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실 앞 너른 뜰에서 꽃전이 열렸다. 봄 햇살이 아직은 알싸한 오후, 퇴근을 하다 발을 멈췄다. 아이들 아줌마들이 고개를 수그려 다양한봄꽃들을 구경했다. 나도 마찬가지. 그해 겨울 아파트에 이사오고 처음 맞는 봄이라 이런 풍경이 낯설었다. 가만 놓인 화분들만 쳐다보고 있는 내게 여자 주인장이 말을 걸었다. "하나 사서 키워보세요" 나는 언뜻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파트에서 식물을 키워보지 않아서~"
"이것이 좋겠네. 물만 잘 주면 일년 내 꽃이 피어"
'제라늄' 이라며 불쑥 집어 내밀었다. 그때부터 제라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십 년 넘게 지속되었다.
그 후 두 번의 이사와 시골집을 마련하여 정원을 꾸미면서 제일 먼저 제라늄 화분을 챙겼다. 물만 잘주고 가끔 말을 걸어주니 한 식구가 되었다. 꽃은 쉴 새 없이 피었다. 짙은 빨간색이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흰색, 분홍색, 보라색 다양한 제라늄이 나왔다. 그애들을 다 갖고 싶어서 꽃전을 찾았다. 풍성하게 그득하게 샀다. 베란다에 즐비하게 늘여놓고 흐뭇하게 웃곤하였다. 그런데 꽃전 주인이 한 말을 잊었다. 먼저 분갈이를 해서 뿌리를 살려야 한다는 걸~~ 깜박 한 것이다. "왜 꽃이 안 피지?'
"왜 가지가 시들시들하지?"
깨달았을 때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밀려오는 반성~ 욕심!
절친한 후배에게 제라늄 하나를 줬다. 식물이 자라는 환경이 달라지면 새로 잘 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서둘러 좀 더 큰 화분에 분갈이를 했다. 그리고 좀 더 따뜻한 거실, 화분 놓는 탁자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직도 꽃은 안 맺었으나 그나마 가지는 튼튼해진 것 같다. 후배에게 준 제라늄은 며칠 자나지 않아 흰색 꽃몽우리가 터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내년 봄에도 꽃전이 열리면 또 발걸음을 하게 되리라. 그러나 사지는 않아야지~~. 현재 내게 있는 화분도 차고 남치니까 새 꽃들만 실껏 구경해야지~
제라늄
앗!
어느새 또 피었네
작년 올해가 아니다
한해동안
시도 때도 없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쉼없이 피고 지고
너도 그러렴
나도 그러고 싶다
내 시집 <태산목 그대>