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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 풍경그림방 원문보기 글쓴이: 솔롱고
단토의 문제의식을 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보고자 한다면, 신시아 프리랜드의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아트북스,
2002)가 도움이 될 듯하다. 단토의 추천사에 따르면, "신시아 프리랜드는 매우 명쾌한 책을 썼는데, 그의 명석한
철학적인 지성은 실제 예술작품에 의해 제기된 난해한 문제들을 매우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책에는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도 2장의 '브릴로 박스와 철학적인 미술' 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정리는 별로 새로울 게 없는데, 다만 80쪽에 실린 "앤디 워홀의 쌓아올린 '브릴로 박스'들이
예술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중인 철학자 아서 단토"란 설명이 붙은 사진만은 흥미롭다(사실 이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말해준다!). 이 자리에 따오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예술의 종말 이후>의 1장 45쪽 이후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여기서 단토가 이야기하는 것은 철학에서의
모더니즘(=근대철학)이 데카르트적 코기토, 즉 (세계가 아니라)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나'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에서의 모더니즘도 미술에 대한 '자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 "미술상의
모더니즘은 하나의 지점을 표시하고 있는데, 이 지점 이전까지는 화가들이 인물과 풍경과 역사적 사건을 눈에
드러나는 그대로 그리고 세계를 나타나는 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모더니즘과 함께 재현의 조건들이 핵심적이게 되며,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미술이 미술 자체의 주제가
된다."(47쪽, 강조는 나의 것)
칸트의 (모더니즘)철학에서 '인식'이 아닌 '인식의 조건'들이 문제되었듯이, 미술사의 모더니즘 또한 '재현'이 아닌
'재현의 조건'들을 문제삼으며, 이에 따라 미술 자체자 미술의 주제가 되었다. 마치 '사고하는 나'가 우리 생각의
주제가 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모더니즘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선구적인 논문 '모더니스트
회화(Modernist Painting)'(1960)에 빚지고 있다(국역본의 번역은 '모더니즘 회화'이며, 이하에서는 '모더니즘 회화'
라고 칭하겠다). 단토는 두어 쪽에 걸쳐서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회화론을 간추리고 그에 대해 논평한다(단토의
본격적인 '그린버그'론은 4장에서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이 요약을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회화'(<예술과 문화>, 344-353쪽)엔'칸트주의자'로 분류되는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도 그가 '최초의 진정한 모더니스트'라고 부르는 칸트를 절대적으로 참조한다.
모더니즘이란 무엇보다도 '자깁;핀적 경향의 강화 내지 심화'라고 할 때 칸트의 비판철학이야말로 전범이 아닐 수
없겠다. 그린버그의 직접적인 언급과 단토의 인용을 보라.
"내가 보는 바로는 모더니즘의 본질은 어떤 분야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하여 그 분야의 특징적인 방법들을 사용한다
는 데 있다. 이것은 그 분야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당 능력 범위 안에서 그 분야를 보다 공고하게 지키기
위해서이다."(<예술과 문화>, 344쪽)
"내가 보기에, 한 분야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 분야 특유의 방법들을 이용한다는 데 모더니즘의 본질이 있다.
이는 그 분야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능력의 영역 속에다 더 확고하게 방호하기 위해서이다."(<예술의
종말 이후>, 47쪽)
이 대목은 <예술의 종말 이후>의 두번째 역자해설에서도 복창되고 있는데, 번역은 좀 다르다: "모더니즘의 본질은
훈련 자체를 비판하는 훈련 특유의 방법을 사용하는 데 있으며, 훈련을 타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훈련의 위상을
더욱 확고하게 확립하기 위해서이다." 대동소이하지만, 'discipline'을 '훈련'으로 옮긴 것은 어색하다. 아울러 두
번역자가 서로의 번역에 대해서는 스크린하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컨대, 모더니즘의 본질은 '자기비판'에 있다. 예술/미술의 경우, 예술/미술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 그것이 모더니즘이다. 그러한 물음을 버텨내면서 예술/미술의 부피는 좀 졸아들 테지만 더 단단해질
것이다.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에서처럼 모더니즘 예술은 비본질적인 것은 다 깎아내버리는 절차를 도입한다.
그리하여 "예술이 제공하는 종류의 경험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다른 어떤 종류의 활동에서도 얻어질 수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과제, 또한 각각의 예술의 과제로 제기되는 것. "이렇게 하게 되면 각
예술들의 권한 영역이 축소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와 동시에 각 예술은 제 영역을 훨씬 더 확실하게 소유하게 될
것이다."(그린버그, 345쪽)
반복하자면, 예술에서 자기비판의 과제는 "각 예술의 효과들 가운데에서 다른 예술의 매체로부터 또는 다른 예술의
매체에 의해 빌어왔다고 여겨질 수 있을 모든 효과를 제거하는 것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각각의 예술은 '순수'하게
되며, 그 '순수성'으로 각 예술의 독자성뿐만 아니라 그 질적 수준도 보장받게 될 것이다. '순수성'은 자기정의를
뜻했기에, 예술들의 자기비판이라는 과업은 철저한 자기정의의 과업이 되었다." 즉, 예술의 '자기비판'의 귀결점은
보다 엄밀한 수준에서의 '자기정의'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고,
그 물음을 견뎌낸다면 새로운 정의가 도출될 테니까(물론 정황적으로, 그러한 물음은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그 물음은 기존의 자기정의로는 더이상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없게 될 때 터져나오는 것이니까).
'예술'이란 말을 쓰지만, 그린버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미술'이며 그 중에서 특별히 '회화'에 그는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회화에서의 자기비판은 어떻게 감행되는가? 회화의 매체를 구성하는 여러 한계들, 혹은 조건들 즉, 평평한
표면, 그림 바탕의 형태, 안료의 속성 가운데에서 오직 회화예술에만 배타적으로 고유한 것은 그린버그가 보기에
'평면성' 하나뿐이다(여기에서 그의 악명높은 '평면성 테제'가 주장된다). 그림의 닫힌 형태는 무대예술과 공유하는
조건/제한이고, 색채는 연극뿐 아니라 조각과도 공유하는 기준/방법이다. 하지만, "평면성, 즉 2차원성은 회화예술이
다른 어떤 예술과도 공유하지 않는 유일한 조건이었으므로, 모더니즘 회화는 다른 어떤 것에도 적응하지 않는 한편
평면성에 적응해갔다."(346쪽)
그리하여, (3차원의 사실주의적 환영을 추구했던) 과거의 거장들에 의해 오직 암묵적으로나 간접적으로밖에는 인정
될 수 없는 회화의 부정정적인 요소들이 모더니즘 회화에서는 긍정적인 요소들로 간주되게 되었고, 그린버그가
보기에 그 시작은 마네부터이다. "마네는 그림들은 최초의 모더니즘 회화가 되었는데, 이는 그림이 그 위에 그려지는
바탕의 평평한 표면을 마네의 그림들이 솔직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최적의 사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네의
<올랭피아>를 이미지로 가져와 본다.
단토의 정리로 재정리하자면, "칸트는 철학을 우리의 지식(=인식)을 추가하는 것으로 본 게 아니라 어떻게 지식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것으로 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칸트의 이러한 철학관에 상응하는 회화관은 사물의
외관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회화가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린버그가 보기에
마네야말로 모더니즘 회화의 칸트였다. '물감이 칠해진 편평한 표면들을 솔직하게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네의
그림들이 최초의 모더니즘 회화가 되었다."(단토, 48쪽)
미술사의 상식에 기대에 이야기하자면, 회화에서의 모더니즘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도전에 직면하여 재현
이란 기존의 특권적 규정이 아닌 새로운 규정에 따라 스스로를 재정의한 것이다. 오직 회화만이 할 수 있는 것, 혹은
오직 회화에서만 가능한 것. 그린버그는 그것을 회화의 화면공간, 즉 2차원적 평면에서 찾은 것이다. "그린버그의
논지를 따른다면,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로부터 모더니즘 미술로의 이행은 회화의 모방적 특질로부터 비모방적
특질들로의 이행을 의미한다."(단토, 48쪽) 그 이행은 회화에서 문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전에 회화가 전점으로
삼았던) 조각적인 것을 배제하려는 지속적인 시도로서 나타난다. 그러한 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갔을 때 얻게 되는
것인 피에트 몬드리안이나 잭슨 폴록의 추상회화들일까?
하지만, 그린버그 자신도 지적하고 있듯이 "모더니즘 회화가 지향하는 평면성은 결코 전적인 평면성일 수가 없다.
그림면에 대한 감수성이 고양됨으로써 조각적 환영이나 눈속임 회화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감수성도 시각적 환영은 허용하고 또 반드시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옛거장들은 관객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의 환영을 창조했으나, 모더니스트가 창조한 환영은 관객이 바라볼 수만 있는,
즉 오직 눈으로만 여행할 수 있는 환영이다."(350쪽) 요컨대, 모더니즘 회화가 배제하고자 하는 것은 환영 일반이
아니라 '조각적 환영'(sculptural illusion) 등속이다. '시각적 환영'(optical illusion)'만은 모더니즘 회화에서도
보존되고, 또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회화'의 후반부에서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이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는 건 아니며 오히려 전통의 계속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만큼은 그가 용서할 수 없었는데(해서 초현실주의는 그린버그
내러티브의 바깥, '역사의 경계 밖'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한 단토의 설명은 이렇다: "칸트는 한때 자신의 시대인 계몽
주의 시대를 인류가 성년에 도달한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린버그도 미술을 이런 방식으로 생각했을지 모르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초현실주의에서 일종의 미적 퇴행을, 괴물들과 무시무시한 위협들로 가득찬 미술의 유아기에서
유래하는 가치들의 재확증을 보았다."(51쪽) 다시 말해서, 초현실주의는 '상상계'의 미술이며 이것은 자기비판이라는
성년의 과제로부터 도피이자 미적 퇴행이라고 그린버는 판단했을 법하다.
이에 대한 반론도 물론 미술 비평계에서는 제기되는바, 주로 할 포스터와 로잘린 크라우스를 주축으로 한 <옥토버>
지의 비평가들이 대표적이다. 단토는 '그린버그 비판가'로 두 사람을 지목하고 있는데(50쪽), 크라우스의 <시각적
무의식>(MIT출판부, 1993)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불역본 엔솔로지인 <사진-인덱스-현대미술>(궁리, 2003)이
대신에 번역돼 있다), 포스터의 'Compulsive beauty'(MIT출판부, 1993)는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아트북스, 2005)으로 번역/소개돼 있다.
할 포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초현실주의를 위한 하나의 공간이 열렸다. 그것은 이를테면 옛 내러티브(즉 그린버그
내러티브) 내의 수리비용으로서, 현재 이 내러티브를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특권적인 지점이 되었다."(단토, 51쪽)
해서 다시 정리하면, "초현실주의를 위한 하나의 공간이 열렸다. 그것은 이를테면 옛 내러티브(즉 그린버그 내러티브)
내에서는 사유되지 않은 것으로서, 현재 이 내러티브를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특권적인 지점이 되었다." 즉, 초현실
주의는 그린버그 내러티브에서 사유되지 않은 것, 억압된 것이다. 거기에 예술로서의 정당한 '공민권'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인 포스터나 크라우스 등 '옥토버 그룹'의 작업이다.
(사랑니)
포스트 모더니즘 ( Post Modernism )
포스트모더니즘은 양식이나 운동이 아니라 모더니즘의 쇠퇴 이후 오늘날의 문화,예술 전반을 기술하는 용어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시대사조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사실 몇권의 책으로 설명한다고해도 부족할 만큼
그 범위가 넓고 설명이 모호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작은 지면에 설명한다는 것은 독자여러분의 대략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임을 밝힌다.
모더니즘 이후 발생한 예술·문화운동. 1960년대이래 미국·유럽에서 시작된 일련의 새로운 문화조류이다. 본래 건축
에서 사용되던 개념이었으나 80년대 이후 예술 전영역에 걸쳐 쓰이게 되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1961년에
세워졌으며 이 하우스의 설계자 우트존이 착상한 돛 혹은 조개 껍데기모양이 결국 구조적으로 필연적이었다.
모더니스트인 패브스너는 고도의 기능주의를 재확인했다. "개별건물은 합리적인 성격을 유지해야한다. 당시의 건물
은 합리적인 성격을 유지하여야 한다. 당신의 건물은 사각형이라고해서 당신자신이 굳이 사각형인 것은 아니다"고
했다.
미술에서 세세하게 관찰된 사실을 옮기는 것, 자연의 형태, 상상력, 드로잉 그리고 전통적인 양식의 '회화적'이며
조각적인 솜씨들이 다시 관심사로 화하고 있는 일도 흔하다.<회화에 이엇 새로운 정신>이라는 전시회가 열렸지만
아무리 솜씨가 능란하고 진지한 정신상태에서 임했을 지언정 기량면에서 그들의 작품은 과거의 장인적 솜씨라는
거대한 전통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져있었다.
다니엘 벨, 하산, 오더허티, 로젠버그 등많은 사상가들은 모더니즘의 종말을 선고했다. 벤은'오늘날 모더니즈은
반란적 충동은 제도화 되었고, 그 실험적인 형식은 광고와 고급문화의 기호와 구문으로 흡수되었다. 아직도 용어상
혼란과 더불어 모더니즘과의 상관관계가 거론되고 있으며, 외견상 전통양식의 거부라는 측면에서 모더니즘의 변형
형태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즉 모더니즘이 리얼리즘의 반동으로 제기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보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의식보다 무의식을, 이성이나 도덕보다 정열과 의지를 더욱 중요시하여 형태·상징·신화의 문제를 깊이 연구
함으로써 나름의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내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영향 아래 태동되었다는 견해이다.
영국의 유수한 정신분석학자 도날드 위니코트는 일찍이 인간의 철저한 의존성이 얼마난'주체적으로' 절대적인 독자
느낌, 신과같은 전지전능의 느낌을 발생시키는가에 있다. 아기가 허기를 느낄 때 젖가슴이 갖다 대어지는데, 그럴
경우 아기는 '가상의 순간'을 체험한다.자기가 젖가슴을 창조해낼 수 있고 그리하여 자기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도움
을 주는 하나의 외부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가상 말이다. 이렇게 하여 아기는 다른 짐승의 새끼들이 기능적으로
나 관련을 맺을수 없는 그런 세계를"상상력 풍부하게 창조해 낸다" 오로지 서서히 철들어 감으로서만 아기는 외부
세계를 자신과는 별도로 독립해서 혹은 자신의 창보적 역량과 는 별도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세계를 수용해 들이는 것을 위니코트는 '각성'이라 명명하고 나서 이유기 때의 좌절감과 결부시켰다.
위니코트는 한때 "아이들이 세계를 창보해내든 말든간에 현실의 원칙은 세계가 현존하고 있음을 지시한다.
이 원칙은 자발성, 창조력의 으뜸가는 적이며, 현실감.... 현실의 원칙은 하나의 모욕이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마루쿠제가 올바로 파악했다시피, 예술에서 "인간존재, 자연 그리고 사물은 더 이상의 현실원칙이라는 확립된 법칙에
지배되지 않는다."
위니코트는 아이들이 가성의 상태로 겪어 나아감에 따라 어떻게해서 아이들이 객관적으로 지각되는 것과 주관적인
것 사이의 중간영역에 속하는'일시적인 사물들'(아이들과 결부된 장난감곰, 인형, 넝마 따위들)을 활용하기 시작하는
지를 지적해 낸다. 세계를 창조해내는 위안으롯으 아기는 중간의 매개적인 경험영역이나 아니면 내적인 현실과
외부의 삶이 모두 그에 이바지하는 '잠재적인 공간'을 설정한다.그리하여 아기는 상징들을 활용하므로서 그리고
하나의 문화적인 삶으로 향하는 모든 것을 활용하므로써 잠재적인 공간을 깍채워서 격리상태를 모면하려한다.
왜냐하면 위니코트가 설명한대로 , 어떠한 인간존재도 내부현실과 외부현실을 서로 관련지우는 일의 부담을 면제
받지는 않아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도전받지 않는 중간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원래는 엄마와 아기 사이에 존재하던 이자재적인 공간은 아이와 가족사이에서, 개인과사회 혹은 세게사이에서
관념적으로 재생된다. 따라서 위니코트는 이중간의 영역을 현실의 원칙에 가하는 쓰라림으로부터 구원받도록 하는
'문화적인 체험의 장'이라 했다.
중간의 영역이 펼쳐지는 한가지 방식은 종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종교는 세계를 창조해 낸 것이 우리자신들의
마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적어도 우리들에게 존재하는 다른마음이다. 라고하는 환각작용을 이용한다.
사회인류학자 에드먼드리치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우리들 각자는 '나'는 전적으로'타인'으로부터 격리되지 않게
된다는 점을 확신하려고 애쓰는 한편으로 동시에 '나'를 '타인'으로부터 구분 지으려는 싸움에 끊임없이 휘말리나.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곳에서 예술은 도래한다. 예술은 우리들 자신들을 정신분열증으로 분리해 내고 건너오게하는
다리와 같다"고 주장하나. 정말이지, 리듬, 패턴 그리고 장식적인 예술은 일체감과 융화감을 이끌어들인다고 할만
하다. 그런반면에 조각, 구상회화 및 건축과 같이 비례를 중시하는 예술들은 오히려 분리의 상태를 표출하며, 여기서
'타인'에 대한 인식은 객관적으로 지각된 모습을 띤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은 미학적으로 이미 전통의 지위에 올라선 모더니즘에 항거하는 새로운 전위운동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기본입장인 다다이즘·초현실주의·아방가르드운동까지를 거의 수용하면서
단지 그것을 극단적 형태로 발전시켜 갔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공통점은 전통과의
단절·반리얼리즘·전위적 실험성·비역사성·비정치성 등이고, 차이점은 모더니즘이 기능주의와 결부되어 비교적 단순한
요소로 이루어진 데 비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질적 요소를 섞거나 과거 작품을 인용하는 등 기존 규범을 해체하면서
도 종합을 지향하는 데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자본주의사회의 특징인 대량생산·대량소비와 결부하여 인간성 상실과 정신의 빈곤에서
오는 다양한 징후들을 변화와 실험이라는 복합적 예술양식으로 표현, 권위적 이성과 그에 따른 억압을 해체함으로써
인간을 문화적 속박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현상 속에는 절대이념의 와해, 개성 중시, 논리
다원화, 다국적 기업, 여성운동, 소유로부터의 탈출 등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것들이 많이 있으며, 그것은 포스트모더니
즘이 인간 삶 속에 깊이 침투하였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자본주의 문화논리로 보는 견해
에서는 상품사회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순응한다는 비난도 있으며, 모더니즘이 지녔던 최소한의 현실
반항조차 보여주지 못하였다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미술·무용·연극·문학·음악·영화 등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음악에서는 J.케이지, 미술에서는 팝아트를 제창한 A.워톨, 문학의 J.바드·L.피들러 등이 대표자들로 손꼽힌다.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는 J.바드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1958)》, W.버로스의 《익스터미네이터(1960)》,
T.핀천의 《V(1963)》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핫산·리오타르의 이론과 이에 대한 제임슨·이글턴 등의 비판이
소개되면서 80년대 후반부터 논의가 본격화되어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김성곤(金聖坤)·권택영(權澤英)·김욱동
(金旭東)의 번역서·연구서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최수철·이인성(李仁星)·장정일의 소설·시에서 문단의 유행적 경향
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
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흑인민권운동·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
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
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작품의 유기적 통일성을 부정한다. 그들은 통일성이나 일관성보다는 오히려 편리성이나
임의성 또는 유희성을 더욱 설득력 있는 예술적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작품은
'잘 빚어진 항아리'가 아니라 오히려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항아리'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거들의 복귀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매우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부장적인 모더니즘의 권위 아래에서 주변적인 위치밖에는 차지하지 못하면서 억압되었거나 무시되어 온
것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무엇보다도 주변적인 것들의 부상이라는 점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기성 문화에 반기를 드는 청년 문화
를 비롯한 반 문화, 고답적이고 엘리트적인 고급 문화에 대항하는 대중문화, 제1 세계나 제2 세계의 문학에 도전하는
제3 세계의 문학, 가부장적 남성중심주의에 항거하는 페미니즘 문학 등이 바로 그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두 탈
중심화(脫中心化) 나 탈정전화(脫正典化) 현상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현상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가장 두드러
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논리적인 연장이며 계승인 동시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단절이다.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포함한 모더니즘의 기본 원리를 논리적으로 계승하여 극단적
으로 발전시킨다.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모더니즘에서 발견되거나, 또는 그동안 모더니즘에서 거의 무시되거나
소홀히 간주되어 오다시피 한 것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핵심적인 지배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모더니즘에서는 핵심적인 지배소로서 기능을 담당해 온 것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주변적인 위치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 핵심적인 지배소로서는 네 가지가 있는데, *상호 텍스트성 *탈 장르화 혹은
장르 확산 *자기 반영성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이 있다.
모더니즘의 개척자엿던 로스는 1908년에 모든 장식예술이 에로틱하며, 또 이들 예술은 비생산적인작업을 내포하고
있다는 근거에서(그림으로 지껄임을 포함하는)모든 장식예술을 거부하는 '장식적 죄악'이라는 논문을 발간했다.
로스는 장식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 범죄자들 그리고 원시인들에게서 환호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어린아이들은
화장실벽에다가 휘갈겨 낙서하기를 좋아하나, 범죄자의 8할은 몸에 문신이 있다."그리고 파퓨아 뉴기니아인들은
자기의 피부, 자기의선박, 자기배, 키와 노에 문신을 새겨둔다. 단적으로 파퓨아 뉴기니아 인들은 자기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에라도 자신의 손의 흔적을 남긴다.그러나 로스는 "파퓨아 뉴기니아인들과 어리나이들에게 자연
스러운 것이 현대인에 대해서는 타락된 것이다"라고 강변했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다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자세히 제시한다. 즉 문화적 진화는 장식의 일상으로 부터 떼어버리는 일과 동일하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이 바랬다. "우리시대의 위대성이 새로운 형식의 장식작업을 생산해 낼수 없는 무능력에 소재
한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장식을 복고해 장식으로부터 해쳐나왔다. "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로스는 현대인을 위해 새로운 시온성지를 그려냈는데, 이 성지에서 길거리에는"새하얀
벽처럼 광휘를 발하는것"이다. 장식은 결코 퇴폐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비경제적인 것이었다. 가령 아무런
장식이 없다면, 로스의 유추에 의하면 "인간은 여덟시간 일할 것을 네시간만 하면 되는데, 현재는 인간들이 네시간을
장식 만드는데 허비하고 있다. 장식은 낭비와 다름없는 노동이다." 로스가 허용했던 유일한 장식적인 요소는그 주어진
성질을 위해 펼쳐지는 재료 뿐이었다. 여하한 상징적이거나 표현적인 변형은 용납되지 않았다.
건축가 빗 반데어 로에는 "개인은 중대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더 이상 그의 운명은 우리들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진 결정적인 성과는 익명적이며, 그런성과의 주인들은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채로 남아있다.
그런 성과들은 익명성을 향한 우리시대의 흐름의 일부분을 이룬다.
나는 현대회화가 점점 자기비하를 노정하고 있다고 믿는다. 심리학에서 쓰이는 자기비하라는 술어는 신성한 역량을
임의로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화가들의 가상적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 그리하여
모더니즘내에서 원근법적 공간과 자연의 모방은 쇠퇴하고, 재료를 잠식하고 감각적으로 조작 했던 회화 본래 뿌리를
강조하는 일은 동요하게 되며, 그리고 종교적 도상들이 몰락함으로서 파괴되고 상실된 상징적 질서에 대한 대체물을
구할 수있고, 또 그결과 로서 '자연의 실패'에 대한 대안도 제공될 것이라는 믿음도 대두한다. 유명한 카톨릭 신학자
한스 쿵은 "예술은 더 이상 범신론적인 배경을 갖지 않고 허무주위적인 배경을 갖는다"고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동안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선을 넘는' 작업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에도 적지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사실상 포스트모더니즘이 처음
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대중 문화와의 관련성에서 였으며, 지금까지도 그것은 여전히 대중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는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 놓여있던 커다란 장벽을 허물어 버렸다는 데에 있다. 힐튼 크레머가 말하는 이른바 '속물들의 복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억압된 것의 복귀' 현상은 문화 영역의 경우 그 동안 무시되어
왔거나 소홀히 취급받아 온 장르들이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는 데서 가장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난해한 엘리트 예술보다는 더욱 대중적인 팝 아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이고 문학에서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한마디로 점잖은 전통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며,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성에의 희구이며, 자연인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의 운동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적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 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고, J.라컨,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면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 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고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 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
라고 말하였다. 둘 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깡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토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실존
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 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나,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
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
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1960년대를
전후로 시작된 정보기술혁신과 대중매체의 확산으로 인한 국가간의 경계소멸, 환경보호운동, 매체산업의 발전등은
진보적 이데올로기와 연관시켜 점쳤던 모더니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특히 정보산업의 확산은 전세계 미술인들
이나 독자들을 한 테두리에 즉각 묶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모더니즘의 존립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다른 요인으로 생활공간의 심미적 특질을 도외시한 기능주의 건축의 실패, 사회적으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아방가르드 미술이론, 스스로 좌초를 초래한 모더니스트들의 외골적 성향, 변증법적 유물론을 추종하는 문화권
의 증가, 공공예술에 대한 재평가 등을 들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개척한 미술가로는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조르지오 데 키리코를 들 수 있다. 그는 1919년 경
몽환성, 신비성을 특징으로하는 피투라 메타피지카에서 탈피한후 르네상스 고전주의 작가 티치아노에 맬되어 이념,
지성, 가치 등으로 대표된 현대미술에 반감을 품고 복고풍이 절충식 스타일로 전향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샀으나 1980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사의 눈부신 위업을 이룩케 한 원동력이었던 저작권 및 오리지낼러티에 대한
반발에서 고의적으로 시도되었다는 해석과 함계 포스트모더니즘을 일찌감치 예견한 것으로 재평가 되었다.
키리코의 이러한 행동을 긍정적으로바라보게 된 것은 미니멀아트의 열풍이 약해진 1970년대부터 일어나 다원주의
현상의 영향으로 가능했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 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 멀 아트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 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 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
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 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 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 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 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
정치현상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술·건축·무용·연극에서는 실험과 저항이 맞물려왔고 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현은 한국 문학과 예술에도 포스트모던 바람을 일게 하였다. 근대나 현대는 서유럽에
비하여 짧고 급속히 이루어졌기에 시민의식과 기술산업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없었다. 서유럽과 한국사회를 똑같이
볼 수 없는 여러 상황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독일 신표현주의의 기수 페팅과 살로메는독일 표현주의로 되돌아간다. 클레멘트와 슈나벨은 1930년-1940년대에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신낭만주의적이고 의사 초현실주의적인 측면을 골라낸다. 그들은 꼴라쥬기법을
통한 재료의 자유로운 합병을 시도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회화, 값싼 종교 성물등을 작품에 끌어 들인다.
모더니즘이 소통의 불가능을 만든데 대해 그러한 소통불가능한 상태를 타파하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과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어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크루거, 하케 등은 산업자본주의 소비적 생활의
비판은 정치적 색을 뛴다. 또한 제3세계의 고문과 쿠데타를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킨다. 패미니스트 아트는 여성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서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시대정신(Zeitgeist), 인식소(Episteme), 또는
패러다임(Paradime)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론적 지주로 알려지고 있는 이합 핫산(Ihab Hassan)은 1987년에
발행한 '포스트 모던한 전망 속의 다원주의'라는 저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정리한다.
① 불확실성(Indeterminacy)
경제학자 갈브레드가 2차 대전 이후의 서구세계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지은 것처럼 과학분야에서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실성의 원리」, 토마스 쿤(Thomas S. Khun)의 「패러다임」, 폴회이에르 벤드의 「과학의 다다이즘」등이 대두되면서 사회 각분야에서 상대주의적이고 불확정적인 세계관이 주를 이루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 사업이자 무정부주의는 법과 질서의 대안보다 훨씬 인도적이며 발전을 고무시켜 준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변화와 실험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영역에서조차도 즐거운 실험을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신 다다이스트"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유파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조의 견해, 그리고 문학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개방성, 해체, 반항, 변용, 다원성, 이단의 정신 등의 불확정적인 이론들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단편화(Fragment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적, 인식론적 종합을 거부하고 총체성을 오명으로 여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유명한 글의 결론 부분에서 "총체성에 선전 포고를 하자. 제시할 수 없는 것에 증인이 되자, 차이를 활성화하여 차이의 명예를 구해내자"고 주장한다. 확신, 차이, 변증의 시대가 되며 몽따지 수법, 꼴라쥬 등의 기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은유와 환유가 중요시되고 역설, 배리, 병렬결합이 자주 등장하는 정신분석적 시대가 도래한다.
③ 탈 경전화(Decanonization)
리오타르는 현대사회를 지배담론(Masternarrative)의 탈 권위와 붕괴의 시대라고 지적하며 그 대신 소수의 담화이며 언어게임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소설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 체계인 진리, 주체, 초월적 이성 등을 거부하고 규범과 경전에 대한 도전은 엘리트주의, 남성 우선주의를 부인할 뿐 아니라 대중의 참여와 비평을 유도하며, 대중문화, 여성문화, 민중미술, 제3세계의 예술, 소수민족 예술, 노동자 예술, 이방인의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의 대중 예술이 주류를 이루게 한다.
④ 재현 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
장르가 붕괴되고 혼합되는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모방을 거부하고 예술의 한계를 추구하며 소모를 즐기고 침묵 속에 존재하면서 예술고유의 재현(Representation)양식을 문제시하여 반리얼리즘의 성격을 가른다. 리오타르는 동시의 상황은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종합적 분석대신 구대 불가사이를 인정한 칸트의 '숭고미(Sublime)'의 개념을 증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대 기술 문화의 무형태성, 공해, 절대 등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들이 주는 위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⑤ 혼성모방(Hybridization)
풍자적, 조롱적 모방, 우스운 모방을 포함하는 것으로 장르의식의 붕괴와 혼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다원적이고 확산적이며 논리를 무시하는 유동적인 현상황에 맞추기 위한 전략으로 문학에서는 '뉴 리얼리즘', '논픽션 소설'등으로 나타나서 허구와 사실이 두드러지게 배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에 대한 다른 개념을 보완하다. 지속과 단절, 고급 문화와 저급문화가 혼합되고 현재 속에서 과거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확장시키게 된다. 다원적인 현재 속에서 모든 형식들은 현재와 현재가 아닌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과거의 동시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공간 상호성 즉 병렬적, 수평적, 평등적 공간의 확산을 통한 공동체 의식도 얻게 된다.
⑥ 대중주의(Populism)
고급문화와 본격 모더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역력히 드러나며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마르쉘 뒤상의 기성풍 이론은 예술의 기존 관념을 깬 것으로 '이미 만들어진' 즉 주변의 흔한 대상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창조하였고 앤디워홀은 스프깡통, 브릴로 상자, 슈퍼맨 만화 등 대중적인 사물을 이용하여 혼합 모방기법을 연출하였다. 또한 화가인 라우센버그에게서 재미있는 것은 도시의 상업적인 추함에 영원성과 자연의 불변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는 도시 일상의 재료들을 즐겁게, 그리고 전적으로 수용한다. 그에게는 도시의 추한 면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⑦ 행위(Performance)와 참여(Particip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직접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며 행위로 연출되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행위를 통하여 시간, 공간, 또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완성된다. 요즈음은 예술의 여러 가지 경향을 관통하는 인식들은 '놀이'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엄격한 통제와 인간관계의 틀을 버리고 우연의 작용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에서도 구도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되었고 존재하고 의미하기보다는 작용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⑧ 보편내재성(Immensity)
앞서 지적한 불확실성의 분산은 거대한 확산을 이룬다. 보편 재재성의 경향은 율동, 상호작용, 의사소통, 상호의존, 상호침투 등의 잡다한 개념들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러한 개념들 속에서 가치관의 세계화, 보편화 경향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이미 아놀드 토인비의 영혼화, 어비 다드로즈의 개념화, 빅 인스트홀러의 무상화, 칼 마르크스의 역사화 한 자연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와 같이 상징을 통해 인간의 정신자체를 일반화하려는 정신적인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인간은 새로운 통신수단과 전자매체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의식과 정신의 끊임없는 확장을 경험한다.
최초에 발행된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에서 마이클 뉴만(Michael∼Newman)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창조방법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로 분류한다. 트랜스아방가르드, 저자의 죽음, 알레고리, 도취와 불가사의, 모조, 패러디, 브리콜라주(Bricolage)등 또한 어떤 학자들은 패러디(린다 허치언), 모조 (보드리야르), 차용 (레오 스타인보그), 그리고 혼성모방 (프레드릭 제임슨)등을 주요 창조방법이나 특성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조전략을 정리하면 재현, 패러디, 이중 코드, 전도된 아방가르드 등으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① 재현(representation)
포스트 모던 세계에서는 삶이 재현에 의해 완전히 매개되어 있다. 근. 현대를 지나면서 세계는 인공위성, 컴퓨터 출현으로 벤야민이 말한 '기계적 복제의 시대' 를 훨씬 앞지를 만큼 고도로 발전되어 왔다. 이에 대해 현대문화가 내재적으로 재현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정도로 재현의 위기상태에 놓여 있다는 논의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데리다의 재현으로부터의 '도피 불가능성'과 푸코의 인식론 속에 밀착되어 있는 전통적 재현에 관한 비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재현은 불가피하다고 보여진다.
포스트모던의 재현은 리얼리즘처럼 소박하고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얼리티는 어떻게 의미될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문제시한다. 즉 그것은 리얼리즘을 말소시키거나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식적으로 재현의 존재의미를 일깨우는 것, 다시 말해 리얼리즘을 분해하여 재창조하는 것이지 리얼리즘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전략들은 매체를 투명명료성과 언어와 세계간의 혹은 기호와 관련 물과의 자연적이고 직접적 결합을 추구하는 리얼리즘적 재현을 비판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물론 이 같은 전략은 모더니즘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경우, 매체의 능력과 의미체계의 자기충족성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지시대상에 치명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목적하는 바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양자의 힘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리얼리즘의 투명성과 모더니즘의 반성적 반응을 비본성화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재현의 불협화음적 책략이 된다. 이처럼 리얼리즘의 현실반영, 모더니즘의 자율성을 문제시하고 '비교조화(dedoxifing)'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재현은 예술과 세계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한다. 터부시 되어오던 전략들을 소환하면서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재현의 패러디와 재차용(reaappropriation)을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재현의 역사 자체를 예술의 담론과 세계의 담론 사이에 놓인 경계선이 포스트모던 이론과 실천 속에서는 상호 침범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② 패러디(parody)
패러디(때로는 아이러닉한 인용, 혼성, 모방, 차용 또는 상호 텍스트성)는 포스트모던의 지지자나 반대자를 가릴 것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체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은 패러디에 관심을 기울여 재현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방식으로 과거의 이미지들을 발굴해 내는 행위에 주력해왔다. 솔로몬 거더우(Solomon Godeau)의 표현처럼, 뒤샹의 모더니즘적 'ready-made' 는 이제 포스트모던의 'already-made'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예술을 패러디화하는 것은 '향수'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현재의 표상들이 과거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지속성과 차이를 함께 지닌 이념적인 결과로서 유래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패러디는 또한 예술적 독창성과 유일무이성 그리고 자본주의의 소유권, 재산권에 관한 개념들 같은 인본주의적 관점을 검증한다. 패러디(어떤 복제의 형식과 더불어)에 의해 희소성이 있고 유일하며, (상업적으로)가치 있는 진품성은 여지없이 의문시된다. 이것은 예술이 이제 그 자체의 의미나 가치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패러디 작품은 '재현의 정치학' 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포스트모던 패러디에서 공인된 관점은 아니다. 지배적인 해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과거 형식들을 자유롭고, 장식적이며, 반역사적인 방식으로 인용할 수 있게만들뿐만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각종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현사회의 가장 적절한 문화적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패러디를 '재현의 정치학'이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핼 포스터(Hal Foster)에 따르면, 혼성모방 (pastiche) 은 신보수주의적 포스트모던의 '전형적 기호'가 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맥락과 연속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호 모순적인 '예술작품과 생산양식'을 허황되게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린다허치언은 포스트모던 패러디는 그것이 인용하는 과거 재현물의 맥락을 부정하지 않으며, 우리가 오늘날 불가피하게 과거와 유리되어 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아이러니를 사용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현재는 과거의 지속이며 다만 거기에는 역사가 빚어낸 아이러닉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던 패러디에는 모순적 형식들을 일거에 해결하지 못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밝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모순은 재현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일깨워주는 작품 속에서 발견된다. 다시 말해 허치언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반대하는 리얼리즘 관습에 의존하여 재현의 복합성과 그 밑에 깔린 정치성을 나타내는 것을 포스트모던 패러디라 말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현의 정치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③ 이중 코드(plural coding)
이중 코드는 주로 건축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략적 특성이긴 하지만 그 일반적인 원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다 구체적으로 부각시키므로 그것이 어떠한 전략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포스트모던 건축에서는 다원적인 상징적 차원들을 재 도입하고 부호체계를 혼합시키며, 지방 특유의 언어들과 지역 전통을 도용하는 행위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젠크스(Charles Jencks)는 건축가들에게 두 방향, 즉 '서서히 변화하는 전통적인 부호체계와 한 이웃이 갖고 있는 특수한 민족적 의미라는 방향 하나와 빠르게 변화하는 건축상의 유행과 전문주의의 부호체계라는 또 다른 방향을 향하여' 동시에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즉 젠크스는 민족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의미와 유행,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의 괴리를 좁힐 수 있는 예술의 방식을 모색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던 건축에서 가장 뚜렷하고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다원주의 형식은 과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모더니즘 예술이 고전적인 것을 추방하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는 데 고무되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역사적 스타일과 기법을 복원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의지를 보여준다. 젠크스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건축언어의 상대성에서 진일보한 결과라고 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주목을 끌어왔던 다양한 형식의 부활주의 속에서, 우리는 건축의 동시적 맥락뿐만 아니라 일시적이며 동시적 맥락을 충족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젠크스는 현대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 기능적인 것과 장식적인 것, 가시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조화를 기대하면서 그가 말한 '진보적 절충주의'의 시대를 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진보적 절충주의'속에는 "다른 종류의 의미들이 정신과 육체 같은 상반된 기능을 추구하면서 상호 관계하고 상호 교호할 수 있도록"하는 다가치성이 내포된다고 설명하였다.
이중코드는 맥락에의 관심과 역사에의 관심을 의미심장하게 엇물리게 한다. 젠크스의 이중코드가 역사적 이원성을 일원화시킨다면, 케네스 프램턴 (Kenneth Frampton)은 맥락의 이원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케내스 프램턴은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라는 글 속에서 문화적 차이가 국제적인 건축문법의 획일성으로 사라지는 경향을 저지하는 건축을 구상한다. 프램턴에 따르면 '비판적 지역주의'란 모던 건축 빌딩 형식에 반대하거나 그 속에서 지역적 특수성을 발전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프램턴은 이런 지역주의 형식을 산업 사회 이전의 모델이나 빌딩 설계 방법으로 회귀시키는 단순한 과거에의 동경 행위와 조심스럽게 구별짓는다. 그에 따르면 이 지역주의는 '비판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것과 전통적인 것을 새롭게 결합시키는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특수한 지역성의 언어는 모더니즘 속에서 일찌기 발견된 것이라 할지라도 지역 전통은 물론이고 지역의 풍토나 지질에 관한 문제를 감안한 새로운 것과 전통적인 것의 이중 코드를 나타냄으로써 생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젠크스와 마찬가지로 프램턴은 현대예술의 추상을 전통적으로 서구 합리성 인식론적 규율과 결합되었던 시각의미의 야만적 지배를 가져다준 결과로 파악한다. 그리하여 그는 '읽히는' 빌딩을 확산시키고,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의 세기를 조절하는 등 의미의 범위를 넓히는 '저항의 건축'을 강조했던 것이다.
④ 전도된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아방가르드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 태도는 상반되게 나타난다. 하나는 철저하게 아방가르드를 거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방가르드의 전략과 이상을 실질적으로 재포착하고 고도화시키려는 입장이다.
본래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모더니즘의 핵심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에 관한 많은 설명들은
아방가르드의 초점의 범위를 미리 앞질러 가버렸다.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미적 형식에서이념적 물질적 계기를 발전시켰고 미술에 있어 창조를 "제조"로 작가를 "생산자"로 대체하는 개념과 기능의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는 점차로 미학과 정치적 영역의 분리, 즉 초기의 아방가르드의 정치적인 도전들이 예술가 개인의 형식적 실험의 제한된 탐구로 떨어져 분리의 입장으로 후퇴했다. 이 같은 정치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의 의도된 분리의 정당화는 키치, 대중문화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양식으로 전개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양상을 비판하며 아방가르드가 경멸해온 대중문화에 대해 귀족적으로 거리를 유지해온 태도를 가차없이 버린다. 이것은 키취와 대중문화의 수용을 의미한다.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스타인 같은 팝작품이 그 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아방가르드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략적으로 수용된다. 19세기 후반구의 예술적, 사회적 편견에 대해 구체적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태도가 문화적으로 점차 보편화되면서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혁신적 의도를 지닌 예술 조류를 지칭하는 의미가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loi)는「아방가르드의 이론」이란 저서에서 아방가르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적극적 행동주의(Activism) - 행동, 다이너미즘, 전진, 탐험정신
둘째, 대립의식(Antagonism) - 역사적 사회적 기본질서에 대한 대립의식, 반전통주의
셋째, 허무주의(Nihilism) - 파괴성, 유치함, 극단적 행동
넷째, 불안(Agonism) - 낭만적 불안, 긴장, 희생, 정신적 패배주의
다섯째, 미래주의(Futurism) - 미래의 예술에 대한 예견이나 예고
위의 특성들 중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의 특성들과 공통적으로 보인다. 특히 대립의식은 모더니즘에 저항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당부분 공통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아방가드로와 숭고미의 결합을 요구한 리오타르 역시 모더니즘 에너지의 개개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종국의 모더니즘이 아니라 발생기의 상태에 있는 모더니즘이며 이러한 상태는 지속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잔 피카소,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말게비치, 뒤샹과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의해 고양론 모더니즘의 원리에 대해 탐구하면서 "아방가르드의 실제적 진행은 모더니티의 가정들을 파고드는 탐색의 길고, 완고하고, 고도로 책임 있는 노동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원화되고 있고 대중문화는 그러한 사회에서 커다란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는 대중문화를 인위적인 입장에서 거부하는 식의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때이다. 대중 매체에 의해 문화가 형성되고 소멸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아방가르드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하게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리얼리즘과 재현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는 점에서 또한 모더니즘과 매우 유사한 입장을 갖는다. 리얼리즘의 여러 특징 가운데서도 특히 모방이론에 근거하는 재현성은 모더니즘을 리얼리즘과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이다. 낭만주의 전통에 입각한 작품을 가리켜 '아름다운 거짓말'로 간주하던 리얼리즘의 작가들은 객관적으로 모방하거나 반영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예술적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재현성에 대한 회의는 모더니즘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한결 더 첨예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리얼리스트들과는 달리 자연이나 우주 또는 삶의 실재에 대하여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다.
실제 세계보다는 오히려 창조된 세계를 더 중시하는 그들은 실제가 예술적 창조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주는 반리얼리즘적 입장과 비재현성에 대한 강조는 무엇보다도 자기 반영성,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메타 픽션에서 잘 나타난다. 흔히 포스트 모더니스트들로 범주화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러한 자기 반영적 메타픽션을 매우 중요한 쟝르로 간주한다. 그러나 자기 반영적 실험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칭찬보다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로버트 올터는 [부분적인 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도의 실험성을 가리켜 '자유'가 아니라 '방종'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스트들이라는 거인에서 태어난 난쟁이 후예들로서 삶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자신의 예술을 통한 일종의 예술적 자위 행위의 희열에 탐닉해 있다"고 주장한다.
기성 전통과 인습에 대한 심각한 도전과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은 권위나 중심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20세기 현대에 만연되어 있는 혼돈과 무질서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권위나 중심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모더니즘은 형식이나 기교면에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때로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내용이나 주제면에서는 여전히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성격이다.모더니즘의 경우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장르는 마치 군대의 계급이나 천사의 계급 조직처럼 서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이러한 장르에 놓여 있던 높은 장벽이 무너지고 각각의 장르가 서로 혼합되고 결합되기 시작하였다. 레슬리 피들러가 말하는 이른바 '경계선을 넘고 간격을 좁히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탈장르화' 또는 '장르확산'으로 잘 알려진 현상이다.
고급 예술이 지향하는 진지성과 엘리트주의적인 특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동안 구체적인 일상적 삶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던 예술을 삶 속에 끌어들이고자 한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예술을 삶 속에 통합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심미적 목표로 삼았다. 특히 맨 선두에 서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는 일종의 예술적 게릴라에 해당되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아방가르드의 특성과 같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네오 아방가르드 '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논리적 계승이며 발전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단절이고, 야누스처럼 두 개의 상이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문지방에 선'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19세기를 마감하는 분수령에서 매슈 아놀드가 느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한 세계는 이미 사멸되고 다른 세계는 아직 새로이 태어나기에는 무력한 두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우리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