중국인들이 숭상하는 것 같다. 적장들도 사로잡힌 관우를 살려보낼 정도였으니.
배: 관우는 거읭 성인의 반열에 있다.
홍: 민중들에게는 인기있을 만한 인물이다. 지와 덕을 갖춘,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협: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번역자(김혈조)가 2000년부터 7년 동안 박지원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직접 찍은 것들이다. 이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허: '상루필담' 중에서 사농공상의 신분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혼인문제를 묻는다. 청에서 장사치는 상공이라 부르며 높이 쳐주는데 당시 우리의 상황은 달라서 아쉬웠다.
홍: 문학가로서의 자질도 대단하다. 일출에 대한 묘사(p.232)가 특히 그러하다. 예전 호주여행에서 해를 향해 운전하면서 간 적이 있다. 열하일기의 일출 부분을 읽으면서 그 날의 감탄이 떠올랐다. 한문으로 썼는데 이렇게 자세히 묘사하다니 놀랍다.
허: 번역자의 역할도 큰 것 같다. 북한 학자의 번역은 우리 번역자의 번역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홍: 옛 한학자들의 글짓기에는 절구, 운율을 맞추는 법도 즉, 일종의 메뉴얼화된 법도가 있었다. 박지원의 글은 문체반정이란 말을 들을만큼 문장쓰기가 파격적이었다. 일반 사대부들은 저급히 여겼으나 박지원의 글은 서민들에게도 부합했다.
허: 허생전에 비해 약 1세기 전에 나온 허균의 홍길동전은 순우리말 소설이었다. 그러나 허생전은 한자소설이다. 북한 학자는 이 점을 비판하였다. 봉건체제는 반대했으나 스스로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이다.
홍: 글만 한문이지 음으로만 해석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구어체에서 가져다 쓴 부분들이 많다.
협: 2012년 초본이 발견되었는데 그 시기 전후로 같은 역자라도 번역이 다르다. 보리출판사는 순우리말을 살리는 것을 중시하는 편이다. 우리에 비해 순우리말 보존과 사용빈도가 높은 북한 학자의 번역이 우리 학자의 번역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 영통교 다리(p.449) 사자 모양의 석상에 대해 마치 도장의 꼭지를 닮았다는 부분도 한 예가 될 것. 김만중은 사씨남정기를 박지원보다 100년 전에 순한글로 썼다. 박지원은 학자이니 한자로 쓰는게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은: 옛날엔 한글을 언문이라고 불렀고, 아녀자들의 글자로 천시하기도 했다.
홍: 사씨남정기는 민중속으로 파고들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약간의 정치적 목적성이 있는 글.
은: 요양성의 한 술집 누각에 쓰인 글씨(p.143) 부분에선 이 시대에도 광고란게 있었구나 싶어 신기했다. "이 집의 명성을 들은 자는 응당 말을 멈출 것이고, 술 향기를 찾는 사람은 장차 수레를 세우리라."
홍: 청이 중국 전체 역사를 통틀어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많이 발전한 나라였다.
협: 3권에는 황실에 라마교의 승려를 초빙해 우리 사신과 인사를 시키는 부분이 나온다. 열린 사회로 명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허: 1권에도 이슬람사원을 지나가는데 우리 사신 일행이 자연스럽게 보고 지나가서 신기했다.
협: 신행장면(p.115)이 나온다. 풍속이 우리와 비슷한 듯 하다.
은: 문상 간 이야기도 나오는데, 상가집에서 국수를 대접한다. 우리와 음식문화가 다른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사실, 국수는 그 당시에 고급음식이었다.
홍: 여전히 사대사상이 글 속에서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봐도 강대국에 대한 선망이 뿌리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중국을 가보지 못한 박지원이 청을 갔다 온 어느 선비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그 선비는 명과 우리는 한 몸인데, 그 명을 친 청나라 오랑캐를 우리가 가서 무찌르고 정화해야 할 판국에 볼 게 뭐가 있었겠냐, 배울 게 하나도 없더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우리와 일본의 관계도 그러한 것 같다. 한 때 우리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군사대국이 되니 거기에 절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은: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일간 사과를 두고 갈등이 반복된다.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국력을 기르는 것이 급선무.
홍: '광해'에서도 청에 조공을 바치려는 왕에게 사대부들이 소리쳐 반대하곤 했다.
협: 평양의 위치에 대한 우물안 개구리식 해석에 대해 작가는 비판하고 있다.
은: 국사선생님이 신라의 삼국통일이 우리 역사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홍: 고구려는 아래로 백제와 신라 뿐 아니라 위로 중국을 함께 상대해야 했다. 원이(몽골이) 세계를 재패하던 시절에 변방의 소국인 우리도 끝장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북방의 강대함을 우리가 어디까지 막아낼 수 있었을까?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도 같은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 요동벌판에 주인이 없었기 때문에 차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려말 중앙정부가 썩을대로 썩어서 지킬수나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때 국경이 압록강-두만강 기준으로 끊긴 계기가 되었다.
배: 김부식은 심지어 고구려, 백제의 역사책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신라 위주로 서술한 그는 나쁜 사람.
홍: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왜곡된 것.
은: 삼천궁녀는 의자왕의 여자가 아니라 궁에서 근무한 사람들이었다. 내 국사선생님은 책 이외의 이야기들을 너무 잘 해주셔서 대입에서 국사 100점을 맞았네!
협: 조선시대 말에 청과 함께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던 당시가 못내 아쉽다. 청에서는 90세 노인이 대표로 참석했는데, 체력이 달렸는지 앉아서 말로만 했다고 한다. 서로는 압록강, 동으로는 토문강이라 정했는데 우리가 해석하기를 두만강으로 해석한 것. 나중에 일본과의 간도협약 때 토문강=두만강이라 확정되었다. 안타깝다. 박지원이 글에서 아쉬워하는 부분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간도도 빼앗기고...
은: 상여가 나갈 때의 악기구성을 보면서 이런 악기들이 있었구나하고 새롭게 느꼈다. 편경은 귀해서 나라에서 보호한 악기였다고.
홍: 여행기가 정말 디테일하다. 스쳐가는 것들조차 꼼꼼하게 기록했다. 기록자로서의 정보전달력도 탁월하다. 지금 우리들은 여행을 하면 3일도 기록하기가 함든데...
협: 첫 출발할 때 다른 사람들은 먹을 것을 챙기는데 연암은 문방사우를 챙기지 않았나.
은: 종이와 붓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있다.
홍: 무더위와 소나기, 험한 강도 건너야 하는데 어떻게 이 기록들을 잘 보존해서 후세에 남겼을까를 생각하면 신기하다.
은: 우리의 부채와 청심환이 청나라에서 대단한 인기였다.
협: 2권은 더 재미있을 것이다. 1권은 북경, 열하까지 가는 길동안 보고, 만난 사람과 문물에 대한 묘사 위주의 내용이다.
허: 박지원의 나이 52세 때 수원성이 축조되었는데 당시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서술한대로 벽돌을 굽고 가마를 지어 따라했다고 한다.
협: 열하일기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허: 박지원이 51세 때 그의 종질이 우의정에 취임하였는데 그를 축하하며 "천하 사람의 근심을 앞질러 근심하시오."란 글을 써 주었단다. 박지원의 애국심은 진심. 그의 진심이 막 오니까 참 좋았다. 그의 나이 63세에 쓴 과농소초란 농서에는 "부자들의 토지를 나눠주라"는 말이 나온다. 18세기 초를 살았지만 지식인으로서 상당히 선진적이었다. 농지개혁에 성공한 북한의 입장에서 존경할 수 밖에 없었을 듯. 박지원은 남과 북의 존경을 함께 받는 작가이다.
협: 이제 각자 마지막으로 나누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해보고 마무리하자.
배: 우리는 여행을 가면 눈으로 보고 감상하기보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사람을 보고 감정을 느끼고 그걸 내 안에 담아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 중요한걸 놓치면서 여행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편하게 하는 여행도 있고 힘든 여행도 있다. 가족들과 한라산도 등반했었는데, 앞으로도 그때 그때 누릴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해야겠다.
협: 여행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 같다.
허: 진짜 나는 울었다. 박지원이라는 위대한 사상가, 좋은 친구, 훌륭한 여행자, 멋진 친구를 만난 것 같다. 좋은 친구가 내 옆에 있는 것 같다. 또한 북한 학자의 번역과 우리 학자의 번역을 비교해보니 북한 역자의 것이 좀 더 토속적이고 덜 풀어쓴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더 잘 읽힌다. 단점은 우리 역자의 것에 비해 그림이 없다는 것.
홍: 연암에 대해 호의적인 바닥을 깔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소개보다 내가 만난 연암이 더 좋았다. 요동벌판을 보며 "통곡할 만한 자리다"고 한 건 기가 막힌 서술이었다. 몽골, 호주 여행에서 허허벌판을 돌아다닌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숨이 턱 막히는 끝간데 없는 지평선을 생각해보니 연암이 쓴 부분이 더 실감나게 와 닿았다. 내가 진작 이 작품을 읽었더라면 그간의 여행에서 느낀 것들이 상당히 달랐을 것 같아 아쉬웠다. 늦게 만난 게 아쉽다. 사진찍지 않은 여행이 더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광경들. (협님께) 고맙습니다.
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책을 읽고 중국에 가면 또 달라보일 것 같다.
협: 명분에 집착하는 사대부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박지원의 이야기를 2권에서도 기대하며 이번 독서토론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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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로 작성하니 자꾸 저장이 잘 안되어 워드에서 따로 작성해 붙여넣기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폰트랑 줄간격이 제 뜻대로 수정되지 않네요.ㅜㅜ 읽으시는데 불편함이 있으시겠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 별칭 바꾸고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빠진 내용 첨가 부탁드려요~
허균의 홍길동전은 17세기 작품이다..에 이어서 <홍길동은 율도국을 세우고 스스로 왕이되어 새로운 봉건질서를 만든다. 하지만>이 첨가되어야 문액이 연결됩니다요..^^
@카이저 소제 수정했습니다요~^^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한데 한눈에 좌라락 읽히는 구려..
별칭 <협님>이 참 괜찮네 그랴..
짬나는 대로 빨리 2권 시작하고 싶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