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도둑고양이처럼 갑작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간벌(間伐)된 나무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산짐승이게도 했고 포구에 방치된 폐선처럼 침잠과 고립의 시간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모든 게 정지된 것처럼 갈피를 잡지 못해 괜시리 초조하고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자 나이 50. 누구라도 쉰이 되었을 때 그 숫자에 초연한 사람이 있을까. 60이나 그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아무튼 50살을 맞은 내 기분이 그랬다.
"오십이 지천명(五十而 知天命)"
공자가 하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하는 이 나이에 나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시류에 휩쓸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무념무상(無念無想), 마음의 고요를 찾아 가까운 사찰을 찾기도 하지만 어지러운 마음에 위안을 못 받긴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만난 책이 ‘마르깃 쉰베르거’의《여자 나이 50》이다. ‘쉰 살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50가지 방법'이란 부재가 붙은 이 책은 여자 나이 50을 축제가 시작된 것이라 예찬하며 이 매혹의 나이를 가장 황홀하게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쉰 살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니 남편과 직장, 또는 자식들 뒷바라지로 미루어 두었던 꿈을 향해 도전하라고 부추긴다. 그런데 쉰이 되고부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해 지는 걸까. 줄 끊어진 연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이처럼 뭔가를 잃어버린 것같이 허둥대는 내 모습이 낯설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다가올 40대가 서글퍼서 펑펑 울었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참 별스럽다며 웃었던 생각이 난다. 그녀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나도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자 혼자서 대학원을 가더니 6년 만에 석사를 거쳐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 친구에게 오십을 맞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저 무덤 덤 하단다. 왜 그렇게 자신이 공부에 매달리며 살았는지, 어쩜 그건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무지를 탈출하고픈 현실도피였던 것 같다며 오히려 그 시간에 어설픈 수필가 타이틀을 단 내가 부럽다며 또 다른 분야의 도전을 꿈꾸고 있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60대 중반의 한 사람은 자기 일생에 50대처럼 찬란한 때가 없었다며 어떻게든 건강하게 즐기면서 생활하란다. 집안일이나 자식에 매달리는 것도 나이가 들고 보니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며 전광석화 같이 흐르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자신에 투자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권한다. 그런데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살다보니 생각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되어지진 않는다.
마르깃 쉰베르거는 주장한다. 여자 나이 50은 파도에도 무너지지 않는 절벽처럼 견고한 나이, 몸과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는 나이, 진실과 허울을 구분할 줄 아는 나이, 아름답고 굳건한 신념이 생기는 나이, 더 자주 웃고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나이, 삶의 굴곡 앞에서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나이라고.
그렇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는 40대 이후의 중년을 젊음과 원숙함을 통합해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더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핫 에이지’라 하지 않았던가.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100세를 향해 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50은 더 이상 중년이 아니라 청년의 부류에 넣어야 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그런데도 자연의 이치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나 자신은 어쩜 정신적 유아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50세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현악기의 장인으로 평가받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디는 83세에 최고의 바이올린을 제작했고,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예순여덟에 자신의 걸작품인〈대성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빅토르 위고는 60세에 《레미제라블》을 발표했고, 루이 파스퇴르는 62세에 광견병 백신을 발견했으며, 쿠바의 재즈 거장 콤바이 세군도는 여든 살 이후에 인생의 꽃을 피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가 한창 유행하고 있을 때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열심히 글을 써서 잡지에 투고하던 한 할머니를 알고 있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일일이 펜으로 글을 쓰던 그녀의 쭈글쭈글한 손은 더 이상 추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했다.
나이 오십에 괜히 우울증에 걸린 사람 마냥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 세월이 지나면 분명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빛난 순간이었는지 그리워 할 것이면서도 말이다. 나이 듦을 삶의 군더더기로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후반기를 뭔가 보람되게 보내야 할텐데 아직까지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가끔은 거북의 등 껍데기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있다. 누가 구속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마음의 은신처에 가두어 놓고 내가 없으면 집안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훌훌 털고 여행조차 쉽게 떠나지 못한다. 어쩌다 일이 생겨 하루쯤 밖에서 자고 오는 일이 있어도 집안은 여전히 평화롭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나 자신을 옥죄며 살았던 걸까.
이제 내 스스로 만든 이 올가미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싶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듯 새로운 내 인생의 여행길에서 멘토가 되어줄 줄탁(卒啄)의 인연을 만난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행운이 없다면 오히려 내가 상대에게 그런 지킴이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더 감사한 일이 아닌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또 다른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나이가 드는 건 싫지만 또 다른 비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짊어지고 가야 할 등짐 같은 것. 아니, 마음의 보석이 라고 할까. 진주조개가 아름다운 진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제 몸에 상처를 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별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별이 아니듯, 별이 된 그들이 나이를 세지 않고 인생을 화려하게 수놓을 때 나는 내 안의 빈자리에 촛불하나 밝혀 두고 조용히 깊어지는 삶을 보듬어야겠다. 조금은 서툴고 부족하면 어떠랴. 살아온 날 만큼의 연륜 속엔 분명 아름다운 시간의 향기가 조금은 남아있을 터이니. 어차피 우리네 삶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가슴 따뜻한 극 중의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해 다가올 까마득한 날들을 반짝이는 얼굴로 맞이하고 싶다. 유쾌한 반란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