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녀 비형랑
-도화녀와 비형랑
제25대 사륜왕의 시호는 진지대왕으로 성은 김씨이며 왕비는 기오공의 딸인 지도부인이다. 태건 8년 병신(576) -고본에는 11년 기해(579)라고 했으나 잘못이다- 왕위에 올라 4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나 정치가 어려워지고 음란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이에 앞서 사량부 백성의 딸이 있었는데 자색이 곱고 아름다워 당시의 사람들이 도화랑이라 불렀다. 왕이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욕보이고자 하니 그 여인이 말하기를 여인으로서 지켜야할 바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이거늘 지아비가 있는 몸으로 어찌 다른 데로 가오리까? 비록 천자의 위엄으로도 끝내 절조를 빼앗지 못할 것이옵니다 라 했다.
왕이 말하기를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라 하니 여인이 말하기를 “차라리 시장거리에서 목을 베일지라도 다른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라 했다.
왕이 농담삼아 말하기를 “남편이 없으면 몸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라 물으니 “허락할 수 있습니다”라 했다. 왕이 그녀를 보내주었다.
이 해에 왕이 임금자리에서 쫓겨나서 죽었다. 그후 2년만에 도화녀의 남편도 또한 죽으니, 죽은 지 열흘 되는 밤중에 홀연히 왕이 옛날의 평상시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하기를 “네가 예전에 허락을 하였고 지금은 너의 남편이 없으니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라 하자 그녀는 가벼이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여쭈어 보았다.
부모가 말하기를 “임금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어기겠느냐?” 하고 딸을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왕이 머무른 7일 동안 항상 5색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더니 7일 후에 홀연히 왕의 자취가 없어졌다. 여인이 이로 인해 태기가 있다가 달이 차서 해산을 하는데 천지가 진동하면서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으니 이름을 비형이라 했다.
진평대왕이 매우 기이한 소문을 듣고 궁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5세가 되자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더니 그는 밤마다 멀리 도망나가 놀았다. 왕이 용맹스런 군사 50인을 시켜서 지키게 했으나 매번 월성을 날아 넘어 서쪽 황천의 강변에 가서 귀신들을 데리고 놀았다. 군사들이 숲 속에서 엎드려 엿보았더니 귀신들은 여러 절에서 새벽종소리가 들리면 제각기 흩어지고 비형랑도 또한 돌아가는 것이었다.
군사들이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 드리니 왕이 비형을 불러 “너는 귀신들을 거느리고 논다고 하는데 정말이냐?”라고 묻자 비형랑이 “그러하옵니다”라 대답했다.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너는 귀신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 개울에 다리를 놓도록 하여라”고 했다. 비형이 왕명을 받들어 그의 무리들을 시켜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완성했다.
그래서 다리 이름을 귀교라 했다. 왕이 또 묻기를 “귀신들 가운데 인간 세상에 나와서 나라의 정치를 도울만한 자가 있는가?”하 하자 대답하기를 “길달이란 자가 있사온데 가히 나라의 정치를 도울만합니다”라 했다. 왕이 함께 오라 하여 그 다음 날 비형과 같이 뵈었다. 그에게 집사 벼슬을 주었더니 과연 그는 충성스럽고 정직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때 각간 임종이 아들이 없었으므로 왕이 명하여 길달을 아들로 삼게 하자 임종이 길달에게 명하여 흥륜사 남쪽에 다락문을 세우게 하고 매일 밤 그 문 위에 가서 자도록 했다. 그래서 그 문 이름을 길달문이라 했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변해서 도망가자 비형이 귀신을 시켜 그를 잡아 죽였다. 이 때문에 귀신의 무리들이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서 달아났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성스런 제왕의 혼이 낳은 아들/ 비형랑이 있었던 집이로다./ 날고 뛰는 여러 귀신들아/ 이곳에는 머물지 말지어다.
나라의 풍속에 이 글을 붙여 귀신을 쫓는다.
* 이글은 삼국유사 해석 이범교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