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원로목사님
서안한인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2009.11.1
안양일심교회를, 개척(1980.10.5) 초기인 1982년 3월 23일 부임하여
30여명 성도의 작은 교회를 2천여명의 교회로 성장 시킨 후
2008년 12월 정년은퇴하시고, 2009년 3월 12일 원로목사로 추대된 김상수 목사님이
뜻밖에도 서안 한인교회의 부름을 받게되어
2009년 11월 1일 그곳 교회의 담임목사로 다시 목회 일선에 서게되었다.
편안히 쉬어도 좋을 것을, 굳이 양을 찾아 가겠다는 목사님을,
도저히 그냥은 보내드릴 수가 없어
심문식 정건화 박윤규 이현찬 네 장로가 동행을 하였다.
당시 상황은 교회보 '일심으로' 2010년 1월호에 자세히 써서 게재를 한 바 있지만
때마침 본인이 카페를 개설했기에
늦으나마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들을 여기에 실어본다.
서안한인교회당이 자리잡고있는 사롱비지니스호텔. 8층 전부를 교회가 쓰고있다.
이곳 서안한인교회는 2000년 2월 20일, 울산교회(고신) 출신인 김훤태 장로가
하나님과의 특별한 약속을 이행키 위해 설립한 교회로,
당시 우리 교회 출신의 최대병 김영규 씨 등이 교회 개척의 주인공들로서 큰힘이 되었었다고 했다.
2009년 11월 현재 출석교인은 80여명으로, 현지주재원과 유학생이 대부분이며, 본토인은 단 한명도 출석하지 않는다.
강대상 앞에 걸려있는 김상수 목사님 환영 현수막
이곳 교회에서 첫 설교와 인사를 하시는 김상수 서안한인교회 담임목사
진지하게 말씀을 경청하며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모습
우리 교회 장로님들도 함께 예배를 드리고 당부를 겸한 인사말과 특송도 하였다.
뜨거운 찬양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이 교회 청년 학생들. 청년들의 대부분이 유학생이다.
이곳 서안은 신시성에 소속된 대표적 도시로, 5천녀의 역사중 3천년간 진. 한. 당 등 왕조가 2천여년 동안을 수도로 삼았던
역사적인 도시이자, 그 옛날 실크로드이 시작점이 되었던 곳으로.
2009년 현재 인구가 8백여만명에, 대학교가 무려 1백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환영하는 뜻으로 찬양을 하고있는 이 교회 직분자들
청년 학생들도 특별찬양을 하였다
예배 후 나누는 사랑과 정이 넘치는 교제와 점심식사. 타국에서 가지는, 예배 후 식사시간은 감회가 항상 특별할 것 같다
사택에 돌아온 김상수 목사님과 신승희 사모님
잠시 틈을 내어 돌아본 신시성 마루. 이 성은 높이가 12미터에 넓이가 15미터요 둘레가 총 14키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옥촌처럼 이곳 전통가옥들이 성벽 아래에 집단으로 지어져 있다.
성벽 아래 골동품가게들이 집단으로 있고 거기 무슨 큰 대문이 있는데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동대문 같은 거라고 보면 될 듯....
천년도 더 되었다는 사찰 법문사
역시 천년이 넘었다는 회교사원 '청진대사'.
아래 사진은 청진대사 입구의 '목비문'으로 문위에 '도법삼천지'라는 글씨가 새겨져어있다.
청진대사 내의 석비문
청진대사 내의 봉황정
김훤태 장로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새벽 일찌기, 한 시대를 풍미한 여걸 무측천의 능 위에서,
마귀가 너무 창궐하는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손에 손을 맞잡고 통성으로 간절히 새벽기도를 드렸다.
산 전체가 무측천의 무덤으로써 어느 지점에 시신이 안치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단다.
도대체 누가 왜 목들을 잘라놓았는지, 아니면 천재지변에 목들이 날아갔는지 알 수가 없단다.
꽤 높은 산인데도 김훤태 장로님은 잘도 올라가신다. 거의 매일 올라가 기도를 드려서 그렇다고 하신다.
정상 부근이다. 이 지점에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극악한 마귀세력을 잠재워 주소서... 여기에 구원의 큰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김훤태 장로님이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민속촌 정문.
장로님은 한 때 이곳 선교사님들에게 민속촌을 넘겼는데 운영을 잘 못해 다시 맡게 되었다고 했다.
민속촌 앞에서 작별의 아쉬움을....
첫댓글 장로님의 상세한 설명과 사진이 현지에 있는듯 합니다.
한 번 가야지 하는 마음만 있고....
감사합니다.
역시 편집장님이 제일 관심이 있으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